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신촌 라이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 나태주
너무나 유명한 시다.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던 이 시를 나는 지금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느끼고 있다. 그렇다면 내게 그 예쁘고 사랑스러운, “너”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소한 부분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자세히 보게 되는, 몇 시간이고 몇 일이고 나와 모든 것을 함께하며 오래 보게 되는, 풀꽃과도 같은 “너”는 바로…
자취방이다. (뭘 기대했을까, 참나.)
이대 부근에서 자취를 시작한지 4년이나 되어가고 있지만, 자취방이 내게 그렇게 큰 의미를 주지는 않았었다. 그전까지는 학교를 다니거나 동아리활동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방은 그저 신촌에서 술 먹고 돌아와 내 한 몸 누일 곳 정도일 뿐이었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시작되고 꽤나 많은 시간을 자취방에서 보내면서, 처음으로 찬찬히 살펴도 보고 새삼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방 안에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년간의 자취생활 동안 모아온 물건들도 생각보다 많아서 청소 한 번씩 할 때 마다 추억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이 방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대학생이 된지 한 학기가 막 끝나고서는 통학은 절대 못해먹겠다며 들어간 학교 기숙사부터, 반지하 원룸, 고시텔 하숙방, 옥상 원룸, 그리고 지금의 아파트 쉐어하우스까지 다양한 주거형태를 거쳐왔다.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속에서 느꼈던 소소한 즐거움도 참 많았던 것 같다. 이제는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리고 자취방이 점점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 시기에서 지나온 나의 ‘신촌 라이프’를 되돌아보며 마음 속에 간직했던 소소한 추억 몇 가지를 꺼내보려고 한다.

하나.
반지하 원룸은 공기가 눅눅해지기 쉽다. 크고 작은 건물에 둘러싸여서 환기도 어렵고, 특히 여름에는 턱 숨이 막히는 느낌마저 든다. 더 이상 참지 못할 것 같을 때, 하지만 제대로 된 공원을 찾아가기에는 너무 귀찮을 때 나는 신촌의 밤으로 도로 산책을 나선다. 자정쯤 되면 신촌의 넓은 도로변이 한적해진다. 한창 음주가무를 즐길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울 때가 아닌가 싶겠지만, 그 사람들은 골목 안쪽에 있는 술집에서 놀고 있으니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차도 한 대 지나지 않고, 앞으로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넓은 도로를 독차지하면서 맞는 부드러운 새벽바람은 어떤 에어컨보다도 나를 기분 좋게 해준다.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가다가, 새까맣게 칠해진 밤하늘을 보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오아시스처럼 혼자 형형색색, 밝게 비춰주는 아리수 공연장을 찾아간다. 낮에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던 빨대모양의 조형물들이 밤에는 그렇게나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정수기 주위의 벤치에 앉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한 얘기로 수다를 떨다 보면, 시큰거렸던 마음도 더위도 답답함도 모두 바람에 실려 어두운 밤 속으로 사라진다.

둘.
고시텔에서 살았을 때 내가 좋아하는 소리가 있었다. 4층에 있던 고시텔 겸 하숙집에서 내 방은 2평 남짓, 사람 한 명이 딱 잠만 잘 수 있는 작디 작은 공간이었다. 긴 복도를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른 방들에도 누군가 살고는 있었겠지만, 대화는 커녕 거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곳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역시나 갑갑했다. 그럴 때 내게 가끔 단비같이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옆 건물 술집 “언제나 좋은 벗”에서 신나게 웃고 떠드는 손님들의 목소리가 창문으로 타고 올라와 내 귀에까지 들어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술 먹고 있는데 신나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하고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특히나 조용하고 외로웠던 어느 날, 딱딱하고 비좁은 침대에 누워 빨리 잠이나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순간에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었을까, 너무나 즐거운 듯이 호탕하게 파하하핳- 웃는 소리가 나까지 즐겁게 만들어줬다. 웃음은 전염된다고 했던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던 것 같다. “언제나 좋은 벗”은 이렇게 묘하게 진짜로 좋은 벗이 되어주었다. 이 일화를 나중에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그렇게 사는 딸이 불쌍하다며 용돈을 주셨는데, 뭐 내가 행복했으면 된 것 같다.
+ 추신. 가게 사진을 찍기 위해 2년만에 고시텔건물을 찾아갔으나, 옆 건물 1층에는 나의 옛 벗 대신에 “제주도로담” 고깃집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났구나, 새삼 뒷통수 한 대 맞은 느낌으로 허무하게 발길을 돌렸다. 아쉬운 마음에 혼자 살았을 때 자주 피우던 향초라도 올려본다.

셋.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촌에서 밤을 새고, 다음 날 아침 해가 뜨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 술집이나 노래방에서 밤새도록 친구들과 놀았던 날들도 있었고, 아니면 마지막까지 미뤄둔 과제를 제출일 전날에 탐앤탐스에서 꾸역꾸역 써내려 갔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타깝게도 그럴 체력이 없어서 시간이 늦어지면 무조건 집에 간다. 겨우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일 뿐인데, 인적이 드물고 가로등도 약해서 어두컴컴한 길은 은근히 무섭다. 혹시나 이상한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고개를 푹 숙이고 최대한 빨리 캄캄한 어둠속을 헤쳐나간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앞이 환해져서 올려다보면 등불처럼 길을 밝히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메가박스 입구의 조명, 하나는 그 건너편의 거대한 전광판이다. 신촌에서 이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 둘이 밤에 얼마나 눈이 부시는지. 게다가 그 지점부터는 기분탓인지, 가로등도 미묘하게 더 밝은 것 같다. 무슨 헨젤과 그레텔이 빵 조각 대신 빛 조각을 길 따라 놔준 것 같이 거리를 밝혀준다. 여기까지 오면 긴장이 풀리고 훨씬 더 편안한 마음으로 집까지 갈 수 있어서 항상 고마웠다. 전생에 나방이었나, 밤에 빛나는 것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너무 새벽감성이 돋는 이야기들만 한 것 같아 이번에는 밤과 관련이 없는, 혼자 산다고 외로워 보이지 않는, 좀 더 밝고 재미있는 추억을 나름의 귀여운 마무리로 추가해본다. 지금의 쉐어하우스에서 하우스메이트들 중 내가 가장 막내였을 때의 일이다. 나는 자취 할 때 음식물 처리가 어려워서 케이크를 잘 먹지 않았다. 생크림이 그릇을 기름지게 만들어 닦기도 힘들뿐더러, 한번 먹고 남으면 그 후에 아무도 먹질 않아서 결국에는 버리게 되는 것이 케이크다. 이런 이유로 나는 케이크를 사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우스메이트 언니들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내 생일은 그래도 좀 특별하게 축하해주고 싶었었나 보다. 생일 날 밤에 한 언니가 갑자기 야채곱창 사왔다며 나와보라기에 방 문을 열었더니, 눈앞에 이것이 있었다. 그와중에 밥은 참 평평하고 예쁘게도 담았다.

[캡션] 자취생의 이야기 보따리
하나. 신촌아리수스트로공연장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31-119
둘. 언제나 좋은 벗 (현재 “제주도로담”)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104-19번지 1층
셋. 메가박스 신촌점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로 30 신촌민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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