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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17 · 11 · 08

33. 필름메이커 강예솔(INTERVIEW)

Editor 정동

겨울밤. 커다란 가방을 멘 채, 반쯤 기울어진 몸으로 걷는다. 매서운 바람은 가방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든다. 입김을 내쉬며 가방끈을 꽉 쥐고 걸어가다보면 스스로가 말없는 청부업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깨에 맨 것은 다름 아닌 카메라,아니면 삼각대 또는 붐마이크다. 어둔 밤, 검은 가방을 들고 그렇게 걸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이 짐을 진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불꺼진 극장처럼 영화란 것은 여러모로 무겁고, 짙고, 어둡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들의 존재를 쉽사리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은 돌아오는 시선이 없다하여 자신만의 시선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한쪽 눈을 감은 채, 누구보다 유심히 거리를 바라보는 이들. 우리는 그들을 Filmmakers라고 부른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놓인 커다란 스크린. 다행히도 그 스크린을 살짝만 열어젖히면, 얼마든지 우리는 그들과 만날 수 있다.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필름메이커는 어디에 있을까. 대학생으로서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영화쟁이를 찾아보았다. 이번에 찾은 영화쟁이는,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재학중인 강예솔(23) 씨.

 

“저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구요. 지금까지 단편영화 한 편을 만들었고, 앞으로 단편영화 한 편과 장편영화 두 편을 만들고 싶은,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대학 들어오기 전부터 영상 콘텐츠 자체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대학교 2학년 때 고급영상제작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거기서 처음 작은 규모지만 단편영화를 만드는 현장에 가보게 되었어요. 직접 배우들도 캐스팅하고, 시나리오도 쓰고, 촬영에 편집에 상영까지 딱 하고 나니까 그 일련의 과정 자체가 굉장히 즐겁더라구요. 그래서 그 이후로 계속 해나가고 있어요.”

 

영화를 꿈꾸는 대부분의 이들은 단편영화 만들기로 첫걸음을 내딛는다. 예산 문제가 가장 큰 이유지만, 좀더 긴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가 스스로 시험해보기 위해서 단편영화를 찍기도 한다. 그러나 단편영화도 온전한 하나의 ‘작품’이다. 예솔 씨도 작년에 단편영화 한 편을 찍었다.

“제 첫작 <비행>은 일종의 의무감으로 시작했어요. 직접적인 계기는 강남역 살인사건이었어요. 그때가 딱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때였어요. 근데 그 사건 이후에 제가 가진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영화하고픈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합쳐지면서, <비행>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영화 준비 과정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를 하다보니 여성혐오적 가치관이 사회 곳곳에 뿌리깊게 박혀있다는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을 넘어서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형항공기대회를 준비하며 편견에 부딪히는 두 여고생 이야기, <비행>

“사실 <비행>을 작년 10월에 완성을 하고 상영까지 했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관객들의 눈에 제대로 못 들어오더라구요. 첫 연출이라 그런지 어떤 방식이 주제를 좀 더 잘 드러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올 3월에, 몇몇 장면을 추가적으로 다시 찍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작년 촬영 시기가 여름이었기 때문에, 올해 재촬영도 여름 복장으로 찍어야 했던거예요. 그런데 재촬영은 초봄이니까, 결국  봄에 배우들이 하복을 입어야했어요… 재촬영의 아픔이죠. 하지만 다시 찍기를 잘한 것 같아요. 훨씬 좋아졌어요.“

 

어떤 영화인들, 끔찍한 실수 혹은 우스운 해프닝 없이 만들어질까. 예솔 씨는 그밖에 단편영화 작업의 특별한 매력과 힘든 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가장 큰 매력은, 보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의견을 들을 수 있는거요. <비행>을 만들 때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쓸 때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그래서 사람들 의견을 많이 들으려 했고 실제로 다양한 사람들한테 피드백도 받는 등 여러 도움을 받아, 결과적으로 주제와 작품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 제 의도를 온전히 담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인 것 같아요. 사실 장편상업영화같은 경우에는 투자자나 배급사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독립영화나 단편영화 같은 경우에는 연출자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면서) 일을 분배하는게 제일 힘들었어요. 제가 <비행>을 찍을 때는 첫 연출이다보니 ‘제작부’나 ‘제작자’의 필요성을 몰랐어요*.그래서 제가 연출과 제작을 동시에 했어요. 그런데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영화 생각하기도 머리 아픈데 식사도 챙겨야되지, 촬영시간 이동시간도 맞춰야지, 너무 정신이 없는거예요. 막 한참 촬영하다가도 스탭들 배고파하는게 눈에 들어와서 다른 스탭한테 빨리 가서 밥 사오라고 카드 꺼내주고… 그때 ‘아 이건 진짜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제가 일 맡기는 걸 좀 어려워하는 성격이에요. 인력 부족하다고 연출부한테 제작부 일 부탁하기 너무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더 저 혼자 하려 했어요.”

* 영화 연출부가 촬영장이나 배우, 소품 등 작품의 그림과 관련된 작품의 내적 부분을 신경쓴다면, 제작부는 예산이나 스케줄 등 외적 부분을 관리한다. (물론 예산이 훨씬더 많이 들어가는 장편영화에선 연출부 외 의상/소품부가 따로 있다)

 

각본부터 편집까지 ‘자가주도학습’이란 말을 몸소 체험하게 하는 학교 영상 수업, 전문적인 지식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는 어려운 영화동아리. 그럼에도 예솔 씨는 모두 단편영화를 만드는 데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한다. 그같은 경험의 힘으로 사람들은 영화를 만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화로 말을 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말할 때의 몸짓과 표정이 다르듯, 영화도 감독도 제각기 스타일을 갖고 있는 법이다. 예솔 씨는 어떤 스타일, 어떤 감독의 화법을 가장 좋아할까?

“사실 아직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본 편이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꼽긴 좀 어려워요. 하지만 요즘 주로 네오 리얼리즘*이나 누벨바그* 영화들을 많이 보고 있긴 해요. 그 중에서도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가장 좋아해요. ‘장소’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그 장소를 가장 탁월하게 다루는 영화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저는 <‘네 멋대로 해라>가 가장 좋더라구요. 카메라의 움직임과, 컷과 컷 사이의 끊김과, 그 뒤로 흐르는 음악과 그것들이 한꺼번에 만들어내는 리듬이 너무나 좋아요.

하지만 계속해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바뀌는 편이라 언제 또 바뀔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이보다 더 좋아하는 영화가 더 빨리 생겼으면 좋겠어요.”

 

*네오 리얼리즘: 2차 대전 이후에 이탈리아에 나타난 리얼리즘 경향의 영화들.  전쟁, 가난과 같은 고통을 그린 작품이 많으며 갑작스런 전개 등을 특징으로 한다. 대표작으로는 <자전거 도둑> , <8과 2분의 1> 이 있다.

*누벨바그: 1958년경부터 프랑스 영화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조. 주로 느슨한 이야기구조, 즉흥적 촬영 등을 특징으로 한다. 대표작으로는  <400번의 구타>, <네 멋대로 해라>가 있다.

 

                            경찰에 쫓기는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 <네 멋대로 해라>

 

고다르의 영화를 얘기하다 ‘장소’라는 주제가 나오자 점점 밝아지는 그녀의 눈을 보고,  장소와 공간에 대한 그녀의 생각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았다.

“사실 우리나라 공간들이 점점 비슷비슷해지면서 개성이 없어지는 느낌이에요. 예를 들면, 어디 한군데서 한옥마을 유명해지니까 온갖 곳에 한옥마을들이 생기고, 전부 똑같이 한복 입고 다니고, 맛집 생기고… 그 지역만의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걸 우리가 계속해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라는 게, 저도 처음엔 내러티브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장소의 영향도 굉장히 많이 받는 것 같더라고요. 사실 요즘 장소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들도 여러 권 읽고 있어요. 그 중 ‘비장소’라는 개념이 재밌는 것 같아요. 비장소는 간단히 말하면 어디에 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 딱히 특별한 의미가 없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촌을 예로 들면, 명동이랑 별 차이가 없잖아요. 똑같이 에이랜드, 맥도날드, 그리고 로드샵들 줄지어 있고… 제가 만약 신촌에서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연세로 같은 장소는 별로 다루고 싶지 않아요.

물론 신촌이 다 그렇지는 않죠. 예를 들어서, 예전에 ‘향음악사’ 없어졌을 때 되게 아쉬웠거든요, 저 말고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고. 하지만 에뛰드하우스 없어졌다고 ‘너무 슬퍼…’, ‘점장님 뭐라도 사드려야지…’ 이런 생각은 보통 안 들잖아요. 저는 그런 ‘비공간’ 말고 오래된 ‘공간’, 개성 있는 공간을 다루는게 좋아요.

사실 그런 주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하나 찍고 있어요. 제가 진주에 13년을 살았는데, 사실 그곳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거든요. 하지만 그 장소에는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풍경과 역사가 쌓여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주제에 관해 작품을 만든다는 것만큼, 그 주제에 관해 깊이 있게 생각하게하는 일이 있을까. 예솔 씨가 이같은 고민을 얼마나 오랫동안 했는지, 그리고 그 생각들을 앞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해졌다. 한편으론 단편영화 하나에 들어가는 고민의 양에 비해 작품을 바라봐주는 시선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녀의 차기작 진행상황과, 단편영화 연출자로서 그리고 영화인으로서 그녀의 바람과 목표에 대해 물어보았다.

사실 11월 초에 찍으려고 한 단편영화가 있었는데 잠정적으로 미뤄졌어요. 시나리오는 계속 고쳐나가고 있지만요. 예산 문제가 제일 머리아픈 것 같아요. 영화진흥위원회처럼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곳에 지원을 해도 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

“단편영화가 사람들이 ‘일부러 시간을 내서 보는’ 콘텐츠라는 인식이 늘어나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단편영화도 장편영화처럼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단편영화가 그 가치를 조금 더 인정받고, 사람들이 단편영화를 하나의 예술로 그리고 (장편영화처럼) 한 편의 ‘영화’로서 봐주길 바라요. 물론 그 과정에서 단편영화 제작 환경이 더 나아지고, 볼 기회도 늘어나야 하겠지만요. 사실 단편영화뿐만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서 ‘가치’가 있다고 인정 받고 존중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영화 보는 것, 만드는 것, 공부하는 것, 상관없이 다 좋아서 영화와 관련된 일이라면 다 재밌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 갖고 있는 생각은 대학원에 가서 좀 더 영화 공부를 한 후에 교수가 되는 거예요. 교수는 자기 작업도 할 수 있으면서 공부도 할 수 있으니까요. 감독으로서 꼭 하고 싶은 것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단편영화 한 편, 장편영화 두 편을 찍고 싶은거예요.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특히 저의 가족에 관해서. 단편 하나는 저, 그러니까 딸에 관한 단편이고 장편은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영화로. 이 세 편을 꼭 만들고 싶어요.”

 

                               연출자에게는 ‘반드시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있다

 

영화 세 편. 세 손가락을 꼽으며 하나하나 주제를 짚는 예솔 씨의 모습에서,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다. 확신이란 고민없이 나올 수 없다는걸 생각해보면, 예솔 씨는 어쨌든 수많은 고민의 봉우리중 하나를 넘어낸 것 같았다. 그렇기에 하고 싶은 말 혹은 필름메이커들에게 용기를 줄 말이 있지 않을까 물었더니 예솔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용기를 주기보다 용기를 받고싶어요(웃음). 아, 바라는게 하나 있다면 영화인들끼리 대화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저는 비전공자라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방향을 잡는 게 특히나 더욱 힘들었거든요. 영화 만드는 사람들끼리 더 뭉쳐서 용기를 주고 받았으면 좋겠어요.”

 

필름메이커들 스스로에게도, 같은 영화쟁이를 만나는건 꽤나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도 이렇게 카메라를 지고 가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예솔 씨처럼 영화를 꿈꾸는 이들은 지금도 곳곳에 존재한다. 한 편의 영화가 수많은 프레임을 담듯, 자신들의 눈에 수많은 삶의 모습을 담으면서. 그들이 우리를 세심히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도 그들과 그들의 작품을 그저 지나치지만은 않기를.

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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