서대문 05: 스물의 덜컹임
시절의 특별함은 순간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우리의 “시절”을 두고 말합니다.
그 짧다면 짧은 시대의 찬란함은 구절마다 별을 박아 놓은 듯 떠오른다고.
유영하듯 깜빡거리는 시간은 가장 깊은 곳에 남아있다고.
엉성하게 엮어 놓은 비망록은 두고두고 꺼내본다고.
스물은 우리에게 그런 의미입니다.
빛나야 합니다. 행복해야 합니다. 의미 없는 것에도 웃음 지을 줄 알아야 합니다. 철없지만 철없지 않아야 합니다. 엉성한 만큼 아름다워야 합니다. 삶에 기쁨을 주고, 또 받아야 합니다. 생을 사랑해야 합니다. 찬란함의 극치를 달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스물은, 그런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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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잘 지냈나요? 벌써 코트와 머플러를 꺼낼 계절이 왔습니다. 어제는요, 내쉬는 숨마다 새하얗게 변해버린 공기가 눈앞에 보이더군요. 꽁꽁 싸맨 채 하얀 숨을 내뱉으면서 향한 곳은 신촌이었습니다. 하루라도 외출하지 않으면 끝없이 무기력해지니, 약속이 없어도 거리를 거니는 버릇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일요일 오전마다 꼬박꼬박 챙겨 타는 버스는 서대문 05입니다. 그는 5분에서 10분마다 정류장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그곳에 서서 손님들을 기다립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니, 당연한 듯 초록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버스 주변의 낡은 가게들은 제법 눈에 익어서 반갑기도 합니다.
노선이 시작되는 이 시점은 손님이 드뭅니다. 여느 때처럼 창문 가까이, 버스 전체가 다 보이는 자리에 앉아봅니다. 반쯤 열린 창문이 초겨울 바람을 볼에 불어 넣습니다. 겨울 냄새가 나는 것 같네요. 대답을 보내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려 봅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힙니다. 육중한 몸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버스는 몸을 돌려 첫 번째 정류장으로 향합니다.
시작입니다.
이번 정류장은 추계초등학교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새마을금고입니다.
시작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입니다.
생각해 보면, 나의 시작도 이 계절이었습니다. 두꺼운 후드티와 매일 입어 해진 면바지를 옷장 한구석에 넣어버리고, 시작을 기념하듯 산 봄옷은 알록달록했습니다. 개나리 빛의 부드러운 니트와 새하얀 스니커즈가 계속 시야에 걸려서 도무지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쯤 새 옷을 꺼내입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오고야 말 봄을 기다리던 겨울의 저는, 가슴 한쪽을 숟가락으로 움푹 퍼서 올린 것만 같은 숭숭 뚫린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비어버린 가슴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들떠있었고, 그 안을 들여다본 주위 사람들은 기대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고생했어.
이젠 행복할 일만 남았다.
좋겠네.
안으로만 부서지며 버텨온 시간을 보상받으려는 듯 매일 웃었습니다. 당신이 “시작의 들뜬 행복감을 어떻게 시각화하느냐?” 묻는다면, 그때의 제 웃음으로 답할 수도 있겠습니다.
정해지지 않은, 곧 제자리를 찾을, 확신에 찬 그 생경한 감각.
어쩌면 나도 조연이 아닌 주연일 수도 있겠다는 오만한 기대감.
이번 정류장은 아현역1번출구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웨딩타운입니다.

버스는 탁 트인 길을 거침없이 달립니다.
이제부터 골목을 지나 큰길로 들어섭니다. 탁 트인 8차선 도로는 매번 새로움을 줍니다. 여기로 쭉 가면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에 잠겨봅니다.
시작을 지나온 저는, 찌는 여름 햇빛과 함께 난생처음 탁 트인 길을 마주했습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요. 아니, 애초에 어디 서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딱 올해를 기점으로 망망대해에 놓여버리다니요. 세상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는 건가요? 끝이 보이지 않는 아스팔트 길은 저를 놀리듯 아지랑이만 보여줬습니다.
트여있다는 건, 앞에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다는 뜻.
이제는 공부니, 입시니, 미숙함이니 그런 핑계들은 변명이 될 수 없다는 뜻.
탁 트인 곳을 달리다 넘어지는 건 온전히 내 책임이라는 뜻.
남들이 추켜세우는 말은 어엿해 보여야 지킬 수 있다는 뜻.
그래서 작은 돌다리마저도 조심스레 건너야 합니다. 보란 듯이 두드리면 움푹 파이고 맙니다. 움푹 파인 자국은 표가 나니까요.
간절해 보이면 취약해집니다. 그러니까 모른 척 지나치자고요. 순간의 실수가 변명의 여지 없이 내 탓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게를 견뎌봅시다. 우리는 성년을 지나오지 않았습니까. 성년의 날에 받은 장미꽃잎이 어깨에 뚝 떨어져 무게감을 더해주는 것만 같네요. 일단, 아직 어른이 아니라 ‘그냥 성인’이라며 조악하게 짜인 변명을 들이밀어 봅니다.
이번 정류장은 이대농협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아트레온입니다.
정오의 마을버스는 느리게 떠오르는 생각 덩어리들이 무색하게 거침없이 달려 나갑니다. 열어놓은 창 너머 차가운 숨에 섞인 건 후회.
감기 걸리기 좋은 날씨군, 생각합니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공기에는 겨울 냄새가 배어있습니다.
고백하자면, 최근에 꽤 아팠습니다. 계절 사이에 피어난 간극이 저를 약하게 만들었네요. 환절기의 꽃말은 감기라는 걸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 있습니다. 버거움도 ‘버거움’이라며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나를 돌아보기에 서투른 나는 무의미한 감정 더미로 그것들을 치환해 버렸습니다.
결국, 명명하지 못한 감정들을 켜켜이 쌓아둔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감당하지 못해 이름 붙이지 않은 마음들은 어느덧 한구석에 썩어버려 냄새를 풍겼습니다. 나의 무기력은 가슴 한 모서리를 조금씩 찢어 갈기갈기 조각냈습니다. 결국,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같이 걷던 거리를 혼자라는 감각 때문에 두려워하다니. 참으로 우습지 않나요?
불유쾌한 냄새가 두려움을 먹고 자라 나를 집어삼키지 않게 하려면 마음을 다잡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나는 꿈꾸던 이곳에 닿아, 왜 두려운가. 새로움에 지쳐버린 걸까. 막막함과 헛헛함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이 아득하고 무수한 질문들의 답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이번 감기로 깨달은 건, 순간의 감정을 가볍게만 보내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 내게 다가오는 감정을 안아주는 의식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이번 정류장은 CGV신촌아트레온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신촌전철역입니다.
어느덧 생각 뭉치는 내가 아닌 다른 곳으로 건너가네요.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것이 이제야 들립니다. 저들은 친구겠지요. 저들은 아버지와 아들이겠고요. 저들은 부부일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저만 한 자리 좌석에 앉아있습니다. 저들은 어디에서 와 어떻게 만난 걸까요. 관계는 어떻게 지켜내는 걸까요. 닿을 수 없는 간극은 누가 정하는 걸까요. 서로를 이은 선은 어떻게 끊기는 걸까요.
야속하게도 오늘 하늘은 시리게 푸릅니다. 가을과 겨울 사이는 닿지 않을 만큼 높습니다. 도무지 만날 것 같지 않습니다.
간질간질한 코끝을 무심코 만지며 생각합니다.
어떤 날씨는 핑계가 된다. 어떤 계절은 변명이 된다. 어떤 날은 버릇이 되고, 어떤 사람은 이유가 된다. 어떤 것들은 그저 의미 없이 남기도 한다.
그게
지나가는 것일지,
지나오는 것일지,
머무르는 것일지,
머무르다 부서지는 것일지,
머무르고 부서지다 못해 흩날리는 것일지.
그건 버스 손잡이를 위태롭게 잡고 있는 이 작은 손에 달렸음을.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손잡이는 흔들립니다. 거기에 매달린 나도 함께 흔들리고 맙니다.
이번 정류장은 신촌전철역입니다. This stop is Sinchon Station.
어느덧 눈에 익어버린 로터리 앞에서 내려봅니다. 굴러가는 탈것과 딱딱한 아스팔트의 경계를 쓱, 지나갑니다. 덩달아 그 위에 얹혀 있는 공기의 색깔도 달라집니다. 버스를 채웠던 산발적인 생각들이 한 갈래로 모여 다시 머리 틈새로 들어가 버립니다.

익숙한 정류장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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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물은 참으로도 어지러웠습니다. 마냥 빛나지만은 않았습니다.
행복과 불안으로 구성된 스펙트럼 안에서 엉성하게 발을 내밀어 어느 쪽으로 담가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나름 성실하게 쌓아왔던 데이터베이스들은 이 정신없고 새로운 도시를 만나고 무의미해졌습니다. 그동안의 기억, 추억, 사람, 생각, 웃음, 취향은 새로움과 상성이 맞지 않더군요. 앞뒤 좌우로 쏟아지는 경험의 폭풍은 그런 일들을 미숙하게만 만들었습니다.
시작이라는 달콤한 말에 들뜨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방향을 찾기 위해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감기처럼 찾아온 걱정들을 보내 버리려고 노력도 했습니다.
지나가는 인연들을 붙잡지 못해 아쉬워도 했습니다.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스물을 갈무리하고, 스물과 스물하나 사이에 얌전히 놓여있는 나를 보며 떠올립니다.
언제나 답은 지금의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흘러내린 머플러를 단단히 매고
펄럭거리는 코트를 다시 잠근 채로
초겨울로 가득 찬 이 거리를 걸어갑니다.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매일이 찬란하지는 않아도.
당신의 스물에게, 나의 스물이.
p.s. 시절의 특별함은 순간이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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