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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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19 · 12 · 02

우울, 와인잔에 띄운 개인전

Editor 뉴이

 

신촌이 매력적인 이유는 흑백과 컬러의 삶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참 닮은 곳이다. 남들 눈에 매일같이 깔깔대고 즐겁게 사는 것만 같은 내가 펜만 잡으면 어둡다 못해 절망적인 감정들을 종이 위에 쏟아내는 것. 나의 속이 푸르뎅뎅한 검은색이라고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게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천국과 지옥 마냥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 같은 나의 자아에 가끔은 혼란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포용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이곳 대부분의 청춘들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매일같이 목구멍에 술을 털어 넣으며 웃어대면서도 돌아서면 갖은 고민들이 우리를 덮치는 이곳, 신촌. 그래서인지 내 눈에는 행복 속 우울이 조금 더 선명히 시야를 채우는 곳.

박경희와는 신촌 바닥의 알록달록한 네온 사인 사이에 숨어 들어있는, 자그마한 개미굴같은 와인바에서 만났다. 5년전 고등학생 시절, 꼴에 두 살 많다는 이유로 멘토라는 거창한 이름을 단 내 앞에 자그마한 그녀가 있었더라면 지금 내 앞의 그녀는 어엿한 성인, 내 주변 수많은 미술학도 중에서도 가장 ‘아티스트’ 같은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박경희에게는 그늘이 있고 우울이 있었다. 종종 그녀가 웃을 때마다 어스름한 빛들이 좁은 틈 사이로 슬쩍슬쩍 보이는 것도 같았지만 그녀는 비가 오기 전의 흐린 하늘같은 사람, 숨 한 번에 흩어지는 지독한 담배연기같은 사람이다. 하지만 분명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인물도 있다는 것, 마치 나처럼. 우울이라는 그림자 아래 공감하고 이해하고 소통한다는 것은 묘한 카타르시스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와 와인 두 병을 비웠다. 산뜻한 로제와 달달한 무스카토. 우리는 묵직한 레드와인을 먹어야할 것 같은데, 라며 두 우울한 영혼이 마주앉아 잔을 부딪혔다. 와인 잔 위에 그녀가 작품을 올리면 나는 감상했다. 신촌의 작은 와인바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박경희의 작은 개인전, 우울.

 

 

로제 드 삐에르 가르노드, 치즈 플레이트, 그리고 <죽음의 미래>

우리는 삶과 죽음의 양면을 바라보고 산다.
분명치 않은 경계선을 두고 대치중이다.
그 경계에서 나는 무너지기도 일어서기도 했다.
위태로움의 경계에서 죽음과 이후를 상상한다.
죽고 싶다는 열망은 살아있음의 상상 앞에 아이러니다.
죽음은 무서운 일이지만 죽음 그 자체는 정말로 슬픈 것인가?
떠나 보내고 남은 이들이 눈물을 흘릴 뿐이다. 죽은 자의 눈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죽음 이후는 저마다의 믿음일 뿐이다.
꽤 오래전부터 나는 ‘죽음’ 이라는 멀고도 가까운 존재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내가 언젠가 반드시 죽는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죽음이 삶의 완성은 아닐지언정, 삶의 필연적인 과정임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나는 사라질 존재임을 되새기며 더 쉬운 길을, 비겁한 길을 가지 않도록,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자 했다.
형태를 갖춘 내 몸이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만드는 선택과 그 결과는 ‘나’라는 사람의 역사로 남고, 그것들이 나를 만들었으며 경험을 통해 아파하고 괴로워하며 성장하게 만들었다.
과거, 미래, 현재에 있을 모든 역사는 살아있을 때 모습의 형태를 남기듯이 선이 하나씩 늘어난다. 뼈가 되고 살이 되면서 나의 삶이 완성된다.
그 선들이 내 몸을 빼곡히 채웠을 때쯤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심 그리고, 신성함 없이 얘기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더, 로제 드 삐에르 가르노드, 트러플 짜파게티, 그리고 <발자국>

발자국은 남지 않았다.
바람에 날려 가버리거나 내가 다시 짓눌러버려서 볼 수 없었다.
떠난 너도 같을 것이다.
내가 외로움에 빠져있는 이유는 네가 날 버렸기 때문이겠지.
뒷걸음질로 걸어도 보이지 않는 발자국처럼 너도 똑같다.
네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나는 그걸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늘 어딘가 조금씩은 서글펐다.
네가 도망치고 싶으면 어쩌지,
가까스로 도망친 너를 무심코 발견해버리면 어쩌지.
네 몸이 내가 손을 짚으면 잡히는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너를 만질 때마다 느꼈던 감정은 사실 애틋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좁은 품에 어떻게든 너를 가두고 싶었던 건,
꼴에 배려랍시고 눈과 귀를 슬며시 가려주고 싶었던 건,
여린 네가 의지할 구석이 나 하나뿐이었으면 했던 건,
그래서 네가 더 고립되길 바랐던 건,
그래. 애틋하다고 하면 벌 받겠지.
내가 그리는 미래에는 언제나 네가 없었다.
네가 먼저 떠날 것 같기도, 내가 먼저 떠나 보낼 것 같기도 했어.
그저 내 욕심으로 널 꽉 안고 있을 뿐이다.
나는 잠깐이나마 네 덕분에 정체되었던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발길을 돌려 뒷걸음질 했던 내 발자국을 따라 다시 앞으로 걸어간다.
허한 내 마음처럼 휑했던 주변에 아침이 밝아온 듯 빛이 들어온다.
갈라진 돌 틈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나는 너를 잃은 것이 아니라 잠시 아픈 너를 놓아준 거야.
하염없이 걷다 보면 내 미래에도 네가 다시 생기겠지.

보시오 모스카토 다스티, 메론 하몽, 그리고 <허영>

인간은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적 존재— 한 줌의 흙이 모여 태산을 이루고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 인간은 개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는 타인과의 관계 하에 존재하기에 개인은 사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괴로워하고 고통받아하며 이것을 극복해 나가는 삶을 살아간다. 그것의 순환이 결국은 인생인 것 마냥 말이다. 그런가하면 이를 유독 두려워하고 극복하지 못해 숨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관계를 맺으며 받은 상처와 아픔이 종잡을 수 없이 커져버려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곳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 그것이 가상이고 망상일지라도. 현실에서 안식처를 찾으려 노력하지만 미움 받는 것이 두려워 거짓으로 가득 찬 말들을 내뱉은 다음 타인으로부터 값 싼 관심과 위로를 원하는, 겉으로 보이는 것들을 중요시하게 되며 그럴 듯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허영으로 가득찬 삶.
인간이 사회의 부재아래 개인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이같은 사실에 괴로워 하며 숨는 이들도 어쩔 수 없이 사회가 떠안아야 할 산물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다른 것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또 받으며 자신을 우선시하고 보호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는 듯 하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사회적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철저한 개인의 공간이 필요한 것처럼, 허영된 삶을 살아가면서도 이와 같은 삶을 상처가 반복되는 아픈 인생의 작은 탈출구로 삼는 것일지도 모른다.
와인 두 병과 네 접시의 안주를 비운 두 우울한 영혼은 말없이 서비스로 들어온 이름모를 — 들었지만 금세 잊어버린— 와인을 홀짝였다.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던 박경희가 내게 말했다, “언니 나 담배 좀 피고올게”. 창을 내려다보니 그녀의 얄쌍하고 동그란 알밤같은 뒷통수, 그 위로 하얗고 가느다란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에서 뻐끔뻐끔 피어나는 하얀 연기가 힘없이 퍼지더니 이내 사라지고만다. 경희, 우울은 죄가 아니야. 우린 우울하기에 행복을 더 크게 느끼고 그 의미를 더 예민하게 알아차리지. 난 그래서, 그래도 이런 나를, 이런 우리를 사랑해.
와인바: @script_scene
작가: 박경희 @park3m
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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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이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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