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9. 신촌 사람들 관찰일지
2016년. 갓 상경한 일명 천생 ‘지방러’인 내게 신촌은 굉장히 이상한 공간이었다. 2월 초, 첫 오리엔테이션을 듣기 위해 짐가방을 끌고 도착한 신촌역에는 지금은 사라진 맥도날드가 있었고, 어찌어찌 지도앱을 켜고 찾아 올라온 출구를 나서자마자 싸늘한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차가운, 약간 푸른빛이 섞인 회색빛으로 인식된 그 동네 사람들 중 그 누구도 트렁크 하나 끌고 두리번거리는 여자애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고 스쳐들 갔다. 그랬기에 내게 신촌과 신촌 사람들의 첫인상은 ‘차갑다’였다.
2017년. 1학년은 전부 송도로 유배(?) 보내지는 연세대생이었던 나는 2학년이 되었고 이제 정말 ‘신촌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아직은 조금 싸늘하지만 처음으로 신촌 캠퍼스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기대감과 설렘 때문인지, 신촌은 좀더 따뜻하게 느껴지고 좀더 ‘내 동네’ 같았다. 1년간 오고가며 이제는 다소 익숙해진 건물들, 혹은 때때로 캠퍼스와 학교 근처 신촌 동네에서 마주치는 지인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1년 간 잠깐씩 오고가며 보던 신촌의 사람들은 그리도 차가워 보였는데, 조금씩 그들의 다른 면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연세대학교 앞에는 굉장히 큰 횡단보도가 있다. 평소처럼 등교하던 흔한 아침, 뭔가 배달 중인 것 같던 오토바이가 쓰러졌다. 신호가 다소 얼마 남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제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오토바이 운전자분께 다가가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작은 초록색 세모들의 불이 꺼져가던 그 순간, 그들은 일면식도 없는 운전자 분을 돕고 있었다.
신촌은 굉장히 이상하다. 신촌 사람들도 굉장히 이상하다. 마치 제시간 안에 정해진 장소에 도착해야 하며, 그 누구도 자신을 방해할 수 없다는 듯 굳은 낯빛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신촌 거리의 사람들. 그들은 아는 사람을 만나면 활짝 웃으며 걸음을 늦추고, 곤경에 처한 낯선 이들을 발견하면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그들을 일으켜 세우고 돕는다. 그저 기계적으로 음식을 팔고 있는 것만 같은 포장마차 사장님들도 막상 손님이 다가가면 푸근한 미소를 짓거나, 여전히 굳은 얼굴이면서도 무심하게 음식을 조금이라도 더 담아주시거나 더 챙겨주시려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냉정하고 차가운 척하던 그들은 사실은 쑥스러움에 그저 가면을 쓰고 있었던 걸까.
처음 신촌을 접한 2016년 1년, 신촌에 살며 신초너 중 한 명으로 지낸 2017년부터 2020년 대략 4년. 문득 학교를 떠날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주의깊게 들여다 본 적 없던 그들이 궁금해졌다. 신촌 거리를 걷고, 그 거리에 머무르며 부딪치는 수많은 ‘신초너’들이. 이번 글은 신촌 거리의 그들을 관찰한 일종의 일지라 할 수 있다.

오늘따라 텅 빈 서대문03 버스
우리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요
출, 퇴근 시간이면 미어터지는 서대문03. 그 시간대를 피하면 대체로 한가한 이 마을버스에는 수많은 신초너들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연희동의 화교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타거나, 시험과 과제에 찌든 대학생들이 타기도 하고, 때로는 출근길의 직장인들이, 혹은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타기도 하는 마을버스. 그들은 때때로 함께 탄 지인과 웃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네모난 자기만의 작은 세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멍하게 창문 밖을 바라보고, 나처럼 함께 탄 이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이 버스에 탄 모두가 명확한 행선지를 가지고 있을까. 집으로 가는 길, 가끔 길을 잃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면 다른 이들은 자신이 가는 길을 명확히 알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익숙한 풍경을 스쳐 (이제는 순서마저 외워버린) 연세대 정문앞, 세브란스 병원 앞, 신촌기차역, 신촌자이엘라, 구녹색극장(신촌 아트레온), 신촌역2호선을 지나며 하나 둘 버스를 떠나가고 각자의 길을 향해 간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이 시대의 김첨지 사장님이 계신 떡볶이 포장마차
연세대학교 공학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에 위치한 이 포장마차는 의외로 연세대생들 중에서도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언제나 손님 두세명이 앉아서 떡볶이를 먹는 이곳은 어릴적 학교 앞에 있던 포장마차들을 생각나게 하는 비주얼이다. 떡볶이 3천원, 순대 3천원, 튀김 3천원, 기타 등등. 전형적인 떡볶이 포장마차인 이곳은 들어가면 주로 여자 사장님께서 주문을 받으신다.
살풋 찌푸린 미간, 굳은 표정인 사장님은 주문을 할 때도 으레 퉁명스러운 말투로 주문을 확인하시곤 떡볶이를 푸고, 순대를 써신다. ‘아, 오늘 조금 안 좋은 일이 있으셨나?’ 싶다가도 정작 순대를 자꾸 더 꺼내서 써시고, 접시가 넘치도록 담는 걸 보면 약간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 음식을 건네받고 포장마차를 나서며 ‘안녕히 계세요’ 인사하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시며 잘 가라고 해주신다. 이게 바로 흔히들 말하는 김첨지 같은 사람이 아닐까. 평소 포장을 해 가는 편이지만 하루는 그냥 앉아서 떡볶이를 먹은 적이 있는데, 접시가 넘치도록 담으면서 계란도 실한 걸로 한 알 꼭 담아주시는 것을 보며 확신했다. 아, 이분도 어쩔 수 없는 ‘신촌 사람’이구나.

오늘도 어김없이 누군가 꽃을 사고 있다
누구에게 건넬 꽃일까?
작년쯤인가 신촌역 부근에서 연세대학교 정문 맞은편 작은 공간으로 옮기셨다는 사장님. 꽃이 싼 편이고 인심이 후하셔서 돈 없는 대학생들에게 꽃 선물할 일이 생기면 제격인 곳이다. 친구들이 동아리에서 공연하는 걸 보러 갈 때면 손이 허전하지 않게 갈 수 있도록 해준다. 매일 다른 꽃이 들어오는 이 가게를 스쳐갈 때면 매번 다른 손님이 와서 꽃을 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친구의 공연을 보러 가는 대학생이기도, 자식의 공연을 처음 보러 가는 쑥스러운 부모이기도, 사랑하는 연인에게 꽃을 선물하기 위해 온 수줍은 사람이기도 했다.
꽃집의 사장님은 유독 대학생들에게 인심이 후하시다. 친구 공연을 보러 간다며 ‘(얼마)내로 만들어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물으면 ‘가격을 잘못 들으신 건가?’ 싶을 정도로 꽃을 담아둔 통에서 꽃을 건지신다. 그리고 굵직한 꽃더미를 포장비닐로 감싸며, 훈계 아닌 훈계를 하신다. ‘학생들은 돈 아껴. 젊을 때는 아껴야 해.’라며 벌써 몇 년씩이나 입고 계신다는 옷을 보여주신다. 알뜰하게 살라며 정작 본인은 꽃은 아낌없이 그러쥐시며, 꽃과 어울리는 리본을 잘라 감으시는 사장님. 굵직한 꽃다발을 보며 감탄하면, 이런 미술쪽을 공부하셨다며 자랑스럽게 웃으신다. 완성된 꽃다발을 건네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엄마 같은 잔소리(?)에 건네지는 돈은 몇 푼 되지 않는다. 사실은 꽃다발을 산 게 아니라, 돌아서서 가는 순간까지 배웅해주시는 사장님의 웃음과 따뜻함을 산 게 아닐까.

만남 자체가 줄어든 지금, 이곳도 텅 비어버렸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만 해도 항상 북적이던 이 기묘한 공간에는 항상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다. 그들은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정작 그곳에 앉아본 적 없는 나는 그들을 보며 상상에 빠진다. 예컨대 저기 혼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는 사람은 30분째 오지 않는 친구를 기다리며 그를 재촉하고 있고, 반대편에 앉아 서로의 어깨에 기댄 남자와 여자는 식사를 하려던 식당 웨이팅 시간이 너무 길어 잠시 앉을 곳을 찾아온 연인이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 시간이 되면 슬쩍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곳을 떠나간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흘낏 쳐다보고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머무르는 사람과 떠나가는 사람, 그리고 스쳐가는 사람들. 신촌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

빨잠에서 찍는 사진은 저 각도로 찍는 게 국룰
그때 그 감성으로, 이번엔 혼자 한 장 찰칵
과장 좀 보태어 신촌이 주 활동구역인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빨간 잠수경은 만남의 광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흔히 줄여서 ‘빨잠’이라 불리는 그 곳 앞, 옆, 뒤, 그 주위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항상 북적인다. 싸늘한 겨울 공기가 가득했던 2016년 겨울의 신촌, 홀로 갑자기 낯선 땅으로 던져진 동향 친구들과 빨잠 앞에서 모였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이제 막 같은 학교의 같은 학번 새내기가 되었다는 공통점, 같은 지방에서 올라와 같은 말씨를 쓰고, 비슷한 환경을 경험했다는 공통점 등으로 낯섦과 어색함을 이겨내며 우리는 술기운에 달아오른 뺨을 하고선 빨잠 앞에 서서 다같이 사진을 찍었더랬다. 그 후 처음 생긴 과 후배들과 밥약속을 잡을 때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빨잠’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쭈뼛대며 지나쳐 가는 수많은 얼굴들을 바라보며 상대를 기다렸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빨잠 앞에서는 친구를, 연인을, 낯선 소개 상대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성인다. 나는 그런 그들을, 그들과 같이 누군가를 기다리던 과거의 나를 바라보며 빨잠을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책 읽는 아저씨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 나는 감히 이곳을 신촌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라 칭했다. 수업과 공부를 마치고 도서관을 나서, 어둡고 밝은 신촌 거리를 가로질러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오면, 이곳 홍익문고 앞에는 항상 버스킹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때때로 기타를 치던 이름 모를 외국인이기도 했고, 바이올린을 켜던 낯선 청년이기도 했다. 그럼 나는 집으로 가던 길, 출출한 배를 채우려던 생각을 접고 빵 한 조각 대신 음악 한 조각을 사곤 했다. 서로 스쳐갈 뿐이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잠시, 혹은 버스가 여러 대 지나갈 만큼 길게 멈추어 서서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그저 낯선 타인이기보다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악을 향유하는 하나의 ‘집단’, ‘신촌 사람들’이라 할 수 있었다.

오늘도 신촌을 스쳐가는 신촌 사람들
사회과학적 분류에 따르면 잠시 한 공간에 머무르며 스쳐가는 이들은 집단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단지 그 공간에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촌에 있었으며, 함께 신촌의 추억들을 나눈다는 점에서 ‘신초너’로 분류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겉은 차갑지만 따뜻한 속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숨기려하는 이상한 사람들. 신촌 사람들은 여전히 신촌에서 모이고 헤치며 신촌에 머무르고, 떠나가고, 신촌을 스쳐가고 있다.



작가님 글은 물없이도 잘사나봐요
‘수’ 없이 완벽하니깐
작가님 다 좋은데 글에 벽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
.
.
.
완벽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