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로파우사다
완연한 봄이다. 한강, 치맥 그리고 벚꽃 따위로 SNS 피드가 폭발하는 때가 돌아온 것이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놀 생각에 들뜬 당신은 곧 깨닫는다.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하지만 지갑은 이미 전공책 덕분에 한없이 가벼워진 상태.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연세로를 걷던 당신은 수상쩍은 간판을 발견한다.

한 잔 걸치신 듯 흥겹게 춤을 추는 아저씨들. 이분들만 보면 올드한 재즈바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가게 입구에 진열된 체크 무늬 셔츠들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나올 법하다. 지금은 2017년이라 들어가기가 조금 망설여질 지도. 에디터도 ‘로파우사다’를 안 지는 삼 년쯤 됐지만 실제로 들어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뜻을 알 수 없는 수상한 이름과 지하에 위치한 구제 전문 옷 가게라는 정체성이 진입장벽을 높였기 때문이다. 왠지 힙스터(Hipster)만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에디터는 몇몇 지인들에게 로파 우사다를 이용한 경험을 수소문하며 철저한 사전조사를 진행했다. 대다수가 공연이나 학교 축제 때 입을 특이한 의상을 사기 위해서 방문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두 평범한 쇼핑과는 거리가 먼 얘기들 뿐이었다. 이렇게 로파우사다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로파우사다는 스페인어로 ‘구제(Usada)’ + ‘옷(Ropa)’이란다. 약 삼 년간 에디터가 수상쩍게 여겨온 것에 비하면 허무할 정도로 정직한 네이밍이다. 에디터가 새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로파우사다가 홍대에만 세 개의 지점을 가진 체인이라는 점이다. 로파우사다 신촌점은 적어도 2009년부터 이곳에 존재해온, 나름 신촌의 터줏대감이다.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신촌에서 로파우사다는 우직하게 한 자리를 지켜온 셈. 그러니 저렴한 구제 옷을 구매하고자 하는 그대여. 두려워 말고 에디터와 함께 본격적으로 로파우사다를 탐방해보자.

로파우사다로 내려 가는 길은 깊고, 양 벽에는 독특한 옷들이 걸려 있다. 이상한 나라로 가는 앨리스의 심정.
막상 들어가보니 의외로 오래된 옷장을 열어본 듯한 푸근함이 느껴졌다. 다들 가족의 오래된 옷 무더기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찾아내 몰래 입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로파우사다는 에디터에게 할머니의 옷을 몰래 입어보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게다가 도무지 특정지을 수 없는 다양한 스타일은 모험심을 마구 고취시켰다.

생각보다 친근한 느낌의 내부. 해치지 않아요!
그러나 친근함도 잠시, 가게 한켠에 파격적인 옷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이다 못해 마치 옷에 대한 고정관념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듯한 디자인의 연속이었다.

복학 첫날 입고 간다면 노련미라는 게 폭발해 버릴 지 모른다.

이런 파격적인 옷들이 무심히 걸려있는 게 로파 우사다의 매력.
하지만 겁먹지 말라.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활용도 높은 옷들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특히 에디터는 맨투맨과 스카쟌*, 청자켓을 추천한다. 그 종류가 다양하고 퀄리티도 꽤 좋다. 구제 외에도 자체 제작 의류와 수입 의류도 판매 중이라고 하니 구제가 조금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도 한 번 들러 볼 만 하다.
(*스카쟌 : 야구잠바와 비슷하게 생긴 옷으로 번쩍거리는 재질과 일본풍 자수가 포인트다.)

에디터를 잠시 유혹에 빠트렸던 스카쟌들. 사랑스럽다…

빈티지 가방들은 그 자체로 멋진 소품이 된다.
구제를 별로 탐탁치 않아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할 수는 있다. ‘내가 모르는 과거라니, 위생 상태가 의심되는군!’ 하지만 구제 옷의 과거를 모른다고 무조건 멀리할 이유는 없다. 당신이 모른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 않나.
구제의 가장 큰 매력은 이미 누군가에게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손길을 거친 과거의 흔적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소매의 얼룩이나 옷깃의 터진 실밥을 보며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은 구제 의류를 입는 데 소소한 즐거움을 더해 준다.

남미의 정열이 물씬 느껴지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법.

‘네가 뭘 좋아할 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어!’
옷이든 음식이든 최신 유행을 따라야 하는 게 당연시되는 신촌에서 로파우사다는 우직하게 구제의 멋스러움을 추구해왔다. 일상에서 약간의 모험심을 발휘하거나, 유행하는 옷을 입어 도플갱어를 마주치는 민망함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런 로파우사다는 꽤나 괜찮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로파우사다 신촌점>
주소 :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 26-1
영업시간 : 오전 10시 ~ 오후 9시 30분(월~일 동일)
연락처 : 02) 365 –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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