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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5 · 03 · 25

236. 모두의 삶

Editor 이도

“가식, 그거 좀 떨지마. 자꾸 그러면 네가 누군지도 잊어버리게 돼.”

 

 

키가 1.5m도 되지 않던 시절에는 교회가 참 싫었다. 

부모님의 바쁜 일로 인해 외할머니 댁에 맡겨질 때에, 당신은 어김없이 나의 한 손을 잡아끌고 교회를 찾았더랬다.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허공에 휘두르며, 기다랗고 딱딱한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 타인들이 저 위의 십자가를 향해 기도하는 것을 바라봄은 참으로 지루한 경험이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주입 당했던 성경 구절에서든, <십계>니 <벤 허>니, EBS 토요일의 명화에서 방영하던 고전 영화들에서도 틈만 나면 나왔던 ‘예수’, ‘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게 어린 마음에는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누가 봐도 뭐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이라든지, 알을 깨고 나온 사람같이 터무니없는 ‘신화’잖아. 그냥 그런 이야기가 있구나, 하고 웃고 넘어가면 그만인 것들을 왜 이렇게 진심으로 믿는 거야.”

 

틈만 나면 예수니 하나님이니,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고, 또 우리는 모두 죄인이니 회개하면서 살아야 된다느니. 죄인인 것도 어떤 여자가 과일을 먹어서 그렇다는데 뭔 말도 안 되는 소린지. 참 

모두 허세, 위선처럼 느껴졌다. 시끄러운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는 깨달은 사람이라고, 그러니 다른 우매한 개체들을 감화해야 된다고 소리 높여 ‘선한 척’을 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런가, 점점 팔짱을 끼고 예수라는 사람이 걸린 십자가를 노려보며, “그래, 어디 한 번 나를 감화해 보세요.” 하는 철없고 반항적인 태도로, 물론 실제로 팔짱을 끼지는 않았지만, 성가대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일요일을 보냈던 듯하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교회에 대한 묘한 반항심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절친한 친구를 믿고 교회를 한 번 다시 가보기로 했었다. 

조금은 커진 머리를 초면인 목사님께 자랑스럽게 들이대며, 다시 한 번 불경스러운 도전을 하고픈 마음이었을까.

그 대단한 머리를 눌러 감추고 청년부 예배에 들어가자, 나로서는 참으로 경악스러운 장면이 펼쳐졌다.

목사님 말씀을 토씨 하나 안틀리고 노트북으로 받아 적는 사람, 부들대는 손으로 묵주를 쥐고 오열하는 사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었지만 어딘가 다친 사람들이겠거니, 하고 목사님과 아내 분을 대면했다. 하지만 무엇에 홀린 듯 크게 치뜬 눈으로, 광적인 믿음을 강요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들은 무언가 간사해 보였다.

한두 번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으로 찾아갔던 그 교회는 그래서인지 가식적이고 간사한, 음침한 집단으로 뇌리에 기록되었다.

후일담이지만 그 교회는 이후 이단으로 판정되었다. 친구도 몰랐기 때문에 그를 원망하진 않지만, 이 경험으로 인해 교회란 나에게 돈을 위해 ‘인(仁)으로 위장한 허(虛)’를 파는, 한층 더 가식적인 집단으로 인식되었다. 

 

 

군대에 갔다.

이것저것 얼렁뚱땅 절차를 거치고 도착한 자대는 전국의 군 부대 중 가장 고도가 높은, 경기도의 한 산꼭대기에 고립된 곳이었다. 

그런 곳에도 소위 교회라는 공간은 존재했다.

일반적인 교회 건물에 비하면 창고 수준의 공간에, 슬레이트 지붕을 대충 덮어놓아 여름에 태풍이 오면 지붕이 없어지는 마술을 볼 수 있는, 그런 허술한 장소였지만 어쨌든 ‘믿는 이’들을 위해 그곳에도 교회라는 공간은 존재했다.

무료함에 몸서리치던 일요일이었기에, 군종병이었던 선임을 따라 마지막으로 또다시 교회에 가보기로 했다.

예비역 대령이자 ‘탑건’이라는 영화에 열광하시던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목사님은 정말 진실한 분이셨다.

일요일마다 왕복 5시간의 거리를 버스로 이동하고, 덜컹거린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의 차에 몸을 싣고 산을 오르내리는 목사님의 정신에는, 목회비라는 명목으로 군에서 지급되는 쥐꼬리만 한 비용은 담을 수 없는 숭고함이 있는 듯했다.전도를 위한 아주 약간의 압력이 있긴 하지만, 갖은 노력을 하고 사비를 얹어서까지 산 위의 빡빡머리들에게 소위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전달하고자 하는 목사님.

 

‘가식으로 가득한 교회’라는 나만의 상식을 깨는 어떠한 불쾌감은 그렇게 습득되었다. 

 

 

“가식, 그거 좀 떨지 마. 자꾸 그러면 네가 누군지도 잊어버리게 돼.”

나보다 두 해 밖에 일찍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본인의 심지를 굳건히 한 어느 존경하는 형님이 해 준 조언이다.

살다 보면, 혐오감이 드는 대상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묘해서, 어떤 대상을 혐오할수록 점점 그것과 닮아간다고 한다.

짧고도 짧은 인생을 돌아보면, 그렇게 혐오했던 가식은 어린 나에게도, 지금의 나에게도 찾아볼 수 있다. 

말도 안되는 신화를 진짜로 믿고 숭배한다고, 그리고 그것이 우매하다고 생각했던 그 어린 생각 자체가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이자 가식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혐오할수록 나란 존재는 그렇게 ‘우매한개체를조소하는가식덩어리’ 그 자체가 되는 것이고 ‘초월한존재인양떠벌대는개구리’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혐오함을 멈추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만이 그 해독제일까.

나 자신이 가증스럽게 느껴져 참을 수 없다면 그 돌파구는 무엇일까.

 

그렇게 뇌에 새빨간 실이 가득 차 있던 어느 날, 생각을 식히기 위해 열람실에서 산책을 나왔다. 

항상 뻔질나게 돌아다녔던 경의선 숲길과 대흥역-서강대 지역을 벗어나니 오히려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어릴 적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간 바로 그 교회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릴 적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옆으로 돌아 다른 길로 들어갔다.

 

그렇지만 마주친 건 다름아닌 또 다른 교회였다. 

 

 

보통 교회라 함은, 장엄한 미를 가진 예배당에 뾰족한 첨탑이 클리셰적인 요소가 아닌가. 그렇지만 멀리서 본 회색의 석조 건물은 교회라고 하기엔 투박하고 정감 가는 따뜻함을 가지고 있었다. 

메주를 얼기설기 쌓아 올린 모양처럼 서 있는 건물은, 신성하기보다 바로 그 ‘주 예수’가 태어났을 법한 마구간과 흡사했다.

날카로운 듯하지만 모나지 않은. 초라함 속의 균형.

아무리 싫어도 궁금하면 사족을 못 쓰는 도파민 중독자답게, 자연스럽게 삐뚤빼뚤한 계단을 올라 건물로 들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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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올리브

 

 

한때 교회의 예배당이었지만 그 어떠한 상징이나 형식을 갖추지 않고, 오로지 분위기만을 남겨놓은 카페 올리브는 신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그렇다고 접견실과 같은 분위기의 여느 교회 카페와 같지는 않은, 석조건물만의 중후하면서 투박한 분위기를 지닌 이곳은 무려 1958년 지어진 성광교회의 본당이었다.

2008년에 되어서야 카페로의 전환을 마친 곳이기에, 그만의 독자적인 헤리티지를 인정받아 지난 2017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라오스산 공정거래 커피 원두, 그리고 커피 머신 계의 페라리라고 불리는 라 마르조꼬를 이용해 내린 커피의 수익금은 지역사회로 환원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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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간단하다. 기본적인 커피 메뉴들과 함께 라떼와 차, 그리고 요거트 종류가 있고, 수제 팥앙금으로 좋은 평을 받는 빙수도 판매한다. 

*빙수는 5월 1일부터 판매.

커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카페의 역량을 평가하려면 스팀 기술이 필요한 음료를 주문하는 것이 좋다는, 주워들은 정보를 토대로 카푸치노를 한 잔 시켜보았다. 

카페의 좌석은 혼자 온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4인석뿐이었지만 손님이 적었기 때문에, 전세 낸 기분으로 음료를 받아 앉았다. 

 

 

거품이 아주 훌륭하게 올라간 카푸치노를 흰 수염을 만들며 홀짝거리자, 상큼한 향의 시나몬 가루가 코를 간질였다.

물론 가식적이지 않은, 비판적인 접근을 한다면 대단한 맛은 아니었다. 다만 기교를 부리지 않은 정직함이 느껴진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을 돌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건물의 내부는 투박한 겉모습의 돌벽은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한 백열전구의 불빛으로 채워진 회색의 홀이었다. 

높은 천장을 떠받들고 있는 견고한 나무 들보와 마차 바퀴를 닮은 조명은 앤티크한 분위기를 한층 배가시켰다.

탁자마다 올려진 작은 꽃병은 종교적 상징일 수도 있겠다는 의심이 들 정도로 공간과 잘 섞여 들었다.

 

몇 되지 않는 방문자들은 각자의 일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노트북을 꺼내 작업을 하거나, 업무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는 사람들.

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눈을 붙이는 이도 있었다.

 

교회로 쓰인 과거를 가진 공간이지만, 이상하게도 앞서 피해 온 곳의 느낌과는 다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조용히, 커피의 진한 향기가 채워진 높은 지붕 아래에서 불필요한 실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어느 집단을 찾더라도 잘못된 믿음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로 인해서 집단 전체를 그른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오류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예로, 신촌의 거리에는 수많은 사이비 전도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기구를 이용해 요란법석을 떨며 행인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하고, 심지어 거부하는 사람에게까지 강제로 사상을 주입하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현재 번성한 여타 종교도 신도를 확보하기 위한 그러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기에, 교리를 펼쳐보이며 전도를 시도한다고 하여 그들 모두를 사회의 오물로 상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무신론자인 나는 허상일 수도 있는 신을 믿고 따른다는 것이 잘 납득되지는 않지만, 심장을 가진 한 인간으로서 누군가를 신뢰하고,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르는 행위 자체는 이해한다.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언제나, 그리고 영원에 걸쳐 내 곁을 지키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참 안도되는 그것이 아닌가. 

 

 

이 글에서 소개한 카페 올리브의 뜻은 olive가 아닌,  all live 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한 평생을 살면서 끝없는 사랑을 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시작이자 목적 그 자체이다.

모두의 삶은 표현의 방식만 다를 뿐, 결국 사랑에 귀속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절대자를 향한 귀의를 그저 사랑의 한 형태로 보기로 하겠다. 

물론 사랑을 넘어선 숭배와 그러한 사상의 강요는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이지만 말이다. 

다만, 우리가 어떠한 통 속의 뇌라 할지라도, 저 위의 소위 고등 생명체라고 일컬어지는 그들을 쉬이 사랑하지는 않겠다. 철 기둥 같은 사랑은 지나치게 날카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 아이스 바닐라 라떼와 카페 모카: 비교적 덜 달아서 좋았다.

 

——

 

카페 올리브

 

 

 

서울 마포구 독막로28길 46

 

운영시간 

월-토 10:00 – 17:00

일요일(주일) 휴무

가끔 전도하시려는 분들이 있지만, 정중하게 거절하면 넘어가신다.

전화번호  0507-1442-1062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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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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