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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4 · 08 · 03

435. 최서원, 디자이너 도라

Editor 유화

해사한 웃음은 큰 힘을 지닌다.

먼지가 가득 낀 세상에서 누군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상쾌해질 수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큰 능력인지. 본인은 잘 모르는 듯 하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조금 머쓱한 표정까지가 순수함의 완성이다. 속이 깊고 맑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면 그 빛은 애쓰지 않아도 새어나오기 마련이니까.

‘해사함’은 해맑음과 성숙함을 동시에 내포하기에 쉽게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삶의 속도에 발 맞추어 걷다가, 때로는 앞서 가 돌아볼 줄도 아는 사람. 흠잡을 데 없지만 가끔 보이는 빈틈이 부족하기는 커녕 사랑스러워 보이는 오늘의 인터뷰이, 도라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 한 학기 동안 잔치 디자인 팀에서 활동을 했던, 이화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 23학번 최서원이라고 합니다. 잔치에서는 ‘도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어요.

 

 

어느새 7월이 다 지나갔어요. 도라는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요?

와, 벌써 한 달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우선… 열심히 놀았구요.(웃음) 그리고 잔치에서 전시나 잡지처럼 활동들이 몇 개 있어서 그런 일들을 마무리를 지었어요. 특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가 서울에 살지 않다 보니까 이동시간이 꽤 됐었는데 그래도 다 하고 나니까 뿌듯함이 많이 느껴지더라구요. 남은 8월에는 7월에 쉬면서 미뤄왔던 것들을 또 해치워보려고 합니다.

 

 

적당히 휴식도 취하고, 일도 하면서 즐거운 방학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좋네요! 도라는 여름을 좋아하는 편인가요?

 

저는 사실 여름을 제일 좋아했어요. 제 생일이 여름에 있기도 해서요. 그런데 제가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 조금만 움직여도 에너지가 너무 빨리 닳더라구요. 다들 여름이 쉽게 미화되는 계절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비슷한 이유로 여름을 좋아했는데, 요즘엔 오히려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봄이나 가을이 좋아요. 봄에는 파릇파릇하게 여름 느낌이 나고, 가을에는 겨울 특유의 냄새와 찬 공기가 느껴지는 것처럼요. 그런데 사실 겨울이 되면 또 여름이 기다려질 것 같기는 해요.(웃음)

 

 

맞아요. 제게도 여름은 늘 애증의 계절로 남아있답니다. 그렇다면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도라의 여름 플레이리스트, 써머 송을 소개해 줄 수 있을까요?

 

여름을 좋아했던 만큼, 다른 계절은 몰라도 여름에는 들어야 하는 노래, 봐야 하는 영화, 읽어야 하는 책을 정해두고 하나하나 도장깨기를 하곤 했는데요.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곡은 No Vacation의 ‘Dream Girl’이에요. 청량한 밴드곡이라 수험생 때부터 여름에 학원을 가거나, 더위 속에서 걸어야 할 때 들으면서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있어 꼭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 곡은 Bye Bye Badman의 ‘Island Island’라는 곡이에요. 이 노래도 들은 지 거의 5년이 넘었는데도 여름마다 듣고 있어요. 신나고 경쾌한 느낌이라 여름과 잘 어울리더라구요. 이 두 곡 말고도 비 오는 날, 태양이 작렬하는 날… 날씨마다 노래 장르를 바꾸는 편이라 k-pop이나 팝송도 다양하게 듣는답니다.

 

 

너무 좋은데요. 저도 아껴 두었다가 정말 더운 날 청량음료를 마시듯 도라의 추천곡을 들어 봐야겠어요. 이제는 본격적으로 잔치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잔꾼명 ‘도라’는 어떻게 짓게 되었나요?

큰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고, ‘Dora the Explorer’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단발머리 여자아이 도라와 어렸을 적에 닮았어서 초등학교 영어 이름이 도라였어요. 그렇게 지었던 이름을 지금까지 쭉 쓰고 있답니다. 새로운 이름을 지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도라가 단순하기도 하고 정도 꽤나 들어서 계속 잘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더 동글동글했다더니, 캐릭터 ‘도라’를 닮았다면 정말 귀여웠을 것 같아요. 도라가 잔치에 들어오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학과 내 소모임이나 디자인 스터디도 많았을 텐데, ‘잡지’라는 매체의 디자인 팀으로 들어온 이유가 있을까요?

제 성격이 고민을 신중하게 한다기보다는 다소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이에요.(웃음) 잔치도 모집 공고를 보고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막 찾아봤던 기억이 나요. 사실 어떤 장소나 공간 하나를 키워드로 하는 모임이 흔하지 않은데, 잔치는 ‘신촌’ 이라는 명확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학기 중에는 과제만 해도 전공에 시간을 정말 많이 투자하게 되어서, 동아리만큼은 살짝 쉬어가는 느낌으로 학과 외의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보고 싶더라구요. 잔치는 4개 학교의 여러 전공들이 모여 있으면서도, 신촌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으니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재미있어 보였어요.

 

 

잔치는 재미 빼면 시체죠. 모두가 정말 즐기면서 글을 쓰고 디자인을 하니까요. 도라는 지난 학기 플레이스 팀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카드뉴스와 종이 잡지 디자인을 했어요. 맡았던 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있다면 이유와 함께 소개해주세요!

 

음… 플레이스 팀 글 작업들이 다 기억에 남지만, 수풀 언니(최가은, 에디터 수풀)의 <신촌 기억 아카이빙> 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소에는 글을 읽고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 전에 레퍼런스를 항상 찾거든요. 그런데 저 글은 읽자마자 ‘아, 이렇게 디자인해야겠다!’하는 게 머릿속에 그려져서 작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어요. 작업 시간도 굉장히 짧고 북적거리는 카페에서 했는데도 제가 만족할 만한 완성도의 결과물이 바로 나와서 너무 좋았던 기억이 남네요.

사실 처음에는 플레이스 팀 글이 기존에 있는 장소들을 다루니까 주제가 한정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매번 에디터분들이 쓰시는 글을 보면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장소와 주제를 선정하시는 걸 보고 감탄하곤 해요.(웃음) 글을 읽는 것도 재미있고, 그래서 카드뉴스를 만드는 것도 되게 즐거웠구요.

 

 

정기 회의에서 <신촌 기억 아카이빙> 카드뉴스를 보고 다들 탄성을 질렀던 기억이 나네요. 잔치꾼들 중에도 도라의 디자인 감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도라가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음… 쉽지 않은 질문이네요. 일단 글의 분위기가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한 사람의 작업 스타일이 확고한 것은 좋지만, 글마다 내용과 특색이 다 다르니까 제 취향이 너무 개입되기보다는 글의 개성을 더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을 하려고 합니다. 매번 염두에 두는 사실이긴 하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아요. 그리고 당연히 결과물이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웃음)

 

 

역시 매번 치열하게 고민하고, 글 자체에 집중하려는 노력이 있어서 도라의 카드뉴스가 하나하나 다 매력적이었군요. 잔치의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경험과 가장 어려웠던 경험이 있다면 공유해 줄 수 있을까요?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매주 카드뉴스를 만들기 전에 제가 이때까지 작업했던 카드뉴스들을 쭉 훑어보거든요. 그러면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거 좀 괜찮았네?’하는 순간들이 가끔 있어요.(웃음) 한 100번 중에 1번 정도 있는데, 사소하고 개인적인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럴 때 제일 보람을 느껴요.

어려웠던 순간은, 아무래도 학기 중에는 과제와 작업을 병행하다 보니 전날 밤이나 다음날 새벽까지 급하게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황들이 발생해요. 여기서 시간을 더 들이면 더 잘 할 것을 알지만, 마감 기한이 정해져 있다 보니 스스로와 타협하게 되는 지점들이 늘 속상하고 아쉽더라구요. 앞으로 해결해나가고 싶은 부분이기도 해요. 종이 잡지도 카드뉴스와 규격이나 용도가 다르다 보니 익숙하지 않아서, 화면을 구성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제 종이잡지를 맡아주셨던 것 같은데, 저는 너무 좋았는걸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그날까지 더 멋진 디자인을 펼쳐나가기를 바랄게요. 디자인과는 개인 작업이 주를 이루다 보니 종이잡지, 토크콘서트, 전시처럼 여럿이서 무언가를 해내는 경험이 흔하진 않잖아요. 이런 경험이 도라에게는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해요!

 

다같이 해서 단순히 더 재미있는 것도 있었고, 하나의 목표를 이루려고 모여서 이것저것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저에겐 의미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그만큼 배운 것들이 많았거든요. 전시장에서 설치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면 되게 뿌듯하고 기분이 좋더라구요. 몸은 지쳐 있지만 마음은 항상 리프레시가 되는 느낌이었죠. 다음에 이런 기회가 또 찾아온다면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도라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데요. 잔치 내 유일한 05년생인 도라의 ‘잔베’ 모먼트들을 애정하지만, 가끔씩은 언니 오빠들보다 더 의젓한 모습에 놀랄 때가 있었어요.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구요. 도라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철학이 있을까요?

사실 전 제가 의젓하다는 생각을 잘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봐 주셨다는 게 신기한데요. 삶에 대한 생각들을 많이 하는 시기가 있고, 별 생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사는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요즘은 후자라… 고민을 좀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가치관이라는 말에 담긴 무게가 있다 보니 선뜻 대답하긴 어렵지만, 제가 일상을 굉장히 거창하게 보내지는 않거든요. 대신 비슷하게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은연 중에 스스로를 컨트롤하기 위한 사소한 노력들을 신경쓰는 편이에요. 밥 챙겨 먹기, 너무 늦게 일어나지 않기, 하루에 한 번씩은 산책 꼭 하기 같은 것들이요. 이런 일상 속에서 온 감각을 다 깨운 채로 살자, 세상을 풍부하게 느끼면서 살자! 하는 것이 제 목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사실 가치관을 정해놓기보다는 그때 그때 접하는 책, 영화나 경험하는 것들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래서 다양한 경험들을 많이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세상을 다채롭게 감각하며 살면, 확실히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겠네요. 그렇다면 도라가 아닌 ‘서원’으로서 올해 목표가 있다면요?

아직 계획되어 있는 특별한 이벤트나 프로젝트는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냥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에 충실하고 열심히 작업을 하는 게 목표예요. 과제를 미루지 않고 좀 더 여유있게 한다던지…(웃음) 이게 말이 쉽지 사실 너무 어렵더라구요. 특히 디자인 전공 같은 경우에는 진심을 다한 과제인지 아닌지가 딱 보이잖아요.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지난 학기에도 되게 만족스러운 과목이 있었던 반면 저 스스로 중간에 살짝 놔버린 과목도 있었거든요. 이번에는 그런 경우가 없도록 조금 더 진심으로 임하는 자세로 모든 수업을 듣자, 하는 사소한 목표가 있어요.

 

 

미대에게 ‘과제를 미루지 않기’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목표인데요.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마지막은 공통질문이에요. 도라는 무언가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으로, 평소답지 않은 행동을 했던 경험이 있나요?

 

사실 제가 일상을 이런 식으로 사는 편이라…(웃음) 결과를 좀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긴 한데요. 이번 여름 방학에 오키나와 여행을 딱 이런 느낌으로 다녀왔어요. 막연하게 해외 여행을 혼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급하게 잡은 여행이라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채로 출발했거든요. 질문주신 것처럼 정말 이끌리는 대로 다녔던 것 같아요. 배고프면 맛있는 식당에 가고, 배가 부르면 나가서 걷고, 목마르면 마시고. 한번은 바다를 가려고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나왔는데, 가는 길에 너무 예쁜 카페가 있어서 서너 시간을 앉아있기도 했어요.

3박 4일을 이런 식으로 보내고 왔는데, 모든 걸 내 마음 가는 대로 결정하는 게 혼자 여행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묘미가 아닌가 싶어요.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다들 한 번씩은 경험해보면 좋을 만한 것 같습니다!

 

 

 

 

도라의 일상은 매일매일 특별하지는 않을 지 몰라도 하루하루 착실하다. 주어진 일들을 잘 해내면서도 발랄한 일탈을 통해 소소한 행복으로 삶을 채워 나가는 모습이 괜스레 뿌듯한 웃음을 짓게 했다.

치열하기만 한 세상 속, 누군가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지 못하는 옹졸한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도라의 해사한 웃음이 마음에 낀 먼지를 씻겨내려 준 덕에, 조금은 깨끗해진 마음으로 도라의 내일이 더 찬란하기를 진심 가득히 응원할 수 있었다. 언니 같은 동생이자, 종이 잡지 글에 멋진 미감을 더해준 디자이너이자, 잔치에서의 마지막 인터뷰이가 되어준 서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며,

유화로부터.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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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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