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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19 · 04 · 10

110. 투티거스

Editor 챌라또

그런 곳이 있다. 괜히 첫 눈에 정이 드는 곳. 곱씹어보면 상당히 모순적이다. ‘정’의 개념은 시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 틀림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법 같게도 그런 곳이 있다. 첫 눈에 빠진 사랑보다는 더 오래 지켜보고 아껴주고 싶은, 그러나 오래 된 연인보다는 더 긴장되고 설레는 곳. ‘투 티거스(two teagers)’가 나에게는 그런 곳이다.

 

대학 생활 3년 만에 처음으로 얻어낸 기숙사 생활이 불러온 설렘 때문이었을까, 한 학기 동안 서대문 소방서 앞부터 연세대학교 북문까지 이어져 있는 소소하지만 심지 있는 식당들을 모두 가보리라는 다짐을 했다. 요즘 말로 일종의 ‘골목 뿌시기’랄까. 그 중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가게가 바로 투티거스였다.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보호색 같은 짙은 갈색의 외관에, 폭 들어가 있는 입구, 옆 가게인 미용실 창에 붙어 있는 형형 색색의 머리 사진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차분함. 그리고 문에 조그마하게 그려져 있는 두 마리의 호랑이.

실제로 1년동안 기숙사 생활을 한 친구도 이 카페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길가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으나 해리포터의 망토를 둘러 놓은 듯 눈에 띄지 않는 곳. 그렇다보니 가게를 찾아내는 데에 성공한 사람이라면, 그 신비로움에 이끌려 들어갈 수 밖에 없으리라 자부한다. ‘내가 지금 들어가도 되나’ 눈치를 보며 들어간 아주 아담한 가게는 두 개의 나무 테이블과 수줍게 내려진 한지 한 장 너머 사장님들의 공간으로 꽉 찬다. 그리고 그 공간은 벽면 가득 진열되어 있는 차와 조그마한 호랑이 소품들, 스콘과 까눌레, 그리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러 맛의 티 쿠키들로 더욱 촘촘하게 채워진다. 그 때까지는 이 작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공간이 얼마나 크고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알지 못했으리라.

 

곳곳에 숨어있는 호랑이들. 아기자기하다는 말이 이렇게 어울리는 공간이 있을까,

 

물론 감성도 좋지만, 요즘엔 기본에 충실한 카페를 찾게 된다. 특히 커피와 차 종류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기준이 상당히 높고 까다로운 편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투티거스는 매번 날 놀라게 하는 유일한 찻집이다. 항시 식단조절과 운동을 하는 ‘프로 다이어터’인 내게 음료로 칼로리를 섭취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투티거스만큼은 내게 그 일을 저지르게 만든다. 사장님들께서 여행을 다니며 직접 공수해 오신 차들과 유기농 우유로 만든 티 우유는 다른 카페들과 달리 달지 않고 담백해, 든든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살로 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어 더욱 그런 듯 하다. (물론 맛도 단연 최고이다!) 그러나 정 오늘만큼은 마실 것에 허비할 칼로리가 없다고 하더라도 투티거스는 안성맞춤의 플레이스다. 머무를 여유가 있다면, 사장님들의 티 컬렉션 중 하나를 신중하고 찬찬히 골라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카페인이 힘든 사람에게도 주어지는 무겁지 않은 한 잔과, 덤으로 주어지는 창 밖의 여유까지. 작은 크기의 가게와는 달리 큰 포용력을 지닌 메뉴 구성이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티 라떼를 주력으로 추천하시는 듯 했으나, 가장 최근에 찾아갔을 때는 티 자체에 집중하는 메뉴로 변경되었다. 자신이 선택하거나 추천받아 마실 수 있는 티, 보틀 형식으로 판매하는 여러가지 티 우유, 예쁜 색감에 상큼 달달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티 소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커피 메뉴 네 가지. 두 호랑이 사장님들이 가장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음료들로만 간소하게 구성되어 있기에 더욱 믿음직한 메뉴판이다. 그러나 투티거스의 진정한 매력은 메뉴판 밖에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야 보이는 ‘숨은 베이커리 찾기’가 주는 재미가 바로 그 것이다. 따뜻한 나무 진열대와 한 몸 처럼 융화되는 따뜻한 색감의 스콘과 티 쿠키를 발견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투티거스의 문을 열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홀린 듯 사장님들을 부를 수 밖에 없으리라 자부한다.

 

 

이 곳의 스콘과 쿠키는 사장님들만큼이나 특이하고 ‘특별’한데, 그 이유는 생각치도 못한 조합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절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플레인 스콘부터, 두유, 감자, 로즈마리, 생캬라멜, 트러플, 초콜릿, 그리고 초코 시나몬 스콘까지. 말만 들어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이 핑계로 한 두개 정도 사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조합들은 반복 되는 일상에 소소하지만 짜릿한 다름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에 지지 않는 라인업의 포슬하고 부드러운 사브레 쿠키들이 있다. 버터, 레몬, 그리고 사장님의 말마따나 ‘충격적인’ 딸기 요거트 사브레 쿠키는 익숙한 버터 향을 무기 삼아 새롭고 상큼한 맛을 선보인다. 가장 최근에 추가된 메뉴 답게 공을 들인 것이 느껴져, 단숨에 딸기 요거트 쿠키 하나를 해치운 것은 비밀로 해 두자.

 

나무를 닮은, 따뜻한 색감의 베이커리,

미친 비주얼은 덤.

 

나는 첫 방문 당시 쑥 라떼를 도전했었는데(현재는 없어져 너무나 슬픈 메뉴), 진한 맛을 좋아한다고 말씀드리니 아주 진한 버전의 쑥 라떼를 만들어 주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장님들은 그들의 메뉴가 어떻게 하면 손님들의 입맛에 가장 잘 맞게 변형되어 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셨던 것 같다. ‘메뉴판은 거들 뿐’, 이라는 구절이 어울리는 가게. 두껍고 딱딱한 메뉴판이 아닌 얇고 하늘거리는 메뉴판이 좁혀주는 손님과 사장님들간의 거리. 그 점이 투 티거스에의 방문을 더욱 가슴 떨리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통틀어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본인들을 두 호랑이라 일컫는 절친 사장님들이 작은 주방에서 아주 열심히, 시간을 재고 계량을 해 가면서 나를 위한 음료를 만들어 주시는 모습이었다. 한참을 달그락 달그락 만드신 결과물을 쑥스럽게 들고 오시는 모습은 아직도 사진처럼 남아있는 기억이다. 아마도 그 순간이 투티거스와 첫 눈에 정이 든 그 순간이었지 않나 싶다.

 

투티거스의 매력은 계산할 때 더욱 도드라진다. 가끔은 내가 메뉴를 하나 시켰는지 여러 개를 시켰는지 헷갈릴 정도로 두 사장님들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퍼(?)주시는데, 마치 미니어처 코스 요리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든다. 본 음료가 나오기 전에 드셔보시라고 작은 컵에 건네주시는 차 혹은 티 라떼, 꼭 챙겨주시는 수제 카라멜, 가끔씩은 조그마한 까눌레와 쿠키, 그리고 초콜렛까지. 달다구리를 아주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 없이 완벽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세 시간을 앉아서 계속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난 후 계산을 할 때가 되면 그제서야 내가 음료를 한 개만 시켰다는 것이 떠오른다. 한 번은 사장님들께, “그렇게 퍼주시면 하나도 안 남아요~!”라고 장난스럽게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그 때마저도 헤헤 하고 웃으시던 모습이 참 예뻤다.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그 분들과 그 가게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더 챙겨주고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예쁨.

 

시킨 건 적으나 차려진 것은 많았던, 

 

이심전심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느꼈던 투티거스의 예쁨을 사장님들도 장점으로 받아들이셨는지, 여러 시도 끝에 ’티 오마카세’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셨다. 소꿉놀이 혹은 미니어처 코스 요리를 즐기는 듯한 투티거스에서의 독특한 경험을 더욱 극대화해 실체화 해 낸 것이 바로 ‘티 오마카세’라고 할 수 있겠다. ‘프립’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예약을 한 뒤 투 티거스를 방문하면, 총 네 다섯가지의 코스로 이루어진 티와 페어링된 디저트를 천천히 마시고 맛 볼 수 있다. 겨울에 진행된 1차와 2차 티 오마카세는 딸기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모든 일정이 빠르게 예약 완료되어 ‘완판’되었을 만큼 사랑받았다. 생딸기 홍차로 시작되는 딸기 오마카세는 리얼 딸기 스콘과 딸기 우유를 거쳐 아이스 딸기 모나카로 마무리 되는데, 각 베이커리 혹은 디저트마다 어울리는 차가 페어링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스콘엔 다즐링, 딸기 모나카엔 보성 말차! 생각만 해도 행복한 조합 아닌가. 딸기 티 오마카세를 이제야 알아버려 아쉽다면, 현재 오픈되어 진행 중인 벚꽃 티 오마카세를 노려보자. 이번 오마카세는 벚꽃 판나코타로 입안의 생기를 돋구고, 벚꽃 생크림을 듬뿍 얹은 스콘과 벚꽃 차로 든든함을 더한 뒤, 시원하고 상큼한 벚꽃 티소다로 자칫 텁텁할 수 있는 입안을 정화한 후 호지차 우유와 달콤한 당고로 마무리된다고 한다. 그러니 날 좋은 날 혼자서든 둘이서든 문을 두드려보기를 추천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스시 오마카세와는 다르게, 혼자서도 아주 여유롭고 따뜻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바로 티 오마카세의 장점이기도 하니 말이다.

 

구경은 자유!

https://www.frip.co.kr/products/108228

 

열정적인 사장님들은 항상 무언가를 연구하고 계신다. 골목을 지나가다 흘깃 안을 보았을 때, 손님이 없어도 늘 바빠 보이는 것은 그 탓일 것이다. 방금 소개한 티 오마카세도 그 열정의 산물임에 틀림 없다. 사실 투티거스를 가는 것은 그러한 두 절친 사장님의 티키타카를 구경하고, 그 순수한 열정의 기운을 얻고자 함도 있다. 그러면서도 손님에 대한 관심을 항상 품고 계셔서, 한 번 방문한 손님은 거의 기억하시는 듯 싶다. 그런 탓에 투티거스를 들를 때마다 무언가 오래 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그러한 종류의 설렘이 느껴지곤 한다. 단언컨대 두 호랑이 사장님들은 무언가(그 것이 사람이 되었든, 차가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가 지닌 가치를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들이며 그 것을 예쁘게 전달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 자그마한 카페가 지닌 생명력과 힘은 집채만한 호랑이 두 마리를 합친 것보다 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 뒷모습이 품은 생명력을 보라!

 

생명력에 대해 생각해본다. 생명력이란 바꾸어가고, 바뀌어가는 것 자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지키면서도, (어찌보면 모순적이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 그리고 나아가는 것. 그 곳이 바로 생명이 시작하는 지점이며 생명력 그 자체 아닐까. 처음 투티거스에서 내가 발견한 생명력이 잠재적인 형태의 것이었다면, 이 글을 쓰기 위해 가장 최근에 찾아간 투티거스에서 발견한 생명력은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티 오마카세 없었으면 저희는 큰일났을 거에요.” 로 시작된 사장님들과의 대화는 그들이 일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동안 그 유동인구 없는 골목에서 이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며 피부로, 살로 느꼈던 고민들을 온전히 전달해 주었다. 초반에 고집하셨던 다양한 종류의 메뉴와 학생 위주의 할인 정책을 바꾸신 것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내심 염치 없는 서운함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방문해주시는 손님들의 특성이 일관되지 않으며(생각보다 학생 손님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너무 많은 가짓수의 메뉴를 항상 준비해 놓기에는 버리게 되는 재료가 많아 이러한 변화를 주었다는 말을 듣고 나니 새삼 이 예쁘고 작은 가게를 지켜주셨다는 것에 안도하고 또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찾아오지 못하는 더 많은 손님들에게도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 베이커리 택배도 고민하고 준비하는 단계라고 귀띔해주셨는데, 항상 티 없이 해맑아 보이시던 두 사장님이 이 때 보이던 그 웃음은 너무도 결연해 나를 눈물 짓게 했다. 동화 같은 가게를 지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노력, 그 백조의 다리를 본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투티거스를 제대로 사랑하게 된다.

 

투티거스라는 공간을 떠올려 보면, 약간은 바랜 따뜻한 올리브 색이 함께 아른거리고는 한다. 이 가게만이 주는 따뜻함과 고즈넉함 때문일 것이다. 나만의 시간을 내어 그 한적하고 소담한 골목에 찾아가, 가게보다도 훨씬 큰 하늘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고 있노라면 문득 알게 될 것이다. 일상적인 거리에 숨어있는 앨리스의 래빗홀, 아니 티거홀의 신비로움이.

 


 

투티거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26길 28

월 휴무, 화~토 12:00~21:00

010-2691-2392

e-mail: twoteagers@naver.com

인스타그램: http://www.instagram.com/twoteagers/

챌라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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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라또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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