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단면 신촌: 주변인의 이야기.
본 에디터가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활자를 정돈하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적인 모든 표현은 언어라는 매개에 구속되어 있다. 하지만 20년을 넘게 붙잡고 살아온 스스로의 몸뚱이조차 쉽게 이해하지 못 하는 다차원적인 인간에게 언어라는 매개는 헐겁기 짝이 없는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느껴진다. 예술로써 사람을 위로한다는 표현은 이러한 지점에서 시작된 사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좋은 작품은 말로, 혹은 활자로 표현될 수 없는 나만의 오묘한 무엇으로 가는 표지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술적인 것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다.
예술이 없는 우리의 일상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는 여전히 우리에게 주된 가치로서 자리 잡지 못 하고 있다. 아직도 대한민국에서는 “예술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경제적인 빈곤을 마주해야만 한다.”라는 명제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굶는 것, 예술가는 곧 가난한 사람이라는 등식이 무의식의 기저를 형성하는 사회에서 창작에 뛰어든다는 것은 곧 개인의 사회적인 파괴를 감수하겠다는 이야기와 같이 들리기도 한다.
에디터의 빈약한 체험에 의하면, 에디터가 평생을 살아온 인천의 한 동네에서는 본인이 재학중인 학부의 이름 몇 자가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을 갈음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시험에 능숙하다는 것이 곧 높은 지적 능력의 방증은 아닌 것임에도 불구하고, 학부의 이름이 개인의 지적능력과 결부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줄 세워진 성적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단적인 예시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세상에 펼쳐져 있는 수많은 갈래 중 사회가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한 방향, 공부와 시험에서의 우위는 개인에게 굳이 예시를 들지 않아도 될 정도의 많은 특권을 선사한다.
신촌은 우리나라 젊은 예술의 대명사인 홍대 바로 옆에 위치해 있고 수많은 공연과 축제가 끊이지 않는 공간이기에 예술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신촌이라는 공간을 구성하는 많은 청춘들은 사회의 주류적인 가치 앞에 서있는 소위 ‘명문대생’들 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에디터는 이런 이들 사이에서 비주류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예술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오늘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은 음악하는 24살이자 연세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이도현이다.
듣는 사람과 들려줄 사람은 신촌의 한 학교식당에서 마주했다. 듣는 사람은 이야기의 큰 틀을 전달할 뿐 질문하지 않았고, 들려줄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놓았다. 듣는 사람은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자유롭게 놓여진 이야기들을 맥락대로 재구성하여 정리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릴 때 부모님의 의견을 따라 클래식을 전공하려고 하던 때가 있었어. 성악과 클라리넷을 오랫동안 배우면서 합창단에도 소속돼 있었는데, 지휘자 선생님이 편곡한 동요를 부를 때 그 리듬과 화성이 주는 알 수 없는 감동을 느꼈던 것 같아. 초등학교때 캐나다에 잠깐 있었는데 이때 처음 락 음악을 접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중학교때부터 밴드를 시작했어. 이 때, 학교에서 열리는 공연만이 아니라 지역 행사나 가요제에도 많이 출전했었고. 다양한 악기를 어느정도 수준까지 접했던 게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1인 프로듀싱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해.
음악을 하는 게 즐거웠지만, 그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주변의 영향으로 공부에 몰두하게 되었던 것 같아. 결과적으로 외고에 진학했고, 연세대학교에 진학했어. 마이너한 취향 때문에 인디음악을 많이 들었었는데, 인디밴드를 하는 사람들 중에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은근 많더라고. 초중고에서 입시음악을 하지 않아도 음악을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 또 인디음악은 기성음악이랑 달랐어. 굉장히 솔직하기도 아예 난해하기도 했거든. 대중의 취향을 공략하지는 못 해도 누군가의 마음에는 기성곡들보다 훨씬 더 깊게 꽂힐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음악을 하고 싶어졌어.
자기 전에 일기를 쓰듯이, 매일 한 두개정도의 악상을 기록한다. – 도현
(사진은 아이폰 무료 음악제작 어플 GarageBand)
왜 음악을 하려고 하는지.
내가 피아노를 잘 치는 건 아니야. 근데 심심할 때마다 항상 피아노가 있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대로 반주와 탑라인(멜로디)을 만들면서 놀았거든. 그래서 자연스럽게 ‘내가 나만의 어떤 것을 만든다는 게 그렇게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어.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제대로 자작곡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내 여러가지 감정을 노래안에 녹일 수 있다는 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 로직*에 있는 기본 내장 악기와 샘플들이 60기가가 넘어. 그만큼 수많은 선택지가 있어. 그 중에 코드진행부터 어떤 악기를 쓸 지까지 내가 오롯이 혼자 정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지.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군대를 전역하고 난 후에서야. 난 이게 좋고, 가능하다면 이걸로 돈을 벌고 싶은데, 이 꿈을 그냥 마음 속에 품기만 한다면 죽기 전에 너무 분하고 후회할 것 같았어. 그래서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기로 했지. 지금은 그 과정에 있는 거고.
*로직: ‘Logic Pro’ – 애플에서 개발하고 판매하는 DAW 소프트웨어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음악제작 툴 중의 하나.
도현의 작업물 중 일부.
신촌이라는 공간에 관하여.
신촌 좋아. 좋은데, 나에게는 신촌이라는 공간이 이중적인 어떤 것으로 느껴져. 긍정적인 면부터 이야기하면, 어쨌든 신촌과 그 안에 속한 우리 학교라는 공간은 나한테 안정감을 줘. 지금 당장 내가 서있을 수 있는 발판이자 토대니까. 반대로 부정적인 면이라면, 나에게 끊임없이 불안함을 안겨주는 공간이야 신촌은. 솔직히 미래를 위해 현실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 많이 불안해지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아. 내 옆에 서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나 혼자 3학년 2학기라는 이르지 않은 시간에 늦바람이 든 것처럼 보일까봐 걱정되는 것도 있어.
내가 친구랑 같이 사용하는 작업실이 홍대에 있거든. 홍대는 여기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 신촌이랑 느낌이 완전히 달라. 거기서는 내가 다니는 학교 이름이 중요하지도 않아. 그냥 4년제 대학을 다닌다는 것 자체로 사람들이 음악과 관련해서 나에게 별 기대를 안 해. 본인들은 잠자는 시간 빼고 작업에만 열중하고 공을 들이는데 그 사람들이 볼 때 나는 그냥 공부하는 샌님이니까. 재미있는 건 신촌에서의 나는 공부 안 하고 허황된 꿈을 좇는 사람이거든. 난 개인적으로 놀 시간을 줄여서 음악 작업을 하는데, 신촌에서는 내가 그저 놀기만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려. 물론 모든 사람이 나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 그렇지만 분명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 두 공간 중, 어디에 속하든 나는 주변인에 불과하고,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지. 내가 속한 공간의 주류에 속하지 못한다는 게 속상한 일이긴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역설적으로 이것도 나만의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도현이는 쫄지 않긔.
목표.
내년(2020년) 날씨가 더워지기 전까진 음원사이트에 앨범을 발매하는 게 가장 첫 번째 목표야. 반응이 중요하겠지만, 반응이 어찌 되든 일단 계속 해보려고. 대중성과 나만의 감성을 둘 다 놓치지 않는 음악을 하고 싶어. 그래서 요즘 대중성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고 있고. 우리나라 음악문화가 많이 성장해서 비주류 장르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존중받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조금은 놓여.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약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종일관 에디터는 ‘부러움’ 이라는 감정에 휩싸였다. 그 부러움은 용기에 관한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실용음악을 전공하고자 했던 에디터의 과거,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의 괴리로 아직도 갈등하고 있는 현재의 갈등은 모두 시도하려는 용기의 부재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반면, 창작에 몰두한다는 이유 하나로 그를 주변인에 머무르게 하는 신촌의 이면은 왠지 모를 씁쓸함을 마음 속에 불러 일으켰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공간인 신촌의 대표적인 정체성은 ‘젊음’이고, 에디터는 젊음의 특권이란 도전할 수 있는 용기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러한 신촌에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젊음들이 주변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점은 다소 아이러니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에디터가 해당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신촌의 문화사업에 대한 비판’과 같은 거창한 수준의 논의가 아니다. 그저 그들의 용기에 애정 어린 시선 한 번을 보태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포용의 가치이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라는 라깡의 유명한 말처럼,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이 아닌 남의 가치와 정답에 쉽게 매몰되곤 한다. 그렇기에 특정한 환경 안에 조성된 구성원들의 주류적인 욕망은 그들의 주된 가치를 형성하게 되고 신촌 역시 이 법칙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공간으로 형성되어왔다. 그러나 세상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갈래의 가치가 존재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신촌의 구성원으로서 보다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고 그들의 용기에 따뜻한 관심을 보태어 줄 수 있다면, 이 공간을 좀 더 다채롭고 생명력 있는 젊음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오늘도 주변인에 머무르는 신촌의 용기있는 젊음들에게 응원과 존경을 보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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