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 이번 열차는 -행 열차입니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한다. 어느새 졸업이라는 단어가 멀다고 느껴지지 않게 된 에디터 또한 마찬가지이다. 잔치에 지원한 이유도, 한 학년을 남겨두고 휴학을 한 것도, 모두 내가 어디로 향해야 할지 확신이 없어 결정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휴학한 후, 무엇이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등록한 영어학원을 가기 위해 지하철을 기다리며 전광판만 바라보았다.
“방화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한동네에서 자라온 에디터는 똑같은 목적지를 향하는 지하철을 수없이 많이 타고 다녔다. 문득 수십 년간 주어진 한길만 쭉 달리는 열차의 상황이 무엇을 할지 몰라 방황하는 에디터의 모습과 너무 상반되어 보였다. 쟨 지겹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열차가 부럽기도 한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내 주변에도 저렇게 한길만 쭉 걸어가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길만 걸으면 무슨 기분이 들을까? 다른 생각을 할 필요는 없어 편하고 좋을까? 아니면 때론 포기하고 싶었을 때가 있었을까? 이런저런 물음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문득 그 친구가 궁금해졌다.
신촌 근방에서 어느덧 5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 이 친구는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특이한 사람도 아니다. 이 글은 어찌 보면 평범한 스물 초중반 대학원생의 이야기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은 삶을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바쁜 와중에도 인터뷰를 흔쾌히 응해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여러분도 이 주변 신촌사람의 이야기를 흥미있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현재의 김채린은.
Q. 너의 소개를 간단히 해줄래?
–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를 졸업했고, 지금은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인 스물네 살 김채린. 음…야망이 큰 사람. 10년 이내에 무용교수가 되어 한남동 UN빌리지에 살 예정이야. (웃음)
Q. 요즘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가 궁금해.
– 일단 평일 오전에는 카페 알바를 하고, 오후에는 대학원 수업을 들어. 원래 12학점이 최대였는데 이번에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강의 때문에 3학점 더 들을 수 있거든. 많이 들어서 조금 버겁기도 한데 나중에 졸업 논문 쓸 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꽉 채워서 듣고 있어.
그 외에도 수업 조교도 하고, 레슨 두 개, 격주에 한 번씩 한국무용 원데이 클래스를 열거나 무형문화재 처용무 이수를 위해 센터에 가서 배우고 있어. 11월에 있을 공연 연습 및 개인 춤 연습도 일주일에 서너 시간씩 홀을 빌려서 하고 있어. 그런 와중에 틈틈이 과제와 시험 준비도 하고 있지.
대부분 돈을 벌거나, 학교일 또는 춤 연습을 번갈아 하면서 톱니바퀴 돌 듯이 사는 것 같아. 그래서 학기 중에는 시간을 내서 친구들을 만나기 너무 어려워. 친구들이 언제 만날 수 있는 거냐고 오늘도 두 명이나 연락이 왔어.
Q. 너무 힘들겠는데? 지금 안 쓰러진 게 신기할 정도야. 그럼 이렇게 바빠서 힘들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너에게 행복한 순간은 언제야?
– 솔직하게? 월급 들어왔을 때(웃음). 너무 솔직했나…
나는 옷이나 가방, 신발등 액세서리에 관심이 많아. 이런 것들을 잘 매치시켜서 딱 맞아떨어지게 코디했을 때가 행복해. 그래서 자주 날 위한 선물을 꼭 해. 아, 얼마 전에 카메라를 샀는데, 무용 연습하는 모습을 찍어 카메라를 보고 확인할 때도 행복해. 잘 샀구나 하면서 (웃음).
그리고 나는 남한테 선물하는 것도 좋아해. 내 돈으로 그 사람한테 어울리는 무언가를 사서 그 사람이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행복해하는 것 같아. 그래서 얼마 전에도 엄마에게 줄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
Q. 무용 말고도 너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중 하나에 아무래도 학교도 포함될 것 같은데, 그 주변에 너만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나 추억이 있을까?
– 일단 카페? 나는 카페인 없이는 일상생활 불가거든. 하루에 커피 한잔에서 두 잔은 필수야. 학교 다닐 때 도 학교 근처 카페는 꼭 들려야 하는 곳이었어.
그리고 아마 이건 무용과니깐 가질 수 있는 추억이라 생각해. 대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도 자주 공연을 올렸었어. 그래서 동기들하고 공연이 끝나면 뒷풀이를 주로 신촌에서 하거든. 진한 공연 분장도 안 지우고 신촌의 밥집이나 술집에 가서 놀았던 적이 많았지. 그 때마다 항상 재밌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또 아까 말했듯이 나는 액세서리를 좋아한다 했잖아. 내가 스트레스 받을때는 종종 쇼핑으로 풀 때도 있거든. 근데 이대 앞에 딱! 내가 좋아하는 액세서리집이 있어. 거기 진짜 많이 갔었는데…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학교 갈 일이 없네. 이번에 봐야 하는 시험이 대면시험이라 오랜만에 학교 갈 것 같아.
Q. 코로나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하다보니 진짜 학교 갈 일이 없겠다. 이 상황이 나아지면 제일 가고 싶은 곳이 있어?
– 신촌에 정말 맛있는 디저트 가게가 있어! 너무 맛있어서 지인하고 신촌에서 약속을 잡을때면 꼭 거기를 코스 중 하나로 정하곤 했어. 코로나때문에 지인들도 안 만나고 온라인 수업을 하니깐 한동안 신촌에 갈 일이 없는데 이제 조금 잠잠해졌으니 조만간 거기를 꼭 찾아갈 예정이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포장해와야지!

어렸을때 부터 무용과 함께한 채린이.
Q. 아마 네가 나를 만나기 전부터 무용을 배우고 있었지? 어떻게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었어?
– 맞아. 내가 4살부터 무용을 시작했어. 너도 알다시피 어렸을 때 매우 활발하고 다소 억센 성격이었기 때문에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할 만할 곳이 필요했어. 엄마는 내 이런 끼를 어딘가에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어렸을 땐 통통한 편이 었기도 하고. 처음에는 태권도를 할 뻔했어. 아마 그때 무용이 아니라 태권도를 배웠으면 지금쯤 태권도 유공자가 되었을지도 모르지(웃음).
다행히 차분하면서 몸을 쓸 수 있는 무용학원에 다니게 되었어. 그렇게 3년을 재미로 다니다가 원장선생님이 나에게 재능이 있다는 거야. 그래서 7살 때부터 작품을 받아 콩쿠르를 나가면서 한국무용을 전공으로 시작하게 되었어.
Q.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시작해왔고, 대학 생활을 끝낸 지금까지 쭉 한국무용을 하고 있잖아. 그동안 다른 걸 해보고 싶다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어?
– 사실 나는 대학교 오기 전까지는 내가 한길만 가고 있다는 게 오히려 좋았어. 왜냐면 다른 친구들은 꿈이나 진로를 정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데에 비해 나는 목표가 확실히 정해져 있었거든. 한국무용으로 갈 수 있는 최고의 학교 이화여대에 들어가는 것이 내 목표였고, 그것만 바라보면 되니깐.
근데 오히려 대학을 와서 고민이 생겼어. 현실적으로 예술을 해서 돈을 많이 벌기는 어렵고, 워낙 예술 분야가 자수성가가 힘드니깐. 또 주변으로부터 예술 쪽은 연줄도 필요한 편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집에서 받쳐주면 더 좋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거든. 내가 그동안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무용을 해왔는데, 정작 졸업 후 뭘 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되더라.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어. 실력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어.
한편으로는 무용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다른 것을 해도 잘했을 것 같은데 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 라는 생각도 대학에 와서야 들었어. 근데, 그럼에도 나는 한국무용이 너무 좋아. 죽을 때까지 이걸 하면서 살고 싶은 정도야. 그래서 ‘다른 걸 해야겠다’라는 생각은 크게 안 하고 있어. 이제는 ‘한 우물 팠으니 여기서 끝을 보겠다.’ 이런 느낌이야.
Q. 얼마 전 내가 너의 원데이클래스를 듣고 춤선에 감탄하며 디테일한 부분들이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 또 저번에 내가 공연 보러 갔다가 네 표정 연기에 감탄한 거 알지? 그래서 말인데 네가 공연할 때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특히 중요시하는 게 있어?
– 내가 하는 게 순수예술이잖아. 순수예술은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에 어려울 때가 많아. 그래서 무용 전공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공연보다 일반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그래야 대중화도 가능하다고 생각해. 원래 작품은 열린 결말이라고 하지만 작품을 보고 어느 정도는 뭘 말하고 싶은지 예측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누군가 작품을 보고 ‘네가 이런 걸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라고 말해주면 성공이라 생각해. 그리고 그런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Q. 11월에 공연을 하는데 그게 너가 하고싶어서 한다 그랬잖아. 너가 공연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라고 새삼느꼈거든. 그럼 공연의 어떤 점이 특히 좋아?
– 나는 약간 관종의 DNA가 있는 것 같아(웃음). 춤을 출 때 혼자 추는 것도 좋지만 누가 나를 봐줄 때가 더 좋아. 그리고 나는 그때 더 잘한다고 생각해. 또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떨림, 관객과의 소통. 거기에서 느끼는 짜릿함이 있어. 그 공간에서 제한된 시간 안에 나의 에너지를 최대로 쓰는 것이 난 좋아. 또 공연하면서 창작실력을 키울 수 있는 점도 장점이고.
Q. 앞으로의 계획 또는 인생 목표가 궁금해.
– 일단, 내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생각이 제일 커. 20년 이상을 했는데 못 할 것도 없다 싶어.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시작했고, 어쩌면 이 전공을 하면서 갈 수 있는 최고의 학교들을 나왔고, 또 지금은 교육자가 되기 위해 준비도 하고 있고, 감을 잃지 않으려고 레슨이나 공연도 하고 있으니깐.
그리고 한국무용을 대중화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아. 지금 하는 원데이클래스를 키워서 방송 댄스처럼 대중들에게 한국무용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그래서 방학 때 아크로바틱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사람들이 발레나 현대무용에 대해서는 익숙한데 한국무용은 우리나라 춤인데도 잘 몰라. 무용전공이라 하면 발레 하세요? 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었어. 내가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봤는데 한국무용은 발레나 현대보다 큰 동작들이 없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해. 한국무용의 어르거나 정적인 동작들이 표현하기에는 더 힘들긴 한데,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확 띄는 큰 동작에 매력을 느끼는 거 아닐까. 그래서 아크로바틱이 위험하긴 하겠지만 배워서 작품에 적용해본다면 더 나은 작품을 만들 수 있거나 사람들의 흥미를 더 끌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어.
그 외에도 멋있게 늙고 싶어. 외적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멋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커서 빨리 성공하고 싶어.
Q. 한국무용이란?
– 제일 어렵다. 음…떼려야 뗄 수 없는 정이 많이 든 친구. 앞으로 나의 밥벌이를 도와줄 친구이기도 하며 많은 사람한테 가르치고 싶은 존재. 이 친구가 잘되었으면 좋겠어.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이 좋아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크지.

1년 전 빨잠 앞에서의 대학생 채린이. 앞으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기대된다.
인터뷰를 끝내고 내 앞에 앉은 친구는 다음 주에 제출할 과제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켜고 있었다. 친구의 한국무용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큰 줄은 예상하였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친구는 생각보다 훨씬 더 한국무용을 사랑하고 있었고, 아끼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자기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확실했었다. 너무 야망캐로 보이는 거 아니냐는 친구의 말에 나는 오히려 연신 멋있다는 말을 내뱉었던 것 같다. 또한 친구의 꿈을 옆에서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세시대라 불리는 요즘,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목표란 게 이룰 수도 있고, 바뀌기도 하며 때로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하니깐 말이다. 하지만 목표를 가지고, 이를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은 종종 필요하다. 에디터가 지금껏 수없이 타온 5호선의 열차는 방화역을 향해 달리고 있고, 이 글의 주인공인 그녀 또한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살아가고 있다. 에디터 또한 이들을 보고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 생각하며 오늘도 발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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