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나 혼자 산다
너무 다른 누군가와 억지로 함께하는 구태의연함을 벗어 던지고, ‘혼술’, ’혼밥’을 하며 자신만의 라이프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가족, 핵가족을 넘어 어느덧 대한민국의 주된 가구가 되어버린 1인 가구. 이곳, 신촌에도 ‘나혼산’ 족들이 있다. 3인 3색, 그들만의 ‘혼자’ 라이프를 만나보자.
수많은 옷가게 스피커 속에서 나오는 흥겨운 음악소리가 뒤섞인, 이대 앞 골목길에 들어섰다. 저기, 추운 날씨에 종종 걸음으로 집밖을 나서는 ‘A’씨가 보인다.

“저는 8개월 차 초보 자취러입니다. 학교 앞 오피스텔형 원룸에서 살고 있어요. 주중에 학교를 다닐 때는 자취방에서, 주말에는 본가인 경기도에서 주로 지내요.”
자취 하면서 주말에는 꼬박꼬박 본가에 내려가시나 봐요?
아무래도 경기도는 매일 통학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거리지만, 주말에 왔다 갔다 하기에는 괜찮은 편이니까요. 주중에 학교 다니다 보면 잘 못 챙겨 먹을 때가 많으니까, 집밥이 그립기도 하고요. 좀 속물적인 시선으로는, 본가에서 밥을 먹으면 식대 절약이 되죠.(웃음)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집 막내 강아지 때문이에요. 가족들도 보고 싶고요.
진짜 이유는 마지막에 있는 것 같은데요? (웃음) 담담하게 말씀하셨지만, 강아지를 비롯한 가족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커 보여요.
그렇게 들렸나요? 사실, 저희 가족은 표현도 적고 대화도 적은 편이에요.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지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떨어져 살다 보니까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저희 집은 아버지가 일요일 아침마다 요리를 해주셨거든요. 그걸 먹으면서 항상 ‘동물농장’이나 ‘서프라이즈’를 봤어요. 되게 사소한 순간인데, 이런 기억들이 주는 따뜻함과 안정감 때문에 집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혼자 산다는 건 당연하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해지지 않는 순간이기도 하죠. 그리고, 서로의 사소한 일상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게 더 애틋함을 주는 것 같아요.
맞아요. 사실 저는 엄마랑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근데 자취하면서 부쩍 통화 횟수가 늘었죠.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같은 사소한 대화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혼자 산다는 것’은?
‘혼자 산다는 것’을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자취를 하면서 느낀 점은 있어요. 누군가와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거죠. 특히 평생을 함께해온 가족과의 관계에서, 이런 적당한 거리는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마치 연어처럼 주말마다 4호선의 강을 거슬러 본가로 돌아가는 A씨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신촌 기차역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선뜻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않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중, 원룸식 하숙집들이 모여있는 골목길을 찾아냈다. 썰매장 같은 급경사로를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가던 중 B씨를 만났다.

“저는 신촌에서 산지는 얼마 안 됐지만, 자취한 지는 4년 정도 됐어요. 집에 있다가 심심해서 공차나 먹을까 하고 나왔는데 이런 경험도 하게 되네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한테는 한 줄기 빛이었어요. (웃음) 그런데 혼자 살았던 기간이 꽤 기네요. 이전에는 어디서 자취하셨던 건가요?
제가 미국에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다가 지금 학교로 편입했거든요. 그래서 신촌에 산 기간은 길지 않지만, 혼자 산지는 꽤 됐죠.
미국에서 혼자 살 때와 신촌에서 사는 건 다른 느낌일 것 같아요.
아주 다르죠. 그 중에서도 음식이요. 미국은 배달음식이 없잖아요. 결국 라면이 거의 주식이 됐어요. 신촌에서는 가끔 편의점도 이용하고 배달음식도 시켜 먹어요. 지난 자취 생활 동안 쌓아온 요리실력도 가끔 발휘하고요.
종종 요리도 하신다고요? 저는 ‘요알못’이라 너무 신기해요. 주로 어떤 요리를 하시나요?
저도 아주 완벽히 잘하는 건 아니지만, 먹을 수 있을 정도는 하는 것 같아요.(웃음) 보통은 찌개류를 많이 해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배달음식도 많이 먹는데, 아시겠지만 그게 최소주문금액이 있잖아요? 혼자 살면서 그걸 맞추기가 힘들어요. 결국 너무 많이 시켜서 한 번에 다 못 먹고 몇 번을 나눠 먹어야 하죠. 이런 점 때문에 만들어 먹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끼니가 제일 고민이죠. 귀찮으니까요.
자취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한 끼를 때우게 되죠. 말씀하신 ‘최소주문금액’처럼 혼자 살아서 불편한 순간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아플 때 만큼은 지금 혼자라는 게 너무 서럽더라고요. 밥 해줄 사람도 없고, 약 사다 줄 사람도 없고. 누가 차로 병원이라도 데려다 주면 좋겠다는 심정이에요. 근데 이럴 때 빼고는 혼자 사는 게 너무 좋아요. 저는 자취 예찬론자입니다.(웃음) 이제는 다른 사람이랑 못 살 것 같아요.
행복한 자취라이프를 위해, 항상 아프지 않고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마지막으로, ‘혼자 산다는 것’은?
‘해방’. 일단, 부모님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생활 리듬’ 이에요. 사람마다 각자의 생활 패턴이 있잖아요.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게 됐어요.
이미 익숙해진 자취 생활이지만, 혼자사는 즐거움을 흠뻑 누리고 있는 B씨와 10여분 남짓의 시간을 보내고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음 행선지는 온갖 술집이 모여있는 신촌의 핫플레이스 뒤편. 이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혼자 라이프를 즐기는 신초너를 만날 수 있을까.

“베트남으로 막 여행을 다녀온 참이라, 방금까지 자다 나왔어요. 지금은 취직을 해서 합법적인 백수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딱 좋을 때죠.”
추운 날씨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취직도 축하드려요! 자취한 지는 얼마나 되신 건가요?
6년정도 된 것 같아요. 고향에서 살다가 대학 올라오면서 쭉 자취했거든요. 신촌에서 오래 살았죠. 발령을 어디로 받을지 모르는 상태라 앞으로도 신촌에서 살지는 모르겠어요. 신촌에서 살면서 떠오르는 추억들이 많은데, 약간 아쉽기도 하네요.
새내기 시절부터 취준, 마침내 취직까지. 정말 오랫동안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셨네요. 말씀하신 추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한 가지만 소개해주세요.
예전에 살던 집이 귀신 나오는 집이었어요. (네?) 아, 그 집이 예전에 불이 났었는데, 거기서 사람이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날 친구 다섯 명이 모여서 술판을 벌이면서 놀고 있었는데, 친구 한 명이 “야, 너희 집에 진짜 귀신 있으면 지금 나오라고 해봐라” 하는 거에요. 다들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일단 불을 껐어요. 그리고 지금 귀신 있으면 이 불 다시 안 켜지지 않겠냐 했는데, 진짜 안 켜지더라고요.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한 친구가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애가 계속 물달라고 하는 소리 못 들었냐고 하는 거에요.
오늘 공포특집인가요? 너무 놀라서 다음 질문을 잊어버렸네요. 지금도 그 집에 살고 계신 가요?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갔어요. 이 사건 이후로 자취를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생겼어요. 그 집이 어떤 집인지, 어떤 사람이 살았는지도 꼭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스펙타클한 자취 생활을 하셨네요. 마지막 말에 덧붙여서 자취 초보들에게 현실적인 조언 부탁드려요!
자취를 한다고 해서 혼자 만의 시간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특히 대학 신입생이면 더욱 그렇죠. 자취방이 사랑방이나 과방이 되는 걸 각오해야 합니다. 제가 명절 때 본가에 내려가 있으면 친구들이 와서 제 자취방에서 술 먹고 그랬어요. 그때마다 온갖 핑계를 늘어놓더라고요. 설날인데 태풍오면 집에 비샐수도 있으니까 보러온다던가……
정말 현실적인 것들을 말해보자면, 월세나 생활비 이외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이 정말 많아요. 그런 점들을 잘 고려해서 자취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집을 알아볼 때도 생각할 게 많아요. 보통 부동산 가면 좋은 점 위주로만 말씀해 주시거든요. 본인이 물은 잘 나오는지, 보일러는 잘 들어오는지 살펴봐야 해요.
자취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유용한 꿀팁이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혼자 산다는 것’은?
나의 20대. 자취하면서 생긴 추억도 많고, 어떻게 살아갈지도 알게 된 것 같아요. 일상을 살아가는 법도 배웠고요. 예를 들면 요리 같은 것들이요. 불고기, 제육볶음, 닭볶음탕은 잘할 수 있어요. 이런 경험들이 나중에 결혼하고 나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역시, 사람 사는 것은 결코 다 똑같지 않은 모양이다. 이날 만난 3인의 신초너는 모두 비슷한듯 다른 자취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취가 만들어낸 공백으로 관계의 선에 덧칠을 해나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자신만의 생활리듬을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비록 상상하던 자취생활과는 달랐을 지라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들을 간직하게 됐다.
쭉 뻗은 고속도로 같은 한방향의 길은 아닐지라도, 각양각색의 길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혼자 산다는 것’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을까.
※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도 인터뷰 요청에 기꺼이 응하며 자신의 온기를 나누어 준 신초너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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