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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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CE 2020 · 11 · 11

144. POTID

Editor 조밀

어느새 소매가 길어졌다. 뭘했다고 벌써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즌이 다가온다. 찬 공기가 피부에 닿음과 동시에 크리스마스가 오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인다.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나의 곁을 지켜주는 건 친구도 아니요, 연인은 더더욱 아니요, 바로 케빈과 해리포터였다. 그 중에서도 해리 포터는 매년 OCN 또는 CGV에서 나와 같은 잉여로운 사람들을 위해 밤새 정주행할 수 있도록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베풀어주는 영화 중 하나인데, ‘올해는 꼭 밤새서 다 보리라’는 부질없는 의지를 다지고 졸린 눈을 비비며 봤더랬다. 참고로 해리포터 시리즈 여덟 편의 러닝타임을 다 더하면 19시간 39분으로 꼬박 하루를 투자해야 겨우 다 볼 수 있는 정도다. 당연히 단 한 번도 정주행을 성공해 본 적이 없다. 항상 3편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졸다가 깨면 7편 ‘죽음의 성물’ 2부를 하고 있는 차례였기 때문이다. 매번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크리스마스마다 해리포터를 보는 이유는, 다시 보아도 재미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기분이 나기 때문에. 달력 속 빨간 날이 무의미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현실보다, 으스스한 세계관 속 화려한 크리스마스를 더 기다린 것 같다. 이번 해에 해리가 받는 선물은 뭘까, 내가 다 궁금하기도 했었다. 

 

할로윈과 크리스마스 그 사이에 끼어있는 애매한 11월, 두 홀리데이를 모두 느끼기에는 해리포터만한 것이 없다. 유령이 춤추는 크리스마스 파티는 아마 호그와트가 유일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연말의 정취를 느껴보고자 ‘포티드’를 방문했다. 킹스크로스역이 아닌 신촌역에서, 호그와트 익스프레스 대신 2호선을 타고. 

 

36-3 다이애건 앨리, 아니아니 명물거리

 

‘포티드’는 명물거리 끝자락에 위치해있다. 사실 스윽 지나가면 웅장한 외관이 곧장 눈에 띄기 때문에 조금 아쉽긴 했다. 영화 속 장소들이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져있는 만큼 이 곳도 더 구석진 곳에 있었다면 영화 속 등장인물에 더욱 이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거리 전체를 다이애건 앨리라고 생각한다면, 뭐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어느새 해리와 론, 그리고 헤르미온느가 학교 물품을 사느라 분주히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해리포터 책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려보기 일쑤였는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호그와트 내에 움직이는 계단이었다. 살면서 본 움직이는 계단이라곤 에스컬레이터밖에 없어서, 당최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기 힘들었다. 포티드는 밖에서 내부가 보이지 않는 덕분에 내 마음대로 머릿속으로 가게 모습을 그리는 재미를 선사한다. 

 

무거운 철문을 밀고 들어가니 인테리어가 상상한 것보다 호그와트를 꽤나 충실하게 옮겨 놓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핀도르 기숙사 커먼 룸에 온 기분이다. 곳곳에 위치한 유화 그림, 조명 그리고 목조 가구들이 영국 특유의, 그리고 해리포터 영화 특유의 고풍스러우면서도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이스크림을 얹으면 맛도 두 배, 칼로리도 두 배!

 

이 곳은 단언컨대 쿠키 맛집이다. 그렇다, 무려 볼드체이다. 쿠키몬스터급으로 쿠키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최적의 카페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쿠키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먹어보기를 적극 권장한다. 해리포터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개학식날마다 호그와트 연회장에서 여는 성대한 파티 씬이었다. 온갖 맛있어보이는 음식들, 그 중에서도 자라나는 학생들의 건강이 심히 염려될 정도의 각종 달다구리들과 거대한 펌킨 파이는 언제나 나의 식욕과 호기심을 고조시켰다. 아마 이 쿠키들도 테이블 위 은색 쟁반에 탑처럼 쌓여있지 않았을까, 집요정들이 열심히 굽느라 힘들진 않았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커피와 함께 초코호두쿠키를 주문해보았다. 실상은 사장님이 오븐에서 직접 구우신다. 역시 생긴대로 맛있다. 씁쓸한 커피와 달콤한 쿠키는 ‘말해뭐해 조합’이지만 갓 구운 쿠키, 그 안에서 녹아내리는 초코칩과 고소한 견과류는 치솟는 혈당 때문인지 좋아하는 맛이어서인지는 몰라도 가슴을 콩닥거리게 한다. 칙X, 칩스 아호X는 저리가라 할 맛이다. 마트에서 파는 기성 쿠키와 견주기도 미안할 정도다. 하긴, 집요정이 (아니 사장님이) 직접 만들었는데 공장에서 찍어낸 맛과 같을 수가 있겠는가. 

 

컵에 커피 대신 버터비어를 담아야 할 것처럼 생겼다. 

 

쿠키도 크리스마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산타 할아버지가 실존인물이라고 믿었던 순진한 유년시절에 나는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우유 한 잔과 쿠키를 놓곤 했다. 한밤중에 썰매를 끌고 머나먼 한국까지 와서 선물을 주고 가는 데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였달까. 아침에 일어나면 비어있는 우유잔과 한 입 베어 문 쿠키를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르겠다. 산타는 사실 부모님이었고, 이젠 내 돈으로 스스로 선물을 사주어야 하는 나이지만, 여전히 쿠키는 크리스마스 맛이다. 

 

 Lumos! (대충 지팡이 불빛 소환하는 주문)

 

쿠키 찬양은 이 정도로 하고, 내부로 들어가보았다. 호그와트 분위기 아니랄까봐 매우 어둡다. 지팡이 불빛이 필요할 듯하다. 천장에 달려있는 조명이 마치 연회장에 떠다니던 양초마냥 떠있어서 재미를 더해준다. 내부의 좌석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기숙사 친구들 삼삼오오 모여 새로 배운 주문을 연습하거나 투명망토를 입고 장난치기에는 충분한 공간이다. 해리가 호그와트에서 처음 맞은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이 바로 투명망토였다. 커먼 룸에서 론, 헤르미온느와 망토를 입으면서 신나하는 장면이 있는데, 순간 내 옆에서 투명망토를 입고 숨죽여 웃고 있는건 아닌지 착각이 들었다. 

 

다음 역은 이 열차의 종착지인 호그와트, 호그와트 역입니다

 

누가 올려놨는지는 몰라도 마담 후치한테 혼 좀 나겠구만

 

천장에도 깨알 포인트가 많다. 천장 테두리에는 기찻길과 함께 호그와트 익스프레스가 놓여있고, 가운데에는 빗자루가 올라가 있다. 해리가 시리우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세계관 속 최고 빗자루 파이어볼트다. 너도나도 최신형 빗자루를 타보겠다고 옥신각신하다 천장에 박아버렸나보다. 아, 맥고나걸 교수님이 또 기숙사 점수 깎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핀도르 10점 감점!” 

 

시각 효과만으로도 온기를 더해주는 벽난로

 

구석에는 벽난로가 있다. 시리우스가 벽난로를 통해 순간이동해서 해리와 대화하던 바로 그 벽난로 같다. 마침 마감 시간에 간 터라 아무도 없을 때 혹시나 시리우스가 오지는 않을까, 벽난로 쪽을 슬쩍 보았지만, 현실세계에서는 순간이동 따위 통하지 않는다. 가짜로 타고 있는 벽난로만 있을 뿐이다. 

 

뚜껑 열면 맨드레이크가 이상한 소리를 낼 것 같아 열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호그와트 입학을 축하합니다.

프리벳가 4번지 계단 밑 벽장의 해리 포터 군께’

 

해리포터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호그와트 입학통지서가 날라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머리가 크면서 허무맹랑한 판타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소 아픈 사실을 깨우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학편지가 장대비마냥 쏟아지던 그 장면은 언제나 전율을 느끼게 한다. 가끔씩은 Obliviate 주문을 걸어 현실의 쓴 맛을 모조리 잊고 다시 호그와트 편지와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순진한 어린 아이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유년시절은 아닐지 몰라도 계절은 돌아온다. 계절마다의 온도에 새겨진 기억은 덤이다. 코트 입던 추운 날에 만나 시작한 잔치는 따뜻하고 더운 날을 거쳐 다시 차가운 공기와 함께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네 번의 계절과 네 번의 글은 그 것이 품고 있는 온도와 함께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봄이 만물의 시작이듯 잔치의 시작이 되었던 ‘책바’, 무더웠던 날 땀을 식히려 방문했던 ‘시공간과 오브젝트’, 쌀쌀한 가을에 쌉쌀한 초콜릿을 마셨던 ‘초콜릿책방’,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포티드’까지. 

호그와트 크리스마스 파티에 버금가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잔치였다! 

 

[포티드]

서울 서대문구 명물길 36-3

매일 11:30-22:30

 

조밀
AUTHOR PROFILE
조밀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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