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 신촌사람색
당신에겐 신촌의 사람들은 무슨 색깔인가요?

신촌의 첫인상은 내게 파란 빛이었다. 시원하고, 쿨함의 파란색이라기보단, 정 없고, 도도하고, 차가운 색이었다. 사실 원래 내가 상상한 신촌은 재미있게 보았던 ‘응답하라 1994’에서 모습이다. 대학생들이 서로 장난치며 거리를 걷고, 정나미 풀풀 풍기는 밥상을 차려줄 것 같은 하숙집이 많은 그런 생기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잠깐 경유해서 둘러본 신촌은 그렇지 않았다. 그때 내가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초점 없는 눈빛과 웃음기 없는 사람들의 표정, 바쁜 발걸음. 그 모습은 신촌의 사람들에 대해 바뀐 생각을 쓰는 지금도 아직 깊게 박힌 첫인상처럼 남아있다. 첫인상은 두 번째 갔을 때도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신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너한테 신촌은 어떤 느낌이야?”
어떤 이에겐 신촌은 한때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이 모여져있는 동네였고, 어떤이에겐 시끌벅적하고 정신없는 동네였다. 또 어떤 이에겐 신촌만의 흥이 있다며, “신촌의 바이브를 느끼러 가자”라며 예쁘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출동하러 가는 동네였다. 이 대답으로도 내가 가진 신촌에 대한 색깔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파란색에 시끌벅적한 소리만 더해진것 같았다. 나는야 ‘잔치’ 피플팀 에디터, 신촌의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아야 했다. “저는 신촌 사람들은 차갑다고 생각해요, 첫인상이 차가웠거든요”라고 신촌의 외부인이랍시고 단정 지으며 글을 끝내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하면 신촌 사람들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았다. 잔치 사람들만 보더라도, 다들 그들만의 따뜻함이 느껴져서 친해지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신촌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했다. 거절됐다. 신촌 사람에 대한 막막함이 이제는 스트레스 느껴지던 중, 배고픔에 못이겨 친구가 추천한 밀크집가게에 들어갔다.
연남의 한 밀크티 집. 그 이름은, “The AllEY”
당도와 우유와 얼음을 입맛대로 골라서 주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 가게를 둘러보았다. 유독 열심히 일하는 알바생이 눈에 띄어서 손님이 점점 없어지자 알바생에게 쭈뼛쭈뼛 다가가서 간단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신촌 사람이랑 얘기해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혹시 신촌에 거주하셔서, 이 동네에서 일을 하고 계신 건가요?
아니요, 제 집은 강서구 쪽인데, 카페 본사에서 여기로 배치해 주셔서, 여기서 일하게 됐어요.
저는 ‘공차’라는 카페에서 일했을 때 밀크티 정말 많이 마셨었는데, 혹시 이 카페에서 좋아하시는 음료가 있으신가요?
저는 우롱 밀크티 먹어요, 아 그러면 아까 블랙 밀크티 시키셨는데, 입맛에 괜찮으셨어요??
‘어머… 따뜻한 사람이잖아?’
네..! 맛있었어요. 고를 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웃음) 혹시 일하면서 힘드신 건 없으신가요?
네. 딱히 없어요. 오히려 일 마치고 집 돌아갈 때마다 ‘아 손님한테 조금 더 잘해드릴걸’이라고 생각해요.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얘기하다 보니 제가 아르바이트할 때 생각도 나고, 알바생이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 하시는 모습에 본받아야겠단 생각도 들었어요.
아 답변을 제대로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감사합니다.
따뜻한 내용의 답변과는 달리 내가 다가갔을 때 이 분은, 처음 본 나를 경계하셨고, 이렇게 쓰인 글은 어디에 올라가는지, 어떤 형식으로 올라가는지 재차 확인하셨다. 성함도 여쭤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나 같아도 그럴 것 같았다. 그래서 10분 전에 처음 본 ‘나’란 사람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조금만 들려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나는 나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저는 알바 할때 그랬었는데요~”, “저는 학교 주위에 살아서, 거기서 일했었어요”, “저는 그런 그런 손님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요,, “. 그렇게 10분채 안되는 인터뷰를 하니 이 분은 일할 때 개인주의, 자본주의, 코로나 주의 사회에서도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따뜻하다….’
따뜻하네라는 말이 아직은 성급할 수도 있지만 나의 신촌은 파란색에서 따뜻함의 주황색으로 조금씩 물들고 있었다.
이틀 후, 나는 또 신촌을 찾았고, 신촌 주위를 돌고 돌고 돌아 연남동에 위치한 어느 한 향수 가게를 발견했다.
“Leaumagique(로매지크)”
그곳은 손님의 이미지에 맞게, 향수를 만들어 주는 곳이었다. 향수 만들어주시는 분은 너무나 밝았고, 친절했다. 나는 대뜸 ‘인터뷰’ 레이더가 켜졌고, 질문을 했다.

이미지를 보고 향수를 추천해 주고 만들어주시는 게 정말, 신기한 것 같아요. 어렵진 않으세요?
오히려, 그 손님에 대해서 모르니까 더 직관적이고 객관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친구들이라면, 그 사람의 성격을 향에 넣게 되니까 더 어려워요. 여자분들은 보통 옷 입는 스타일이나, 메이크업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이미지가 나와요. 그래서 저는 오늘 핑크색을 입고 있네요.(웃음) 어려 보이려고.
정말 나는 이 답변을 듣고 10초 동안 깨달음의 ‘아~’를 연발한 것 같다. 이미지와 성격을 분리한 게 나에겐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자신의 지향점이 드러냄으로 표현된다는 것도 그럴 듯 했다.
제가 예전에, 향 맡을 때 코가 쉽게 피로해지니까, 커피 냄새를 맡으면 괜찮다고 들었었는데, 혹시 그래서 저기 커피콩 놔두신 거 맞나요?
그게 강한 향을 계속 맡다 보면 힘들어지는데, 익숙한 향을 맡으면 다음 향을 맡기가 쉬워져요. 그래서 시향할 때 우리가 흔히 맡는 커피향이나, 옷 냄새 이런 게 도움이 되죠.
일하실 때,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 재미있게 일하시는 것 같아요.
(웃음) 돈 버니까요..
아~ 그럼 힘드신 건 뭐예요?
사실 그것도 없어요. 저희 가게는 진상손님이 없어요. 저희한테 안 좋게 해봤자 좋은 향이 나올 수가 없으니까요. 대신 여자분들 중에 저한텐 편하게 다 보여주시는데, 남자 직원이 있을 때 마스크 벗기가 꺼려져서 절대 안 내리시는 경우도 있어요. 대신 핸드폰 사진을 보여주시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그것도 사진이다 보니 이미지랑 완전히 같다고 볼 수 없으니까요. 이래도 저래도 일이니까 힘들지만 재밌어요.
그렇구나.. 진짜 곤란할 거 같은데 그럼 어떡해요??
그러면 이미지 보고 제향할 때도 있지만, 원하시는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 드리기도 해요. 남자분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요청하실 때도 있어요. 자신이 조금 더 강한 남자 이미지를 원하시거나 아니면 부드러운 이미지를 원한다고 하실 때 그에 맞게 향을 만들어드리죠.
이 분은 이전에 만났던 분과는 다르게,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해주시는 분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걸 서슴없이 말해주고, 친한 동네 언니같이 대해 주어 나까지 ‘아 사람 원래 아는 사람이었나’ 할 정도로 만드는, 그냥 보기에는 일하시는 게 즐거워 보이는 분이었다. 정말 나에게 어울리는 향수, 나를 위한 향수를 만들어 주려는 게 보이는 분이었다.
‘오… 인간미 있다’
어느새 나는, 신촌에 있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따뜻한 색의 셀로판지를 한 겹씩 덧대는 것 같았다. 어떤 친구가 주위에 있는지, 그 사람들과 어떤 경험을 신촌에서 했는지에 따라 저마다 다른 색감으로 신촌을 바라보겠지. 당신이 보는 신촌은 어떤 색감의 사람들로 물들어 있나요?
지금 제겐 따뜻한 파란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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