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조삼제 기사님

새벽 4시. 차가워진 바깥 공기를 마시며 담배 한 대를 물어 태우고 시동을 건다. 첫 손님이 타고, 채 해가 뜨지 않은 어둑한 거리를 가른다. 손가락 끝 말 한 마리가 힘차게 내달린다.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달리게 될 저 말과 같이 별다를 것 없는 그의 하루도 그렇게 시작된다.
“저기 사거리에서 내릴게요”
그는 택시 기사다.
오늘도 수많은 택시들이 쉬지 않고 이 거리를 누빈다. 가장 필요한 순간, 가장 빠른 발이 되어주는 택시이지만 우리는 언제 그 차 한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지각과 급한 약속이라는 허울 좋은 이유들을 벗어 던지고 오롯이 그가 가진 이야기가 듣고 싶어 택시를 잡아 탔다. 가까이 있었지만 오히려 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하여.
뒷자리에선 미처 알지 못했던 손 한뼘의 거리
올해 나이 71세, 택시 경력 45년차 라는 조삼제 기사님의 서글서글한 인상이 눈에 띄었다. <호빵맨>에 나오는 잼아저씨를 닮아 귀여우시다는 말에 기분 좋게 웃으신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자잘한 주름 사이에서 왠지 지나간 시간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다. 나는 문득 그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훌쩍 바치며 바라본 신촌과 청춘들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이 동네는 지금은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한 30년 전만 해도 이 근처는 작은 주택들과 논밭이 더 많았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높은 건물들은 생각도 못했던 시절이었죠. 내가 이 지역을 수십 년을 다니면서 보니까, 지역이 변하는 것만큼 사람도 변하는 것 같더군요. 특히 학생들이 많이 변했어요. 예전엔 학생운동이 활발했잖아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냥 막걸리 하나 앞에 두고 어떻게 세상을 한 번 바꾸고 좋은 사회를 만들어볼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어요. 그 패기와 간절함으로 자기들만의 삶을 그려가곤 했다고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요즘 대학생들 힘들죠, 이렇게 힘들 수가 없어. 그래도 뭐랄까 우리 학생들이 너무 ‘대학’, ‘취업’이라는 키워드에만 꽂혀서 경주마처럼 달리는 모습이 나는 너무 안타깝더라고. 인생이 꼭 한 방향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시대는 변하고 시대를 메우는 사람들도 변한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짊어지는 십자가 또한 변한다. 각기 다른 십자가를 메고 있는 상대에게 너는 왜 나와 다르냐며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과거의 청춘이 민주화 운동을 통해 세상을 향한 도약을 했다면, 현재의 청춘은 각자의 인생을 개척하는 탐험가로서 세상을 향해 날갯짓한다. 삶의 무게를 들춰 멘 젊은 청춘들이, 아니 꼭 여기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각자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행적을 쫓는 걸 헛되다 할 수는 없다. 이 지점은 지금 내 옆에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 역시 동의할 터였다.
‘성공’ 이라는 목표만을 보고 그동안 무가치, 무효용, 무의미 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가지치기를 해왔던가. 얼마나 많은 행복과 여유와 또 나 자신에 대한 솔직함을 버려왔던가. 때로는 자유롭게 내 길을 찾는 것도, 때로는 그저 앞만 보고 가는 것도 저마다의 인생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우리가 살아온 그 변수 없었던 지난 날들에 대해 얼마나 기억하고 만족하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주변을 돌아볼 줄도 알아야 전에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 정신없이 달리다 문득 차안대를 벗었을 때, 푸른 초원으로 가는 샛길을 찾을 수도 있는 것이기에.
신촌은 초원으로 가는 샛길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젊음의 시기를 지나는 그의 자녀들이 궁금해졌다.
“저는 딸 둘과 아들 하나가 있어요. 지금은 다들 시집, 장가 가서 가정을 꾸리고 잘 살고 있죠. 나는 아이들에게 참 고마워요. 아들 녀석은 자기 뜻대로 대학은 가지 않았지만 열심히 일해서 자수성가했고, 딸내미들은 대학 졸업하고 괜찮은 직장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평범하게 아이들 키우며 살아요. 사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잖아요. 나는 옹고집스러운 면이 있어서 늘 나만의 평범함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곤 했었는데 아이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많이 배우고 변했어요. 참 고맙죠. 난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자기들 위치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줘서 대견해요. 강하게 키우고자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준 적 없었는데 그래서 더 미안하고 감사하죠. 택시 하다 보면 학생들을 참 많이 만나요. 그럴 때마다 우리 애들이 이만했을 때 왜 고생한다고, 기운내라고, 사랑한다고 자주 얘기해주지 못했나 그게 많이 아쉽더라구요.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자녀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거기에 전하지 못한 사랑이 묻어났다.
말이란 참 미묘한 온도차를 지녔다. ‘아’ 다르고 ‘어’ 다르듯 작은 차이지만 때로는 따뜻한 손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차가운 비수가 되어 꽂히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언어의 온도는 조금 더 미묘해진다. 자식이 자라날수록, 다르게 말하면 부모와 자식이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게 많아질수록, 서로에 대한 감정표현이 서툴러진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과 부모를 향한 자식의 사랑은 언제나 서로가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는 동의 마냥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는 눈치싸움의 연속이다. 언젠가 한 대학 강의에서 교수의 말 한마디가 인상적이었다.
‘부모에게 사랑한단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세상에서 제일 가는 용기입니다’
그 수업이 끝난 직후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사랑한단 말을 건네고 다시 사랑한단 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랑이란 감정에 이유는 필요 없지만 사랑한단 말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슴 설레어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듯한 사랑이든, 가슴이 무뎌져 보임에도 보이지 않는 듯한 사랑이든 마찬가지다. 사랑은 때로는 용기를 내어 앞에서 걷는다.
아현동에서 출발한 택시는 어느덧 홍대 인근에 다다랐다. 또 하나의 대학가에 도착할 무렵 그가 문득 한마디를 내뱉었다.
“대학가를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져요. 젊음이 느껴진달까. 젊다는 게 뭐예요, 별로 가진 건 없어도 뭐든 해볼 수 있다는 거잖아요. 내가 열심히 걸어왔던 것처럼 이 거리의 젊은 청춘들도, 우리 아이들도 다들 열심히 걸어서 모두들 진정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제 바람입니다.”

그의 택시는 떠나고 없다. 하지만 마음에 타이어 자국이라도 찍힌 듯 여운이 길게 남는다. 그가 내게 터놓았던 시간과 청춘, 그리고 사랑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찬찬히 곱씹어본다. 사실 평소에도 택시를 탈때면 기사님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목적지까지 가는 편이다. 그때마다 느꼈던 건 그분들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는 것이다. 기사님에 따르면 대개 운전이란 동물적인 육체노동이며, 그 속에서 말과 이야기는 사치와도 같다. 그동안 내가 만난 기사님들 모두 잠시 별것 아닌 사치를 부리려했던 것이 어쩌면 노동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작은 바람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언젠가 그들이 내는 소리 없는 목소리에 오늘처럼 깊게 다시 한번쯤 귀를 기울이게 될까. 작지만 큰 깨달음과 사색을 얻어간다.
‘그는 택시 기사다.’
※ 이 글은 지난 달 29일에 진행된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서울 택시 조삼제 기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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