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 로그인
PLACE 2017 · 11 · 23

80. 공든

Editor 주디

 얼마 전 첫눈이 내렸다. 수능이 다가오자 어김없이 찾아온 추위에 두툼한 겉옷들을 꺼낸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눈까지 내렸다. 흩날리는 눈발을 보아 하니 이 추위는 깜짝 한파가 아니라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인 모양이다.  

 누군가 여름과 겨울 둘 중에 어느 계절이 더 좋냐고 에디터에게 물으면 주저 없이 겨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숨만 쉬어도 땀나는 것 같은 여름보다야 추우면 껴입으면 그만인 겨울이 낫다는 설명이 으레 뒤따른다만, 사실 에디터가 겨울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따뜻한 음료를 즐기기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커피든 차든 겨울날 추위를 피해 마실 때 그 매력이 배가 된다. 꼭 겨울날이 아니더라도 음료는 따뜻하게 먹어야 본래의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꼭 기분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의 미각과 후각은 체온보다 약간 낮은 온도에서 가장 민감하다. 그래서 커피도 차도 따뜻할 때 그 본연의 맛과 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

 같은 이유로 에디터는 음료를 주문할 때 가급적 머그잔에 달라고 한다. 머그잔에 마셔야 그 온도가 오래 유지돼서 보다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잔을 쥘 때 느껴지는 뜨뜻한 안정감도 에디터가 머그잔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러한 에디터만의 집착에도 불구하고 한여름에는 도저히 따뜻한 음료를 마시지 못한다. 입에도 대기 전부터 그 열기에 땀이 뻘뻘 나는지라 도저히 맛과 향을 즐길 수 없다. 그래서 여름에는 싫어도 아이스로 주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겨울이 내심 반갑다. 그리고 올해 겨울도 역시 따뜻한 음료와 함께하기 위해 에디터가 점찍은 곳이 하나 있다. 바로 연희동에 위치한 카페 ‘공든’이다.

 

 무려 파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리. 에디터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다.

 

 사실 공든은 연희동 카페거리가 아니라 연세대학교 서문 원룸촌에 있다. 그래서 공든 앞에는 ‘연희동’ 보다 ‘연대 서문’이 붙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원래 ‘아이스프링(i-spring)’이라는 카페였는데, 동업하시던 두 사장님 중 한 분이 가게를 인수해 공든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오픈한지 이제 4개월 남짓 됐다.  

 아이스프링이던 시절에는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는지 에디터가 매일같이 지나가는 골목에 있었는데도 몇 번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대대적으로 공사를 마치고 가게 이름이 ‘공든’으로 바뀌었다. 인테리어도 트렌디해지고 감성적으로 변한 것이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매일같이 다니는 곳에 이렇게 감성 충만한 카페가 생겼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에 가게 문을 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공든은 에디터의 ‘주요 서식지’가 돼버렸다.

 

 에디터가 최근 공든만 다니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가성비다. 커피 가격은 착한 편인데 맛도 훌륭하다. 이 가격에 이 정도 품질의 커피가 나오는 카페를 찾기는 쉽지 않다. 아메리카노 외에도 플랫화이트, 바닐라라떼 같은 기본 에스프레소 음료를 즐길 수 있고 오렌지라떼, 쑥크림라떼, 비엔나커피(아인슈페너) 같은 커피도 있다. 커피 외에도 벨지안초콜릿(핫초코)나 리쉬티도 즐길 수 있다.

 에디터가 공든만 다니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뭐라고 정의하기 힘든 편안함, 아늑함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매력인 것인지 고민하던 에디터는 이 매력을 ‘앙팡진 매력’이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앙팡진 매력이 무엇인지 설명하려면 에디터의 또 다른 집착을 소개해야 한다.

 에디터는 커피를 시킬 때면 꼭 물 한 잔을 같이 마신다. 보통 카페에는 물을 셀프로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항상 물 한 잔 받아두곤 한다. 예전에 누군가 커피 한 잔에 물 한 잔을 같이 마시는 것이 정석이라고 알려준 이후부터 생긴 버릇이다. 실제로 유럽의 카페에서는 커피를 시키면 꼭 물 한 잔과 함께 커피를 내온다. 꼭 그게 정석이라서가 아니더라도 커피를 마시고 나면 입에 남는 찝찝한 느낌을 물 한 입으로 정리해야 커피 맛을 제대로 즐긴 느낌이랄까. 유별나 보일 수 있지만 한 번 챙기기 시작하면 물 한 잔 없이 마시는 커피는 뭔가 부족하다.

 여튼 이러한 이유로 항상 물 한 잔을 챙겨 마시는데, 아니 이런… 공든은 셀프로 물을 받는 곳이 없었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 염치 불구하고 사장님께 물 한 잔만 같이 주실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흔쾌히 물 한 잔을 함께 내주셨다. 다름 아닌  ‘앙팡 물 잔’에 레몬 조각과 민트 잎을 띄운 채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앙팡 물 잔을 처음 봤을 때 너무 귀여운 나머지 한참 사진을 찍었다. 한참을 찍던 중 문득 이 앙팡 물 잔이 한 마디로 딱 정할 수 없는 공든의 매력을 대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그 형태에서 대조적인 매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언뜻 보면 항아리마냥 불룩한 형태가 정겹다. 그러면서도 양 끝을 평평하게 깎은 것이 세련되어 보이기도 한다. 정겨움과 세련미가 공존하는 형태다. 공든이 꼭 그런 모습이다. 콘크리트 골재를 다 노출하는 차갑고 트렌디한 인테리어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낱낱 소품은 하나같이 엔티크하고 가구는 목제가구만 쓴 것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앙팡 물 잔이 세련된 모습과 정겨운 모습을 다 가지고 있듯, 차가운 인테리어와 따뜻한 인테리어가 공존하고 있다.

 앙팡 물 잔의 매력은 형태가 끝이 아니다.  물 잔 가운데 80년대 느낌 물씬한 서체로 적힌 ‘서울우유 앙팡’이라는 글씨는 여간 친숙한 것이 아니다. 뭔가 어렸을 때 집에서 봤던 것 같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못 본지 꽤 됐지 싶다. 그냥 종이컵이나 플라스틱컵에 물이 담겨있다면 물 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텐데 앙팡 물 잔에 담겨 나오니 마치 엄마가 공부 열심히 하라고 쟁반에 과자 몇 개와 함께 챙겨주는 물 잔 같다. 공든 곳곳에 이렇게 80년대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소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추억을 되살리는 소품들은 공든을 편안한 곳으로 느껴지게 한다.

 트렌디하면서 정겹고 차가우면서 따뜻한, 4개월 된 카페에서 느껴지는 친숙함 같은 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도저히 한 단어로 응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이 카페 참 앙팡지다!

 

앙팡지다!

 

  그렇게 한동안 앙팡진 매력에 빠져 카페를 다니던 와중에 문득 이 가게가 얼마나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가격이 저렴한데 이전에 비해 테이블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에디터는 하루 종일 공든에 앉아 있을 때도 꽤 많았는데 하루 온종일 다녀가는 손님 수를 세어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사장님께 왜 테이블 수를 줄였는지, 가게 수익이 나빠지지는 않을지 걱정이라고 질문을 던지자 우문현답이 돌아온다.

 

  물론 전보다 수익이 조금 줄기는 했는데요, 그래도 지금이 좋아요. 저희 카페 이름이 공든이잖아요. 그게 ‘공을 들였다’는 의미에요. 요즘 카페들이 점점 자동화되고 있거든요. 글라인딩도(커피 원두를 갈아내는 과정) 자동으로 해주고 심지어 핸드드립마저도 기계가 해줘요. 원래 커피 맛은 바리스타가 오랜 수련으로 익힌 감각으로 내리는 기술에서 나오는 것인데 말이죠. 꼭 커피가 아니더라도 요즘 세상 곳곳에서 결과는 표준화되고 과정은 사라지는 것이 많더라구요. 저는 그 사라져가는 과정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커피와 디저트 만들 때도 천천히 공을 들이는 편이구요. 손님들이 커피를 마시는 것도 결국 하나의 과정이잖아요? 그런데 테이블을 빽빽하게 두다 보면 뭐랄까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창도 넓히고 천장도 높게 틔우고 테이블은 좀 줄이되 테이블은 큰 테이블로 바꿔봤어요. 일단 제가 느끼기에 이게 훨씬 편한 것 같고 손님들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더라구요. 지금이 훨씬 낫지 않나요?

 

 “네… 훨씬 좋아요.”라는 답이 에디터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괜한 걱정이었다. 지금의 모습은 손님을 위해 가게 이름 그대로 ‘공들인’ 모습이었던 것이다. 매일 같이 다니면서도 공든이 무슨 의미인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저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공든은 ‘공들인 것’들로 가득 차있다.

 커피와 디저트는 말 그대로 잔뜩 공들여져 있다. 커피는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원두는 우리나라 1세대 바리스타 중 한 분의 원두를 받아쓴다고 한다. 커피를 낼 때는 꼭 민트 조각과 말린 오렌지도 빠뜨리지 않고 추가된다. 디저트도 꼭 이쁜 접시에 과일과 크림으로 플레이팅해서 내주신다.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에디터가 가급적 머그잔에 마시는 집착이 있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사진에 종이컵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건 바로 사장님이 컵 뚜껑에 적어 주시는 멘트 때문이다. 사장님께서는 커피 시킬 때마다 컵 혹은 컵 뚜껑에 멘트를 적어주신다. 한 번 머그잔에 달라고 말하는 것을 깜빡해 종이컵에 커피를 받았는데 그때 읽은 문구가 재미있어 그 뒤로는 종이컵에도 음료를 받아마신다. 몇 개월간 매일같이 커피를 마셨는데 아직 한 번도 같은 문구를 두 번 받은 적 없다. 사장님께 멘트가 참 힘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손님들에게 힘이 될 만한 멘트를 적으시기도 하고 가끔은 사장님이 사장님 자신에게 하는 말을 적으시기도 한단다.

 

 다시 앙팡 물 잔으로 돌아오면, 에디터는 이 물 잔이 너무 마음에 드는지라 사장님께 물 잔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사장님 집에서 들고 온 물 잔인가 했더니 그런 것은 아니고 빈티지샵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추억도 되살아나고 모양도 이쁜 것이 보자마자 딱 이거다 싶어서 4개를 샀는데 안타깝게도 하나가 깨져 이제 “서울우유 앙팡”이 적힌 물 잔은 세 개만 남았다.

 내친김에 앙팡 물 잔 외에 그간 궁금했던 소품들의 내력도 하나하나 물어봤더니 이력이 제각각이다. 한쪽에 자리 잡은 기타는 사장님이 쓰시던 것, 에디터가 제일 좋아하는 테이블과 의자는 지인이 카페를 정리하며 한쪽 벽에 걸린 거울과 함께 넘겨준 것들, 추억이 되살아나는듯해 구입한 앙팡 물 잔과 어린이집 의자, 빈티지샵에서 구입한 스탠드 등과 타자기까지…심지어 타자기 옆에 위치한 담요 상자는 사장님 집 근처 주택에서 이사 가며 내버린 서류 가방을 주워오신 것이다.

 이력만큼이나 소품들의 매력도 제각각이다. 스탠드 등과 타자기는 엔티크한 매력이 물씬 느껴진다면 거울과 테이블은 상류층 가정집의 가구 같다. 그런가 하면 한 쪽에는 모던한 그림이 걸려있고 창가의 테이블은 트렌디하다. 등도 제각각이어서 엔티크한 조명과 형광등과 전구가 좁은 가게에 공존하고 있다. 이렇게 제각각인 소품들이지만 한눈에 보면 별 이질감 없이 공든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누군가 버린 쓰레기도 사장님 눈에 들어오면 감성 넘치는 소품이 된다.

 

 공든에는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매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카페에서 다양한 핸드메이드 제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단골 중에 공방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의 요청으로 사장님께서 판매 공간을 마련해주셨다고 한다. 덕분에 공든에서는 아기자기한 뱃지와 캔들, 디퓨저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연희동 기억공방에서 제작한 캔들과 디퓨져.

 

 지금 이 글을 마무리하는 순간에도 에디터는 공든에 있다. 따뜻한 수제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발라 한입 물고 커피컵을 잡으니 커피 뚜껑의 멘트가 눈에 들어온다, ‘빈 공간이 있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종이가 있다고 꼭 뭘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문구를 찬찬히 보며 ‘그렇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마감에 맞춰 얼른 이 빈 문서를 채워내야 하는 에디터의 처지에 조급해진다. 하지만 이내 뚜껑을 열자 적당한 온도에서만 느껴지는 커피향이 탁 퍼진다. 향이 퍼지는 만큼 마음은 가라앉는다. 한참 향을 음미한 뒤 커피 한 모금. 그리고 앙팡 물 잔 물 한 모금. 아무래도 이번 겨울은 만족스럽게 보낼 것 같다.

 

오늘도 아름답고 벅찬 날이 되기를.

 


 

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10가길2 1층

전화번호 : 010-8935-2931

영업시간 : 08:00~22:00 / 일요일휴무

주디
AUTHOR PROFILE
주디

그것만이 내세상

COMMENTS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