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 신초너의 신촌 이야기- 포석정
계획 없는 지출에 통장 잔고 상태도 좋지 않고, 과제에 치일 대로 치이면서 받은 평가마저도 별로인 요즘, 몸과 마음이 무척 지쳐있었다. 이런 와중에 신촌 소재 대학에 재학중인 고교동창을 만났다. 친구는 내가 ‘잔치’에 몸담았다는 사실만으로 신초너가 돼있을 거라 여기는지, 본인이 모르는 신촌의 이모저모를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필자는 신촌이 좋아 야심차게 잔치를 벌이러 들어왔지만 신촌상식은 턱없이 부족한 초보신초너다. 그래서 오늘이 신촌 4번째 방문임을 빠르게 실토하고, 초보답게 배우는 자세로 일정에 임하겠다고 했다. 결국 친구는 체념한 표정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자며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발걸음했다.
십분 정도 걸었을까. 그녀가 손가락으로 ‘저기’ 라고 말하며 가리킨 가게는 멀리서 얼핏 보기에 조그마한 한식집처럼 보였다.
“뭐 파는 집이야? 한식이면 좀 비쌀 거 같은데…”
친구 왈,
“엥? 이 가게 무한리필…”
“무한리필?!?!?”
무한리필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없던 기운이 샘솟았다. 들어오길 기다리는 친구를 제쳐두고 가게 이름부터 다시 확인하는 내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신촌에 놀러오면 한 번쯤 방문해 본다는 ‘포석정’ 이라는 요리주점이었다.

내부공간에 비해 입구는 작은 편이다.
간판에 가게 이름보다 크게 적혀있는 글귀만 읽어도 신촌과 막걸리에 꽤 자부심이 있는 가게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친구가 느끼는 포석정은 어떤 곳일까.
나는 간판 필체만 언뜻 보고 한식집인 줄 알았는데, 주점이었네. 막걸리가 무한리필이야?
막걸리도 한식이잖아.(웃음) 무한리필은 종류에 따라 조금씩 가격 차이가 있는데, 사실 간판에 써있는 5500원짜리가 어디있는지 모르겠어. 내가 처음 여기 오게 됐을 때 ‘막걸리 무한리필/ 5500원’ 을 보고 너처럼 환호하면서 들어왔거든. 근데 아무리 뒤져봐도 6900원밖에 안 보여서 결국 그걸 먹었었어. 가격이 올랐는데 미처 간판을 못 바꾼 건지. 내가 못 찾는 건지. 만약 못 찾은 거라면 5500원을 메뉴판 첫 페이지에 걸어두면 좋겠어. 묘하게 속은 기분이야.
무한리필이 혹여 5500원이 아니어도 가성비 높은 술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인원수에 따라 다르긴 할테지만, 나랑 동기들은 포석정을 가면서 금전적인 부담을 크게 느끼진 않아. 그래서 ‘많이 마시고 싶은 날= 포석정’ 으로 굳어진 수준이랄까. 안주 가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메인안주가 평균 이만원 꼴인데, 질도 높고 양이 무척 많거든. 기본 안주도 많이 나와서 딱히 더 시킬 필요가 없어. 신촌은 물가가 비싼 데에 비해 여기는 다른 주점에 비하면 저렴한 편인 거 같아. 너도 알다시피 우리 살던 동네는 둘이서 술 마시면 각자 만 원 안 내잖아. 대학가는 꿈도 못 꿔, 특히 신촌은. 대학오고 신촌주점에서 처음 술 마실 때 안주가격에 놀랐던 때가 생각나네.

이게 다 얼마냐고? 무려 기본안주!
너는 여기 어떻게 알게 됐어?
학교 에브리타임 커뮤니티에 하도 자주 올라와서 궁금했는데 친구들이 마침 가자길래 따라갔지. 나는 그 날이 첫 방문이었는데, 동기들은 자주 와봤다는 듯 익숙하게 안주를 주문하더라.
동기들은 자주 와본 거야? 에타에도 계속 올라올 정도면 학교에서 인기가 좋은가 봐.
앞서 말했듯이 안주 구성과 맛이 좋아. 기본안주에 나오는 감자튀김이 내 최애메뉴인데, 술김에 서로 먹겠다고 젓가락을 부딪히기도 했었어. 지금 떠올리면 민망한 기억이지. 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무한리필이라는 점이 인기와 아주 무관하진 않을걸?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안정감은 생각보다 커. 특정 금액을 내고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게 즐겁잖아. 그래서 막걸리 무한리필이라는 말이 확 끌리기도 했어. 또 칵테일 무한리필은 자주 봤어도, 막걸리 무한리필은 잘 못 봤거든.
근데 저렴한 편이라해도, 여러지점이 있어 가격이 보장되는 삼구포차 같은 곳을 가는 게 더 이득 아니야?
포석정이 유일하게 신촌에만 있는 주점이잖아. 그 희소성도 인기에 한 몫 한다고 생각해. 선배들도 포석정은 신촌 뿐이라고, 갈 수 있을 때 자주 가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니까. 내가 신촌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묘한 소속감을 심어준다 해야하나. 그저 주점일 뿐인데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나조차도 의문이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잘 온 거 같네. 그러면 과행사 할 때도 여기가 적격이겠다. 메인안주가 푸짐하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적합한 곳은 아니야. 주변 대학에서 소규모로 오는 건 가끔 봤는데… 여기는 월 1회 단 한 팀밖에 예약이 안 돼서 나도 단체로 오려다가 실패한 적이 있었어. 또 포석정은 예전에 동기들 6명이서 와서 좀 신나게(?) 놀다가 조용히 해달라고 제지를 받은 적도 있어. 너도 지금 느낄지 모르겠는데 만석 치곤 덜 소란스럽지 않아?
제지를 받았다고? 조용히 하라는 말은 없잖아. 기분이 상하진 않았어?
물론 주점에서 조용히 해달라고 제지 받은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어. 내 생각에도 적당히 시끄러웠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아무리 가격을 지불했다지만 공공장소임은 명확하잖아. 가게 쪽에서 유지하고자 하는 컨셉이 많은 손님을 불러모으는 원인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그리고 우리도 다시 올 생각이었으니 죄송하다 사과드렸어.
그럼 신촌이 처음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야?
처음 신촌에 와서 술잔을 기울이기 위한 가게를 찾고 있다면 추천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대놓고 유명한 곳이지, 전국에 유일무이하면서 가격, 분위기 모두 좋지. 신촌이 시끄러워서 꺼려지는 사람들에게 차분한 신촌을 소개해줄 수도 있고!
단점을 굳이 꼽자면?
일단 화장실이 좀 위험해. 가파른 계단 위에 있는데, 올 때마다 몇 번 구를 뻔했어. 사실 내가 가본 신촌 주점의 화장실은 다 비슷비슷 했지만. 그리고 물이 셀프인 것도 은근히 귀찮더라고. 나중에는 술게임에서 진 사람이 가져오기도 했어. 벌칙 정하기 애매할 때는 또 좋은 거 같기도 하고…?(웃음) 아, 방금은 농담이야.
그건 좀 아쉽네. 그보다 나같은 포석정 초보자에게 메뉴 추천 부탁해.
과일맛 음료는 호불호가 갈리긴 하는데 딸기막걸리 가 정말 맛있어. 가격에 비해 양이 좀 적긴 한 건 아쉽지만 말야. 가장 호평을 많이 받은 건 꿀막걸리, 안주는 모듬전! 양이 많고 종류도 다양해서 골라먹는 재미가 있기도 하고, 여기 와서 제일 배불리 먹었던 기억도 있어.


당신의 위를 가-득 채워줄 양식들.
좋은 추천 고마워. 끝으로 너에게 포석정이란? 어떤 방식으로도 좋으니 정의해 줘.
재학생 때 언제나 몇 번이라도 갈 아늑한 분위기의 맛집, 신촌에 친구가 놀러오면 지금처럼 데려오고 싶은 곳, 학교를 졸업하면 젊음을 추억하고 꼭 한 번쯤 다시 오게 될 것만 같은 장소로 정의할 수 있을 거 같아.
젊음을 추억한다라…
나는 대학생활을 ‘젊음’ 자체로 여기며 살 거야 . 근데 대학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공간이 포석정이니까, 젊음을 추억하는 요소의 일부 정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친구가 느끼는 주관에 철저히 의지하며 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겪어보며 생각의 접점를 찾는 것은 제법 즐거운 일이었다. 신촌의 물가나 분위기, 본인 경험 등을 엮어가며 설명해주는 친구 덕에 포석정이 처음인 나조차 이곳이 꽤나 익숙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내내 친구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신촌을 다 알았다는 착각에 취해있었다. 오늘의 대화는 생소한 지역에 갈 일이 생길 때면 객관적인 정보만 알려고 애썼던 나에게, 종종 지인의 설명을 찾을 계기가 될 거 같다.
낯선 동네에서 무엇을 할지, 어디를 갈지 고민할 여력이 없을 때 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지역에 오래 거주하거나 많은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의 설명을 듣다보면, 어느새 이야기에 같이 녹아들어 즐거워하고 있는 본인을 발견할 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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