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빌리 엔젤 (BILLY ANGEL)

똑똑~ ‘빌리’라는 천사의 초대를 받고 오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기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맞나요?
설레는 마음으로 신촌에 첫 발을 내딛은 신촌 새내기의 삶은 생각보다 고달프다. 나이가 들수록 괜히 무언가 해야할 것만 같은데 무엇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반대로 큰 맘 먹고 하겠다고 계획한 일은 또 맘처럼 쉽지 않고. 이런저런 고민으로 축 처진 나와 달리 신촌은 야속하게도 매일매일 생기가 넘친다. 이렇게 화려한 신촌 거리를 더욱더 반짝반짝 빛내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빌리 엔젤(BILLY ANGEL)이라는 거대한 디저트 카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눈부시게 빛나는 외관. 문득 ‘천국이 있다면 저렇게 빛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시 저 곳에 진짜 빌리라는 천사가 사는 건 아닐까? 혹시 저 곳에 들어가면 그 천사가 나타나 내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에라 모르겠다, 일단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작정 출입구로 향하는데, 곧장 눈앞에 천국이 펼쳐질 것만 같은 비주얼이 나를 반긴다. 그렇게 호기심 반, 기대심 반으로 사뿐사뿐,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빌리 엔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살짝 숨이 찰 때쯤 끝나는 계단을 다 오르자마자, 눈앞에 파스텔톤의 민트색과 하얀색이 어우러진 빌리 엔젤이라고 쓰여 있는 큰 표지판이 보였다. 마치 빌리 천사가 사는 천국에 도착했다고, 잘 왔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를 향한 디저트 천사들의 환대. 평소 상상하던 모습의 천사가 나타나 날 반겨주지는 않았지만 우아한 케이크 천사, 귀여운 쿠키 천사, 사랑스러운 마카롱 천사 등 가지각색의 천사들이 나를 격하게 환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 진짜 천국인 것 같다. 그렇다면 천국의 양식은 어떤 맛일까, 또다시 두근대는 마음으로 주문을 하려고 메뉴판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빌리 엔젤의~ 삼총사 말고 삼천사에요!
쿠키 천사, 케이크 천사, 마카롱 천사!
그런데! 황홀했던 기분도 잠시, 천국과는 거리가 살짝 먼 현실적인 가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고작 나의 지갑 사정 때문에 흥이 다 깨져버릴 수는 없는 노릇. 눈물을 머금고 ‘여긴 천국이다’라는 주문을 되뇌며 빌리 엔젤의 가장 대표 메뉴인 레인보우 크레이프(7800원)와 이와 어울리는 추천 음료로 소개된 카페라떼(5300원)를 주문했다. 한 끼 식사와 다름없는 가격의 디저트라니. 그만큼 만족스러운 디저트려니 하는 마음으로 맨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뭉게뭉게 새하얀 구름을 연상시키는 1층과 2층.
거기에 폭신폭신하고 보들보들한 의자에 앉으면 정말 구름 위에 앉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도착한 천국의 꼭대기. 어? 근데 새하얗게 뒤덮여 마치 내가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던 1층과 2층과 달리, 3층은 온통 청명한 파스텔톤의 하늘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눈앞에 새파란 하늘이 펼쳐진 것 같은 그런. 생각해보니 여기가 천국이라면 그럴 만도 하다. 뭉게뭉게 피어있는 구름 위에 넓게 펼쳐진 새파란 하늘. 우연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인테리어에서도 이런 소소한 센스를 발휘하다니. 천국의 계단을 연상시키는 출입구부터 절묘한 내부 인테리어까지 정말 작은 천국이 따로 없다.

새파란 하늘 위에 반짝반짝 작은 별 5개!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천국 풍경 감상을 끝내고 드디어 천상의 양식을 먹어볼 차례! 비주얼부터 군침 꿀꺽! 그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알록달록 레인보우 크레이프 케이크다. 크레이프는 프랑스어로 ‘얇은 팬케이크’라는 뜻의 가볍고 종잇장 같이 얇은 음식을 말하는데, 형형색색의 크레이프가 차곡차곡 쌓인 레인보우 크레이프를 한 겹 한 겹 떼어보니, 이런 반죽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얇았다. 그리고 제일 먼저 벗겨낸 빨간색 층을 돌돌 말아 입에 넣자마자 진한 딸기향이 입안에 퍼졌다. 뭐랄까, 초등학생 때 즐겨먹던 동글납작한 딸기향 사탕 느낌?

빨간색은 딸기맛, 주황색은 오렌지맛, 노란색은 바나나맛, 초록색은 메론맛,
파란색은 블루베리맛, 보라색은 포도맛!
이번엔 한입 크게 베어 물자 정말 신기한 맛이 났다. 색이 다른 각각의 층은 각각 다른 맛을 내고 있었는데 그 맛들이 섞여 입 안에서 또 하나의 무지개를 피우고 있었다. 하늘에 뜬 무지개를 먹으면 이런 맛일까 싶었다. 한창 케이크의 달콤함에 푹 빠져 있을 때, 잊고 있었던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셔본다. 크레이프 사이 사이에 덧발린 생크림과 카페라떼의 부드러운 우유맛이 어우러져 입 안을 사르르 녹였다. 이렇게 달달한 케이크에는 보통 홍차나 아메리카노 같이 살짝 씁쓸한 음료를 추천하기 마련인데, 여긴 왜 굳이 또 달달한 맛이 나는 카페라떼를 추천했을까? 하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 여기 천국이었지. 천국의 달콤함에서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게 하려는 빌리 천사의 깜찍한 꾀가 아닐까.
그렇게 빌리 엔젤에서의 행복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몇 시간 전 반짝반짝한 조명에 이끌리듯 들어왔던 출입구를 통해 그곳을 나서려는데, 들어올 땐 보이지 않았던 것이 새삼 내 눈길을 끌었다. 바로 ‘STRESS X RELAX’ 라고 쓰여있는 발판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있는 동안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행복했던 것 같다. 진짜 천국에 온 것처럼 마음 편히 있었던 것 같다.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빌리 천사는 어느새 나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고 있었다. 분명 신촌은 나에게 낯설고 야속한 공간이었는데, 신촌의 큰길에 위치한 빌리 엔젤은 오히려 나에게 안식처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는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 편히 먹으라며 듣는 사람 마음 울컥해지는 감동의 말까지 던진다.

밖에서 본 빌리 엔젤의 모습. 여전히 반짝반짝 빛난다. 1, 2층엔 새하얀 구름, 3층엔 새파란 하늘.
빌리 엔젤의 실질적 1층은 다른 건물의 2층 높이라는 것도 이곳을 작은 천국으로 만드는 절묘한 포인트다.
그렇다. 신촌이 낯선 이유는 어쩌면 너무 당연하다. 내가 신촌을 낯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신촌이 ‘처음’이라고 해서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빌리 엔젤에게도 신촌은 처음이었을 텐데. 신촌이 익숙하다는 듯 유유히 걸어다니는 저기 저 사람들에게도 신촌이 처음인 순간이 있었을 텐데. 두려워할 필요 없다. 나는 신촌이 처음이니까. 그만큼 신촌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뿐이다. 무엇을 해야할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맞긴 한 건지 모르겠는 것 또한 당연하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것이 처음이니까. 그러니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다. 그냥 빌리 엔젤이 말해준대로 마음 편히 먹고 기다리자. 어차피 시간은 가고, 새로움 위에 시간이라는 크레이프가 쌓여 익숙함이라는 두꺼운 크레이프 케이크가 되는 법이니까.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나다보면, 언젠가 적응할 날이 오겠지. 그 때는 나도 제법 능숙하게 이런 고민을 하는 신촌 새내기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겠지. 나에게 빌리 엔젤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렇게 SINCHON NEW가 SINCHON KNEW가 되는 그 날을, 오늘의 신촌 새내기는 열심히 기다려본다.
*Sinchon, new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여름을 SHOW라는 주제로 기록합니다. 매월 SHOW 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드릴 예정인데요. 이달의 ‘S’는 바로 ’Sinchon, new’입니다. 이곳에 숨겨져 있는 신촌 그리고 새로움을 찾아보세요:)
주소 :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28-1
영업시간 : 매일 9:00 ~ 22:00
전화번호 : 070-5051-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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