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카페 카프카
느지막이 눈을 뜨고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를 챙겨 먹는다. 창밖을 바라보니 날씨가 무척 좋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딱 좋은 날씨.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챙겨서 밖으로 나간다. 나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기 때문에- 맞아. 오늘은 카페 가는 날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신촌을 향한다. 사실 처음 신촌에 왔을 때는 조금 실망했었다. 조용한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취미인 나인데 여긴 24시간 프랜차이즈 카페만 즐비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건 신촌을 구석구석 살피지 않았던 나의 실수라는 걸 곧 알게 되었다. 복잡한 신촌의 골목들을 탐방해보니 숨겨진 개인 카페들이 꽤 있었다. 오늘 갈 카페 또한 깊숙한 곳에 숨겨져있다. 눈에 띄지 않는 휑한 골목 안, 홀로 빛나고 있는 ‘카페 카프카’.

큰 간판이 없어 조금 헤매다가 내부의 따뜻한 노란 불빛과 아늑해 보이는 나무 탁자들을 보고 알아차렸다. 아, 여긴가봐. 내가 쉴 수 있는 곳!
차분한 분위기에 만족하며 카페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손님들의 소지품을 담기 위한 종이박스가 자리마다 놓인 걸 보며 사장님의 사소한 배려를 느꼈다. 소지품을 박스에 넣고 제일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내가 자리 잡은 탁자 위로 내밀어지는 작은 책, 이게 뭐지?


그건 책을 닮은 메뉴판이었다. 각 카테고리마다 4~6가지의 메뉴가 늘어져있는 단출한 구성. 메뉴 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나에게는 깔끔한 메뉴판이 꽤 마음에 들었다. 신중한 고민 끝에 밀크티 한 잔과 치즈케이크 하나를 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둘러본 카페 안.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팔과 다리를 감고 지나가고, 스피커에서는 이름 모를 팝송이 흘러나오고, 고소한 원두 향이 코를 스치고, 눈앞에는 탐나는 책들이 보인다.
곳곳에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책들과 문구들
이 책들의 작가는 프란츠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를 좋아하시는 사장님 답게 그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카페의 이름 ‘카페 카프카’부터 그의 이미지가 담긴 카페 로고, 그의 대표적인 책 ‘변신’ 등.


짧은 구경을 마친 후 연한 베이지 빛깔의 밀크티 한 잔과, 새하얀 생크림에 덮인 치즈케이크가 나왔다. 홀케이크를 여러 등분한 조각 케이크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동그란 원형의 치즈케이크가 나왔다. 큰 틀에 한 번에 구운 게 아니라 하나하나 만들어진 치즈케이크, 왠지 특별한 느낌이다. 그리고 무화과 한 조각. 새하얀 생크림 위 붉은 빛깔의 무화과가 예쁘다.
밀크티 먼저 한 모금, 은은하게 느껴지는 차 향.
치즈케이크 한 입, 입 안으로 퍼지는 치즈의 풍미.
치즈 케이크가 입안에서 사르르…녹는 중에 케이크와 생크림 사이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건 바로 크럼블이었다. 마냥 부드럽기만 한 케이크와 생크림 사이에 바삭하게 씹히는 크럼블이 재미있다.
부드러움 사이에 숨겨진 바삭함
황홀해하며 치즈케이크를 향한 포크질을 멈추지 않는 나에게 사장님께서 차 한 잔을 주셨다.
밀크티와 치즈케이크가 둘 다 달아서 차를 마시며 입안을 정리하라고-
단짠이 아니라 단단을 즐기는 나에게는 밀크티와 치즈케이크 또한 훌륭한 조합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웬걸, 따뜻한 차 한 모금을 마시고 케이크를 먹으니 이게 진정 달달함을 즐기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은한 차와 함께하니 치즈케이크의 맛이 더 진하게 다가왔다.

뜨거운 차 한 잔에 얼음 한 조각의 배려
어둠이 있기에 별이 빛나듯이 씁쓸한 맛이 있기에 단 맛이 극대화되는 것, 음식을 먹을 때뿐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적용되는 법칙이다.
카페 카프카의 위치 또한 이 법칙이 적용된다. 이렇게 외진 곳에 있는 이유가 궁금해서 사장님께 신촌의 골목으로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냐고 물었었다. 사장님께서 말씀하시길 홍대, 연남동 등 개인 카페가 많은 곳은 피하고 싶으셨다고- 우연히 놀러 온 신촌에 개인 카페가 많이 없는 것을 보고 여기로 자리 잡아야겠다고 생각하셨다 한다.
어쩌면 사장님은 카페 카프카의 위치를 정할 때 차와 치즈케이크의 적절한 조합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르겠다.

만족스럽게 시간을 보내고 카페 카프카를 나서는 길, 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 복잡한 신촌의 거리가 나타난다. 마치 골목 입구가 해리포터 속 9와 ¾ 정거장처럼 다른 세계로 가는 관문같이 느껴졌다. 골목 하나를 두고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두 공간이 존재하는 신기한 마법 나라 신촌. 활기찬 신촌도 좋지만 가끔은 정거장을 건너 차분한 신촌도 누리고 싶어.
부드러운 생크림이 있기에 바삭한 크럼블이 통통 튄다. 은은한 차가 있기에 치즈케이크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 복잡한 신촌이 있기에 조용한 카페 카프카가 빛난다.
복잡함 속에 차분함을 즐기고 싶을 때, 카페 카프카로 오시길!
카페 카프카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4길 55
매일 12:00 – 22:00



오 ~~ 이런 곳이 있었군요. 신촌에 가면 꼭 한번 들러서 카프카의 변신과 함께 해야겠군요. ㅋㅋ
멋지게 소개해주셔서 감사~
차분하고 섬세한 표현에 안정된 기분을 얻고 가네요…멋진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