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아무(Amu)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일 수 있을까. 폭력과 억압이었던 기존의 공동체에 대한 회의와 점진적 해체는 ‘나’를 자유케 했으나 ‘우리’를 어렵게 했다. 철저한 개인주의와 파편화, 그리고 방관의 이슈가 매일같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지금, 실로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아무도 아닌’ 사이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저 ‘아무’라는 말이 참 무섭게 다가오는 오늘날, 역설적이게도 나는 신촌의 왁자지껄한 골목 2층의 조그마한 술집에서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본다. 말도 안 돼. 어떻게 몇 평 남짓의 술집에서 공동체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인가. 그러나 이 글을 다 읽을 때쯤 그대들도 어렴풋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너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초성 힌트를 주자면, 그건 ‘ㅅㄹ’이다. 각설하고, 대체 그곳이 어디기에 저렇게 거창한 말로 운을 떼는 걸까, 바로 아무(Amu)이다.

감자튀김이 그려진 간판이 바로 그 폼프리츠
아무의 존재는 그 위치에서부터 특별함을 내포한다. 신초너들에게 ‘폼프리츠’란 표지판과 같은 가게이다. “폼프리츠 골목으로 쭉 따라 들어와.” 혹은 “폼프리츠 쪽 그쯤에 있어.” 매우 극심한 길치인 나에게도, 그리고 이런 나에게 위치를 설명해 주어야 하는 불쌍한 나의 지인에게도, 폼프리츠는 참 고마운 존재이다. 시원한 생맥주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자튀김이 유명한 폼프리츠는 좁은 내부 공간과 항상 많은 사람 탓에 가보지 못했으면 못했지 신촌을 많이 와봤다 하는 사람에게는 모를 수 없는 가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도 번잡하고 유명한 폼프리츠 건물의 2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호기심을 가져 본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흔하다는 네온사인은 커녕 간판 하나 없이, ‘그냥 있는’ (사실 있는지도 잘 알기 어려운) 그런 장소. 숨겨진 힙한 플레이스를 찾아내어 기어코 단골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도 솔직히 말해, 폼프리츠 2층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기에 신촌 생활을 한 지 꽤 오래 지난 후에서야 비로소 폼프리츠 옆 좁은 계단을 밟을 수 있었고 마치 태어나기 전부터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의 먼지를 후후 불어 내듯, 그렇게 아무를 만날 수 있었다.

미지의 계단.
노란 불빛이 보이면 open, 꺼져 있다면 closed
TMI(투 머치 정보라는 뜻)일지 모르겠으나 나는 첫째이고 어렸을 때부터 뭐든 잘하는 축에 속했다. 특히 부모님이 좋아하실 법한 종목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렇다 보니 언제나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는 나를 나의 두 남동생은 안쓰러워하면서도 부러워했고 또 한편으로는 원망했을 것이다. 나와 내 동생들이 사실은 별 상관이 없는 개별적 인간들이지만 같은 부모님 아래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묶여 판단되는 것처럼, 폼프리츠와 아무 또한 같은 건물 아래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어찌 보면 ‘운명적으로’ 그러한 관계를 맺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관계 속에서 정의되나, 서로에게 진정한 의미를 가지기는 너무나 어려워진 오늘날의 공동체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 듯하다. 아무튼. 가게를 인지하는 데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제 이름보다는 ‘폼프리츠 2층의 술집’으로 훨씬 더 자주 설명되고 정의되는 것이 아무에게 있어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으나 그 후광의 그늘에 조용히, 그리고 즐겁게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아무는 참 신비롭게 다가온다.
각기 다른 사람들과, 각기 다른 공간에서.
내가 처음 아무를 만난 날은 꽤 역사적인 날이었다. 다 같이 만나기 굉장히 힘든 나의 가장 친한 동기들 8명(a.k.a. 찜닭팸) 중 한국에 있는 7명이 모두 모인 날이었고, 아주 오랜만에 ‘동네 아저씨 치킨’을 먹은 날이었다. 2차 장소를 고민하던 차에 한 친구가 ‘맥주나 칵테일을 간단하게 마실 수 있고 안주 목록이 특이한’ 술집이 있다며 우리를 이끈 곳이 바로 아무였다. 소개한 친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존재를 알지 못했던 미지의 곳, 고개를 갸우뚱하며 계단을 올라가 마주한 문에는 아주 조그맣게, Amu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아직도 갸우뚱.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간 아무는 순식간에 나를 그리고 우리를 그 공간으로 흡수시켰다.

내년엔 6년으로 바뀔까?

카페인 듯 술집인 듯,
사장님의 발랄한 인사(지속적으로 출연할 예정인 사장님의 인사스킬)와 함께 덜컥 다가온 아무는 생각보다 알찼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 꽤 넓게 느껴진 이유일까, 문에서부터 ㄱ자로 이어져 있는 바 테이블부터 최대 8명 정도의 단체까지 수용 가능한 긴 의자 테이블, 그리고 세 개의 좌식 자리까지. 작다고도 할 수 있는 가게의 전부를 첫 눈에 둘러보고 완전히 파악하는 데 상당히 오래 걸린 것이 인상 깊었다. 자리의 다양성을 보장하면서도 공간을 넓고 알차게 활용하는 탁월한 배치 구조. 그래서인지 이 술집의 모든 자리에 한 번씩은 앉아보고 싶다는 이상한 욕심이 들었던 것 같다. 의도한 것은 아니나, 어쩌다보니 나는 그 ‘나만의 미션’에 성공했다. 그 것도 모두 각기 다른 아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하나의 큰 덩어리로써의 공간에 익숙하지만, 그 공간 안의 공간들이 없다면 과연 그 ‘하나’라는 것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아무라는 플레이스 속 작은 서브 플레이스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느끼고 즐겼으며 이 경험 속에서 뜻밖에 찾은 연대의 가능성을 이제부터 찬찬히 나누어보고자 한다.
[찜닭팸과, 긴 테이블에서]

처음 아무를 만난 그때이다. 많은 인원이 우르르 들어갈 만한 분위기의 술집은 분명 아님에도 8명 정도의 인원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에서 약간의 감동을 느끼던 찰나였다. 이곳을 와본 적이 있는 친구 말로는 맥주가 싸서 좋다고 했지만 모두 배가 부른 상태였기에 칵테일을 한 잔 씩 주문했다. 사장님 혼자서 운영하시는 가게인 듯해 다루는 술의 종류가 적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칵테일의 종류가 굉장히 많아 모두 고르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칵테일의 가격은 5,000원에서 16,000원까지 폭넓고 다양하게 형성되어 있는데, 가격대별로 칵테일을 분류하여 메뉴판에 적어놓은 것이,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선택인 것 같아 괜히 감사했다. 그러나 각 가격별로도 꽤 많은 종류가 있고 각 음료에 대한 설명은 적혀있지 않기 때문에 딱히 애정하거나 즐겨 마시는 칵테일이 없다면 인터넷 서칭은 필수다!

많다 많아~
그다음은 안주를 고를 차례. 최근 들어 짜파게티를 다양하게 변주한 요리들이 유행하면서 이곳 저곳의 힙한 와인바에서 앞다투어 짜파게티를 안주 메뉴로 추가하고 있는데, 아무에서는 오래전부터 짜파게티 메뉴를 내놓고 있는 듯했다. 짜파게티 메뉴로는 두 가지가 있는데, 사장님이 맛있게 조리해주시는 말 그대로 그냥 짜파게티와,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불짜면이다. 우리는 1차에 참석하지 못해 밥을 먹지 못한 친구가 있어 불짜면을 주문했더니 불닭볶음면과 짜파게티를 1인분 씩 섞고 그 위에 치즈를 얹은 투박하지만 맛없없(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 나왔다. 다들 배부르다고 혀를 내둘렀으나 한 젓가락씩 맛보는 순간부터 꽤 많은 양의 불짜면이 바닥을 보인 것은 순식간이었다.

적당한 매콤함과 꼬들한 짜파게티 면의 조화는 그야말로 완_벽
치즈 이불은 말(해)모(해)
바쁘게 지내다 보면,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보다 그다지 보고싶지 않은(순화된 표현임을 밝힌다) 사람들을 훨씬 더 자주 만나게 되는 아이러니에 부딪히곤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내 삶의 목적과 현재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위 말해 ‘현타’가 오는데, 그날의 주제도 그러한 ‘현타’들의 옴니버스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무의 공간 중 가장 다른 테이블 혹은 사장님에게의 노출이 적은, 어찌 보면 가장 프라이빗한 공간인 이 긴 테이블에 앉아 우리는 23살들의 고민을 나눴고 인생의 뭣같음에 대해 토론했다. 스무살, 송도의 기숙사 앞 편의점에서 과일소주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한 대화들, 농담들과는 사뭇 다른 무게였다. 그리고 또 견뎌야 할 내일을 위해 우리는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오늘 밤의 아무와 찜닭팸의 기억으로 각자의 내일은 조금 더 견딜만 할 것을 알기에,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인원이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면, 특히 각자가 시킨 메뉴의 가격이 모두 다르면, 계산을 하기가 참 까다로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한 명이 한꺼번에 결제를 한 후 영수증을 받아 각자가 내야 할 금액을 청구해주곤 한다. 그러나 그 날의 계산 과정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의 독특하고 아날로그적 고집(?) 때문일 것이다. 우선 아무에는 포스기가 없다. 대신 사장님의 주문 및 계산 노트만 있을 뿐이다. 워낙 메뉴가 다양하고 가변적이라 이러한 방식을 택하신 것 같은데, 아무의 분위기와 너무나 찰떡인 꿀귀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계산을 한 뒤 영수증을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각 메뉴의 가격이 찍혀 나오지 않아 당황한 우리에게 사장님은 손글씨로 주문했던 음료와 가격을 정성스레 써서 건네주셨다. 세상에 하나 뿐인 영수증. 별 것도 아닌데 혼자서 이를 받아들고 사뭇 행복해했던 그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다시 와서 또 영수증을 만들어달라고 징징대고 싶게 한, 그런 간질간질한 기억.

사장님의 뽀짝한 손글씨 영수증
그리고 친구의 뽀짝한 인스타 게시물
[사랑하는 사람과, 원형의 좌식 테이블에서]

(*이 테이블 옆 쪽에 실제 원형 좌식 테이블이 있었으나 손님이 계셔 찍지 못한 점을 양해 바란다)
궁금하면 방문해 보시길~! (뻔뻔)
좋은 곳을 알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고, 데려가서 함께 그 좋음에 대해 토론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아무에의 두 번째 방문은 처음 아무를 알게 되었을 때 꼭 같이 다시 가고 싶었던 사람과 함께였다. 오랜만의 데이트였던 만큼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술집이 끌렸고 사장님의 짜파게티는 더더욱 끌렸기 때문에 고민 없이 아무를 택했던 것 같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사장님은 특유의 발랄한 말투로, “오랜만이네~ 저번에 왔었죠?”라고 나를 맞아주셨고 이를 그는 굉장히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했다. 이 전에 한 번밖에 오지 않았음에도 얼굴을 기억해주시는 섬세함과 그 기억이 자칫 틀릴 수 있음에도 저번에 오지 않았었냐고 물어볼 수 있는 대범함. 그러한 사장님의 매력에 홀리면 아무의 단골이 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다고 살짝쿵 생각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앉을 자리를 둘러보던 중, 딱 눈에 들어왔던 공간은 바로 구석진 곳에 있는 원형의 좌식 테이블의 공간이었다. 전반적으로 어두운 조명의 아무에서도 특히 더 어둡고, 그래서 더 아늑하고 포근해 보이는 자리였다. 원형 테이블의 가운데에는 노란 불빛의 초가 켜져 있고 그 옆에는 언제든 가져다 쓸 수 있도록 담요들을 모아둔 바스켓이 있다. 연인들이 와서 앉기 완벽한 자리. 옆에 앉아 더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네모난 테이블에서 나란히 앉기는 부담스러울 때, 원탁 테이블은 단연 최고의 선택이다. 그 자리에 앉고 나니, 같은 가게인 것이 의심될 정도로 첫 방문 당시의 자리 분위기와는 다른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잘 꾸며진 좌식 칵테일 바의 분위기를 충분히 느낌과 동시에, 그 분위기만을 위해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 마치 돈을 쓰고서 돈을 번 듯한 미묘한 뿌듯함이 느껴지는 좌석 선택. 함께 온 그 또한 술집보다는 분위기 좋고 아늑한 카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번에는 불짜면 대신 오리지널 짜파게티와 나쵸 칩을 주문했다. 자칫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짜파게티는 인생 짜파게티가 되었고 사장님은 내 마음속 원탑 짜파게티 요리사에 명예롭게 이름을 올리셨다. 나쵸칩 또한 착한 가격에 비해 어마어마한 양을 자랑했고 함께 곁들이는 치즈 소스 또한 훌륭했다.

오늘은 나말고 사장님이 짜파게티 요리사~! (feat. 얻어 걸린 나쵸샷)
그러나 고대하던 만남은 필시 기대를 내포하고 그 기대가 커질수록 슬프게도 서운함의 가능성이라는 위치 에너지도 함께 커지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즐겁고 행복하게 이루어졌으면, 하고 기도하는 만남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상처를 남기게 마련이다. 자리가 편해서였을까, 조명이 어두워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착각 때문이었을까, 그날 나는 여태껏 쌓아 왔던 말들을 꺼냈다. 물론, 의도한 건 절대 아니고 말이다. 갑작스러운 눈물의 회담이 일단락된 후 밀려오는 것은 약간의 부끄러움이었다. 상대에게도, 그리고 이 광경을 못 보셨을 리 없었던 사장님에게도. 그러나 언제고 나의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그,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쾌활하게 계산을 해 주신 사장님 덕분에 이 기억은 오히려 아무와 나의 내적 친밀도 상승의 계기로 남았다. 마치 비밀 얘기를 한 사이가 된 것 마냥 말이다.
[친한 동아리 언니와, 창 옆의 좌식 테이블에서]

나의 대학생활에 있어 동아리는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동아리는 나에게 알게 모르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송도의 기숙사에서 신촌의 캠퍼스까지 셔틀을 예약해가며 힘들게 연습을 다녔던 2016년부터 현재까지, 동아리는 나에게 쉽게 맛볼 수 없는 절망과 또 그만큼의 행복을 선사한 존재이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동아리는 ‘사람’이다. 그런 마성의 동아리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 중 한 명과 함께 아무에 세 번째로 방문했다. 오픈 시간인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들어갔더니 꽤 많은 자리 선택지가 있었다. 날이 밝고 해가 좋았던 날인 만큼, 바 테이블보다는 문과 가깝기는 하지만 창이 바로 옆에 있는 4인용 좌식 테이블을 선택했다. 친한 사람들과 둘이서 만나면 사진 찍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나에게 햇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체크하는 것은 필수! 전반적으로 어두운 조명의 아무에서 가장 밝은 곳에 자리 잡은 우리는 진지하고 신중하게 메뉴판을 탐독했다. 언니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었던 불짜면과 칵테일을 한 잔씩 시켜놓고 (커플 담요도 하나씩 챙겼다!)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비방용이기에 대화의 디테일은 밝힐 수 없으나, 이야기하는 내내 나는 ‘애증’이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또다시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다. 완전한 사랑과 완벽한 증오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스펙트럼에서 외롭지만 함께 줄타기를 하는 것 아닐까.
다시 폼프리츠로 돌아가본다. 아무의 메뉴판에는 아주 매력적인 부분이 존재하는데, 바로 아래에 있는 폼프리츠에서 언제고 자유롭게 감자튀김을 사와서 먹을 수 있다고 허락해주신 대목이 그것이다.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으나 내심 놀라기도 했다. 환호의 이유는 예상했겠지만, 자리 잡기가 굉장히 어려운 폼프리츠의 맛있는 감자튀김을 조금 더 넓은 장소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 같은 세상에 – 요즘 세상이라 함은 외부음식 반입금지는 기본, 테이블차지 및 콜키지 서비스가 믿을 수 없이 비싼 경우가 많은 현실을 의미한다 – 반대가 되었으면 되었지, 아무에서 폼프리츠 감자튀김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해 주시다니. 마치 항상 내 그늘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동생이 어느새 훌쩍 커 누나한테 투박하지만 묵직한 위로의 말을 건넸던 순간이 떠오르게 하는 그런 종류의 감동이었다. 서로가 있어 힘들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가끔은 찌질하고 또 가끔은 쿨하게 서로를 인정하고 도울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사장님이 매번 외치시는 “또 왔네요~!”라는 대사가 펀치라인처럼 다가온 날. 폼프리츠의 감자튀김이 그 어느 때보다 맛있게 느껴지는 날이기도 했다.
[잔치 글과, 바 테이블에서]

마지막은 바 테이블이다. 본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찾은 아무. 지금까지의 아무가 다른 이들과 함께였다면, 이날은 미완성의 텍스트와 나, 둘 뿐이었다. 사장님이 바 쪽에서 직접 요리를 해주시는 구조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바 테이블에 앉을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장님께서 알아봐주시는 준-단골 정도가 되었으며 또 혼자였기에 노트북과 함께 바의 끝쪽에 자리를 잡았다. 바 자리에서 본 아무는 사뭇 달랐다. 찬장 빼곡히 들어차 있는 다양한 종류의 양주들은 평소 술집보다는 카페 분위기에 가깝던 아무를 더욱 ‘으른미’ 넘치게 만들어 주었고 바 자리치고는 굉장히 넓직하고 편안한 의자가 또 한 번 나를 감동시켰다. 이 날의 메뉴는 불짜면에 이은 아무의 어나더 시그니처, 마파두부밥이었다. 아무를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이 가게의 주된 특성으로 항상 언급되는 것이 바로 ‘밥+술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라벨의 8할은 이 마파두부밥이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뜻한 밥 위 마파두부에 튼실한 고기가 더해져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는 안주 메뉴인데, 마파두부의 소스가 감히 말하자면 황홀 그 자체이다. 마파두부 특유의 매력적인 맛과 더불어 약간의 단짠 조합, 그리고 은근한 매콤함까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숟가락을 대는 순간 더 이상 뜰 밥이 없을 때까지 멈출 수 없는 맛이라는 것이다. 먹으면서 동시에 중독이 된다는 게 이런 것일까, 생각하게 되는. 그리고 낭중지추라고 하지 않는가, 하물며 이 마파두부밥에서도 아무의 근사함은 드러난다. 가장 핫한 메뉴인 마파두부밥을 즐기고는 싶으나 고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사람들과도 함께 이 맛을 나눌 수 있게끔, 사장님은 고기 대신 새송이버섯을 듬뿍 올린 비건 마파두부밥도 고이 메뉴판에 올려두신 것이다. 정말 여긴 말도 안된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으나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미친 맛
이거 4000원 실화?
사장님의 사람에 대한 배려는 현존하지는 않으나 전설로는 남아 있는 ‘아무 특별 칵테일’의 메뉴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 특별 칵테일은 사장님이 단골 손님들에게 만들어 준 칵테일을 성문화하여 메뉴판에 넣어놓으신 총 6가지의 음료인데, 각자 손님들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작명하신 점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가장 아래 적힌 ‘주문 방법’에서 발견할 수 있다. 메뉴의 이름이 사람 이름인 만큼 주문 시 “누구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자칫하면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으며 대상화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꼭 “누구 칵테일 주세요.”라고 하자는 것이다. 사소하지만 꼭 필요한 배려. 미리 생각해내는 것은 어려우나 생각하고 나면, 그러지 않았으면 안되었겠다,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문제들인 것이다.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조롱 섞인 언행을 쏟아내고, 성적으로 희롱하며 하대하는 자들이 배우고 이해해야 할 자세이자, 지녀야 할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00 주세요 (X). 00 칵테일 주세요 (O)
[나가며]
나름 길어진 이 글을 읽으며, 글의 첫 단락에서 내가 낸 퀴즈 아닌 퀴즈를 아직까지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면 그걸로도 성공이다. 아마도 아무에서 찾은 연대의 가능성 그리고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물음이었을 것이다. 아무의 모든 자리에서 모두 다른 사람들과 각기 다른 경험을 하면서 내가 본 공동체의 미래는 다름 아닌 ‘사람’이다. 불완전해서 아름다운, 그리고 그래서 서로가 필요한 ‘애증’의 관계. 타인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그러한 시도들이 모이는 공간은 늘 반짝반짝 빛난다. 사유가 빚어낸 배려가 엿보이는 아무 또한, 우리가 서로에게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림을 방지해줄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대단한 연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아무’ 정도는 되어 줄 수 있는 삶, ‘아무’의 공동체를 나지막히 그려보게 되는 밤이다.
아 참, 그리고 감히 이 자리를 빌어 ㅅㄹ하는 ㅅㄹ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아무(Amu)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11길 21 (a.k.a 폼프리츠 2층)
일 휴무, 18:00 오픈
070-7560-5240



[…] 글! 채련씨도 충분히 보여주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저는 채련씨의 글 아무의 인트로를 매우 사랑하는 편입니다. 혹시 글을 쓸 때 영감이나 도움을 […]
[…] 배는 부르나, 2차는 가고싶다! 는 생각은 항상 우리를 신촌 거리에서 서성이게 만들죠. 그래서 소개할 완벽한 2차 장소는 바로 ‘아무(Amu)’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