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 흔들리며 피는 꽃
뒤를 돌아보지 마.
뒤를 돌아보지 마.
뒤를 돌아보지 마.
이제 더는 못하겠어요. 분명 열심히 뛰어왔는데, 나를 유혹하던 수많은 손짓도 뿌리치고 넘어져서 무릎이 까져도 못 본 척 스스로를 속이며 달려왔는데.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무엇으로부터 쫓기고 있는지. 그건 알아야 놓아버려도 덜 억울하지 않겠어요?
앞만 보고 달려.
앞만 보고 달려.
앞만 보고 달려.
싫어, 싫어요! 다 그만두고 싶어요. 나를 미친듯이 쫓아오는 그게 무엇이든 이제는 잡아먹히는 게 차라리 편할 것 같아요. 내려놓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아요. 돌아볼래요, 뒤를. 그렇게 나를 숨차도록 달리게 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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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허망함을 무어라 설명할까요. 징그러운 괴물을 마주할 각오쯤은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너무나도 작은 내가 서 있어요.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을까요. 앞만 보고 달리라는 목소리가 이상하리만큼 익숙했던 이유를, 달려오며 지나친 수많은 얼굴들이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던 까닭을. 달리기가 끝났는데 이 경주에는 승자가 없대요.
앞만 보느라 뻐근해진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봅니다. 2%가 채 남지 않은 핸드폰을 꺼내 현재 위치를 찍으니 ‘서대문구 연희로 11가길 39’, 익숙하지만 또 낯선 곳이네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길은 얼어붙었고 숨을 내쉴 때마다 보이는 하얀 입김이 맞바람에 밀려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요.
이제 어디로 도망쳐야 하나요. 먼 옛날엔 싸워도 이길 수 없는 맹수를 피해 동굴로 숨었다던데, 싸움을 걸 수조차 없는 내가 나를 쫓아올 때는 어디에 기대야 할까요.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깝다는, 내 삶은 딱 연말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딸-랑!
“안녕하세요, 그리너리 케이브입니다!”
연희동 어느 골목길에 초라하게 서 있던 나는 왠지 모를 따뜻함에 이끌려, 그렇게 기꺼이 외부인을 맞아준 누군가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건물의 모퉁이에서 안쪽으로 푹 파여 있는 입구가 ‘초록 동굴’ 그 자체였답니다.
동네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늘 문을 열어 둔다는 말처럼 겨울에도 싱그러운 이 작은 동굴에서, 나를 피해 잠깐 쉬어갈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들어가면 될까요?
네, 안녕하세요! 저희 작업실입니다.
우와, 직접 다 꾸미신 거예요?
네, 원래는 더 예뻤는데.. 바닥이 카펫이었거든요. 강아지가 있어서 겨울에 바닥 공사 한번 하자, 했었는데 아직까지 날것 그대로의 작업실이죠. 여름에 오면 예뻐요.
여름에 또 놀러 올게요. 그리너리 케이브… 알 듯 말 듯 한 이름이네요. 말 그대로 초록 동굴이란 뜻일까요? 이 공간에 스며든 이야기들을 들려주세요!

네, 저는 그리너리 케이브에서 디자인을 위주로 하고 있는 석현아 라고 합니다. 그리너리 케이브는 원래는 인디 게임 만드는 팀에서 시작을 했어요. 처음엔 ‘모다킨 스튜디오’라는, 다분히 게임스러운 이름으로 판교에서 게임을 만들다가 연희동으로 오게 되었죠. 게임만 만드는 것에서 작업하는 영역이 더 넓어지면서 이름이 조금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너리 케이브’로 사명을 바꾼 거예요.
콜라를 데려오고, 식물도 많이 키우게 되면서 뭔가 도심 속 자연같은 느낌의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름을 이렇게 짓게 되었어요. 2021년도에 연희동에 처음 와서, 이 작업실로 이사한 지는.. 어! 12월 1일에 왔으니까 오늘 딱 1년이 되었네요!
와! 오늘이 어떻게 보면 기념일 같은 거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콜라도 한 번만 소개해 주세요!

콜라는 보더콜리구요, 군산에 있는 한 유기견 쉼터에서 입양을 했어요. 21년도 연말에 일을 굉장히 많이 몰아서 하면서 ‘아, 이제 수익이 좀 괜찮으니까 강아지를 키울 수 있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콜라는 군산에 있는 찻길에서 구조가 되어서 쉼터에서 케어를 받다가, 저희를 만났을 땐 굉장히 빵실빵실 귀여운 강아지였어요. 지금은.. 여전히 정말 귀여워요. 성격은 썩 좋진 않지만요.(웃음)
작업실 곳곳에 콜라의 흔적이 정말 많네요. 동식물을 좋아하시는 게 느껴져요. 연희동에 오시면서 자연이 느껴지는 작업실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으세요?

저희의 이전 작업실이 북서향이었어요. 이전 작업실에서부터 공간을 우디하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통창인데도 방향이 북서향이다 보니 식물들이 정말 많이 죽는 거에요. 판교도 동네 자체가 엄청 미래도시 같고, 건물도 높고 그렇잖아요. 제가 자연이랑 도시를 둘 다 좋아해서 서울을 벗어나긴 힘들고, 그래도 빌딩 사이에 자연을 조금이나마 꾸려 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저도 정말 서울이란 도시를 사랑하면서도 지방 출신이라 늘 자연을 그리거든요. 현대인의 딜레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처음에 들어오면서부터 식물들이 정말 싱그럽고 예뻐서 기본적으로 공간을 꾸미는 감각이 있으신 것 같았는데, 역시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네요. 그러면 이런 멋진 작업실에서 지금은 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소개해 주시겠어요?
그리너리 케이브는 ‘디자인/문장 작업실’이에요.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고요. 개인 작업도 많이 하는데, 일단은 클라이언트 의뢰를 받아서 외주를 중심적으로 하죠. 또, 저희가 독립출판사를 겸하고 있기 때문에 동업자로 글 쓰는 사람이 있어요. 그분은 소설이나 게임북을 쓰고, 저는 조금 더 일상적인 글이나 사회 문제 같은 것들을 연구하면서 글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를 꿈꾸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사실 저는 디자인을 3학년 때 복수전공으로 시작했거든요. 학창시절부터 공부만 해서, 정말 공부 말고는 다른 직업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시야가 좁은 상태로 대학에 들어갔어요. 저희 학교는 학부제여서 1학년 때 성적으로 2학년 과가 결정되는 형식이었는데, 공부를 해오던 관성이 있으니까 성적을 어느 정도 잘 받아서 경제학과에 들어갔어요. 그게 제 인생에 제일 큰..(웃음)
어쨌든 경제학과만 바라보고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수학이 엄청 중요하기도 하고, 저랑 안 맞다는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더라구요. 1년간 방황을 하다가 복수전공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그때 재밌어 보였던 예술 관련 학과 전공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렇게 3학년 때 디자인을 시작할 무렵 그때 교수님께서 “네가 경제학과 출신인 게 나중에는 엄청 큰 자산이 될 거다.”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뭐야, 난 디자인 할 건데!’ 싶었지만 지나고 보니 맞는 말 같아요.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 디자이너를 하는 데 엄청 큰 도움이 되고 있거든요. 특히 요즘 세상에선 디자이너에게 굉장히 많은 것을..
요구하죠.
네, 요구하죠.(웃음) 기술적인 부분도 봐야 하고, 기획에도 사실상 관여를 해야 하고. 디자인은 또 소통이 중요한 작업이라서 글을 쓰고 표현하는 능력도 전공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럴까요? 요즘은 무엇이든 빨리, 남들보다 잘 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잠깐 방황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요.
저도 진로에 대한 방황을 계속했거든요. 경제학을 공부하면서도 연극 동아리를 했으니까 연극 기획사에도 기웃거려 보고, 갑자기 방송 하고 싶다고 아나운서 준비도 해 보고. 뭘 해야 될지 모르겠으니까 코딩 학원도 다니고..
와, 정말 다양하게 하셨네요.
결국에는 게임을 만들어야겠다 했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던 거죠. 게임은 바로바로 수익이 나오는 게 아니라, 1년, 2년을 무일푼으로 달려서 정식으로 출시하고 나면 시장의 반응을 보는 거거든요. 그런 불확실성이 싫기도 했고, 수익도 좋진 않았고. 그래서 디자인 업무도 조금씩 해볼까 하다가 청년 센터에 입주했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많이 하기 시작했어요. 어쩌다 보니 이렇게 개인 작업실을 차리는 날까지 왔네요.

저도 언젠가 제 작업실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만 항상 하고 있어요. 서울에서 자신만의 작업 공간을 갖는다는 게 창작하는 사람들에겐 정말 의미가 클 것 같아요.
맞아요, 정말. 저는 또 집에 있으면 작업이 잘 안 되는 스타일이거든요. 제가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해서 처음에는 공유 오피스 같은 것에서 일했었는데, 그때부터 정말 개인 작업실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던 것 같아요. 연희동에 처음 올 때는 솔직히 조금 무리를 해서 왔었어요.
그만큼 더 의미가 있는 공간이 되었겠네요. 지나가다 누구나 들를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로 운영하신다고 들었는데, 사적 공간일 수도 있는 개인 작업실을 개방하신 이유가 있나요?
음.. 디자인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정말 고여 있기가 쉽잖아요. 혼자서 작업하는 시간이 더 길고, 미팅도 정말 필요한 경우만 제외하면 메일로 소통을 하고. 그러다 보니 시야가 또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회성도 떨어지는 것 같고..(웃음). 집에서 작업이 잘 안 되는 이유도 ‘감시하는 사람이 없어서’ 인 것 같아서, 누군가 항상 불쑥 찾아올 수 있는 작업실에서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느슨한 긴장감’을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오, 그럼 작업을 하고 계실 때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으시겠네요?
네, 그럴 때는 손님들에게 시안을 여러 개 보여주면서 “골라주세요!” 하기도 해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으면 클라이언트 분들도 확실히 만족도가 높아요. 또, 연희동에서 산책하던 강아지들이 들러 주기도 해서 콜라의 정서 안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구요. 하지만 작업실을 개방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멈춰 있기 싫어서요.
경직된 디자인이 사실 진짜 안 좋잖아요. 제가 지금 30대인데, 벌써 ‘내가 기성세대가 되어 가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거든요. 20대때는 생각이 무리 없이 확장되었다면 지금은 유튜브나 핸드폰도 덜 보고, 경력이 쌓이다 보니 ‘내가 하는 디자인이 당연히 맞는 방향이겠지.’ 하는 위험한 생각도 들고요. 고여 있는 것의 위험성을 느낀 순간부터 오픈스튜디오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졌던 것 같아요.
딱 적절한 시기에 중대한 결정을 하셨네요. 그러면 보통 어떤 분들이 놀러 오세요?
동네 어르신들이나 주변 가게 사장님들도 자주 놀러 오시구요, 강아지들도 자주 오고. 클라이언트 분들 중에도 주말에 연희동 나오시면 한 번씩 들러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때는 일할 때의 ‘클라이언트 – 디자이너’ 관계가 아니라 친구 같은 느낌으로 카페 같은 데 가기도 하고..
와, 마냥 클라이언트랑 디자이너라고 해서 일을 맡기고 업무를 처리하는 비즈니스적인 관계는 아닌 거네요!
그렇죠. 그리고 처음에 작업을 하다 보면 클라이언트 분들과는 어색한 경우가 많은데, 본질적으로 의뢰를 주시는 분들과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협업 관계잖아요. 그럼에도 작업 진행 과정에서는 의견이 달라서 대척점에 설 때가 있어요. 작업에서의 충돌이 인간관계까지 이어지면 신경도 계속 쓰이고, 결과물도 안 좋고는 해서 클라이언트 분들과도 친근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일을 하나둘씩 같이 하다 보면 “언제 한 번 밥이라도 먹죠.”하는 얘기도 오가구요. 예전에 서점을 할 때는 책 이야기도 하고, 한 권씩 사 가시기도 했어요.
안 그래도 서점을 여쭤보고 싶었어요. 독립출판 서점을 하시다가 어떻게 작업실로 방향을 전환하신 건가요?

‘열린 공간’에 대한 저도 모를 갈망이 계속 있었나 봐요. 연희동으로 오면서 이 위치와 공간을 더 잘 활용하고 싶기도 하고, 사람이 언제든지 찾아올 구실이 필요했어요. 우연히 독립 출판 지원을 받게 되어서 책이 30종도 채 되지 않는, 정말 작은 서점 겸 작업실을 열게 된 거죠. 저희가 처음 서점을 시작할 때부터 ‘모든 책을 다 읽어 보고 추천드린다’는 일종의 신념이 있었는데 디자인 작업 문의가 늘어나면서 그게 어려워지기도 했고, 수익성도 받쳐주지 않더라구요. 하루에 몇 권 이상 팔아야 월세를 충당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디자인 작업에 더 치중하게 되면서, 손님들과 책 이야기도 나누거나 서점에 정성을 쏟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꼈어요.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죠.
그렇죠. 좋아하던 일을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게 되었을 때 오는 스트레스가 참 크니까요.
맞아요! 너무 못된 사람이 된 것 같고, 좋아하던 책이 그냥 재고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런 모든 게 저를 되게 괴롭혔던 것 같아요. 거기다 콜라까지 데려오게 되면서 돈도 정말 일정 수준 이상 벌어야 하고, 여러 방면에서 ‘지속 가능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 과감히 서점을 포기하고 작업실만 운영하게 되었어요.
제가 감히 판단할 순 없지만 잘 선택하신 것 같아요.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일을 하는 게 때로는 더 좋을 때도 있잖아요.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다’는 말, 저는 정말 폭력적이라 생각하거든요. 물론 열심히 살았다는 전제 하겠지만, 도망치는 사람이 천국을 바라고 도망치겠냐구요. 지옥이라도 벗어나려는 심정으로 그저 달리는 거지.
그러니까요. 저도 항상 ‘흔들리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엄청 변덕도 심하고,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하는데 결국에는 한 점으로 수렴하겠죠. 제가 정말 생을 마감할 어떤 시점에는 “나 이런 거 하는 사람이었다.” 하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한 가지 일을 평생 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Connecting Dots’라는 말 있잖아요, 마구 찍는 점들 같아도 돌아봤을 때는 그게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고. 그 말이 너무 좋아서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해요.
제 요즘 가장 큰 고민도 그거 같아요. ‘디자인에 이렇게 주력하는 업무를 몇 살 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래도 디자인을 잘 하는, 트렌드를 잘 읽는 멋진 할머니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도 해요.(웃음) 그때는 글도 더 잘 써야겠고,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 포용력도 더 있어야겠고.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지점들을 계속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한 길로만 나아가지 않고, 이것저것 시도도 하고 공부도 하려고 노력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할머니 디자이너가 되면 머리를 빨간색으로 염색할 거에요.
와, 정말 트렌디하긴 하겠는데요!(웃음)
아니면 초록색으로 염색해서 식물이랑 같이 살아도 좋을 것 같고..(웃음) 일단 그때까지 건강하게 사는 게 가장 큰 목표지만요.

건강이 정말 중요하죠. 그런데 창작 쪽 일을 하다 보면 ‘라이프’와 ‘워크’가 완전히 분리가 안 되잖아요. 그런 점에서 오는 힘든 일은 많이 없으세요?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딱 9 to 6 로만 일해야지, 했었는데 절대 안 되더라구요. 업무시간에는 클라이언트와 연락을 주고 받다 보면 실제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6시 이후니까요. 제가 원래 주말에도 항상 일을 했었는데, 저는 그게 저의 장점인 줄 알았어요. ‘나는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작업을 빨리 끝낼 수 있는 디자이너야!’ 이렇게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 점점 퀄리티는 안 좋아지고, 그때의 작업물들을 보면 다 비슷해요. 문법에 맞춘 디자인을 찍어낸 느낌이랄까요. 요즘에는 주말에는 일을 안 합니다, 하고 클라이언트 미팅에서 말을 하는데, 사실 그렇게 내려놓기까지가 정말 오래 걸렸어요.
잘 쉬는 법을 깨닫기가 쉽지 않죠. 쉬어도 온전히 쉬는 것 같지 않은 느낌, 현대인의 특징이라고는 하지만 프리랜서이시면 특히 더 심할 것 같아요.
24시간 대기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잠깐 쉬더라도 결국에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점이 힘들어요. 편집디자인이라는 게 인쇄 공정에 넘기기 전 마지막 단계잖아요. 정말 마감 직전에 갑자기 방향을 틀거나 할 때도 제가 실시간으로 대응을 해 줘야 하는 거죠. 2~3일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괜찮은데, ‘오늘 오전까지 되나요?’ 하는 연락이 오면 조금 스트레스를 받기는 해요.
맞아요. 개인적으로 일 하시는 분들은 연락이나 행정 같은 업무를 대신해 줄 사람도 없으니까 두 배로 바쁘시죠.
정말 맞는 말이에요. 대체자가 없으니까 아플 수도 없는 거죠. 올 여름에 코로나에 걸렸었는데, 그때도 원룸에서 콜라랑 둘이 작업을 하다가 정말 노트북 몇 번 던질 뻔 했거든요.(웃음) 엄청 아픈데도 작업을 해야 하는 게 서럽더라고요. 이런 게 단순히 힘들다를 넘어서, 아까 말씀드린 ‘지속 가능한 작업’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서 그리너리 케이브가 개인이 아니라 팀, 혹은 기업으로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대체자가 없다’는 말, 힘들면서도 되게 뿌듯하고 좋은 말인 것 같아요.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면 사실 부품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고 들었거든요. 내가 빠져도 비슷한 실력의 디자이너를 당장 내일이라도 고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내 작업실에서 하는 일은 나밖에 못 하니까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
그럼요. 개인으로 일을 하면서 정말 다양하게 많이 배워요. 예를 들어 컴퓨터가 고장나면, 회사에서는 시스템이 다 갖추어져 있으니까 금방 해결해주는데, 그걸 하나하나 다 해야 하고. 여름에 작업실에서 비가 샌 적이 있었어요. 그때 건축주분이랑 같이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누수에 대해 정말 많이 알게 되었거든요. 디자인도 어떻게 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잖아요. 그걸 단순히 시각적으로 혹은 탁상공론식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경험하다 보면 일에도 도움이 되더라구요.
그래서인지 말씀하실 때 말투는 말랑말랑하신데 심지가 정말 단단하신 분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한 시행착오가 겹겹이 쌓이며 생긴 부드러운 강인함이었네요. 저는 혼자 무언가 해 보려 하면 조금만 마음이 앞서나가도 너무 조급해지고, 그래서 여유를 좀 가지려 하면 또 너무 나태해지는 게 계속 반복되곤 해요. 이런 태도 측면에서 딱 중심을 잡으시는 법이 있을까요?
중심…. 사실 저도 제가 중심을 잘 잡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도 놀고 싶을 땐 한없이 늘어지다가, 일할 땐 또 조급해서 예민해지고, 짜증내곤 해요. 그래도 마음을 편하게 먹고 ‘어쩌겠어, 해야지.’하는 생각을 하면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하기 싫을 땐 일어서게 하고, 급할 때에도 조금 차분해지게 하고요. 결국엔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어쩌겠어, 그래도 해야지.’ 맞는 말이네요. 또 꼭 여쭤보고 싶었던 건데, 인스타그램에 ‘탈락된 시안’을 올리실 때가 있더라구요. 흔히 생각하기에 탈락시안은 거절당한 거고, 숨기고 싶거나 부끄러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공개하시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일단 기본적으로는 작업을 하다 보면 제가 좋아하는 시안과 클라이언트가 좋아하는 시안이 다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어차피 다른 데 못 쓸 시안이라면, 내가 좋아서 선택한 작업물이 아깝기도 하고 다른 분들에게는 레퍼런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올리는 거죠. 제가 봤을 땐 다 이유가 있고 정성이 들어간 결과물이라 버릴 구석이 없거든요. 실제로 또 다른 클라이언트가 탈락시안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연락이 오시기도 해요.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선택받지 않았다고 해서 다 틀린 게 아니니까요. 취향이 다를 뿐인 거죠. 그럼에도 속상하시긴 할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디자인에 대한 비판과 나에 대한 비판을 분리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이 디자인 너무 유치해요, 아니면 너무 촌스러워요. 그 말이 꼭 내가 유치하고 촌스러운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예전에는 정말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맞아요. 저도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내가 손 댄 일’을 전부 저와 동일시하게 되고, 하나라도 잘 안 풀리면 저 자체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받곤 하거든요.
여기서도 어쩌겠어, 하는 마인드가 참 도움이 돼요.(웃음) 저도 일상이나 일에서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편인데, 제 성격인데 그걸 뭐 어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또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기도 하고.. 좋은 점을 바라보려고 하죠.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제가 하는 일마다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면 지금쯤 유럽 어딘가에서 강연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에는 특히 ‘스타 디자이너’ 에 대한 환상이 좀 있는 것 같아요. 혜성처럼 나타나서 손대는 것마다 뚝딱뚝딱 다 완성해내는 사람이요.
미술 쪽은 특히 창작의 결과물만 비춰지지 그 속에 담긴 노력의 시간까지 볼 수가 없으니까 더 그렇지 않을까요. 최근 제 또래들을 보면 한 가지에 꽂혀서 미친듯이 몰입하는 사람들을 동경하고, 그렇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것 저것 관심분야는 많은데 하나를 결정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요. 그런 학생들, 혹은 사회 초년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저도 고민 중이라.. 근데 결국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한 점으로 가거든요. 그런데 이게 여러 개 중에 하나를 고르라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일이 모여서 하나로 수렴하는 거죠. 저는 오히려 여러 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에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면 하나만 해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 특히 20대 때는 주변을 보면 조급할 수 있지만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하는게 중요해요. 생산적인지, 효율적인지, 나에게 도움이 될 지를 따지지 않고 무작정 다양한 경험을 해 보는 것.
어디선가 ‘세상의 모든 것은 갖거나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비슷한 맥락이네요. 각자 자신의 속도로, 그저 가고 있다면 되는 거 아닐까요. 이게 맞는 방향일까 하는 걱정이 들더라도 일단 가면, 그게 또 하나의 새로운 방향이 될 수도 있는 거구요.

그럼요, 그래서 저도 ‘디자이너’라는 하나의 직업으로 절 소개하진 않으려고 해요. 요즘에는 ‘콜라 보호자’로 가장 많이 소개를 하고 있구요. 일이 너무 삶의 중심이 되면 그게 무너졌을 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잖아요. 그런 삶은 너무 ‘얇다’는 느낌이 들어요.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디자인을 못 하게 되었을 때도 저 자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걸 해보는 것 같아요. 취미도 이것 저것 시도해 보구요.
맞아요. 저도 커리어가 제 삶의 가장 큰 기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늘 달려왔는데, 최근에 살짝의 번아웃을 겪으면서 제대로 쉬는 법을 배워가고 있거든요. 운동이나 취미 같은, 전혀 일과는 관련 없는 곁가지같은 일들이 사실은 삶의 중심이었구나. 그런 것들이 있어야 삶이 건강하게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래도 그래야 하나를 빼도 무너지지 않으니까요. 저도 식물 가꾸는 일이 사실은 일에 도움이 되거나 하진 않거든요. 오히려 시간과 돈을 뺏었으면 뺏었지, 그런데 전에는 굉장히 불안정하던 제 자신이 식물을 가꾸며 점차 나 자신을 찾아가더라구요. 처음으로 내 취미는 무엇이다,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죠.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불안한 마음이 식물을 키우면서 많이 좋아졌어요.
조급함이 늘 있으셨나 봐요, 꽤 최근까지도 스스로 불안정했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요.
엄청 있었죠. 저는 23살 쯤 재수와 복수전공을 거쳐서 이제 1학년 수업을 듣는데, 같은 디자인과 친구들은 졸업전시를 준비하고 있고. 계속해서 뒤쳐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런 말이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20대 초에는 1~2년 차이가 굉장히 크게 느껴져도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서 아흔 살 쯤 되면 90살이나 100살이나 거기서 거기일 텐데, 하고 생각하면서 이겨냈어요.(웃음)
그러네요. 지금 조금 늦으면 어때요, 천천히라도 가고만 있으면 되는 거죠.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아까 꼭 디자이너라는 수식어 하나로 나를 소개하고 싶진 않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전반적인 생활 전체에서 2023년에 제일 뿌듯한 일 하나와 내년에 가장 이루고 싶으신 일 하나가 있으시다면요?

음.. 콜라를 잘 키워낸 것.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운다는 게 정말 품이 많이 드는 일인데, 지난 2월에 콜라를 데려온 지 1년을 맞으며 그래도 한 생명을 잘 보살폈다는 느낌에 성취감을 많이 느꼈어요. 일 관련해서는, 큰 사고나 문제 없이 무사히 마감을 잘 해냈다!
2024년에는 오히려 디자인 업무를 좀 더 줄이고 싶어요. 다른 분야로 더 확장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래픽 디자인 말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거나 실험적인 시도도 많이 해 보고 싶구요. 제가 기관이나 비영리 단체랑 일을 많이 하니까, 디자인을 할 때도 조금이라도 혐오 표현이나 올바르지 않은 방향이라면 아예 작업을 안 하거든요. 그런 신념, 혹은 각오를 내년에도 잘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일상에서는 더 여유롭게 마음을 가져가는 것이 목표예요. 그냥 올해보다 조금만 더 좋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추위를 핑계 삼아 나로부터 도망치듯 들어간 연희동의 작은 동굴에서, 꿈 같은 대화를 나누고 나오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전히 내일이 두려울 때도, 내가 무작정 미워질 때도 있지만 어쩌겠어요, 그래도 하나씩 해 보는 거죠. 삶이란 하나의 두꺼운 덩어리를 쾅 얹는 것이 아닌, 이렇게 아주 얇고 다채로운 경험을 겹겹이 쌓아나가는 것 아닐까요.
때로는 내가 내린 선택조차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잠식되곤 합니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지고 스스로에게 쫓길 때는, 도망칠 ‘동굴 하나’ 마련해 두는 건 어떨까요. 취미든, 휴식이든, 속을 터놓을 사람이든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마음껏 어두워도 좋고, 흔들려도 괜찮을 나만의 안식처가 누구에게나 필요할 테니까요.
그럼에도 두려움이 동굴 안까지 침범해 올 때는 회색 도시 속 작은 초록 동굴, ‘그리너리 케이브’에 방문해 보세요. 콜라의 해맑음이 묻어 더 환해 보이는 공간에서, 타인의 일상을 잠깐이라도 방패 삼아 다시 나를 마주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에요.



[…] 이상 시작에 가까운 상태가 아니라는 느낌이 버거웠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있겠냐마는, 난 흔들리는 게 무서운걸요. 흔들리다 결국 중심축을 잃고 무색무취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