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yssey- 신촌으로
odyssey- 신촌으로 / 김기택의 시, 그리고 느림의 미학
* odyssey: 경험이 가득한 긴 여정
신촌에 오기까지, 그리고 신촌러가 되어 겪은 주로 정신적 · 감각적 여정에 관하여
#0
일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예상 못 했을 전염병으로 인해 이례적으로 수능 시험이 연기되었다. 지난달에는 급격히 쌀쌀해져 올해는 추위가 일찍 찾아오나 했더니, 막상 입동이 훌쩍 지난 11월 셋째 주는 평년보다 훨씬 따뜻했다.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능 한파’가 찾아오지 않은 것이 그 이유일 거라는, 농담인지 미신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전 국민이 출근과 등교를 늦추고 항공기의 이착륙을 통제하는 날. 학교에 늦게 가도 된다는 사실에 마냥 즐거워하면서도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온 나라가 이 난리일까 도통 이해하지 못했던 초등학생은, 이제 대학생이 되어 나름의 답변을 늘어놓게 되었다. 수능이란, 학생으로서 자신의 지난날의 삶이 무의미 -중요하지 않은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한 탓에 주어진 3년 안에 마땅히 요구되는 만큼의 것들을 머리에 쑤셔 넣지 못했음- 하지 않았음을 증명해내는 날이기에 중요하다고. 어쩌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음은 분명했고, 나도 굳이 토를 달기보다는 그 말을 그냥 믿는 편에 섰다.

완연한 가을을 지나, 싸늘한 공기 속에 수능 냄새를 풍기는 계절
계절은 다시 흐르고 유난히 서늘해진 공기 속에서 ‘수능 냄새’를 감지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기를 몇 차례, 이제는 또다시 ‘내가 이만큼 성장했다’, ‘내가 이만큼 사회에 쓸모가 있다’를 사회에 제대로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에 자꾸만 어깨를 짓눌리고 마는 고학년이 되어버렸다.
#1
효율성을 인생 최대의 가치로, 성장을 살아감의 동의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가 생각했던 성장은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돌아돌아 도달하는 과정이기보다는, 확고하게 정해진 방향으로의 최고 효율 돌진이었다. 의식하고 있지는 못했으나 아마 오랜 시간 그렇게 생각해왔을 거다. 일분일초를 쪼개 당시엔 유일하다 믿었던 삶의 목표를 이루는 데 전념했던 시간이 그저 후회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몸은 조금 지치고, 눈에 보이는 결실이 즉각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늘 활력 있던 그때의 내 모습이 조금은 그립기까지 하다. 아마 대학입시 이후에도 완벽한 삶의 로드맵이, 매 순간 내가 성취해 가야 할 세부 목표가 완벽히 갖춰져 있었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해나가는데 전혀 부족하지 않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그 효율과 빠름의 감각으로 세상 두려울 것 없는 인생이 가능했을 테니), 그저 꾸준히 한 방향으로 걸어나가는 게 삶의 이유요, 목적이요, 전부라는 생각에 딴지를 걸 틈 따위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생각의 단순함에서 오는 확신, 명료함이 주는 가뿐함에 몸을 맡기고. 조금이라도 장애로 여겨지는 것들을 가차 없이 쳐내며. 남들보다 빠른 속도가 주는 안도감, 그 속도의 단맛에 길들여져.
더빨리더빨리더빨리
돌이킬 수 없도록
속도의 단맛에 길들여진 시간이
다 알아서 친절하게 시동을 걸고 가속기를 밟아준다.
(중략)
나는 또 속도 위에 앉는다.
속도가 너무 많아
오히려 느려터지거나 아예 멈추어버리는
한순간도 속도가 되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독한 냄새를 내뿜으며 그르렁거리는
이 불편한 속도를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느날 도로 위에서 서너 시간 숨통처럼 꽉 막혀 있다가
겨우 그 정체에서 벗어나
속도에다 온몸의 복수심을 다 집중시켜 정신없이 채찍질하다가
죽거나 죽이거나
움직이지 못하는 엉덩이에 둥근 뿔이 달리기 전까지는.
김기택, 「죽거나 죽이거나 엉덩이에 뿔나거나」 (부분)
빠른 속력은 ‘가차 없는 배제’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같은 양의 동력으로 최대한 빠르고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물체의 질량이 작아야 한다는 물리의 법칙이 그러하듯, ‘빠름의 미학’이 칭송받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생산적이라고 여겨지는 삶의 일부를 떼어 버려야 한다. 더 가뿐한, 더 민첩한 몸을 만들기 위해서.
하지만 민첩해진 동시에 가냘파진 몸체는 취약하다.
그래서였을까. 선명했던 목표지점이 더 이상 눈앞에 존재하지 않게 되자,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생각했던 내 생활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급제동하는 이륜차처럼 휘청-
굳이 살 이유가 없는데 아침에 눈은 뭐하러 뜨지?
#2
다시 의미를 찾고 싶었다. 당장 내일 눈 뜰 이유를 만들기 위해 닥치는대로 빈틈을 채웠다. 급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고 친구들과는 매일같이 약속을 잡았다. 그저 먹고 노는, 웃으며 떠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삶이라는 것엔 대단한 무언가 있지 않을까 늘 생각했다. 이렇게 지나가는 시간들은 그저 인생의 낭비일 뿐이라고, 더 늦기 전에 내가 다시 뛰어가야 할 목표지점을 찾아야만 한다고.
결국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신촌에 입성한 나는 이곳에서 “머글 중의 핵 머글”, “‘굳이’의 인간화”라는 별명을 얻었다. 분명 이렇게 살고 싶다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의식도 못한 채 나는 극강의 효율충이 되어있었다.
먹고사는 데 지장도 없는데 이 귀찮은 걸 굳이 내가 해야 돼?

그 넓은 곳에서, 그 많은 사람들의 쏟아지는 말 속에서 내 흥미를 끄는 것들이 분명 없지 않았다. 다만 조금 관심을 갖다가도 그것들이 그저 비생산적이고 덧없는 것처럼 보여 정성과 노력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버리곤 했다. 그저 얄쌍한 몸체를 갖는 것에만 집중했던 나는 퇴화된 감각기관을 가지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3
삶이란, 특히 ‘잘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하나로 단언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하리라. 하지만 아무리 정답이 없다고 해도, 산다는 것을 그저 ‘죽음이라는 목적을 향한 돌진 과정’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총알처럼 얄쌍한 몸을 만들어 빠른 속도에 몸을 싣는 게 진정한 삶의 의미는 아니리라. 삶이란 오히려 많은 것들이 너무도 빨리 바뀌고 지나가는 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 내 몸집을 불리고 나를 지탱해 줄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그 무언가란 생각보다 거창한 게 아닐지 모른다.
지나가는 이들을 건드려보지만
걷는 속도에 부딪쳐도 힘없이 나동그라지는 말.
(중략)
무시하고 바삐 걸어가는 행인들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가볍게 튕겨냈어야 할 그 말을
나는 그만 듣고야 말았다.
그 말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야 말았다.
그 말을 발음한 얼굴의 눈을 쳐다보고야 말았다.
그 순간 아무런 힘도 의미도 없던 말은
그 눈빛의 의미를 받아 갑자기 생기가 나기 시작했다.
김기택, 「버클리에서」 (부분)
내 퇴화된 고막과 두터워진 피부를 잠깐이나마 두드렸던 이 도시의 소리들, 빛깔들, 사람들 …. 애초 감지하지 못했거나 혹은 습관적으로 밀어낸 바로 그것들.
생기를 머금었으나 그것을 숨기고 있는 것들을 곳곳에서 발견하고 곁에 두려면, 그래서 더 단단하고 두텁게 몸을 만들고 중심을 잡으려면 조금 덜 바빠야 한다.
‘선택과 집중’이라느니, ‘효율성’이라느니 하는, 이른바 사회의 미덕들도 처음에는 아마 급변하는 사회 속에 개인이 주체가 되어, 세상보다 한발 앞서 중요한 것들을 포착해 내려는 의도로 강조되었던 것들일까.
그러나 알고 보니 삶에 의미를 더하는, 진정 소중한 것들이 오히려 지금의 내 속도에 튕겨나갈 정도로 나약한 것들이라면, 나를 이토록 빠르게 만들었던 그 삶의 태도와 사회의 미덕들에 대한 회의가 몰려오는 게 사실이다.
#4
특별할 것 없는 매일의 일상을 지내다 보면, 내가 과연 ‘빨리빨리의 나라’에 살고 있구나 실감이 난다.
애써 외면하려고 해도 ‘졸업은 언제?’, ‘취업은 언제?’, ‘독립은 언제?’하는 날카로운 질문이 자꾸 따라붙는다. – 벌써? 싶은데, 실제로 귀찮게 하는 어른들이 많아 괴롭다.- 내가 그냥 깔끔히 무시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부정할 수 없는, 타고나기를 급한 성격까지 더해져 숨이 턱 막히고 만다.

길 건너는 보행자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 빠르게 달려가는 차량, 까딱하면 부딪힐 듯 위험하게 뛰어가는 사람, 보는 사람까지 불안하게 만들며 쾌속 질주를 선보이는 배달 오토바이가 이루고 있는 신촌 길바닥의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짜증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 짜증이 어디를 향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내가 이제껏 체득한 효율과 빠름의 감각으로는 감히 포착해내지 못할 만큼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인지, 혹은 제발 좀 느긋해지자고 되뇌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 내 삶의 태도에 대한 질림인지.


너무 공감되고 글 안에서의 매력들이 보여지네요
좋은 글 제공해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