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신촌 팔레트
신촌 거리를 거닐다 보면, 유독 거리의 색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눈을 반 쯤 감고 보는 신촌의 거리는 마치 네모 반듯한 홈에 색색의 물감이 정갈하게 담겨있는 팔레트 같기도 하다. 팔레트, 그 얼마나 설레는 단어인가. 생동감과 가능성, 자유와 개성, 그리고 무궁무진함. 아이유가 말했듯, 팔레트는 일기다. 그렇게 따지면, 신촌은 누군가의 일기들로 가득한 일기장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당신에게 신촌은 어떠한 색인가, 또 어떤 이야기인가. 이번 플레이스 이야기는, 플레이스 팀 에디터들 각자가 보고 그린 신촌의 색에 대한 그림일기다! 여러분도 눈을 반 쯤 감고 그 색의 향연을 즐겨보시길.
마성의 핫 레드, 레드컨테이너
레드는 두렵지만 끌리고 강렬하나 동시에 매혹적이다. 대놓고 유혹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항복하고야 말도록 하는 마성의 컬러, 레드. 그런 레드를 전면에 내세운 레드 컨테이너는 그야말로 한 번쯤은 들어가보고 싶은 성인용품점이다. 이제는 레드 컨테이너가 없는 번화가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핫’한 플레이스가 되었으나 맨 정신에 ‘당당히’ 발을 들여놓기는 아직도 어렵다.

그래서 에디터는 술을 마시면 그렇게 레드 컨테이너를 구경하고 싶어진다(TMI). 입구에서부터 ‘콘돔 맛집’, ‘3분 오르가즘’ 등의 빠알간 멘트로 우리를 반기는 그 곳. 그러나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다. 잠시의 민망함과 어색함이라는 입장료만 지불할 용의가 있다면, 그 문턱 넘어의 레드컨테이너는 실로 ‘환상의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그’ 환상의 나라와의 차이가 있다면 어른을 위한 나라라는 것 정도?)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 재미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레드컨테이너를 구경해보자. 당당히 놓여진 형형색색의 기구들과 수 많은 핫한 상품들이 그 재미를 다시 찾아줄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도 분명 있다. 자극적 문구를 사용해 흥미를 끌려다보니, 성적 대상화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걸러지지 않고 쓰인 부분이 그것이다. 그렇다. 한국에서 성인용품점으로 살아남기라는 엄청난 챌린지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시행착오가 많아 보인다. 그러나, 레드가 그렇듯 그리고 레드 컨테이너가 말하듯, 우리의 욕망에 당당해지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내숭없는 세계로 가즈아~!’
무더운 여름 노란빛 여행을 떠나자! , 베브릿지
화려한 색으로 눈을 사로잡는 베브릿지의 외관
채도 높고 색감이 쨍한 노란색은 언제나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풀섶의 개나리꽃이나 피자의 고구마 무스만 보아도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베브릿지는 진한 노란색의 벽을 빛내며 올해 늦은 봄, 이화여대 앞 골목에 새롭게 등장한 카페이다. 학교 앞 여러 카페를 다니기 좋아하는 에디터는 밝은 노란 빛의 외벽에 홀린 듯 이끌려 어느새 베브릿지의 메뉴판을 읽어내리고 있었다.


학교 커뮤니티의 맛집 게시판에서는 드물지 않게 베브릿지 추천글을 읽을 수 있다. 많은 평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음료의 종류가 다양하고 특이한 메뉴가 많다고 한다. 물론 맛도 좋다는 평 또한 대다수였다. 새로운 먹거리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에디터는 잔뜩 부푼 기대와 설렘을 안고 카페에 도착했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처음 보는 음료가 가득 적힌 메뉴판! 약간의 희열에 눈을 부릅 떴다. 이렇게 다양하고 이국적인 음료를 맛볼 수 있다니. (사족이지만 메뉴명 옆에 붙여진 국기들을 보고있자니 초등학생 시절 운동회 날, 운동장을 가득채운 만국기 생각이 문득 났다.) 각국의 이색적인 음료를 판다는 것이 차별점인 베브릿지는 메뉴판에서도 ‘국제선 출발’, ‘BUBBLE TEA Gate’ 라는 재치있는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똥랭차에 코코넛 펄 추가!
에디터가 선택한 음료는 홍콩식 아이스티, ‘똥랭차’이다. 코코넛 펄을 추가하여 쫀득하고 달달한 맛을 풍성하게 느낄 수 있었다. 베브릿지의 또 다른 장점은 우유 베이스의 부드럽지만 탁한 음료부터 티 베이스의 깔끔하고 청량한 음료까지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하고 다양한 음료들을 하나씩 도장깨기 해보는 것도 재밌는 시도가 될 것 같다. 무덥고 지친 여름, 시원한 베브릿지에서 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온 여름을 물들이는 초록, 이화여자대학교
언제부턴가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로 나무와 꽃, 그 자연들에서 오는 본연의 초록 색감을 사랑하게 되었다. 신촌의 초록색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다 보니 이화여자대학교가 떠올랐다. 푸릇푸릇한 나무들보다는 삐까뻔쩍한 건물들이 먼저 떠올려지는 신촌이지만, 그 속에서도 이화여자대학교는 초록빛깔이 만연한 place이다.

이화여자대학교의 대표 색상은 초록(pantone 336C)이다. 연두빛도 청록빛도 아닌 깊고 진한 초록색. 그래서인지 몰라도 교내에 초록색이 두드러지게 아름다운 곳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에디터가 가장 좋아하는 place 두 곳을 소개하려 한다.
첫번째는 학교의 아름다운 조경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곳, 바로 셔틀버스의 조수석이다. 이화여자대학교는 참 넓고… 또 높다! 에디터는 이화여자대학교의 재학생으로서 이 넓고 높음을 혼자서 감당해내기 힘들어 셔틀버스를 애용한다. 1년 넘게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셔틀버스를 이용하다 보니 셔틀 버스 안에서도 좋아하는 자리가 생겼는데, 그게 바로 조수석이다. 가장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조수석에 타기 위해서는 몸을 구겨넣어야 하기에 자주 앉지는 않는다. 하지만 요즘처럼 날이 좋은 날이면 꼭 앉는 자리이다. 이 곳에 앉으면 이화여자대학교의 조예대부터 본관까지 터널처럼 도로 위를 감싸고 있는 멋진 초록빛깔 나무들을 감상할 수 있어 좋다. 비록 수업 들으러 가는 길일지라도 세상이 초록빛으로 물드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없이 초록빛들을 눈에 담으며 자연을 만끽한다.

두번째로 좋아하는 place는 기숙사에서 내려가는 지름길 중 하나인 역사관 나무계단이다. 정말 초록색에 둘러 싸여 초록색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계단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연이 아닌 곳이 없는 곳이며, 계단마저도 나무와 돌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작은 등산로 같기도 하다. 운이 좋은 날에는 나무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청설모나, 갸르릉 울고 있는 고양이 또한 마주할 수 있다. 덥고 끈적거리는 여름을 싫어하는 에디터이지만 이 초록빛깔들을 보고 나면 청량감이 넘치는 여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전까지 초록색이 딱히 눈에 들어온 적이 없었지만, 이화여자대학교 입학 후 그렇게 초록색을 꽤 마음에 들어하게 되었다.
밤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한여름의 초록빛 신촌이 점점 더 기대된다.
파랑의 따뜻한 마법, 한미전자크리닝
나무는 푸른 옷을 입고, 색색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햇빛은 뜨거워졌고, 어느새 에어컨 리모콘을 찾게되었다. 혹시나 추울까, 하고 넣지 못했던 겨울옷을 정리해야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에디터는 방배에 사는 왕복 2시간 반의 통학러이지만, 세탁과 수선을 맡길 때에는 항상 옷을 들고 신촌까지 온다. 이대역 5번 출구 너머, 마법을 부리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에디터 기준으로 서울에서 가장 드라이클리닝을 잘하는 곳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겨울옷을 낑낑 들고 5번출구에서 나와 골목으로 들어가 걷다보면, 멀리에 파란 간판이 눈에 띈다. 푸른 간판에 하얀 글씨로 ‘한미전자크리닝’ 정갈하게 적힌 글씨는 과거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있다. 조금은 옛날 냄새나는 이곳이, 바로 마법이 일어나는 곳이다.
언덕을 올라가야 빼꼼 보이는 한미전자크리닝의 간판
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하얗고 깔끔한 내부에 색색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옷들이 걸려있다. 익숙한 세탁소 냄새와 함께,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신다.
“방배 사는 아가씨 왔네~”
익숙하게 알은 체를 하시는 아저씨는 카운터에서 나와 내 짐을 들어주시곤 선풍기를 틀어주신다. 카운터 옆에 마련되어있는 쇼파는, 사장님의 친구분들이 담소를 나누고 가시거나, 옷을 맡기러 온, 혹은 가지러 온 사람들이 쉬다 가는 곳이다. 가게는 거의 통유리로 되어있는데, 쇼파에 앉아있으면 바깥이 잘 보인다.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미용실, 밖에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정육점의 아저씨. 염리동의 일상을 속속들이 볼 수 있는 스팟이다. 더워하는 나를 보시며 아주머니께서는 작은 요구르트를 건네주셨고, 쇼파를 툭툭 치며 앉아 있으라 권유하셨다. 아주머니와 마주앉아 더위를 식히며, 두런두런 시덥잖은 일상의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에서 자주 느낄 수 없었던 정(情)과 따뜻함이 이곳에는 가득하다. 사장님 내외는 정이 많고 친절할 뿐만 아니라 드라이클리닝 실력도 만점이신데, 붉게 물든 하얀 원피스도 다시 하얗게 만들어주시는, 마법같은 손을 가지고 계신다.
작년 언젠가 늦은 밤에, 과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맡긴 옷을 꼭 가져오라던 언니의 당부가 떠올라 급하게 이곳을 찾은 적이 있었다. 골목은 불이 꺼진 상점들로 가득했고, 어둑어둑한 길을 빠르게 달렸다. 골목에서 혼자 빛나던 파란 불빛. 불빛을 쫓아 달리던 나. 헥헥대며 그 곳의 앞에 선 그 순간, 달칵 하고 빛이 꺼졌다. 망연자실한 나는 흐르는 땀을 닦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 아주머니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옷을 찾으러 왔냐고 물으시며 다시 불을 켜 주셨다. 여느때처럼 요구르트 한잔과 함께, 아주머니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새 옷같이 변한 옷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땀방울이 맺힌 얼굴로 바라본 간판의 일렁이는 파란 불빛은 과제에 치여, 일상에 쫓겨 진이 빠진 나에게 한조각의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파랑, 내가 느낀 이곳의 색깔.

단순히 옷을 깨끗하게 해 주는것 이상으로 이곳 , 한미전자크리닝은 언제나 따뜻한 마음을 덤으로 주신다. 그래서 우연찮게 그 곳을 지나가기만 해도, 맡겼던 옷을 가져와 입기만 해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마법처럼 온기를 받는 것이다.
신촌만의 든든한 남색 하늘, 유플렉스
신촌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유플렉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울 같은 유리의 유플렉스 건물에 비치는 짙은 하늘은 신초너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연세로 광장 한복판에 자리한 유플렉스는 특별할 것 없는 그저 평범한 쇼핑몰이지만 그 단순함 속에 가려진 매력이 있다.

무더위가 이어지는 요즈음, 어딜 가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에어컨이 빵빵하게 틀어진 유플렉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하기에는 최고의 장소다. 당연히 추운 겨울날에는 따뜻한 히터 바람이 우리를 맞아주기 때문에 겨울에도 역시 이 통로로 발걸음을 향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얼결에 들어온 유플렉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건 유플렉스를 이용하는 좋은 방법이다. 다채로운 신촌에서 갈 곳을 정하지 못해 헤매일 때,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좋아하는 걸 찾아보자. 둘러보다 보면 갑자기 목적지가 떠오를 수도 있지 않은가. 어떠한 비용도 요구치 않기에 신촌의 방랑자가 잠시 쉬어가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장소다.
유플렉스는 신촌의 중심에 위치해 있기에 갈 곳이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쇼핑을 원한다면 백화점으로, 다양한 거리 공연과 신촌의 시끌벅적함을 즐기고 싶다면 신촌의 메인 거리인 빨간 잠망경(일명 빨잠) 앞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쭉 걸으면 된다. 배가 고플 때도 빨잠 방향으로 나와 신촌 뒷골목의 맛집을 찾아볼 수도 있다. 심지어 집으로 향할 때마저 신초너는 유플렉스를 지나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이렇게 유플렉스는 마치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문’처럼 원하는 곳이 어디든지 그곳으로 신초너를 인도한다.

남색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파랑에 검정이 더해져서일까. 밝으면서도 어둡고, 무거우면서도 가볍다. 그 알 수 없는 깊이는 어떠한 것도 다 포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밤낮으로 남색 하늘을 담는 유플렉스가 그렇다. 신촌의 중심을 지키며 언제나 신초너들을 반긴다. 이러니 유플렉스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을까. 신촌에서 에디터가 가장 좋아하는 곳을 뽑아보려고 하니 유플렉스가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왠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않은 것 같기도 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신촌의 수많은 매력에 빠져 헤매고 있다면, 잠시 유플렉스에서 쉬었다 가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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