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나의 쉼표, 잔치를 담다
마지막 글을 써볼까.
이번 글 만큼은 신촌에서 써야 할 것 같아 아침부터 가방에 읽을 책과 노트북을 챙겨 신촌역으로 왔다. 비가 쏴-아 도 아닌 추적추적 내리는 게 정말 마지막 글을 쓰기 참 좋은 날씨인 것 같다.
‘커피 한모금 마시고 써야지, 핸드폰 좀 하다가 써야지..’
지금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몰라 시간을 벌기 위해 하는 행동은 절대 아니다. 이제는 마음이 준비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흰 페이지를 마주보며 검은 글씨로 채우자니 정말 마지막 인사를 전해야 할 것만 같은 슬픈 기분이 내 손가락에서도 느껴지는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마지막이란 건 익숙해지지 않는 듯하다. 휴…


신촌역에 도착했다. 분명 이별을 앞두는 슬픈 마음으로 왔는데, ‘왜 이렇게 설레지?’
처음 회의하러 영스 스터디 카페를 갔던 기억, 첫 회의 끝나고 회식하러 갔던 기억, 글 감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기억. 처음 신촌을 마주했을 땐 차가운 파란색 빛을 띠고 있어서 그 느낌을 담아 신촌사람색 이라는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잔치의 기억들로 주황색이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듯하다. 그 느낌은 친근하고, 유쾌하고, 정신없기도 한, 마냥 좋은 그런 느낌을 내게 준다. 그런데 이렇게 밖에 있다가는 앞으로 한동안은 자주 올 일 없을 신촌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우중충한 회색 하늘이 될 것 같다. 얼른 실내로 들어가야겠다.


회색 하늘
카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겨우 빈자리가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창밖으로 비 오는 거리를 보며 사람들의 우산 색과 걸음걸이와 비 오는 거리를 구경하는 건 꽤나 운치 있는 일인 것 같다. 이 카페를 들어오기 전까지 사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꽤나 오랫동안 밖에서 서성거렸다. 여전히 올 때마다 이방인이라는 기분은 지울 수 없다. 잔치를 시작했을 때보단 그래도 신촌에 대해 조금은 아는 듯하다. 물총 축제가 열리고, 젊은이들의 놀이터라고 생각했던 왁자지껄한 신촌이 아닌, 빨잠이, 독수리 다방, 몰리스, 홍익문고, 피아노 등등 신촌 명물들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바뀐 점이라면 이전에는 신촌이 삭막하고 차가운 곳이라고 느껴졌다면, 이젠 설레는 어색함이 기분 좋은 바이브를 만들어낸다. 우연히 잔치에서 언급된 곳이 나오면 반가움에 옆에 있는 친구의 팔을 톡톡 건드리며 “나 여기 알아!”라는 말을 하게 된다. 역시 1년 동안 나에게는 꽤나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추억이 방울 방울 / 깻잎 아님
처음
잔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당시의 나에겐 도피의 한 수단이었다. 1년 전 이맘때쯤, 건강한 청년이라고 자부했던 나에게 노란 불이 켜졌고 잦은 통원 치료와 검사로 휴학을 해야 했다. 얼른 졸업 작품을 끝내고, 학점을 채워 졸업을 해서 남들보다 늦지 않은 졸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시계를 내가 찬 것 마냥 무언가에 쫓기듯 숨 가쁘게 매일을 달려가고 있었다. 정말 원치 않은 브레이크였다. “요즘 뭐해?”라는 안부를 묻는 친구의 질문에 졸업을 앞두고 건강 때문이긴 하지만 일단 쉬고 있다는 내 대답이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일까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회피하던 때가 있었다. 어쩌면 나 자신조차도 바쁜 대학생 생활에 쉼표를 찍는게 익숙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이렇게나 쉬운데 말이다 , , , ,
그래서 익숙해져 있는 공간과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잔치는 시작되었다.
시작
어떤 이유에서 왔던, 누구든지에 상관없이 신촌을 사랑하고 글 쓰는 것에 관심 있다는 이유만 충족한 잔치 꾼들은 매주 같은 시간에 모였다.
“다 상관 없어. 그냥 우리 같이 글 쓰고 신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놀자.”
이런 마인드를 보면 잔치꾼들은 바보다. 신촌, 글, 술 그리고 롤밖에 모르는. 아직도 정작 개개인들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서로의 글에 대해선 아낌없는 관심과 격려 그리고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참 고마웠다. 나의 글에 애정 어린 피드백을 남겨주고,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며 시시콜콜 얘기하는 그런 과정들이 나에게는 정말 따뜻했다. 인터뷰이를 어떻게 구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이번 글 주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며 후회하고, 망할 놈의 워드프레스와 텀블러 사용법에 마감 시간을 놓쳐 쩔쩔매다가도, 에디터 “수잔”의 글이 업로드되면 뿌듯해지던 날들이었다.
때로는 도피처가 잔치판이라는게 나의 욕심이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휴학탓에 갈팡질팡하며 벌여놓은 일들 탓에 잔치에 늦는 일도, 놓치는 일도, 챙김을 받는 일도 꽤 많았다. 정말 미안해서 자책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 모든 순간들을 이해받고 사과를 건넬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다,
“투표도 늦게 하고, 업로드도 가끔 늦고, 정말 미안했어. 그래도 욕하지 않고 감싸줘서 정말 고마워.. 그래서 더 미안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게 되더라. 그래서 혹시나 나 같은 사람을 만나면 나도 그럴려고. 너네가 알려줬어 고마워 🧡. “
이 마지막이 관계의 마지막이 되지는 않길. 언젠가 상황이 좋아지면, 날 좋을 때 함께 만나서 웃고 떠드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마지막
1년 동안 잔꾼(잔치꾼)들, 카페 직원, 향수가게 사장님, 예린이, 구 잔치 꾼, 미셸, 일화 님 꽤나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그 인연의 고리가 되어주던 잔치판은 어느덧 마지막을 향하고 있다. 이제는 쉼표를 찍는 법도, 찍어야하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글 쓰는 사람이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마지막을 “마지막”이라고 직관적으로 써도 될까 하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 단어와 익숙해져 보려고 한다. 시간이 꽤 빨리 지나갔다는 걸 다시금 느끼는 건 나도 라떼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까. 그동안의 모든 것들이 다 좋게만 느껴지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기 때문인 듯하다. 모든 것이 좋아 보이는 이때 마침표를 찍는 것도 어쩌면 그것만의 미덕이 아닐까.
1년 동안 풍악을 울렸던 잔치는 나에게 아마 큰 여운처럼 남을 것이다. 특히 신촌을 가면 잔치꾼들이 꽤나 생각날 것 같다. 진했던 지금 이 순간이 기분 좋은 잔향처럼 남아 나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잊고 살다가 한번쯤 들어와서 글을 읽고 위로받고, 내가 썼던 과거의 글을 읽으며 그때의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그런 곳이 되길.
감사합니다 잔치 여러분 덕분이에요.
2021.05.18
–끝-
.
.
.
.
.쿠키 레터. 아래를 스크롤 하세요.
처음부터 어디서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끝까지 와버렸네.
빡소와 바녕님에게
항상 글에 좋은 점을 보고 에디터의 기를 퐉퐉 살려주는 둘! 그냥 이번 학기도 같이 해서 좋았다고 꼭 말하고 싶었어. 왠지 모르게 잔치가 걱정돼서 더 있어준 기분이 들었달까?ㅎㅎ (아님 말고) 사실 나 너네 둘 인터뷰 글 보고 잔치 들어올 결심했었거든!? 그래서 실제로 봤을 때 너무 신기했던 기억이 나. 처음에 잔치 지원하려고 홈페이지 둘러보는데 빡쏘는 영문과라는 동질감이 느껴졌고 글에서도 느껴지는 미친 텐션이 실제로 어떨지 궁금했고, 바녕이는 너만의 사색과 시선을 담은 글과 사진이 멋있어 보였어.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재밌겠다 !’ 는 생각이 들더라. 첫 만남에서부터, 소정이는 너무 친근해서 좋았고 , 하민이는 필름을 못 사서 dslr을 플렉스했다는 썰이 재밌었던 기억이 나 . 두번의 술 파티로 다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서 구잔꾼들이 신잔꾼들빼고 다 떠난다는 걸 알았을 때 정말..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어서 생각만 해도 허전하더라고. ‘잔치라더니 왜 다 가는 거야!! (할많하않)’. 이런 생각이 들더라. 1년의 활동 기간을 채우고 자유를 찾아 떠날 만도 한데, 운영진으로 남아서 이끌어준 둘의 노력과 수고에 박수를 보내. (물론 지금 운영진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 .또 봐~!! ^^
동기 잔치피플 : 다슬님, 혜원님, 주이님,민정님,영지님,준일님도 1년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쿠키레터 지우지마ㅜㅜㅜ
고생했어
고생했어!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