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단면 신촌(2): 주변에서 아우름으로. Partition WSC 김대홍
공간(空間)이라는 단어에는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서부터 어느 한 골목, 도시에 이르기까지 공간이라는 단어의 쓰임에는 큰 구획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공간이라는 영역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출발되어 완성되는 개념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각해볼 때, 빌 공空자의 빈 곳을 채워 공간이라는 단어의 허공을 칠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공간은 곧 구성원들의 세계이자 바람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앞선 글에서 알아보았듯이, 신촌이라는 공간을 형성해온 구성원들의 세계와 바람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것이었다. 사회가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무엇과 결을 같이하는 신촌이라는 공간의 주류적인 욕망은 신촌을 이러한 가치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공간으로 성장시켜왔다. 이렇게 형성된 신촌에서 어린 예술인들이 소외되고 주변인에 머물러야만 하는 현실은 이 글에 앞서 작성된 단면신촌(1)에서 살펴보았다. 본 에디터는 단면신촌(1)에서 신촌이라는 커다란 공간의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했다. 그렇기에 이번 단면신촌(2)에서는 신촌 안에 자리 잡은 조금 더 작은 공간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이전의 것과는 다른 가치를 지닌 공간과 그 공간을 구성한 이의 세계를 들려주는 것이 어쩌면, 어느 누군가에게는 작지 않은 위로로 다가올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신촌이 가지는 대표적인 정체성은 젊음이다. 현 2019년 젊음이라는 가치 아래, 가장 눈에 띄는 공간양식은 바로 카페이다. 카페는 커피와 차를 제공하는 동시에 편안하고 분위기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안락한 무엇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범람하는 SNS 포스팅의 홍수 속에서 카페가 제공하는 안락함과 커피 한 잔의 여유는 수많은 시뮬라크르를 양산하는, 고민없는 자본주의적 키치의 대명사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Partition WSC라는 공간이 가지는 아이덴티티는 퍽 흥미롭게 다가온다. WSC는 각각 Workroom, Showroom, Café의 약자로, Partition WSC는 이 세 가지의 기능을 한 공간을 통해 수행하는 독창적인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Partition WSC를 운영하시는 사장님 내외께서는 각자의 예술로 브랜드를 경영함과 동시에 이 공간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이 공간을 이용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골목상권과 본인의 영역이 아닌 다양한 예술 활동을 지지하는 역할까지 도맡아 하고 계신다. 앞서 언급했듯, 공간은 구성원들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렇기에 에디터는 Partition WSC라는 흥미로운 세계를 구상한 이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동시에, 단면신촌(1)의 이야기에 이어, 주변인에서 시작된, 주변을 아우를 수 있는 성숙한 예술가의 이야기 역시 담아내고 싶었다.
직접 디자인하신 로고가 인상적인 사장님의 명함.
오늘의 주인공은 Partition WSC와 <공예가>라는 브랜드를 경영하고 계시는 김대홍 사장님이다. 에디터의 자유로운 질문 속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래 인터뷰 내용은 자유로운 이야기들을 에디터의 임의로, 기준을 정해 분류하고 정리한 것이다.
본인과 Partition WSC에 대한 소개.
안녕하세요, Partition WSC의 김대홍입니다. 현재 <공예가>라는 브랜드와 Partition WSC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Partition WSC는 ‘따로 또 같이’라는 컨셉으로 운영되는 공간입니다. WSC라는 약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는 하나의 공간이 다양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면서 작업을 하거나 쉴 수 있는 카페로써의 목적 이외에도 Partition WSC는 재즈공연, 전시, 워크샵, 다큐멘터리 상영 및 개인 작업공간 등 다양한 목적으로 동시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저는 Partition WSC이라는 공간이 여운을 주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양한 협업이 가능한 공간,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 음악하는 분들과 함께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위스키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공간 등 여러가지 부분으로 여운을 주는, 이 근방에 왔을 때 문득 생각이 나는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정리된 수많은 LP와 CD들이 돋보이는 Partition WSC의 커피바,
Partition WSC가 카페로 이용될 때는 이런 모습이다.
왜 이런 공간을 구성하게 되었는지.
저는 21살때부터 학교를 다니면서 디자인 일을 병행했습니다. 컬렉션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했었고요. 일을 하면서 어떤 제품이나 의류의 디자인을 하는 것도 가치가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 그 물건을 직접 구현하고 표현하는 일이 좀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컬렉션 브랜드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일본으로 떠나 1년간 가방 브랜드에서 직접 가방을 제작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예전부터 꿈꿔왔던 제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하지만 여러 브랜드에서 일을 하면서 브랜드를 운영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스스로가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닌, 모든 요소가 두루 맞물려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가장 원초적인 부분부터 시작하기로 했어요. 그게 바로 공간을 운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류가 되지 않기 위해 밟아야 할 여러가지 단계 중, 공간을 운영하는 내실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에 이런 공간을 구성하고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골목을 참 좋아했습니다. 일본에 있을 때 도시적인 건축들이 즐비한데도 불구하고, 골목들이 다들 자신만의 개성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들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죠. 그래서 이 골목의 시작점에 위치한 Partition WSC가 이 작은 골목의 등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 싶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와 관련하여 직접 “이대 골목 돋보기 주간”과 같은 행사를 기획해서 실행하기도 했고요. 무인양품의 커뮤니티 디자이너와 협업하여 “신촌통신”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신촌의 노포를 취재해 책을 발간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입니다. 조만간 책이 발간될 예정이고요. 더해서 일본에서 일을 할 때, 그곳의 접객문화가 너무나 맘에 들었습니다. 친절하게 맞아주는 사람들과 그로 인해 형성되는 편안한 분위기, 저희도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
신촌 사운즈: 신촌에 어울리는 소리를 음악회 형식으로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이란, 그리고 신촌이라는 공간 하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에 대한 소회.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기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신촌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다양성이 상실되고 있는 세태입니다. 현재의 예술시장은 예술가 개인이 가지는 유명세에 따른 주목도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아요. 자신의 주관없이 다소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예술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다루는 다양한 작품들이 많아요. 신촌에도 이런 다양한 것들이 소개되고 비춰질 수 있는 공간이 그래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추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제가 “신촌통신”이라는 프로젝트 취재차 노포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때 들었던 이야기인데요. 예전에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호황기에 있을 때는 꽃집과 책방이 굉장히 잘 됐었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은 다들 먹고 살기 바빠졌고 이럴 때는 가장 소외받게 되는 곳이 꽃집과 책방이라고 하셨거든요. 이처럼 지금이 낭만과 예술을 논하기에 팍팍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도 현재 신촌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시콜콜
: 공통된 주제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것을 가져와 함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공간이 지역의 예술가와 예술을 돕고 구원하는 일이 가능한 것일지.
굳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요즘 많이 진행되는 원데이 클래스 같은 것들이 하나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강사 등 행사의 주요인력을 외부에서 찾지 않고 동네에서 찾고 진행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굳이 전문 예술인력이 아니더라도 주변엔 얼마든지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시간적이나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이 이런 일들을 주체적으로 운영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할 때 공간을 상업적으로만 이용하면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죠. 하지만 저는 경제적인 부분이 삶의 유일한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죠.
또한 아티스트들도 보다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아요. 자신만의 기준과 잣대가 분명한 것은 좋지만 콧대를 너무 높여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는 것 역시 지역의 예술과 관련된 일에는 도움이 되지 않죠. 결국 어떤 프로젝트든지 진행하려는 쪽과 앞에 서게 되는 쪽의 견해가 맞아야 가능하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예술하시는 분들을 돕자. 라고 해서 일을 진행하지는 않아요. 대부분의 예술하시는 분들이 다 아이디어는 가지고 계시거든요. 우리 재밌는 거 한 번 해보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대부분은 현실적인 부분에 부딪치게 돼요. 어디서 할 건지, 어떻게 할 건지 등의 문제죠. 저희는 Partition WSC라는 공간을 가지고 있기에 어디서 할 건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답을 드릴 수 있어요. 어떻게 할 것인지는 예술가 본인들이 결정하거나 저희가 옆에서 도움을 드리거나 할 수 있고요. 저희는 그저 창구를 열어놓고 재밌어 보이는 프로젝트를 위해 포스터를 제작한다거나 함께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거나 하는 일들을 도우며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공간을 활용해서 저희는 하루가 즐거워지는 기획을 만들어 실행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예술가 분들은 자신의 커리어에 한 줄이라도 더 남길 수 있고요. 참여하시는 분들의 수가 많지는 않겠지만 예술가 분들은 스스로를 홍보하는 기회를 얻게 될 수도 있는거죠.
끝으로.
Partition WSC가 지금처럼 가치를 공유하는 분들께서 편하게 들러서 작업도 하고 쉬다 가실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빛이 예쁘게 드는 Partition WSC의 오후.
“저희는 하고 싶은 것을 해요.”
약 2시간의 짧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에디터의 마음에 가장 선명하게 각인된 말이다. 김대홍 사장님과의 대화 속에서 “내가 신촌의 예술가를 구원하겠다!“ 와 같은 대단한 사명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장님은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아하는 공간을 구성하고, 좋아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실행에 옮길 뿐이다. 구성하는 이의 열정은 Partition WSC에 생명력과 안정감을 부여하고, 이러한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아우른다. 아마 에디터가 Partition WSC의 분위기 속에서 느꼈던 매력과 여유는, 절묘하게 선곡된 재즈 음악과 맛있는 커피보다도, 바로 이 지점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Partition WSC의 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안락한 카페에서 극장으로, 극장에서 공연장으로, 공연장에서 미술관으로, 미술관에서 작업실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허물고 진화한다. 이 진화는 단순히 공간과 이를 기획하는 이의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닌, 구성원들 전체의 진화를 수반한다. 이러한 변화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받아들여지는 공간 속에서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수용하는 이는 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게 되고, 표현하는 이는 이야기를 뽐낼 창구 하나를 더 얻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Partition WSC라는 공간으로 투영되는 사장님의 메시지는 주변인에 머물러야 하는 신촌의 누군가들을 품고 아우르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에디터는 이 힘이 우리를 미처 생각치 못했던 다양한 가치들에 접근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에 대하여 보다 솔직해질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선물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이게 될 Partition WSC의 변화가 기대된다.
Partition WSC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88-9 2층
https://www.instagram.com/partition_wsc/
월, 화 12:00 ~ 20:00
토, 일 13:00 ~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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