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점의 그림과 방백
연말이니 되돌아보자.
2020년은 신촌을 숨죽이게 만들었다. 잠시 내리비친 볕처럼 돌았던 활기도 걷어지고 공허만이 그득하다. 이 지독한 전염병은 조금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가보다. 그러는 사이에 벌써 캘린더의 마지막장으로 넘어갈 날이 왔다. 세상에 너무도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서인지, 혹은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되어서인지 올해는 유독 빠르게도 지나갔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달이 내일이면 오지만 이미 우울하고 슬픈 일은 넘치게 겪기도 했으니, 무덤덤하게 아무 말이나 해보며 신촌을 돌아보자.

신촌의 대문짝
지하도를 지나 이 기둥을 보는 일이 예전에는 설렘을 주기도 했는데 이제는 무섭기도 하고 무덤덤하기도 하고 참 여러가지 감정을 선사해준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의 약속 장소가 되어주기도 하고, 존재 자체만으로 신촌을 거니는 사람들의 지도가 되어주기도 했으니 꿋꿋이 서서 신촌의 대문이 되어주느라 올해도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컬러풀 연세로드, 비틀즈가 건널 것만 같다.
올해도 이 거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내년에는 더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밟히는 땅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주차하면 큰일 날 것 같은 그림
우리 삶처럼 신촌에도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제 몫을 꾸준히 해주는 존재들이 많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각이 튀는 단색의 조합에 녹이 슨 모양새가 재밌어보이기도 한다.

취객 시점 따릉이 거치대
관점을 조금만 달리 하면 평범해 보이던 것이 흥미로워 보이기도 하고, 거슬리던 것이 매력적으로 바뀌어 빠져들게 만들기도 한다.

가치있는 공공재일까 흉물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위덩어리는 어떻게 보아야 매력적일지 모르겠다. 뜬금없는 위치에 위압감을 주는 문구가 새겨져있는 이 조형물은 독재정권에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때론 우스꽝스럽고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산산조각나 버렸으면 좋겠다.

빨갛게 불태웠다
언제나 열일하는 불타는 빨간 잠망경, 2020년에는 조금 덜했을 지 몰라도 자신의 몫을 충분히 다 해주었다. 내년에는 다시 기적처럼 그 일대가 활활 불타기를 소망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루프탑 위에서 즐기는 맥주 한 잔 만큼 소소하면서 상쾌한 행복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는 너무 가혹했다. 이런 행복마저 앗아가 우리를 힘들게 했으니.

야경
어두운 밤에 야경은 새벽별처럼 푸른 빛을 밝혀준다. 힘든 시기에도 우릴 흐릿한 미소라도 짓게 해준 야경과 같은 순간들은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세월이 흘러 올해를 돌아볼 때 야경을 감상하듯 마냥 아름답게 바라볼 순 없을 것이다. 그래도 보내줄 때에는 흐릿한 미소를 쥐어준 순간만큼은 가슴에 담아가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별만큼은 쿨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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