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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17 · 05 · 26

158. ‘빵 사이에 낀 과일’ 박사장님

Editor 미나미
  1. ‘빵 사이에 낀 과일’ 박사장님 (60대)

 

‘이대 앞 사장님’ 프로젝트 그 세 번째 주인공은! 한결같이 20년 째 제자리를 지키며, 신선한 메뉴 조합으로 매년 입소문을 타는 ‘빵 사이에 낀 과일’ 사장님이다. 줄여서 일명 ‘빵낀과’로 불리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그곳으로 잔치가 출동해 보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 그 안에 또 빵 사이에 낀! 과일이 골목 끄트머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아휴~ 저는 그런 거 잘 안하는데.(수줍) 저는 박 가이고, 60대예요.

 

‘빵 사이에 낀 과일’을 이 곳에서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97년 도였어요. 우리 딸이 이대 졸업생인데 학교 다닐 때 먹을만한 데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이대 앞에 식당이 많이 없었거든요. 옷집하고 미용실이 90프로였죠. 그래서 ‘식당을 여기서 한번 해보자.’ 해서 하게 됐죠. 나는 그때 마침 사업도 실패해서 집에 있는 상황이고 사람을 대하는 게 심적으로 조금은 힘들었어요. 그래도 학생들을 상대로 장사 하는 거라서 부담이 덜했죠. 지금도 큰 수익이 나서 하는 건 아니에요. 학생들이랑 이야기 하는 게 좋아서 해요.

 

샌드위치, 쉐이크, 떡볶이, 그리고 김치볶음밥?!

치즈파티 중인 떡볶이 한가득, 벅차오르는 오레오 쉐이크

메뉴 조합이 정말 독특해요. 어떻게 이런 조합을 생각하셨나요?

원래 우리는 샌드위치 가게였어요. 떡볶이는 아주 오래 전 고시생들 때문에 하게 됐어요. 그 당시에 이화여대에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이 학교 안에서 지내고 있었어요. 그 학생들이 추운 어느 겨울날 들어와서 먹는데 “얼큰하고 뜨끈한 거 먹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 학생들이 계산하고 나갈 때 “그렇게 뜨끈한 게 먹고 싶니?” 라고 물어보면서 언제오면 떡볶이 해주겠다고 했죠. 아이들이 한창 엄마한테만 말하면 원하는 거 얻어먹을 나이인데 공부한다고 나와서 고생하니까 딱하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두 번 해주니까 메뉴에 올리라고 졸라서 결국 하게 됐어요.

 김치볶음밥은 14년도 가을 쯤이었나? 한 학생이 저한테 가만히 다가와서 “이모,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이모님이 해주시는 떡볶이랑 샌드위치 먹으면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는 거 같아서 그런데 밥도 해주시면 안될까요?” 하더라고요. 그것도 그때에는 못하겠다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 학생이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고 어렵게 말을 꺼냈을까 싶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좋아하면서 가장 간단한 김치볶음밥을 하게 됐어요. 이렇게 말하고 보니 메뉴가 만들어진 과정이 우리 가게의 역사네요.

 

샌드위치는 가게를 시작할 때부터 하신 거군요. 그럼 샌드위치 메뉴는 직접 개발하신 건가요?

처음 시작할 때 내가 어디서 과일 샌드위치 레시피를 가져온 건 아니에요. 직접 만든거지요. 그런데 졸업생 손님 한 분이 얼마 전에 일본을 다녀왔는데, 거기서 똑같은 걸 판다는 거예요. “이모가 일본 가서 배워 왔나?” 하길래 “나 (가게 한 지) 20년이야~” 라고 했죠. 왜냐하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일본인들이 신촌을 많이 왔는데, 얘기 듣고 아마 그 일본인 중 한 명이 보고 간 게 아닐까 싶었어요.  거기가 일본에서 유명한 집이라던데 내가 한번 거길 가봐야겠어요.(웃음)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골목 끝자락에서 20년 째 골목대장 역할중

가게가 인기가 정말 많아서 SNS에도 올라가고 이대생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거 아시죠? 지금도 가게가 작은 편인데 혹시 좀 더 키우실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우리 가게도 IMF 터지고 나서, 가맹점을 열고 싶다고 연락이 엄청 많이 왔어요. 그런데 샌드위치 집 낸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절박함으로 일할텐데 시작해놓고 장사 안 된다고 내가 욕먹을 이유도 없잖아요? 그냥 우리 가게는 배고프면 들어와서 먹고, 맛있으면 한 번 더 오고, 그런 집이죠. 저도 욕심 있었으면 (가맹점을) 냈겠죠. 하지만 그렇게는 안 해요.

 

정말 오랫동안 이 자리에 있으셨잖아요. 그 오랜 시간 동안 변화가 많았을 텐데 아쉬운 점이 있나요?

아까도 말했듯이 옛날엔 이 앞이 다 쇼핑하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쪽에 ‘밀리오레’나 ‘두타’ 같은 쇼핑몰들이 생기고 상권이 다 그쪽으로 넘어가면서 이 쪽이 죽기 시작했어요. 연대 앞은 그런대로 상권이 살았는데, 이 앞엔 주차장도 없고 불편하니까 중고생들만 찾아왔죠. 특히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면서 많은 게 망가졌어요. 보행자 길을 넓히는 사업이었는데 넓힌 만큼 노점상들도 많아져서 크게 차이가 없었어요.

 또 ‘걷고 싶은 거리’ 공사하면서 길이 안 좋아지니까 전체적으로 손님들이 확 줄었어요. 이 여파로 400개나 되던 미용실들이 다 강남, 청담으로 이동했죠. 학생들 때문에 그나마 이 앞이 돌아가는 거예요. 임대료도 너무 올라서 개인이 하는 가게는 많이 힘들 거예요. 그런 점들 때문에 내가 한번은 ‘구청장 면담 좀 해야겠다!’ 할 정도로 너무 화가 났어요. 이 곳은 좀 더 나은 변화가 필요해요. 하지만 아직 구조적으로 불합리한 게 많아서 어렵죠.

(*이대 앞 ‘걷고 싶은 거리’는 2003년 서울시 대학가 주변 환경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서대문구 대현동 37 일대 47만2680㎡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을 재정비한 사업이다.)

 

점심과 저녁사이, 애매한 이 시간에도 ‘빵낀과’는 매 시간 배고픈 손님들을 위해 열려있다.

장사를 계속 하게 되는 이 곳의 매력이 있다면 뭘까요?

학생들하고 맨날 이야기하는 거? 젊은 사람들하고 계속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좋은 일이죠. 그 이상은 없어요. 요즘은 오래 하다 보니까 이대 졸업생들 오면, 딸들 온 것 같이 반갑더라고요. 그래서 더 오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졸업생들이 오면 이제 오래된 가게들이 거의 없으니까 추억의 집으로 오래오래 남아주라는 말에 힘을 얻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이 앞에서 가게를 할 계획이신가요?

내가 할 수 있는 날까지 (할 거예요)! 그게 언제인지는 나도 모르겠어요.(웃음)

 

바쁘신 와중에도 한석봉 어머니 못지 않은 솜씨로 떡을 썰며 인터뷰에 응해주신 사장님.

미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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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

신촌 바닥 굴러다니기를 즐기는 어노잉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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