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최정윤
“정윤, 여기야! 완전 오랜만이다.”
“그러게, 얼른 들어가자!”
그녀와의 만남을 가진 12월의 어느 날.
마치 하늘도 그녀의 다채로운 이야기로 형형색색 물들어갈 준비를 하는듯, 그날따라 하늘은 유독 하얬다.
이야기를 나누며 술 한잔을 기울이다 보니, 너무 많은 색을 정신없이 칠한 탓인가, 하늘은 어느새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최정윤(23)
#누가봐도미국갬성
잔치 구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 부탁해요. 😊
안녕하세요! 저는 UC BERKLEY(이하 ‘버클리’) 통계학과에 재학 중인, 하지만 자유를 느끼고 싶어서 한국에 와서 한 학기 동안의 신촌 생활을 보내고 36일 뒤에 미국으로 돌아가는, 최정윤입니다. 잔치에서 ‘뉴이’라는 에디터명으로 활동했어요.
벌써 한 학기가 끝났다니… 시간 너무 빠른 거 같아. 버클리 개강은 언제야? 방학 계획 있어?
개강은 1월 21일. 나는 이번 한 학기가 방학이었지.(웃음) 9학점밖에 안 들었는데 이 정도면 방학이라고 할 수 있지?
매우 긴 방학이었네. 신촌에서의 한 학기는 어땠어?
정신적으로 많이 행복했던 한 학기였어. 나는 사소한 순간들을 감사히 여기면서 행복을 느끼는 편인데 버클리에서는 그걸 애써서 해야 했다면 여기서는 그게 자연스럽게 되더라고. 밖에 나갔는데 날씨가 좋으면 감사하고, 누군가를 만나면 즐거워서 감사하고, 무탈한 게 감사하고. 안정적인 마음으로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자신감도 있었고 두렵지도 않았어. 졸업 전에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한국에서 이렇게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어서 너무 의미 있었어.
버클리에서와 여기에서의 생활이 많이 달랐어?
미국에서 나는 항상 되게 불안했거든. 공부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모든 게 다 붕 뜬 느낌이랄까. 거기에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안 들었고 행복하지 않았어. 마음은 항상 한국에 가 있었고, 그냥 많이 우울했고. 게다가 내가 불면증도 심해서 수면 유도제에 의지해서 잠들고는 했거든. 나중에는 그조차도 안 들어서 그냥 뜬 눈으로 밤새고 그랬는데 한국 와서는 잠을 못 잔적이 한 번도 없어. 잠을 잘 잔다는 건 마음이 편하다는 거잖아. 버클리에서의 하루하루가 무채색이었다면 여기서는 색채감 있는 생활을 했다는 게 제일 큰 다른 점이었던 거 같아.
행복한 한 학기를 보내서 다행이다. 혹시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 있어?
이건 좀 생각을 해봐야겠는데? 매 순간이 다 행복하고 그랬는데… 특정한 순간을 꼽기엔 너무 어려운 게 나는 그냥 좋은 사람이랑 얘기할 때가 너무 좋았어. 분위기 좋은 공간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날 것의 그 사람을 보는 느낌이 드는데, 나는 그게 너무 좋아. 애인을 안으면 수면제 3배 정도의 효과가 난다고 하잖아. 그런 효과가 대화로 이루어지는 느낌이어서 좋았고 그 순간순간들은 절대 못 잊을 거 같아. 이번에 한국에 와서 새로운 인연들을 많이 만들었는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본연의 그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되게 행복했어.

분위기 좋은 공간에서 좋은 사람과(=에디터) 진솔한 이야기 중
지금 나랑 나누고 있는 대화도 그런 느낌인 거 맞지?(웃음) 그나저나 에디터명은 무슨 의미야?
내 영어 이름이 ‘유니(Yooni)’거든. 유니의 자음 순서를 바꾼 거야. (유니 –> 뉴이) 사실 별 뜻은 없는데, 개인적으로 엄청 잘 지었다고 생각해. 내가 버클리에 있을 때는 Berkley Opinion이라는 플랫폼에서 글을 계속 썼는데 본명을 사용했고 주로 수필을 썼거든. 한국에 와서는 수필은 맞지만, 성격이 다른 글들을 쓴 거 같아. ‘뉴이’라는 에디터명에 내가 적당히 들어갔듯이, 내 이야기를 했지만 완벽한 내 이야기는 아닌 느낌? 가명 뒤에 숨어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어.
단순한 듯 심오한 이름이네. 통계학과인데 꾸준히 글을 써왔다니 대단하다. 원래 글 쓰는걸 좋아해?
응, 완전. 문·이과의 감성이 공존하는 인물.(웃음) 근데 언니도 그렇잖아! 중학교 때부터 매거진, 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계속 썼고 미국에서도 글 생활을 꾸준히 했지. 그냥 글 쓰는 게 좋았고 글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았어. 왜냐면 글은 쓰다가 안 쓰면 실력이 줄어드는게 바로 느껴지니까. 그래서 신촌에 있는 한 학기 동안도 글쟁이 생활을 하고 싶어서 잔치에 왔고, 좋은 글들을 많이 읽고 쓰면서 글 쓰는 감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어. 잔치꾼들 글 너무 잘 써! 사람들 글 다 훔쳐 가고 싶다 정말.
너도 완전 잘 쓰거든! 수필에는 보통 무슨 이야기를 담아?
나는 글을 쓸 때 내 자신을 마주하는 느낌을 받고 그런 점을 글에도 많이 투영하려고 하는 편이야. 내가 평소에는 밝고 활발한 성격인데 이상하게 글을 쓰면 너무너무 우울한 글이 나와. 색으로 표현하면 정말 어떠한 색감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무채색이랄까. 주로 우울이라는 주제를 많이 다루는 거 같아. 이번에 잔치에서 쓴 글도 조금 우울했고. 근데 나는 글을 쓸 때 그런 점이 좋아. 나는 밝은 사람이지만 우울한 나 자신도 결국 나의 일부인 거고. 평상시에는 볼 수 없는 감정들이 글을 쓸 때 쏟아져나와. 나 자신에 대해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시간이 글을 쓸 때, 그리고 글을 사람들과 공유할 때인 거 같아서 더 뜻깊은 거 같아.
우울함도 인정하는 모습 진짜 멋지다. 근데 외국에서 학교 다니면서 잔치는 어떻게 알고 지원한 거야?
직접적인 경로는 ‘에브리타임’에서 홍보 글이었어. 근데 한국 오기 전부터 ‘이 동아리에는 꼭 들어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하나가 술 동아리, 다른 하나가 글 동아리야. 내가 한국에 온 이유가 졸업 전에 재미를 느끼고 잠시 쉬어가고 싶어서거든? 미국에서 학교 다니면서는 계속 앞만 보고 달렸는데 한국에서 보내는 한 학기 동안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술, 그리고 글, 둘 다 내가 제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잔치 홍보 글을 봤을 때 웹진이라는 플랫폼도 마음에 들었고 신촌이 주제라는 것도 너무 좋았어. 내가 중고등학교를 제주도에서 다니기는 했는데 그전까지는 쭉 신촌에서 자랐거든. 내가 느꼈을 때 가장 큰 성장을 한 시기를 다 신촌에서 겪은 거지. 한편으론 익숙한 공간이지만 구석구석 살펴보면 모르는 것투성이인 신촌이라는 동네를 탐험할 기회라고 생각했고 잔치가 나의 ‘needs’와 ‘wants’를 채워줄 거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잔치에 지원하게 됐어.

#쉬어가는시간
뉴이: 안 되겠네 이 언니. 이거까지만 마셔. 나머진 내가 ㄷ…
에디터: 아 싫어!!! (취해가는 에디터)
뉴이: 알았어 미안미안. 더 먹어 더 먹어! 한 병 더 시켜!!!
만일 내가 딱 한 학기만 신촌에서 보낼 수 있었다면 술만 마셨을 거 같은데… 넌 역시 정말 멋진 사람이야. 예전에 알던 신촌과 지금의 신촌은 다른 거 같아?
옛날의 신촌은 나에게 그냥 집 근처 동네에 지나치지 않았지. 그냥 지나다니는 길 정도? 어릴 때는 추억의 소중함을 잘 모르잖아. 근데 이번에 와서 신촌에서 추억이 너무 많이 생겼어. ‘포스트맨’이 왜 ‘신촌을 못 가’라는 노래를 만들었는지 알 거 같아.(웃음) 이제는 지나다니는 길마다 술집마다 어떤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가 떠올라. 아까도 얘기했지만 나는 어떤 사람이랑 어떤 대화를 하는지를 소중하게 여기는데, 그런 순간들이 다 신촌에 녹아 있는 거 같아서 이번 학기 마주한 신촌이 너무 특별해.
정윤이 얘기 듣다 보면 피플팀이 잘 어울리는 거 같은데, 아트팀을 1지망으로 지원한 이유가 있어?
내가 원래 쓰는 글이 아트팀 느낌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 나는 사람이 생각하는 거,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글로 옮겨 담는 거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해. 나는 항상 나에 대한 글을 많이 썼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글에다가 투영시켰고 그게 아트라고 생각해서 아트팀에 지원했는데 언니 말 들으니까 피플팀도 좋았을 거 같아. 새로운 사람을 대면하는 것도 좋아하고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근데 플레이스팀도 좋았을 거 같아. 그냥 다해볼 걸 그랬네. 잔치에 이런 것도 생겼으면 좋겠다, ‘다하기’. 교집합 부서 만들어주세요~
욕심쟁이다! 그러면 너가 플레이스팀이라고 생각하고 신촌에 처음 온 사람한테 추천해주고 싶은 곳은?
신촌에 와인바들이 되게 많잖아. 아, 막 많진 않지만, 은근히 많단 말이지. 신촌의 특징 중 하나가 큰 골목에는 삐까뻔쩍한 술집들이 많은데 골목골목을 잘 살펴보면 잔잔한 와인바들도 많다는 건데 그런 곳들이 숨은 보석들이라고 생각해. 나는 원래 와인을 좋아하기도 하고 주인장님이랑 친해질 수 있는 구조의 바들만의 매력이 있달까? 너무 대중적인 곳들보다는 신촌에서 오랫동안 영업하신 분들의 바이브가 녹아있는 곳들이 좋은 거 같아. (에디터: 그래서 추천하는 곳이 어디죠?) 플레이스팀의 글을 참고하세요. 실제로 나는 이번 학기에 플레이스팀 글 읽고 파가니니 갔다 왔잖아. 또 갈 거야. 언니도 가.
꼭 가볼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줘!
다른 일정과 많이 겹치는 바람에 활동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내가 신촌에서 생활하는 한 학기 동안 잔치에 발을 담그고 있어서 너무 뜻깊었고 나한테 너무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 잔치가 계속 오래오래 신촌 중심에 있었으면 좋겠어.

세미콜론 ; 아직 끝나지 않는 뉴이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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