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아직은, 다시금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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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 나는 3년 전 스무 살의 초입에 만났다. 당시 내가 입학했던 대학의 총장은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그리고 교육부의 높으신 분들이 좋아할 법한 신산업과 융합의 이름이 담긴 단과대학을 출범시켰고, 김과 나는 그 단과대학의 제1회 입학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광스러운 첫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고, 김과 나는 같은 성을 지녔다는 이유로 같은 방에 배정받았다. 우리는 가나다순의 불문율이 만들어준 우연 덕에, 그해 봄 같은 수업을 들었다. 1년 뒤에는 같이 전과를 했고, 또 1년 뒤에는 같이 졸업 준비를 했다.
김은 관심사도 취향도, 모두 나와 비슷했다. 그래서인지 대화의 온도가 맞았고, 가끔은 인권, 젠더, 노동, 환경처럼 답도 명확하지 않고 갈 길이 먼 주제들을 두고 논쟁하며 수업을 빠지기도 했다. 햇수로 4년이 지나는 동안, 김은 반수를 한 댔다가, 다시 피트를 준비하겠다며 미적 수업을 듣고, 그 수업에서 장렬히 F를 맞았으며, 삼수강의 늪에 빠져있다가 로스쿨에 가겠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나도, 반수를 한 댔다가, 옷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의류학과에 갔다가, 다시 행정고시를 본다며 교재를 잔뜩 사두고, 앉아서 하는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방송국에 가겠다고 했다. 돌고 돌아 우리는 결국 어린 시절의 꿈으로 돌아왔고, 그 길에서 함께 둥둥 부유했다.
출사표만 던지고 여전히 정신 못 차린 나와는 다르게, 김은 4.3 만점에 4.3이라는 대 기록을 달성하며 완전한 갱생에 성공했다. 아주 가끔은, 둥둥 떠다니던 곳에 나 홀로 남겨진 것 같다는 씁쓸함과 부러움이 입안을 감돌 때도 있었지만, 자주는, 다시 태어난 친구가 반갑고 멋있었고 대단했고 기특한 것 같기도 했다. 자소서를 쓰고, 시험을 치고, 면접 스터디를 하던 김은, 몰아치는 스트레스 속에서 담배를 다시 손에 쥐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쉼 없이 달려와 가장 먼저 신촌을 탈출하는 선두타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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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김은 첫 번째 김과 내가 있던 그 방에 함께 있었다. 지나치게 건전했던 오티 준비 위원회는 숙소를 무려 주류 반입 금지인 곳으로 선정하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고, 마침 그날은 또 다른 김의 생일이었다.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생일을 보내게 된 김은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이런 곳에 도저히 더 있을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고, 나 역시 그날 부모님께 반수를 선언했다. 김은 자신을 빠른 98년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도 가끔은 22살이 되었다가, 종종 23살이 된다.)우리는 공부를 싫어하고 노는 걸 좋아한다는 아주 큰 공통점이 있었고, 주 2-3회씩 함께 음주가무를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여기에도 고비는 있었으니 첫 번째는 김이 빠른 년 생이라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김이 맥주 한잔에 얼굴이 빨개지는 알쓰라는 점이었다. 김은 다모토리를 가기 위해 재수하던 친구의 민증을 빌려왔다가, 인생 첫 경찰차를 탔다. 눈물로 호소해 다행히 유치장 신세는 면했으나, 그 이후로 민증 검사를 할 때면 혼자서 울며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새내기 시절을 허무하게 보낸 김은 봉인 해제가 되자, 다모토리와 클럽을 전전하는 프로 유흥러가 됐다. 그녀는 우리를 클럽의 세계로 전도하려 애썼으나, 담배 냄새를 좋아하던 특이 취향의 김과 달리, 우리는 그곳이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어두운 지하세계를 재빠르게 탈출했다.
두 번째 고비는, 어쩌면 행운이었다. 우리는 지하세계 대신 알코올을 사랑했고, 그 사랑을 멈추는 방법을 몰랐다. 반면 김은 얼굴이 빨개지는 순간 잔을 내려놓는 놀라운 자제력을 지닌 친구였다. 우리는 가끔 너무 피곤할 때면 신촌이 제공하는 넓디넓은 바닥에 누워 휴식을 취했고, 김은 그런 우리의 안전 귀가를 책임져주었다. 취하면 눈물을 질질 짜는 친구와 욕을 내뱉는 친구의 등을, 김은 정성스레 두드려주었고. 나의 기억 속에 없는 시간들은 언제나 김의 기억 속에 있었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 흘러, 영어 발음이 남다르던 김은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고, 우리 중 처음으로 회식을 경험하게 됐다. 덕분에 우리의 궤적은 주 2-3회에서 한 달에 두세 번도 어려울 정도로 희미해졌지만, 그 대신 드문드문 아주 크고 진한 발자국을 남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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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지만 딱딱하고 거칠었던 신촌 길바닥에 함께 누워있던 최는, 20살의 개강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그곳에서 최는 술에 취한 나를 밝고 재밌는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친해져 보니, 생각보다 차분하고 성격이 더러워서 놀랐다고 했고. 나는 비록 성격이 더러웠지만 최와 마찬가지로 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최는 간을 혹사시키는 우리의 일에 동참하게 되었다. 두 번째 김과 나는 화가 많고 성격이 급했으며 짜증이 잦았다. 그리고 최는 그런 우리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맡았고, 그 옆의 첫 번째 김은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웃는 역할이었다.
섬세하지 못한 세 명의 김과 다르게 최는 꼼꼼하고 사근사근한 성격에, 앉아서 꼼지락거리는 일도 곧잘 했다. 물론 입에는 험한 말을 달고 살았지만, 그 빈도가 세 명의 김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에 상대적으로 온순하게 보였다. 어미새 같은 그녀는, 여행지에 무거운 오메가3 통을 통째로 들고 온 나에게 휴대용 약통을 선물해줬고, 어디선가 신제품의 숙취해소제를 찾아와 세 명의 김에게 나누어줬다. 최는 세 명의 김 사이에서 유일한 최였고, 유일하게 휴학을 했으며, 유일하게 천천히 먹었고, 유일하게 “ㅎㅎ”를 많이 쓰는 친구였지만 그만큼 유일하여 꼭 함께해야 하는 친구였다.
무엇보다 최는 김김김의 사용법을 잘 알았는데, 예민해진 나를 걱정하는 두 명의 김에게 그냥 놔둘 것을 주문했고, 두 번째 김이 무언가 불만을 토로할 때면 함께 화를 내주었으며, 첫 번째 김이 조용히 웃고있으면 적절한 질문으로 그녀의 말문을 트이게 했다. 최는 우리의 관계를 조율하는 눈치빠른 중재자였으며, 술자리의 MC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대2병이 심하게 찾아온 나와 로스쿨을 준비하던 첫번째 김, 그리고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두번째 김이 슬슬 음주의 빈도를 줄여갈 즈음. 최는 봉사를 가장한 음주 동아리를 들어 팀장을 하더니, 총무가 되어 음주가무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리 중 가장 꾸준하고 줄기찼다. 몇 번의 짠이 오가는사이, 술자리를 채우던 수능과 미팅 이야기는 무용해지고, 그 자리는 취업 걱정이 차지해버렸지만. 그래도 최김김김은 여전히 닭볶음탕에 우동 사리를 추가했다.
이맘때쯤 비행기나 기차표를 끊어두던 세 명의 김과 한 명의 최는, 여행 티켓 대신 두 번째 김의 회사에서 건강식품을 대량 공동구매했다. 우연히 신촌에 모여 딱 4년을 채운 최김김김은, 관계의 생로병사에서 어디쯤 와있을까. 가을의 풍경에 겨울의 온도를 지닌 지금의 날씨처럼 어쩌면 과도기의 한 지점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 우리는 섭섭했고 화가 났으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동시에 그를 압도하는 시간만큼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그동안 쌓아둔 추억이 아까웠기에, 그래서 그냥 계속 친구를 하기로 했다.
우주에 세 들어사는 우리가 어떤 규칙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면, 우리의 관계만큼은 인간이 아닌 나무의 것을 따랐으면 좋겠다. 태어나 자라고 늙어가며, 언젠가 소멸을 맞이할 운명 대신, 싹이 움트고 꽃을 피우다, 바람 한 번에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가도 다시 내년을 기다릴 수 있는. 그래서 희미해진 우리의 궤적을 어루만지다 아주 조금 섭섭해질 때면, 아직은 다시금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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