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 평화의 소녀상
지난 3월 1일 옆동네 홍대입구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질 뻔 했다. 하지만 주변 상인들의 반대, 홍익대학교 측의 완강한 거부로 트럭에 실린 평화의 소녀상은 비를 맞으며 하염없이 홍익대 정문을 바라보다 돌아갔다. 그리고 4년전, 같은 이유로 갈 곳을 잃었던 소녀가 있다.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평화의 소녀상입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위안부 할머님들을 대신하여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늘 대현문화공원 한 켠에 서있죠. 이화여대 학생분들은 오다가다 저를 자주 보셨을 것 같은데, 사실 신촌에 제가 서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맞아요, 길 중간에 계셔서 그런지 못 보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그래도 지나가다 몇 번 뵌 적이 있는데 이렇게 대화해보기는 처음이네요. 언제부터 이곳에 계셨던 건가요?
2014년 12월 24일이요. 벌써 3년도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그 날은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여기로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거든요.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사실 처음에는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앞에 있으려고 했어요. 위안부 문제를 처음 세상에 알린 분-전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 윤정옥(93)-이 재직했던 곳이거든요. 하지만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입장과 맞지 않다며 반대했죠. 그런데, 그 학생들이 없었다면 저는 세상에 없었을지도 몰라요.
학생들은 이화여대 학생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시작은 ‘이화나비’라는 동아리의 학생들이었는데, 나중에는 전국의 학생들이 나서서 도와줬어요. 제가 학생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소녀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요즘은 상황이 좋아져서 학교 안에서 지내는 친구들도 많이 생겼답니다.
다행이네요. 아, 저도 미국 뉴욕에서 친구분을 뵌 적이 있어요.
그래요? 미국 뿐만 아니라 캐나다, 호주, 중국, 독일에도 친구들이 있어요. 한국에는 70명이 넘는 친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죠. 이름만 같을 뿐, 친구들마다 표정이나 자세는 다 달라요. 뉴욕의 친구는 의자에 앉아있었죠? 부천에 있는 친구는 뒷모습만 보여요. 저는 보시다시피 파란 날개가 있고요.

등 뒤에 있는 파란 날개를 보니 한 마리의 나비가 떠올라요. 혹시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거듭남, 환생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나비처럼 저도 아픈 과거를 딛고 다시 일어나길 바라는 의미로 학생들이 달아주었어요. 제가 용기 내서 내민 손을 많은 분들이 잡아 주시고 함께 날갯짓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고보니 맨발이시네요. 봄이라지만 아직 추운데, 옷도 너무 얇으신 것 같아요.
지금 제가 겪는 추위는 이전에 할머님들이 겪었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냐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는 기억해야해요. 그 분들의 아픔을, 슬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해요. 그게 저와 제 친구들이 존재하는 이유이죠. 그리고 겨울이면 누군가가 항상 모자며, 목도리며 주고 가는 덕에 몸과 마음은 모두 따뜻해요.
저도 다음번에는 꽃이라도 들고 찾아올게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편하게 이야기해주세요.
올해만 해도 벌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세 분이 세상을 뜨시고, 스물 아홉 분만 남아계세요.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만 가는데 여전히 가해자들은 침묵하죠. 여러분께 바라는 건 단 한가지예요. 이 땅에 전쟁으로 인해 당신과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할머니의 외침을,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것. 잊으면 지는거예요.
누군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물었고, 이에 다른 누군가는 봄이 왔다 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봄은 오지 않았고, 80년이 지난 지금도 추운 겨울 눈밭을 헤매고 있다. 흩날리는 벚꽃잎 아래에서 나는 하염없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잊지 말아야 할 her
*Her : 잔치는 2018년 신촌의 봄·여름을 SHOW라는 주제로 기록합니다. 매월 SHOW 중 하나의 알파벳을 메인 테마로 선정해 새로운 콘텐츠를 보여드릴 예정인데요. 이달의 ‘H’는 바로 ’Her’입니다. Let’s find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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