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 로그인
PLACE 2019 · 10 · 02

120. 7737번 버스

Editor 왕 잔치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은 에디터는 서울 사람, 서울 지하철, 서울 버스라는 말이 아직 모두 어색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서울은 어떤 식으로든 가슴에 남을 희한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애초에 이 말들이 굳이 쓰일 필요가 있는지 헷갈려서 그러는지.

서울 안에서만 왔다 갔다 하는 버스를 처음 탄 건 대학생이 되고 난 이후였습니다. 정말 그랬느냐고 물으면, 다른 버스들은 다 수도권과 서울 안을 연결하는 버스였기 때문에 이렇게 기억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에디터에게 7737번 버스는 특별합니다. 공항 철도를 타고 통학하는 에디터에게, 7737번 버스는 홍대 입구와 “연세대앞” 정류장을 연결하는 유일한 버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연세대앞”이라 함은, 연세대학교 정문 앞, 정문 바닥 타일이 보이는 큰 삼거리를 가리킵니다. 신촌역에서 나와 부지런히 걸어가기에는 문과대학 학생의 다리가 너무 무거워 발견한 유일한 경로였습니다.

 

7737번 버스의 전체 노선도 (출처: 네이버 지도)

 

7737번 버스는 은평공영차고지와 독립문역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으로, 한강의 북쪽 부분 안에서만 운행되는 버스입니다. 독립문역을 통과하기 직전에는 산에 뚫린 터널 하나, 그리고 교통의 요지 홍대입구역과 MBC 본사,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주요 지점들을 거쳐 갑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타면 생지옥이 되겠으나 어쩌다 여유로운 한낮에 타면 천천히 앉아 서울 구경을 할 만한 버스라 하겠습니다.

 

에디터가 이용하는 구간들. 홍대입구역, 연희동대우아파트, 서대문우체국, 연세대앞. (출처: 네이버 지도)

 

에디터가 7737을 이용하는 구간은 단 네 개의 역입니다. 그 이상으로도 가 본 적은 있으나, 작은 사고였으니 생략하도록 합니다.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나와 신호등을 반절 건너면, 차로 한가운데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7737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친구여서, 보통 배차 간격은 13~15분이지만 때로 운이 좋은 날은 5분 뒤 바로 탈 수 있는 날이 있기도 합니다. 신호등을 아깝게 건너지 못한 채 눈앞에서 칠칠삼칠이를 보내는 날은 눈물이 나는 날입니다. 날이 아침부터 맑아도 그날은 기분이 좋지 못합니다.

 

목요일 아침 8시 27분,

 

홍대 입구에서 출발한 버스가 조금 부릉 거리면, 동교동 삼거리의 신호를 받게 됩니다. 동교동 삼거리는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촌 어드메와 홍대입구역 근처를 연결하는 핵심 지점인데, 이곳에서 버스는 신촌 로터리 쪽 (신촌 2호선 역 방향)으로 향하지 않고, 쭉 올라갑니다.

 

무엇을 찾아가고 있나요 (출처: 네이버 지도)

 

그렇게 올라가다 보면 경의 중앙선 열차가 다니는 철교가 나옵니다. 그 철교 밑에는, “생존이 목표면 표류지만 보물섬을 찾아가면 모험이다” 라고 그라피티가 있습니다. 정신없던 통학 3주차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글자였습니다. “연희동대우아파트”에서 “서대문우체국”까지 가는 데 15분이 걸렸던 기록적인 아침, 우연히 에디터는 그라피티를 한 글자씩 제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통학러에게는 학교 무사 도착이 목표일 뿐, 그러니까 에디터의 목표는 생존이니 통학길은 표류가 되어버릴 뿐입니다. 그걸 저 그라피티를 보고 깨닫고, 7737번 버스 안에서 에디터는 굽어 있던 허리를 똑바로 폈습니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생존이 매일 좋지만, 나머지 4일은 보물을 찾자. 1교시 수업은 어쩔 수 없지만 오후 1시 수업에는 찾을 보물이 있지 않을까. 통학하는 에디터는 당장 내일 아침을 위해서도 그라피티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아침 버스 안의 그 많은 사람이 그 그라피티를 보았는지,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캐묻고 싶지만 버스 안은 조용합니다. 철교를 지나 서대문우체국 쪽 길로 올라오는 신호를 한 번 더 받으면 곧 자취생들에게는 익숙한 서대문 우체국이 나오고, 바로 다음 역이 “연세대앞”입니다.

 

위에서 생략했던 사고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보통의 버스와 달리 7737번 버스에는 특별함이 존재합니다. 바로 노선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는 점. 특히 길치들에게는 치명적인 특성이어서, 에디터처럼 반년 동안 7737을 타고 다녔음에도 서대문우체국에서 홍대 입구로 가지 못하고 같은 7737을 탄 채 인적이 드문 “이대부고” 정류장에서 내려 15분을 방황하다 다른 버스를 타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연세대 앞 삼거리에서 갈라지는 7737번 버스의 노선은 하나의 치명적인 매력입니다. 여기서 타면 이화여자대학교 쪽으로, 저기서 타면 신촌 연세로 안으로 꺾여 들어가는 똑같은 번호의 똑같은 연두색의 버스들. 넋 놓고 다녔을 학교 앞을 우연한 실수로 환하게 밝혀 놓고, 갑자기 내린 엉뚱한 곳은 깜깜한 어둠이었던 어디로든 달리는 연두색의 버스들.

 

다음의 빈 칸을 채우세요: 칠칠 ____________ .

 

버스 번호의 숫자 조합도 칠칠삼칠, 네 개 중 칠이 세 개에, 삼이라는 뭉그러운 글자 하나. 게다가 칠삼칠칠도, 칠삼칠칠도 아니라 칠칠삼칠입니다. 매일 타고 다니니 정이 들어서 그랬겠지만, 숫자의 조합부터 노선이 갈라지는 일까지 모두 세상에서 가장 애틋해질 수 있는 노선이라고 아무도 몰래 적어봅니다.

7737번 버스는 여러 대가 운행되지만, 에디터는 놀랍게도 지금까지 그들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전자식 전광판을 달고 자신의 번호를 보이고 다니는 다른 연두색 버스들과 달리, 8개월 동안 신촌을 다니며 7737번 버스 중 전자 전광판을 붙인 것은 단 한 대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통학생인 에디터는 생각했습니다. 홍대 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그 이른 아침에 아무 허튼 생각 없이 서 있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생각했습니다. 한 번 칠칠삼칠이었던 버스는 이름표를 갈아 끼우기 전까지는 평생 칠칠삼칠이겠다고, 변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변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이름표를 갈아 끼울 시간이 올 것입니다. 에디터의 통학 생활이 끝나기 전까지 그 이름표가 지금의 자리에서 버텨줄지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변화하는 칠칠삼칠 앞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버스라는 공간 안에서, 버스는 분명히 공간이지만 쉬지 않고 움직이는 노선을 따라 달리므로 그 노선 위는 모두 7737의 공간이라고 해도 좋은 것일까요.

그렇다면 공간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공간에 우리의 궤적이 남기를 원합니다. 그날의 밤공기, 함께 했던 사람의 향수 냄새 같은 것들이 공간에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7737번 버스를 탈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이 버스가 지나가는 이 길, 저 가게, 같이 탄 이분, 저분, 그리고 9월 25일이라는 날짜, 모든 것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변해가고 있는데, 대체 무엇이 공간인지. 무엇이 남아 있어야 그것을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애초에 그것들이 남아 있을 수는 있는 것들인가요? 훗날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방문했을 때, 그때 7737번 버스는 최신식으로 바뀌어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을까요? “보물섬” 그라피티는 전자 전광판 안에 새롭게 새겨져 어느 식당 광고처럼 철교 밑을 장식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에디터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을 7737이 달렸던 서대문우체국 앞에서, 7737번 버스 안 맨 앞 자리에 앉아 생각했습니다.

에디터는 9월 27일 오후 5시 12분에 오늘 아침 10시 34분의 7737번 버스 안 회색빛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기억이, 이렇게 공간 안에 잠겨 공간을 한 막, 한 막 부드럽게 찢으며 나아가는 기억뿐만이 공간을 공간으로 남게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버스 안이라는 작은 공간, 그리고 그 작은 공간이 이동하는 다시 더 큰 공간. 그래서 에디터는 오늘도 기억합니다.

결국 남는 것은 공간에 대한 개인의 기억과 그 기억의 나눔 혹은 간직뿐이라고.

왕 잔치
AUTHOR PROFILE
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