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제일 목욕탕 : 물의 모양
266. 제일 목욕탕 : 물의 모양
바이러스가 퍼져 우리의 일상 곳곳에 침입한다. 스며든 바이러스는 다른 무언가도 자신의 형태로 변형시키는 듯 했다. 바이러스가 증식된다는 것이 이러한 의미가 아닌지하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즐기고 사랑해서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애쓰는 마음이 되어 그것들을 겨우 붙잡고 있었다. 놓으면 그만인, 곧 바이러스 되어 부정의 영향이 내 몸을 파고 들 것 같았다. 전시를 보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바랄 것 없는 즐거운 하루여야 했는데 부질없음이 온 생각을 뒤덮었다. 언제까지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맞는가. 복잡한 마음을 어떻게든 떨치고 싶어서, 하루를 마치면 나는 반복적으로 몸을 닦아 냈다. 여러 갈래의 물줄기는 하나의 배수구를 향해 갔다. 마치 각자가 가야될 길을 아는 것처럼 빠르게 흘렀다. 그 사이로 튄 물방울은 갈피를 못 잡은 채 고여 있었다. 마치 나를 마주하는 듯 했다. 물방울 표면 위로 비친 내 모습이 왜곡진 채 불완전하게 보였다.
그럴 때면 탕 안에 몸을 담그는 상상을 했다. 고여있는 물 한 가운데에 내 생각을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문득 그 공간을 지키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동네에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목욕탕으로 향했다.
사장님 계신가요…
절 찾으셨다고 들었는데 엊그제 오신 분 맞으세요?
손만 겨우 들어갈 크기의 창문 너머로 사장님의 얼굴이 보였다. 긍정의 대답에 사장님은 손짓을 하며 문을 열어 주셨다.

목욕탕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목욕탕은 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작년 2월 14일부터. 딱 그 날부터 했어요.
최근에 목욕탕을 운영하시게 된 건가요?
원래는 저희가 세를 줬었던 곳이에요, 원래 하시던 분이 장사가 안 되서 못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이쪽 상황을 잘 몰랐거든요. 저희가 이곳을 잘 알아두면 나중에 세를 다시 놓더라도 적정선을 아니까. 경험 차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원래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원래 가정 주부였어요. 따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았어요.
목욕탕 운영을 결정하기까지 여러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보통은 직접 도맡겠다고 생각하기 어렵잖아요. 운영하겠다고 결심한 마음이 대단하시네요.
그래도 한 번 유지를 해보려고요. 요즘 목욕탕은 없어지거나, 주인이 직접 하거나 인거 같아요. 보통 사우나 같이 큰 데로 가시니까… 원래 이 부근에 목욕탕이 굉장히 많았어요. 다 없어지고 지금 여기 하나 남은 거예요.
목욕탕의 안락한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계속 찾아오실 것 같아요.
거의 동네사람들이에요. 다른 곳에서는 다른 좋은 데로 가시죠(웃음). 요즘은 워낙 좋은 데가 많아서… 여기는 동네 분들이랑 시장 분들이 많이 오세요. 음식점을 운영하시는 경우 옷에 냄새가 많이 배니까, 새벽에 와서 씻고 가시더라고요.
시간대 별로 목욕탕을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다양하겠네요.
이게 타임이 있더라고요. 그것도 요일마다 다 달라요. 주중하고 주말하고. 주말에는 새벽부터 오시는 분들이 많고. 그리고 여기서 친구들 모임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예전에 세신사 분들이 목요일은 기대하지 말아라~ 하시더라고요. 목 빠지는 날이라고 해가지고. 손님 기다리다가 목 빠진다고(웃음). 이 말도 얼추 맞더라구요.
재밌는 이야기네요. 여기서 모임을 가지는 분들도 계시는 군요.
예. 월요일날 새벽에 세 명 친구 분 꼭 오시고, 일요일 날 새벽 네 시 반에 어르신들, 잠이 안 오셔서 그 때 또 오시고. 저희는 다섯 시에 여는데, 그 전부터 준비는 해요. 불이 켜져 있으니까 어르신들이 문을 막 흔드세요. 열어도 괜찮다고 그러면서 들어오세요. 세 시간 정도 있다가 가시고. 얘기도 나누시고, 찜질도 하시고.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죠. 여기 인근에 사시다가 멀리 가신 분들도 가끔씩 오세요. 한 분은 남양주에서 오셔서 평상에서 친구 분이랑 같이 도시락도 드시고 가시고. 여기가 만남의 장소가 되는 것 같아요.
사장님께서 손님들을 잘 배려해주셔서 목욕탕 운영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손님을 맞으시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어느 순간이었나요?
기억에 남는다기보다 느낀 것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기는 어르신들이 많이 오시잖아요. 저는 되게 친절하게 옷도 정리해드리고 거동 불편하신지 확인해드리고 그러는데, 저도 친정엄마가 계시거든요. ‘과연 나는 엄마한테 그렇게 했었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또 신기했던 건, 제가 잠깐 자리를 비우거나 그럴 때 저를 보시면 아까 못내고 들어왔어~ 하면서 꼭 주시고 가세요. 그게 참 감사하더라고요.
사람들을 마주하다보면 순간순간 깨닫는 것도 많겠네요. 사장님께서는 스쳐 지나갈 법한 것들을 잘 기록해서 남기시는 것 같아요.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블로그를 봤어요. 글들을 읽으면서 주어진 삶을 굉장히 사랑하시는 느낌을 받았어요. 블로그를 개설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손님이 너무 없어서요(웃음). 사람들이 여기 목욕탕 있는지 몰라요. 심지어 동네 분들도 그러세요. 알리자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었죠. 근데 사람마다 이곳에서 느끼는 게 다르니까,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런 게 참 어렵더라고요. 인터넷에서 그런 것들을 마주해야하고, 또 계속 관리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워서 요즘은 잘 못하게 되더라고요.
처음 이 공간을 수리할 때의 이야기가 많이 적혀있던데, 블로그를 보시고 목욕탕을 방문해주시는 손님들도 많을 거 같아요.
이런 분들이 생각보다 조금 있더라고요. 최근에는 촬영하러 오시는 분들이 좀 계셨어요. 신문사에서 와서 촬영을 하기도 했고, 잡지 촬영도 했었어요. 또 블로그를 보고 젊은 친구들도 종종 오곤 해요. 젊은 남자 친구들이 술도 깰 겸, 가끔 새벽에 씻으러 오더라고요. 남탕에는 사우나 안에 수면실이 있어서 푹 쉬고 가기도 해요. 젊으신 분들도 이렇게 가끔 와요, 가끔.
목욕탕은 늘 새벽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것 같아요. 이곳도 새벽 다섯 시에 문을 열던데,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제 개인 생활이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집안일도 그렇고. 새벽 세시 반에는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하고 또 저녁 늦게 들어가고 하니까. 일이 끝나면 녹초가 돼서 쓰러져요. 종종 세신사 분들이 많이 도와주세요.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사장님은 매일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시겠네요(웃음). 편안하면서 안락한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사장님께 목욕은 어떤 의미 일지 궁금해요.
목욕… 저는 단순하게 생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없어서는 안되는. 피로든 스트레스든. 무언가를 내려놓고 가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정말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저도 꼭 하루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목욕을 해요. 요즘은 제가 좋아서 하는 일 조차도 의심될 때가 많았어요. 진정 좋아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볍게 느껴지고, 그러다보니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몸을 씻어내면서, 이런 마음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목욕을 했어요.
그렇게 느낄 수 있죠. 그럴 때면 며칠 푹 쉬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여기와서 선풍기 가는 거를 배웠어요. 날개 갈고 그럴 때 핀 다 뽑고 해야 되는데 못하는 분들도 꽤 있거든요. 사실 큰 일은 아니잖아요. 배우면 다 할 수 있는 거고. 가볍게 시작한 것도 그것 나름대로 쓸모가 있고, 깊게 배운 것은 자신의 인생길이 될 수도 있는 거고. 나중에 그것 자체로 어딘가에 남아있을 거예요. 제가 일찍 일어나니까 하루가 길어졌잖아요. 예전에는 애들 보내고, 집안일 하고 나면 하루가 금방 갔거든요. 그 때는 몰랐고 또 힘들기도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구나하고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훗날 버텨낸 지금의 자신을 칭찬하게 되는 시기가 올 거예요.
오늘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 자체로, 제 생각도 정리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사장님께서 사람들에게 목욕탕이 어떤 공간으로 남았으면 하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그냥 저는 편안하게 목욕하다 가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이곳에서 어떤 큰 영향을 바라기보다 단지 사고 안 나고, 풀고 가는 기분으로 목욕을 하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작은 동네 목욕탕이라 만족스럽지는 않을 수 있지만,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하네요.
사장님은 냉탕을 좋아하시나요. 온탕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온탕이요(단호).

시계에서도 느껴지는 사장님의 온탕 사랑.
목욕탕 문의 종소리가 울린다. 빗소리와 합쳐져 더 싱그럽게 들려온다. 내 나이 적,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도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씀하신 사장님은 새롭게 찾아온 새벽을, 사람들을 누구보다 반갑게 맞이하고 계셨다.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도전함으로, 또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은 유일하게 남은 아현 목욕탕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나는 내일도 글을 쓸 것 같다. 갈피를 못 잡는 물줄기처럼 사방으로 튈 지라도, 고인 물방울이 되어 잠잠히 있을 것이다. 어디론가 떨어지게 되더라도, 그곳도 내 길임을 깨닫고 흘러가면 되지. 빠르게 흐르는 물줄기도, 표면 위로 작게 고인 물방울도 결국 물은 물이다. 어떤 형태이든지 그 자체로, 물처럼 살아내고 싶다.

이곳에서 느낀 편안함을 기억하며.
주소: 서울 마포구 신촌로28가길 33 제일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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