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이 아는 신촌
시선(視線) [ 시ː선 ]: 눈이 가는 길. 또는 눈의 방향.
“이를 테면 낮엔 그저 스쳐 지나가던 모든 것이 밤이 되면 내 시선 앞에서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을 송두리째 드러내 놓고 쩔쩔맨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의미가 없는 일일까요?
그런, 사물을 바라보며 즐거워한다는 일이 말입니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사상계 (1965).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시선은 관심이 된다. 시선을 둔다는 것은 결국 객관적인 어떤 것에 나의 생각을 잠시라도 머무르게 한다는 것과 같다.
공간도 그러하다. 여러 사람의 시선에 따라 의미가 담기고, 각색되고, 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다시 살아나기도 하는 곳. ‘신촌’이란 공간은 어떤 시선으로 보여지고 있을까? 문득 궁금증이 일어, ‘신촌’을 바라보는 문학 속 시선들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달빛은 솔가지에 솔가지에 쏟아져 바람인 양 솨-소리가 날 듯하다. 들리는 것은 시계 소리와 숨소리와 귀또리 울음 뿐 벅쩍 고던 기숙사도 절간보다 더 한층 고요한 것이 아니냐?“
-윤동주, <달을 쏘다> 조선일보 학생란(1939).
윤동주 시인이 머물렀던 연희전문학교의 기숙사, 핀슨관. 현재는 윤동주기념실과 연세대학교 법무사무처로 쓰인다.
윤동주의 시처럼 이곳은 낮인데도 시간이 멈춘 듯 했다. 들리는 것은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와 이따금 사람들이 산책하는 발소리 뿐. 한 때는 연희전문학교 학생들로 시끌벅쩍한 기숙사였을 이곳은 가을 단풍 속에서 햇살을 받으며 고요히 서 있었다.
윤동주의 숨결이 잠시 머물렀던 핀슨관을 지나 걸어 내려오다 보면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백양로가 보인다. 한 때는 백양나무로 가득 찼을 이 곳. 비록 백양나무는 사라졌지만 89년의 기형도는 이 곳에서 백양나무를 바라보며 대학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이제는 백양나무를 거의 찾을 수 없지만, 은백양의 숲이었을 백양로.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기형도, <대학시절> 외국문학(1989)
백양로를 따라 걷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세브란스 병원이 보인다.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예전부터 병원 앞에서면 엄숙함을 유지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난 서적 월부 판매 외판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돈 4,000원을 주더군요.
난 두 분을 만나기 얼마 전까지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곁에 서 있었습니다. 아내가 누워 있을 시체실이 있는 건물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만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사상계(1965)
사내가 아내의 시체를 팔고 허무감에 잠겨 있었을, 세브란스 병원 울타리.
삶이 시작되기도 하고 끝나기도 하는 곳. 아내를 잃고 아내의 몸뚱아리마저 팔아버린 사내는 병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병원 울타리에 기대어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세브란스 병원을 지나 신촌 명물거리 뒷 편으로 걸어가다 보면 한 때는 장미여관이었던 건물이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이후 너무 유명해진 장미여관은 오히려 유명세 때문에 여관을 찾는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클럽으로 바뀌었다가 나중에는 사우나가 되었다. 하지만 18년 1월을 마지막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
만나서 이빨만 까기는 싫어
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풀기는 더욱 싫어
러브 이스 터치
러브 이즈 필링
가자, 장미여관으로 !
-마광수, <가자, 장미여관으로> 자유문학사(1989)
장미여관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나는 청담동도 홍대 앞도 아닌 신촌을 다소 연민의 감정을 품고 사랑했다. 신촌은 마치 ‘너는 못생겼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다니게 된 여인 같았다.
나는 서툰 솜씨로나마 그 여인에게 진한 스모키 화장을 해주고 검은 드레스를 입혀주고 싶었다.“
-장강명, <뤼미에르 피플> (2012)
<뤼미에르 피플> 속 신촌은 홍대나 청담동처럼 화려하지는 않은, 그러나 연민이 드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걸음을 멈추고 신촌의 중심부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다보면, 무언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반짝거리고 화려해보이지만 쓸쓸한 느낌. 아마도 그건 오늘의 작품들로 인해 신촌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닐까?
당신의 시선 속 신촌은 어떤 모습일까?
“평화 시장 앞에 줄지어 선 가로등들 중에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화신 백화점 6층의 창들 중에서는 그 중 세 개에서만 불빛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 그건 얘기가 됩니다. 그 사실은 완전히 김 형의 소유입니다.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사상계(1965)
<서울, 1964년 겨울> 에서 ‘안’과 나(김)는 선술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서대문과 종로 거리의 모습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인다. ‘안’은 이런 것들에 의미가 없는 일인지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일부러 의미를 만들어 붙이지는 말고, 나에게 의미를 함께 찾아보자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의 시선 속 신촌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의미를 찾는 것 조차도 의미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문학작품 속 시선을 따라 신촌을 걷다가, 나는 신촌에 온 지 4년만에 처음으로 장미여관이었던 사우나가 그 곳에 있다는 걸 알았다. 부모님의 늘어난 흰 머리를 발견하면 세월의 흐름을 문득 느끼는 것처럼, 종이에 베인 상처를 모르고 있다가 베인 것을 알고 나면 그 상처가 너무 아리고 아픈 것처럼, 우연히 평소에 보지 못했던 걸 발견하면 그 뒤로 그 부분은 내 시선 안에 들어와 계속해서 눈에 띈다. 그래서 시선 속 신촌을 찾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니는 것일 테다.
같은 1초동안 셔터를 눌러도 달리는 것과 걷는 것은 차이가 난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거리를 걷다가 바라보는 풍경의 속도와 잔상이 다르듯이, 바쁜 순간 속에서도 나만이 아는 신촌을 찾을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훗날 당신이 신촌을 기억할 때 35km/h의 스쳐 지나가는 잔상으로 기억하기보다 5km/h 풍경의 신촌을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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