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 애매도 비건!
새로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설렘과 같은 무게의 불편함을 동반한다. 매 주 업로드 되는 잔치의 글들은 매번 새로운 생각과 시선을 나에게 안겨줬고 나는 그것을 숙제처럼 떠안아 고민하고 생각했다. 에디터로서 나의 글을 쓸 때는 신났지만 독자로서 잔치의 글을 읽는 것은 때때로 큰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최근 가장 큰 숙제는 [비건신촌 01. 수르]를 읽은 후 주어졌다. 에디터가 나와 같은 비건 초보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글에 담았기 때문일까. 그동안은 해보지 못했던 ‘비건’에 대한 생각을 아름아름 하게 되었다.
잔치꾼이 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잔치 덕분에 신초너가 되었고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신촌과는 또 다른 모습의 신촌을 차곡차곡 간직할 수 있었다. ‘채식’도 그 중 하나다. 신촌에서 꽤 많은 비건식당들을 발견했지만. 사실 그 식당들을 보기만 해봤지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고 변명해보겠다). 비건식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때 내가 느낄 실망이 무서웠다. 야채는 맛없는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미각까지 지배하고 있을까봐 말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나의 식습관을 돌이켜보았을 때 그에 대한 부담감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신촌의 한 카페에서 ‘수르’글을 다시 읽고 디저트는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다는 문장에 솔깃하여 나도 모르게 [수르]의 문을 열어버렸다.

바나나파운드가 진짜 JMT, 얼마나 맛있던지 사진도 거꾸로 찍었네
사장님께 추천받은 브라우니와 바나나파운드를 사서 집으로 들고왔다. 공복상태가 준 배고픔 때문인지, 손에 쥔 첫 비건식 때문인지 떨리는 손으로 사진도 찍었다. 한 입 베어문 뒤로 쉬지 않고 먹었다. 혼자서 다 먹었다. 먹기 전의 두근거림이 스스로 민망할 정도로 정말 맛있게 먹었다. 특히 바나나파운드가 정말 맛있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은은한 바나나향과 쫄깃한 빵의 식감이 절로 입꼬리를 올렸다. 그동안의 나의 고민들은 뭐가 되나. 입맛을 다시면서 생각했다. ‘오케이, 이번주 글은 이걸로 간다.’

잔치꾼들의 비건식당 추천 리스트 중 가장 가보고 싶었던 베지베어!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비잘알’ 잔치꾼들에게 추천을 받은 [베지베어]가 다음 목적지! 토마토스튜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노래를 몇 곡 들으니 음식이 나왔다. 이번에는 주저없이 숟가락을 들었다. 감자, 당근, 버섯을 한 번에 왕! 하고 먹으니 입안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마늘빵에 올려서 한 입 또 왕! 먹으면 또 다른 맛이었다. 입김까지 나는 추운 날 김이 솔솔 나는 따끈한 스튜는 일품이었다. 심각했던 서론에 비해 아주 즐거웠던 본론이었다. 야채만으로도 배부른 한 끼를 만끽할 수 있구나, 내가 무척이나 대단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따끈한 토마토스튜, 지금도 먹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박스퀘어의 계단을 내려오며 신촌은 부러운 동네라고 생각했다. 사실 신촌을 사랑하는 ‘신초너’이긴 하지만 나의 주 생활권은 신촌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비교적 쉽게 비건식을 찾을 수 있는 신촌과는 달리 (물론, 공간을 막론하고 베지테리언에게 놓여진 선택지는 여전히 극히 제한적이다.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든.) 내 주변에서 비건식을 만나기 위해서는 꽤 큰 노력과 비용을 필요로 했다. 어쩌면 나는 그것을 빌미로 고기를 택하는 삶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 같고 식사의 즐거움을 오로지 고기의 유무로만 따져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닫혀있던 마음을 조금 열었더니 선택지가 늘어났다. 신촌은 나에게 다양한 식사로 즐거움을 누리라고 정중히 권해주고 있다. 신촌 곳곳에 자리잡은 이런 세심한 존중들이 부럽고 감사하다. 모두의 취향과 신념을 아우르는 토마토스튜만큼이나 따뜻한 신촌!
이 글을 끝까지 읽었다면 대충 예상하겠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변화에 취약한 사람이다. 걱정도 많고 배짱도 없기에 31가지 아이스크림을 고를 수 있는 가게에 가도 늘 먹는 요거트만 먹을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바나나파운드와 토마토스튜만 가지고 나와 비건의 친밀도를 논할 수 는 없다. 그대신 비건에 눈을 떳다고 표현하고 싶다. 길을 가다 비건식당을 우연히 마주하면 반가울 것 같고 지도앱의 즐겨찾기에 추가도 할 것 같다. 그렇게 나와 비건식의 3번째, 4번째 그리고 10번째 만남이 이어진다면 어느 날 나는 ‘비건과 저는 친합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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