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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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8 · 03 · 08

83. 봉원 숲 속 공원

Editor 왕 잔치

“야 수업 끝나고 뭐해. 내가 신기한 거 보여줄까?”

“뭔데?”

“일단 따라와 봐. 저기 언덕길 바닥에 굉장한 꿀잼이 숨겨져 있다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놀이터가 있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지나칠 법도 한 작은 놀이터.

  바닥에 숨겨진 꿀잼? 당최 상상이 가지 않지만, 자신감에 찬 친구의 말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봉원사로 향하는 오르막길을 오르며 친구에게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거듭 캐물으니 그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하는 말이, 놀이터에 간단다. 놀이터? 20살이 되고, 생활반경이 점차 대학교 주변으로 한정되면서 놀이터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삐걱거리는 그네, 녹슨 철봉, 빛바랜 미끄럼틀을 신촌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나저나 굉장한 꿀잼이 고작 놀이터라니… 김이 팍! 샌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퐁퐁, 방방, 팡팡, 콩콩이…

 

  그러나 막상 놀이터에 다다르니 흥미로운 것들이 눈길을 끈다. 다른 곳들과는 다르게 트램펄린이 바닥에 박혀있다. 그 위에 가볍게 뛰어오르니, 그가 나를 가볍게 위로 띄워 올려준다. 기분이 묘하다. 우리 동네에서 소위 ‘콩콩이’로 불리던 이 트램펄린을 마지막으로 탄 게 언제였더라. 초등학교 5학년?

 

 

  작은 그네에 올라 앞뒤로 몸을 흔드는 것 또한 즐겁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뺨을 스쳐 가는 느낌이 간질간질하면서도 시원하다. 피겨소년 차준환은 피겨를 하면서 머리카락이 자신의 얼굴에 부딪히는 느낌을 좋아했다는데. 그가 느꼈던 것도 이와 비슷한 것이었을까?

 

 

  10년 전의 에디터라면 낑낑거리며 한발짝 한발짝 내딛었을 언덕 모형을 이제는 뒷짐을 지고도 훌쩍 오를 수 있다. ‘내가 생각보다 많이 커버렸구나.’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오랜만에 만난 재미난 기구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뛰노는데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한 아이가 슬며시 다가와 에디터를 쳐다본다. 다 큰 누나가 까르르 웃으며 뛰노는 모습을 낯설게 혹은 흥미롭게 지켜보는 그의 시선에 머쓱함을 느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별것 아닌 이 작은 공간이 요물처럼 나를 홀리는 걸. 이곳의 순수함에 오늘 수업이 어땠는지, 통장 잔액이 얼만지, 과제 제출이 언제까지였는지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몸은 가볍고, 복잡한 생각은 훌훌 날아가며,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을 만끽한다.

 

※ 과도한 미끄럼틀 주행은 당신의 엉덩이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종종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날이 있다. 놀이터를 보고 있으니 유년시절 놀이터에서 친구와 뛰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바쁜 신촌의 여느 거리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한적한 이 동네의 분위기는 추억을 곱씹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놀이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간다. 지역에 따라, 작게는 동네에 따라 놀이의 이름과 방법이 다르니 이 또한 재미난 이야깃거리이다.

 

“애들 몇 명만 더 있었으면 우리 ‘경도’하는건데.”

“경도? 아, 경찰과 도둑! 어렸을 때 애들끼리 모이면 무조건 경도하고 놀았지.”

“나 맨날 눈 감았다고 거짓말하고 실눈 뜨고 그랬는데. 음 또 뭐 하고 놀았더라~ ”

 

  나는 고작 22살. 놀이터 인생을 마무리한 지 1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으나 현대의 시간은 너무나 빨라서, 미래로의 진화가 너무나 빨라서 요즘의 놀이터들은 내 어린 시절의 것들과는 생김새가 꽤나 다르다. 놀이터 앞에 붙는 ‘창의적인’, ‘친환경적인’, ‘자연적인’과 같은 수식어가 아직 어색하기만 하다. 바닥에는 모래 대신 우레탄이 깔려있고 놀이기구는 쇠 대신 플라스틱이나 합성고무로 만들어져있다. 땅바닥에 나뭇가지로 금을 그어 땅따먹기 놀이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 때 묻은 손에 코를 박고 킁킁대면 진하게 풍겨오던 비릿한 쇠 냄새도 이제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현대의 놀이터를 바라보며 유년시절의 낡은 추억들을 되새길 수 있음은 세월이 흘러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진화의 흔적들이 있기 때문이다. 페인트칠이 견고해져도, 기구의 생김새가 한층 고급화되어도, 여전히 그네가 있고, 미끄럼틀이 있다.

  때론 신촌 어느 포차에서 술 게임을 하며 노는 것보단 소소한 놀이터에서 키덜트 감성을 풍기며 뛰노는 것은 어떨까. 술이 나를 부르고 내가 술을 부르는 술자리에서의 우정도 좋지만, 동심에 취하는 놀이터에서의 우정도 좋다. 봉원사 가는 길의 작은 놀이터. 우리의 추억이 떠오르는 장소, 우리의 우정이 새롭게 피어오르는 장소. 내가 몰랐던, 새로운 모습의 신촌. Sinchon, new.

“나랑 놀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Sinchon, new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여름을 SHOW라는 주제로 기록합니다. 매월 SHOW 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드릴 예정인데요. 이달의 ‘S’는 바로 ’Sinchon, new’입니다. 이곳에 숨겨져 있는 신촌 그리고 새로움을 찾아보세요:)

 


주소: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길 57

왕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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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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