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 모란과 마주치려면
“근데 모란은 꽃집에서 안 팔더라고….”
“모란? 모란이 제일 좋아?
”응 모란이 제일 예쁘잖아. 왜냐면 음 예쁘니까……. 헤.“
그 어리숙한 한마디에도 난 그 애에게 모란이 주고 싶어져 몇 주를 동아리 화방에서 그림을 그렸다. 물론 부담스럽다는 동아리 누나들의 충고에 납득했기에 그 애에게 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지금도 어쩔 수 없이 종종 모란을 그린다.

3호선 을지로역 지하엔 작은 옷가게가 있다. 입대를 반년 앞둔 나는 손님 없는 그 옷가게에서 악성 재고를 조사하고 늙은 마네킹과 씨름하며 아르바이트하고 있었다. 이 지루한 아르바이트의 단 하나 장점은 같은 아르바이트생인 그 애와 얘기할 수 있었단 것. 신촌의 모 대학교로 유학을 온, 아시아계 그 아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한국어가 능숙해 처음엔 유학생이란 걸 알 수도 없었다. 또 장난기가 많아, 겁 많은 나를 뒤에서 쿡 찌르고선 놀라 자지러지는 걸 보며 웃곤 했다. 유달리 손님이 없어 얘기가 길어지는 날이면 그 애는 학교가 있는 신촌에 대해 자주 말했다. 그 애가 좋아하는 수입 과자, 고양이가 있는 카페 그리고 와인바와 마라탕.
“아 거기 피아노가 있다? 길 한가운데에 피아노가 있는 거야. 아무나 연주할 수 있대.”
“아. 본 것 같다”
“응응 나도 쳐보려고, 돌아가기 전에”
“그러다 누가 너 치는 거 아니야?”
“와……. 개노잼 한 대 맞아라.”
내 옆구리를 강타하고 웃던 그 애는 그 피아노가 치고 싶어 학원을 등록했다고 했다. 아 이런 사람이 있었지.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신촌에서 피아노를 치는 그 애를 상상했다. 배시시 웃음이 나왔고, 아마 첫사랑이었다.
“저기, 끝나고 커피 안 마실래?”
지금 생각해도 어색한 권유에 그 애가 응한 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쨌건 그 애는 생각보다 밝게 웃으며 답했고 그 뒤로 우리는 자주 만났다. 건대에서 영화를 봤다. 부암동의 석파정 미술관에 갔고, 그 애가 말한 신촌 인근의 와인바에도 갔다. 눈을 자주 마주치고 서로를 걱정한다. 손이 스치면 긴장했고 침묵이 어색해 편안했다.
그러나 나는 입대를 4개월도 채 남기지 않았고 그 애는 2년 뒤면 한국을 떠날 유학생이었다. 나는 복잡한 사정으로 입대를 미룰 수 없었고, 내가 전역하자마자 한국을 떠날 그 애가 나를 기다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있을까. 손이라도 잘라야 하나. 서걱서걱. 그러나 내 우유부단함에 지친 그 애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 애가 입술을 달싹인다. 손으로 테이블은 조금 두드리다 내 눈을 본다. 그러다.
“있잖아……. 있잖아. 우리는 무슨 사이야?
그러게 우리는 무슨 사이일까. 나는 먼 곳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다음 해. 강원도의 1월 늦은 새벽. 군용트럭이 언 땅 위를 갈아 내듯 달린다. 트럭 뒤에는 얼굴에 검댕 칠을 한 군인 무리가 타 있다. 각자가 몸을 웅크리고 더운 김을 내뱉는다. 그 조여오는 추위에서 소총을 그러안고 숨을 내쉬다가, 그 애를 생각했다.
영하 15도 추위의 텐트 안에서 차가운 침낭 안에 몸을 누인 채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릴 때도, 정오의 더위에 발바닥이 짓무르는 행군길에서도, 얼어버려 매운 코를 훌쩍이며 밤새 내린 눈을 긁어모을 때도 그 애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기쁜 것. 따듯한 것. 그 애가 보고 싶었다. 작은 팔, 짙은 눈썹, 정리하지 않은 헤어라인과 잔머리. 뒷짐 진 발걸음. 모두 모두.
“좋은 친구 사이지”
그날 나는 웃으며 대답했고, 그 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넌 좋은 친구야”
허무하게 웃는 그 애에게 난 군대에 대해 웃긴 얘기를 해줬다. ‘거기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면 감옥에 간대. 또 말끝에는 ‘말입니다’를 붙여야 한 대. 그래 웃기지, 난 큰일 났어. 야 너무 대놓고 웃지 마, 군대가 장난이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며 그 애가 이해하길 바랐다. 봐봐 내가 가는 덴 이런 이상한 곳이야. 네가 한국에 있는 동안 우린 몇 번 만나지도 못할 거야. 전화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결국에 둘 다 나가떨어지겠지.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네가 그런 말까지 하게 해서.
그날 이후로 우리 사이의 연락은 당연히도 뜸해졌고, 종국에는 서로의 연락처 깊숙이 묻어 있는 존재가 됐다. 그러나 물론 나는 그 애를 잊지 않았고 그렇게 그 애가 없이도 시간은 흘러 전역을 며칠 앞둔 날. 우연히 잔치의 모집 공고를 봤다. 신촌에서 활동하는 동아리라는 공고문을 보고 두 가지가 기억났다. 그 애가 신촌에 대해 자주 말했던 것. 올해 하반기가 신촌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그 애가 보내는 마지막 학기라는 것.
그러니 그곳에, 신촌에 모란이 아직 있다.

언젠가 야간 자율학습에서 도망쳐 집으로 오는 길. 원래 타야 하는 버스를 보내고 아무 버스나 잡아탔다. 역시나 버스는 엉뚱하게 간다. 내리고 다시 아무 버스나 탄다. 그 짓을 반복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 집에 가지 않을까 싶었다.
또 8월. 전국에 폭풍이 불어닥친 날. 지리산으로 은하수를 보겠다고 짐을 싸서 혼자 떠났다. 산을 오르는 내내 안개가 자욱했다. 산 정상의 대피소에 짐을 풀고 새벽에 몇 번이나 안개가 걷힐까 싶어 산의 밤을 멀뚱히 바라봤다. 저기 넘어 은하수가 있을 텐데.
알고 있다. 미친 짓이란 거. 그러나 나에겐 이런 게 필요하다. 내가 어떤 바보 같은 선택을 해도, 충동적인 회피와 발 구름에도 변하지 않을 것. 거기 그대로 있어서 수많은 행운으로 우연히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것. 노력과 간절함마저 모독으로 여겨질 만큼 온전한 것. 언제나 침대 맡에서 그날의 모든 말과 행동을 후회하는 내겐 그런 게 필요하다. 여기 신촌에서 어떤 약속도 계획도 없이 그 애와 온전한 우연으로 만나야 한다. 온전한 우연만이 우리를 구원하니까.
더욱이 미련이 남은 전 남자친구처럼 “뭐해……. 잘 지내?” 따위의 문자를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마음 착한 그 애는 내 연락을 무시하지 못할 테고 부담스러운 만남을 거절하지도 못할 걸 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딱 한 번 마주쳐 얼굴을 보고 ‘안녕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나도 잘 지냈어.’ 이 한마디만 할 수 있으면 충분했다. 그저 한 번 더 그 애가 보고 싶었다. 붉고 동그란 귀, 긴 입꼬리와 갈색 염색이 남아있던 머리끝. 그뿐이다.
그렇게 들어온 신촌의 동아리에 그 애와 같은 학교 학생이 한 명도 없다는 건 충격이었다. 적어도 다섯 명은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러나 괜찮다. 내게 필요한 건 우연을 만들 기회였으니까. 옛날에 과외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시험에서 모르겠는 문제는 통일해서 한 번호로만 찍어”
“왜요?”
“그럼 덜 억울하거든. 시험에선 잘 맞는 것보다 덜 억울한 게 중요해.”
매우 간단한 일. OMR 용지에 한 줄로 마킹 하듯 나는 목요일 7시에 신촌에 왔다. 걸음은 조금 천천히 걷는다. 술자리에서도 취하지 않게 마신다. 걸려오는 친구의 전화에 통화를 길게 하며 밖에 나가 바람을 쐰다. 집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버스를 탄다. 난 그렇게 신촌에서의 체공 시간을 늘리고 맞닿는 표면적을 넓혀갔다. 바람을 맞는 돛처럼, 더 오래 더 길게 더 넓게. 그 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여기 이 신촌 어딘가에. 마주치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날 알아보기나 할까. 안경을 쓰고 앞머리를 내린 모습이 낯설기만 할까. 돛에게는 멍청한 바람이다. 9월은 기대하지 않았다. 10월은 불안했고 11월은 자신을 달랬다.
그리고 12월. 신촌에서의 마지막 회의를 마치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콧등을 조여오는 뿔테 안경을 벗어 버리고 터덜터덜 걸었다. 멀리 인파 한 무리가 번지는 가로등 불 사이로 스며들어 가지만 이제 괜찮다. 수채가 번지듯 흐려가는 저기 어디에도 그 애는 없다는 걸 안다. 멀리 술 취한 사람들이 괴성을 지른다. 인파 사이를 승용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사실 야간 자율학습에서 도망친 그 날, 난 버스를 13번 갈아타고도 집에 오지 못해 택시를 타야 했다. 8월의 그 날, 지리산의 안개는 걷히지 않았고 별을 기다리며 밤을 새운 난 집에 도착해 열병을 앓았다. 버스는 기사 아저씨의 인상이 아니라 노선도를 보고 타야 하고, 은하수는 폭풍이 오는 날 볼 수가 없다. 알고 있다. 알고 있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저기 지나가고, 눈은 점점 더 흐릿하다.
그때에 모란을 그리는 것에 익숙해졌듯 이제 신촌에도 조금이나마 익숙해졌다. 지도 없이도 신촌역을 찾고, 대충 편의점이 어디 있는지도 찾을 수 있다. 처음엔 도대체 뭐지 이게 싶었던 빨잠이 이제 그리 못생겨 보이지도 않는다. 근데 그 애는 아마 이제 없거나 없어지고 있겠지. 들뜬 사람들 틈의 걷기 좋은 숲길에도. 붕어빵 노점에도 작은 포차에도 그 애는 없다. 정말 사랑하는 건 안을 수가 없다.
언젠가 작은 카페에서 해를 맞으며 따듯이 눈을 감는 그 애를 보다, 문득 이제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청한 내가 이 순간마저 망쳐버리기 전에 어디론가 달려 사라져야 할 것 같았다. 그 애가 눈을 뜨고 다시 시간이 흐르기 전에 뛰고 또 뛰어서 먼 곳으로. 크림색 탁자에 물 잔의 투명한 그림자가 으그러지고 구름이 다시 해를 가린다. 도망가자. 언젠가 그 애가 나를 미워하게 되기 전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증오하게 되기 전에.
그러나 그 애가 감았던 눈을 뜨고 헤살한 얼굴로 웃은 뒤에도 나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차라리 그날 정말 도망갔다면, 이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아도 됐겠지

손이 가는 대로 그린 그림에 습관적으로 모란을 또 한 송이 그리려다 그만둔다. 조금이라도 그 애와 닮았으면 좋으련만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때엔 무얼 그려도 널 닮았는데 이제는 왜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지.
밤의 텅 빈 신촌역 앞 대로를 내달리는 153번 버스의 창이 차갑다. 흔한 노래처럼, 술에 취해 상기된 뺨을 갖다 대고 멍하게 밖을 본다. 가로등 불이 천천히 다가와 빠르게 멀어져간다, 모든 인연이 그러하듯. 신촌에서 멀어진다. 홍은동 세검정 평창동 집으로 집으로. 오늘 늦은 버스에서 보는 창밖의 붉은 후미등들이 왜 이리 아픈지. 첨탑 위 철 십자도, 점멸하는 보행 등도, 그때 내가 그린 모란도.
오늘 붉은 건 아프기만 하다.



[…] 그림이 너무 안 그려져서 글을 과하게 쓰게 된 것 같아요. 두 번째 글인 ‘이곳에서 모란과 마주치려면’ 같은 경우는 그림은 마음에 드는데 글이 별로였어요. 너무 구구절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