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카페 페이즈
혼밥, 혼술, 혼영…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이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술 마시기, 혼자 영화 보기 등, 처음에는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게 낯설게 느껴졌지만, 요즘에는 앞서 나온 모든 단어를 아우르는 혼족이라는 말까지 생겨나면서 ‘혼-‘은 하나의 트렌드로서 자리 잡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회적 경향성이 나쁘기만 하다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혼자 있는 시간의 편안함과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같이’의 가치만을 너무 강조했던 것은 아닐까. 누구에게나 혼자 있을 시간은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감정을 나누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가끔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지치게 하기도 한다. ‘나 외의 것’에 휩쓸려 정작 ‘나’를 보듬을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에디터는 혼자 있는 즐거움을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개강을 하고, 몰아치는 약속과 아르바이트에 치이다 보니 내가 나와 함께하는 시간은 우선순위에 밀려 꽉 찬 스케줄의 바깥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어느새 9월의 중순을 달려가는 지금, 혼자만의 시간에 갈증을 느끼던 나는 한 공간을 떠올렸다. 바로 카페 페이즈이다.

페이즈는 내게 꽤나 비밀스러운 장소였다. 대현 문화 공원, 일명 썸타는 계단이 있는 공원의 끝자락에서 미니스톱 사이의 길로 들어가면, 원룸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이 길에서 좋아하는 노래 하나를 틀어놓고 걷다 보면, 후렴구가 끝날 때 즈음 눈앞에 작은 카페가 보인다. 카페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단출한 외관에 자칫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커피 메뉴가 쓰여진 작은 푯말이 이곳이 카페임을 알려준다. 깔끔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외관에서 보여졌던 약간은 어두운 느낌과는 상반되는 밝은 내부가 눈에 들어온다. 모던한 내부는 제각기 다른 모양새의 의자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눈에 매장을 다 볼 수 있을 만큼 내부는 크지 않지만, 나 자신과 함께하기에는 딱 알맞다.


사장님의 취향이 느껴진다
카페 안의 앞쪽 면은 문과 함께 통유리로 되어있는데, 느지막한 오후 시간이면 따뜻한 햇볕이 유리를 타고 들어와 나른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다. 아쉽게도 에디터가 방문한 날에는 유리와 마주할 수 있는 자리가 차있던 관계로, 작은 화분과 책장 옆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음료를 시키고자 카운터에 다가가면, 귀여운 글씨로 쓰여있는 작은 메뉴판을 찾아볼 수 있다. 가게의 사장님께서 하나하나 쓴 이곳의 메뉴판은 투박한 듯 귀여워서 볼 때마다 몽글몽글한 기분이 피어오른다. 커피를 좋아하는 에디터는 썸머라떼와 아인슈페너 사이에서 갈등했는데, 그 모습을 보신 사장님께서는 웃으시며 천천히 골라도 된다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몇 분을 고민하던 끝에 결국 썸머라떼 한잔을 주문했다. 추워진 날씨가, 가버린 여름이 못내 아쉬웠던 탓이었는지, 썸머라는 두 글자가 홀린 듯 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달달한 걸 먹고 싶다는 생각 또한 선택에 한몫했다. 페이즈에서 커피가 들어간 음료만 파는 것은 아니다.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밀크티, 초코라떼, 쑥라떼 등의 메뉴와 캐모마일, 레드베리 등의 티 메뉴도 존재한다. (소문에 의하면 쑥 라떼가 매우 맛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시즌에이드가 존재한다는 점인데, 방문하는 시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이번 시즌에는 어떤 에이드가 나올지, 두근거림을 가지고 방문할 수 있다. 커피 말고도 다양한 메뉴가 있어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도 방문하기에 좋다. 또한, 스콘, 쑥 갸또 쇼콜라, 레몬 파운드 케이크 등의 디저트 메뉴도 존재하는데, 늦은 오후 시간에 방문할 경우 다 나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디저트를 맛보고 싶다면 조금은 이른 시간에 방문하거나, 가게로 전화해 재고를 물어보는 것이 좋다. (썸머라떼는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메뉴이기 때문에 충분히 달달할것 같아, 나를 유혹하는 스콘을 뒤로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여름이 이렇게 달달하다면 매일이 여름이어도 좋을텐데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와 조용히 혼자 앉아 있다 보면, 가게의 작은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카운터 옆 작은 꽃이나, 가게의 이곳 저곳에 놓여있는 화분들. 그 푸르른 색깔들을 바라보다 보면 싱그러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작게 흘러나오는 재즈풍의 팝송과 달큰하게 퍼져있는 빵 냄새는 부드럽게 몸을 휘감는다. 페이즈 안의 공기는 왠지모를 따스함을 전한다. 괜시리 나른해지기도 하고, 말랑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아마도 가게 전반에 깔려있는 조용하고, 느긋한 분위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과 여유를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눈 앞에 주문한 썸머라떼가 등장한다. 페이즈의 특징은 음료를 시키면, 사장님께서 직접 자리까지 음료를 가져다주신다는 것이다. 진동벨 소리에 방해받을 일 없다는 것 또한 이 가게의 장점이다. 썸머라떼는 일반적인 라떼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한 스쿱 올라간 메뉴이다. 같이 주신 나무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먼저 먹고, 조금 기다린 후에 아이스크림이 적당하게 녹은 달달한 커피를 마시면 그 날의 당 충전은 100% 완료!

여유로운 침묵 속에서 달달한 썸머라떼를 마시며 이것저것 요상한 생각이나 상상들을 하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일반적으로 카페에 가면 이어폰을 꽂고 과제를 하거나, 할 일을 기록하고는 하지만, 페이즈에서는 이어폰을 꽂기보다는 아예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놓곤 한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그저 듣고, 가만히 앉아있는 편이 여유를 느끼기에 더욱 좋기 때문이다. 내부에 놓여있는 그림 속 남자와 눈싸움을 해보기도 하고, 눈앞에 놓인 화분의 초상화를 그려보기도 한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그러나 혼자 있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즐긴다. 핸드폰 없이, 나 자신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2% 부족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럴 땐 지체없이 일어나 책장 쪽으로 향해보자. 가게 한 켠에 화분과 함께 자리한 의자같은 책장은 에디터가 페이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카페를 이용하는 누구든지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꺼내 읽어볼 수 있다. 책장을 기웃대다 귀여운 표지의 책을 한 권 들고 다시 자리에 앉으면 부족했던 느낌이 채워진 기분이 들 것이다. (책의 종류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읽고 싶은 책을 가져가서 읽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책을 읽다가, 책 속 화자와 토론하기도 하고, 책에서 끌리는 문장을 적어보기도 하다 보면 가방 속 핸드폰이 진동한다. 데이트 종료를 알리는 진동이다. 벌써? 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시간을 보자 수업 시간 시작 20분 전이다. 남은 음료를 한번에 마시고, 책을 제자리에 둔 뒤 아쉬운 발걸음으로 일어서 다시 학교로 향한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하는 인사도 빼먹지 않는다. 일상에 지쳤을 때, 오롯이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 나는 또 이곳을 찾을 것이다. 조용하게, 그러나 따스하게 나를 맞아주는 카페 페이즈로.

[페이즈]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1길 32
070-5161-9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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