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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2020 · 10 · 12

신촌에 대한 두 편의 이야기와 네 개의 주석

Editor 왕 잔치

 삶의 경험을 담아내는 데 글만큼 정교하고 효과적인 도구가 있을까. 의도를 하건, 그렇지 않건 글에는 문투부터 글의 소재, 행간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삶과 생각이 여실히 녹아나지 않는 부분이 없다. 특히 허구와 익명의 보호막으로 무장한 ‘소설’은 작가의 다채로운 삶의 경험과 단상을 풍부히 드러내는 데 더없이 좋은 도구이다.

신촌이 그동안 적지 않은 문인들을 품어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나에게도 이제 꽤나 의미 있어진 공간인 신촌과 다양한 방식으로 인연을 맺었던 작가들의 소설이 문득 궁금했다. 작가들에게 울림을 주었던 건 신촌의 어떤 면모였을지, 그리고 그들은 그 울림을 어떻게 가공해 풀어놓았을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개중에서도 출판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그러면서도 신촌을 배경으로 사용한 작가들의 소설 두 편을 소개하며, 에디터가 경험한 신촌 이야기까지 한 데 풀어보고자 한다.

 

 

 

 

빛나-서울 하늘 아래 / 르 클레지오 / 서울셀렉션 (2017)

 

 

 200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라고도 불리는 작가 르 클레지오는 미국, 남미는 물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를 다니며 문화를 흡수했다. 특히 2001년 첫 방문 이후 수차례 한국을 오가고, 독학으로 한글을 익히는 등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그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지내며 신촌과도 남다른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서울에 대해 애정을 품은 그는 늘 서울을 무대로 하는 소설을 쓰리라 말했는데, “빛나-서울 하늘 아래”가 그 작품이다. 전라도 어촌 마을에서 갓 상경한 ‘빛나’라는 주인공을 내세워 ‘서울 하늘 아래’에서의 삶을 전개시키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작가의 눈에 비친 서울은 어떤 공간이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 홀로서기 – 혼자 사는 것, 그게 누구건 아무도 만날 필요 없이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이

 

일기장에 주절주절

 

 나는 고모 집을 떠나기로 했다. 살로메에게 받은 돈으로 신촌 근처 언덕배기 동네에 작은 방 하나를 얻었다. 출입구가 따로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집주인을 만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지하에 있는 방이었다. 화장실에는 비닐 커튼이 낡은 세면대와 변기 사이에 쳐져 있었다. 약간 어둡고 습했지만, 순전히 내 집이었다. 더는 사촌 동생의 투정이나 고모의 잔소리, 고모부의 코 고는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됐다. 학교 수업을 들으러 갔고, 먹을 것을 샀다. 콜라와 담배도 샀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 혼자 사는 것이, 그게 누구건 아무도 만날 필요 없이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다. 친구가 없어 외롭다고 투덜대는 여자아이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혼자인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 아이들은 모른다. 남자친구도 필요 없었다. (빛나, p. 42)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한 주인공 ‘빛나’는 신촌에 자신만의 집을 구함으로써 홍대에 위치한 고모 가족의 억압에서도 벗어나 ‘완전히 혼자’인 삶을 만끽한다. 흔히 ‘청춘’을 대변하곤 하는 신촌은 빛나뿐 아닌 많은 이들에게 익숙했던 곳을 떠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독립은 아니지만, 나에게 역시 신촌은 처음으로 홀로 섬, 혹은 홀로 삶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소설 속 빛나와 달리 처음의 나는 행복보다도 훨씬 큰 공허함을 느꼈다. 누구보다도 혼자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해왔는데, 근처에 마음 터놓을 사람 하나 없이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음을 느꼈을 때 몰려왔던 외로움과 공허함은 당황스러우리만큼 컸다. 결국 몇 날 며칠을 멀쩡한 방을 두고 본가로 내려가 있기 일쑤였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재수를 하고 있던 친구에게 전화해 차라리 네가 부럽다며 망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머지않아 같이 다니는 친구 무리가 생기긴 했지만, 원체 많은 것에 대해 맘속 깊이에서 낯을 가리던 그때의 나는 쉽사리 뿌리 깊은 안정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첫 학기는 그저 그렇게 조금 외로운 시간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슬슬 신촌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곁을 내어주게 된 후 부터는 혼자라서 만끽할 수 있던 자유가 실로 소중히 느껴졌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신촌에서 저마다의 홀로서기를 하는 무수한 모습의 ‘빛나’들이 너무 외롭지 않기를, 그리고 저마다의 속력을 인정하고 마침내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 신촌의 비 – 거리에서는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걸었다.

 

발목까지 빗물이 차오른 신촌의 찻길

 

 갑자기 장마가 왔다. 집중호우가 도시를 강타했고, 강물이 범람하여 길거리에 물이 넘쳤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시골에서는 비가 와도 땅이나 늪에 고인 물이 금방 땅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 신촌은 지구의 종말을 연상케 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건물 꼭대기는 보이지 않았고, 하수구가 터져 물이 역류하는 바람에 사거리는 물에 잠겼다. (중략) 거리에서는 신발을 벗어 손에 들고 걸었다. 이럴 때는 시골 마을에서 자란 사람이 유리하다. 맨발로 다니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 친구들은 신발의 높은 굽이 진흙에 빠진 바람에 뒤뚱거리거나, 샌들을 신고 얼음 위를 걷는 새처럼 두 팔을 휘젓다가 미끄러지기도 한다. 나는 비가 올 때면 언제나 맨발로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발가락 사이로 물이 밀려들어 오는 느낌이 좋았다. 유년기 때의 감각을 되찾는 기분이었다. 이 장마철이 내게는 휴지기였다. 스토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빛나, p. 117)

 

 빛나의 신촌 홀로서기에 위협을 가했던 스토커는 갑작스럽게 시작된 장마에 자취를 감추었고, 이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남들에게는 전쟁과도 같던 장마 기간을 마음 놓고 유년기를 추억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기에 충분했다.

 

  하늘에 구멍 난 듯 쏟아지는 빗물을 효과적으로 빨아들일 토양이 없다는 이유 외에도, 지대가 낮다는 신촌의 지형적 특성 덕분에 장마철이면 물바다가 된 신촌의 모습을 마주하기는 어렵지 않다. 특히 신촌에 입성한 첫해, 이대 정문을 나와 신촌으로 가던 길에 마주했던 기록적인 폭우가 생생히 기억난다. 잠시 신촌기차역 계단으로 비를 피해 섰을 때, 한눈에 내 눈길을 잡아 끌만큼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양손에 신발을 든 채 맨발로 물에 잠긴 신촌 거리를 활보하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아니 다 큰 어른들이 길바닥에서 저게 뭐 하는 거지?’ 

 

 처음엔 잘못 봤나 싶어 눈을 크게 떠 다시 확인도 해보고,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에 (비)웃어도 봤는데,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어쩐지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당시 나는 공부도 인간관계도, 심지어 노는 것조차도 유독 힘주며 긴장하고 살았는데 -물론 그런 삶의 자세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닐지라도- 내 삶에서 때로는 맨발로 신촌 거리를 활보할, 그만큼의 자유 정도는 끼어들 틈을 줘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생각만큼은 오래 남아 지금까지도 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에 모종의 변화를 일구어 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어쩌면, 빛나에게만큼이나 나에게도 신촌의 비는 긴장으로 바짝 얼어붙은 삶의 숨통을 틔우는 일종의 휴지기가 아니었나 싶다.

 

 

 


신촌의 개들 / 이상운 / 문학동네 (2015)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작가 이상운은 죽음을 목전에 둔 고령의 아버지의 곁을 지키던 시절에 이 작품을 썼다. 이 글을 통해 그는 신촌, 특히 가상의 카페 ‘신촌의 개들’이라는 공간으로 표상되는 그의 정열적이었던 청춘을 회고하며, 결국엔 죽어버린 그 청춘을 애도한다. 신촌을 ‘황지’, ‘내장’, 혹은 ‘똥’과 같은 온갖 황량한 것들에 비유하는 것도 특징적이나, 그가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 마냥 우울하고 절망적으로만 읽히는 글은 아니다. 그가 ‘희극적으로, 우울하게, 힘겨워하면서, 통쾌하게’ 써 내려간 이 글이 저마다의 청춘을 떠올리며 읽을 독자들에게 어떻게 가닿을지 궁금하다.

 

 

 

 

# 신촌 거리에서 – 그저 잘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때로 크나큰 위안이 된다.

 

  가끔은 사람과 술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아

 

 나는 신촌이라는 이름의 이 거대한 똥의 거리에 서서, 날마다 모든 것들이 몰개성의 균질한 똥이 되어가고 있는 이 망각의 거리에 서서, 그날 밤 우리는 다해씨가 폭풍처럼 토해내는 울분에 찬 얘기들을 최상의 성의를 가지고 잘 들어주었다고, 그리고 개 주인이 나를 비롯한 모든 청춘들에게 증명해 보였듯이,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그저 잘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때로 크나큰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도 증명해 보였다고 생각했다. (신촌의 개들, p. 59)

 

 내향형과 외향형 인간의 구분은 에너지를 얻는 것이 사람을 만나는 것을 통해서인지, 혹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냄으로써 인지에 따라서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꽤나 내향형 인간인 나조차도 우울을 딛고 일어서는 데 있어 다른 이들로부터 오는 힘의 효용을 긍정할 수 있게 된 신촌에서의 경험들이 여럿 있다. 신촌 길거리, 토해내는 울분, 결국에는 위로 … 그리고 이와 더불어 어렵지 않게 떠오르는 술. 이에 대해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하루가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건 없건 간에, 불규칙하지만 나름의 주기를 갖고 나를 찾아오는 우울의 시기가 있다. 평소 같았으면 침대에 하염없이 누워 혼자 더 땅굴을 파고 들어갔을 나이지만, 그날따라 혼자서 끙끙거리기 싫어서 기숙사 로비에 나와 우울한, 아마 처량하기까지 했을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친구가 내 모습을 마주했고, 무슨 일인지 묻는 그녀의 말에 나는 앓는 소리를 하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때는 오후 11시 반경, 기숙사 문이 닫히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고 추진력이 좋은 그 친구는 다른 기숙사 친구 두 명을 더 불러 마지막 하행 셔틀에 몸을 실었다. 그동안 쉽사리 터놓지 못했던 고민거리들을 술의 힘을 빌려 털어놓고, 토해낸 말들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짐을 느끼고, 결국 기분이 전환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울분을 뱉어내는것, 그리고 그것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곁에 둔다는 것은 분명히 엄청난 위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삶의 모든 문제를 한큐에 해결해버리고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중요한 것은 크고 작은 걱정과 우울이 도사리고 있는 삶의 여로를 함께할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그것들을 아마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어쩐지 벌써 든든한 기분이다.

 

 

 

# “청춘이 중년을 생각하지 않듯이 중년은 결국 청춘을 버리게 되어 있어.”

 

 이제는 내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청춘이 중년을 생각하지 않듯이 중년은 결국 청춘을 버리게 되어 있어.” (신촌의 개들, p.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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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거짓말쟁이들이 떠민 대로 대학에 들어와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유토피아 따위가 없음은 물론 마음에 와닿는 벅찬 강의 하나조차도 없는 황무지였는데, 말할 것도 없이 내가 그렇게 절망한 것은 전적으로 내가 아직 터무니없이 미숙한 바보 멍텅구리였기 때문이다. 원래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결국에는 티끌조차도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그때의 무지한 나는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지 그 무지한 거짓말쟁이들을 성토할 줄만 알고, 그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가련한 존재들인지는 아직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신촌의 개들, pp.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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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청춘을 죽였다. (신촌의 개들, p. 145)

 

 “신촌의 개들”에서 인물들은 기성세대와 사회에 대해 성토를 벌이며 그들만의 작은 무대를 올리던 열정 가득한 그들의 청춘을 결국 져버리고 만다.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양한 습관에 묶여 있어서, 그리고 이 이른바 사회라는 체제에 길들여지고 갇혀 있어서’ 라는 이유로. 물론 내 청춘이 소설 속 이들의 것들과 꼭 같은 모양새라고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회를 지배하는 갖가지 지배 규범들로부터 이 정도나마 자유로울 수 있으며, 때로는 꽤 무모한, 그리고 꽤나 자주 어리숙한 언행을 일삼는 내 지금의 모습은 소설 속 그들의 청춘과 겹쳐 보였다. 현재로서는 내 삶의 전부이고 그래서 절대 손에서 놓쳐버릴 것 같지 않은 이 소중한 시간들이, ‘결국에는 티끌조차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 을 혹시라도 느끼는 어른이 된 언젠가는 스스로에 의해 버려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괴로웠다. 동화 같은 핑크빛 미래를 꿈꾸지는 않더라도, 이 순간을 의미 있는 기억으로 추억할 수 있는 행복한 어른이 되기를 바라본다.

 

 

 

 ‘신촌’하면 떠오르는 동적이고 분주한 이미지만큼이나 복작복작한 삶들이 곳곳에 자리한 이 도시. 지금까지 두 편의 소설과 에디터의 이야기를 한 데 엮어 정리해보았다. 이곳에서 저마다의 일상을 일구어가고 있을 당신에게 신촌은 어떤 곳인지,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 

 

 

 

 

* 글의 제목은  “남원고사에 관한 한 개의 이야기와 세 개의 주석”이라는 김연수의 소설 제목을 차용했습니다.

왕 잔치
AUTHOR PROFILE
왕 잔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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