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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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 05 · 25

311. ~ing

Editor 보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다들 어디를 가고 있는 걸까, 누굴 만나러 가는 걸까. 핸드폰을 보며 걷는 사람, 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하거나 노래를 들으며 걷는 사람 (아 요즘엔 이어폰이라기보단 에어팟이나 버즈라고 해야하나), 친구와 둘이 웃으며 걷는 사람, 약속에 늦었는지 뛰는 사람, 가끔은 노래를 들으며 본인 세계에 빠져 흥을 통제하지 못해 리듬을 타며 걷는 사람도 보인다. 저마다 다른 목적지를 향하지만 목적지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난 요즘 목적지를 잃은 느낌이다. 무기력하다. 사람들을 만나 신나게 놀다 가도 어느새 너무 지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멍 때리거나 잠을 자는 것 외에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힘을 써야 한다. 힘든 학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인가, 인간관계에 지친건가. 복합적인 이유겠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시계 소리조차 나지 않는 조용한 자취 방에 아무 행동 없이 앉아있는 일이 차라리 덜 피곤하다. 머릿속조차 조용하다. 말 그대로 정적이 흐른다. 뚜렷한 목표 의식이 없어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어 더 의문이다.

해야 할 일들로 적힌 메모지가 여기저기 붙어있는 방 안에 혼자 앉아있다 보면 끝도 없이 스트레스와 고민을 파고 들어갈 거 같아 일단 나와서 뭐라도 하기 위해 신촌으로 향했다.

 

항상 그렇듯 신촌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다들 제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눈앞에 연두색 신촌 마을 버스가 지나갔다. 마포00 혹은 서대문00 같은 이름표를 달고서 신촌의 큰 도로부터 좁은 골목까지 다니는 버스인데, 신촌 거주자가 아닌 나로서는 한 번도 타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타볼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냥 가장 빨리 오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탔다. 어디를 향하고 있고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어딘가에 도착할 거고 그곳에서도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만 가지고 있었다.

 

세브란스병원 정류장 / 다가오고 있는 서대문04 버스

 

내가 올라탄 버스는 서대문04였다. ‘안녕하세요’ 항상 그렇듯 인사를 하려는데 기사님의 뒷모습밖에 볼 수 없어 당황하며 제일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버스에는 빨간색 조끼를 입고 계시는 아주머니, 넷플릭스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에서 볼 수 있는 셸비가 쓰는 모자를 쓰고 계신 할아버지, 커버낫 검은색 크로스백을 메고 나이키 에어포스를 신은 젊은 남자 분이 먼저 타 있었고 파란색 체크 셔츠를 입은 나와 또래로 보이는 여자 분이 함께 올라 타면서 6명이 함께 출발했다.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인지 다들 창밖을 보고 있었고 괜히 느긋해 보이기까지 했다. 파란 체크 셔츠 여자 분은 한 정거장 지나 내리셨다. 집에 가시는 것 같았는데 타는 정거장과 내리는 곳 사이의 거리가 애매해서 매번 그 장소에서 버스를 탈까 말까 고민하실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함께 쇼핑을 하고 왔는지 각자 손에 가방이 하나씩 들려있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과 어머니가 올라탔다. 두 사람은 비어 있는 2인석 자리에 앉았는데, 잠시 뒤에 보니 딸이 엄마 어깨에 기대어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는 게 아닌가. 귀여웠다. 나도 어렸을 때 엄마랑 둘이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었나 생각해봤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이번 정류장은 신촌역 4번 출구입니다” 유플렉스에서 나와 세브란스병원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는데 신촌역 쪽으로 향하는 버스여서 다시 신촌역으로 돌아왔던 것이었다. 괜히 웃음이 났다. 

신촌역 정류장에서 피키블라인더스 할아버지와 옆에 앉아있던 에어포스 남자 분이 내리셨다. 지하철로 갈아타는 건지 목적지에 도착하여 내린 건지 궁금했다. 또한 왠지 모르겠지만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사이에 나 혼자 내적 친밀감이 쌓였나 보다. 집에 가면 잠시 멈췄던 피키블라인더스를 이어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볼까 생각했다. 몇 명이 또 올라탔는데 그 중 한 분과 눈이 마주쳐 사람 구경하고 있던 게 걸린 거 같아 괜히 움찔했다. 그 때 기사님께서 후진을 하셨는데 꽤 큰 도로였기 때문에 깜짝 놀랐지만 작은 버스라 후진해도 괜찮나 싶었다. 아니, 깜짝 놀라긴했다. 빈 자리는 다시 조금씩 채워졌고 옆자리에 새로운 분이 타셨다. 밖이 많이 더우셨는지 타자마자 에어컨 방향을 조절하셨는데 순간 손 소독제 냄새가 확 났다. 의식하고 있지 않아서 몰랐지만 버스에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다!! 그제서야 반팔과 긴팔이 섞인 사람들의 옷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온도 차에 다들 적응을 못하고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검은색 얇은 니트 + 경량 조끼 패딩을 입은 학생민트색 반팔 하나 달랑 입은 나를 움찔하게 만든 남자 분이 한 버스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계절이라니. 봄과 여름 사이 그 어딘가의 버스 안이었다.

 

버스가 정말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려 해서 여기는 어딜까 카카오 맵을 켜서 확인해봤더니 잔꾼들의 글을 보고 꼭 가봐야겠다 생각해 표시를 해 두었던 ‘쇼콜라 티끄’와 ‘컬러드빈’이 있는 골목이었다.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괜히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가게를 찾기 위해 눈을 막 굴리고 있는데 갑자기 기사님의 운전 속도가 빨라졌다. 오늘 따라 도로가 막혀서 답답했기 때문인지 그냥 익숙하고 일방통행이라 걱정 없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버스를 처음 타본 나로서는 조금 무섭기도 했다. 그렇게 주택 사이를 쭉 올라가 (엄청난 오르막길이었다.) 한 공원에 도착했다. 

 

멈춰선 공원에서 찍은 사진(높다는 걸 표현하고싶었다.) / 버스 안 (feat. 선글라스 할머니)

 

버스가 쉬어 가는 곳이었다. 기사님이 내려 계시는 동안 선글라스를 끼신 할머니 한 분이 올라타셨다.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오신 것 같았다. 더우신지 손으로 부채질을 조금씩 하시면서 창밖을 바라보다 기사님이 어디 계시나 두리번두리번 하셨다. ‘슬슬 출발했으면 좋겠는데..’ 할머니의 마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선글라스를 끼신 할머니, 옆자리에 앉으신 남자 분과 나 이렇게 세명이서 버스 소리만 나는 버스 안에서 버스 기사님 만을 기다리며 앉아있었다. 곧 출발하기 위해 기사님이 타셨고 한 여자 분이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내 바로 앞자리에 앉으셨는데 셔츠 카라가 덜 접혀 있었다. 버스 시간표를 보고 집에서 급하게 나온 느낌이었다. 그렇게 다시 버스는 출발했다. 공원에서 촬영을 하고 있는지 카메라가 많이 있었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무슨 촬영인지 궁금했지만 빠르게 내리막길을 향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꽤 오래 함께 버스에 타 있었던 옆자리 남자 분이 내리셨다. 멋진 공원 옆이 집이라니, 너무 부러웠다. 곧 선글라스 할머니도 내리셨다. 처음으로 내리실 때 ‘감사합니다’하고 내리신 분이었다. 가게들이 많은 곳에서 하차하셨는데 산책 다음 코스는 어디일까 궁금했다. 버스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쇼콜라 티끄’와 ‘컬러드빈’이 있는 골목으로 돌아왔고 세브란스병원으로 향했다. 이렇게 몇 바퀴를 도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세브란스병원 정류장에서 내리기 전 버스에는 그새 카라를 제대로 정리한 여자 분과 데님 원피스를 입고 계신 여자 분, 그리고 남색 티를 입으신 할아버지와 내가 타 있었다. 난 버스를 탔던 정류장에서 다시 내렸고 그 정류장에는 사람들만 바뀐 채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사실 이렇게 한 바퀴 돌아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올 줄도 몰랐다.

 

서울에 온 이후 버스보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했다. 시간 오차가 날 일도 거의 없고 무엇보다 마주 보고 앉는 의자 구조 덕분에 사람 구경을 하기에 좋았다. 오랜만에 타 본 버스는 주로 사람들의 뒷모습 만을 보도록 허락했지만 풍경을 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는 걸 생각나게 해주었다. 이 장점 덕분인지 정말 화창했던 오늘 버스에서 핸드폰만 보고 있는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다들 창 밖을 바라보며 ‘오늘 날씨 참 좋네.’  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가끔은 버스를 타고 다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가, 서대문04

 

서대문04를 타고 세브란스병원 정류장에서 다시 세브란스병원 정류장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약 40분 가량이 걸렸다. 기점과 종점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주는 건 확실한 버스였다. 경로를 알 수 없었던 서대문04도 나를 원래 있던 장소로 데려다 준 것처럼 항상 어딘가에 도착해있는 나를 볼 수 있다. 버스를 잘못 타든 지하철을 반대편에서 타든 어딘가엔 도착하고 그곳이 잘못된 길이라면 다시 생각했던 목적지로 향하면 된다. 물론 시간은 지체 되고 조금은 더 힘이 들겠지만 잘못 도착한 목적지에서 오히려 더 좋은 것을 발견할 수 있고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버스를 탔지만 가보고 싶던 곳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고 새로운 공원과 멋진 장소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출발했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문득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그저 의미 없는 일들은 아닐 거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반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가고 있는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는 도착하기 전까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목적지로 향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 하기로 했다.

 

어느새 2021년 여름이 코앞까지 다가왔고 이 더위에도 사람들은 열심히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그들 틈에서 정해지지 않은 내 길을 향하고 있다. 

 

 

 

 

 

 

 

 

 

 

 

 

 

2021년 5월 날씨 좋은 어느 날 서대문04 경로와,

버스 안에서 나와 함께한 신초너들.

 

 

*’신촌 연세로 차 없는 거리’ 로 인해 경로가 평소와 다를 수 있습니다.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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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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