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 로그인
PLACE 2021 · 06 · 23

158. ᄀᆞ막새뎐

Editor 황도

ᄀᆞ막새뎐

 

 

 신촌 끝에 다섯 갈래로 나뉘어진 길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넓게 뻗은 길을 백범로(白凡路)라고 했다. 그 길에 유서 깊은 학당이 있는데 서강(西江) 학당이라 불렸다.

 서강의 유생 중에서 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황은 한강의 성산교(城山橋) 옆에 살았는데 술을 마시는 것을 즐겨 음주에 누구보다 열과 성을 다하였다. 하지만 늦게 술을 시작한 탓에 그 깨우침의 깊이가 얕아 견식이 풍부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받고자 동분서주(東奔西走) 하곤 했다.

 신촌의 중앙에는 커다랗고 빨간 장식물이 있다. 이는 홍경(红镜)이라 불렸다. 그 역할이 장승과도 같아 사람들은 줄곧 그것을 이정표로 삼거나, 아무개와 만날 장소로 약조하곤 했다. 

 어느 날 황이 신촌을 지나다 홍경 앞에서 혼자 중얼거리기를,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은 언제나 유익하다.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주도(酒道)와 주종(酒種)에 대해 곱씹고 길을 걸을 때에도 술을 맛있게 먹을 방법에 대해 생각하니 날로 학식이 깊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하나 견문이 이를 따라오지 못하니 그 깨달음이 깊지 못하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꼬..” 

 하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갑자기 공중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대의 근심이 하늘에 닿으니 내 어찌 어여삐 여기지 않을 수 있으랴. 지금 주막으로 어느 귀인을 보내니 그대는 더 이상 근심하지 말라. 그를 따라 함께 술을 마시면, 술이 자신이고 자신이 술인 주아일체(酒我一體)의 경지에 오를 것이다.’ 

 황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수업을 들으러 학당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곧장 주막으로 향했다.

 

 

 황은 하늘의 귀인이 내려올 주막을 찾고자 주변을 훑으며 내려오다, 오색빛 안개가 자욱한 길의 끝에서 가막새를 발견했다. 3개의 간판은 안개 속에서 빛을 발하여 본디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고, 입구에 달린 호롱불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황은 자신도 모르게 홀린 듯 가막새로 발을 내딛었다. 문턱이 닳아 해어진 것을 보아 유구한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고, 내부로 들어서자 짚단으로 만든 방석과 나무 상이 고즈넉했다. 황은 이곳에 귀인이 올 것임을 일거에 확신하였다.

 황은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모둠전과 동동주 한 사발을 시켰다.

 

 

 음식이 곧장 나왔는데, 빛깔이 선명하고 보기에 먹음직스러웠다.

 술상을 보고 감탄한 황이 말하기를,

 “전의 납작한 형태는 땅(地)을 의미하고, 네 가지의 빛깔은 두루두루 굽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人)들을 뜻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 모든 조화가 하늘(天) 같은 흰 그릇에 담겨 나오니, 무릇 삼라만상의 섭리가 놓여 음식에 부족함이 전혀 없다. 게다가 함께 나온 동동주를 어찌 빼놓으랴. 백설기보다 뽀얀 색깔에 시리기는 달빛보다 차가우니, 술이 목으로 넘어갈 적에 날 괴롭히던 고심들도 함께 꿀떡 넘어가는 맛이다.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전과 막걸리 이건 못 참지’ 라고 했는데 이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라고 하자 주변에서 모두 따봉(Tta-bong)하였다.

 

 

 이때 어디선가 홀연 묘(猫)선생이 나타나 황에게 다가왔다.

 묘선생의 털에선 윤기가 흘렀고 눈은 해질녘의 샛별보다 반짝였다. 걸치고 있는 옷매무새는 아름다운 무늬를 뽐내며 품위가 넘쳤고, 걸음걸이와 표정에선 은은한 자신감이 흘러나왔다. 묘선생이 황의 앞자리에 앉으며 청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하니 향락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듯 싶은데, 그대는 더불어 술에 대해 이야기할 만한 분인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왔습니다.”

 황이 말했다.

 “그대의 풍채가 예사롭지 않으십니다. 제가 이곳에서 귀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하늘의 말을 듣고 이곳에 왔는데, 그대가 저의 귀인이신가 봅니다.” 

 그러자 묘선생이 웃으며 대답하길,

 “하늘의 귀인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저는 그저 향락을 사랑하는 한낮 한량일 뿐입니다. 우선 이것도 인연인데 즐겁게 마시며 놀아봅시다. 간단하게 목도 축일 겸 입장주(Login-Shot)로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대접에 소주를 따라 마시니 황은 단박에 묘선생이 하늘에서 보낸 귀인임을 알았다. 황은 흥이 한껏 올라 제육볶음과 술을 더 시켰다. 

 

 

 음식이 나온 것을 보며 황이 말하길,

 “빠알간 양념이 차가운 성질을 가진 돼지고기와 조화롭게 만나 윤기가 저절로 흐르고 있습니다. 적당히 매콤한 고기와 절묘한 식감의 야채들이 모여 동동주와의 궁합도, 소주와의 궁합도 뛰어난 팔방미인의 음식입니다. 또한 붉은 색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색깔로 여겨졌으니 오늘 우리 만남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음식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한번 즐겁게 이어서 마셔 봅시다.”

 라고 하며 잔을 들고 묘선생을 쳐다보았다. 

 허나 묘선생은 잔을 들지 않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천하의 기운은 모든 사물과 이치에 각각 조리가 있게 하도록 흐르는 법이지요. 부자(父子)로 말하자면 친함을 다하고, 군신(君臣)으로 말하자면 의리를 다하고, 부부(夫婦)와 장유(長幼)로 말하자면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흐름은 이른바 ‘도(道)’로서 이를 거스르고 어기면 화를 입는 것이 마땅합니다. 술을 마실 때에도 이러한 기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안주가 나왔으므로 마시던 술병을 모두 비우고 경건하게 새로운 병을 시작하는 것이 순리에 옮으며, 이를 원샷하지 않고 꺾을 시에는 흐름을 거스르는 것으로 큰 화를 입습니다.”

 하며 남은 술을 모두 마셨다. 묘선생이 이어서 말했다.

 “서학(西學)에서도 천하의 기운에 대해 언급하는 바가 있는데, 이를 엔트로피(Entropy)라고 합니다. 술을 항상 더 많이 마실 수 있는 쪽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여 이를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이라 일컫지요. 또한 나온 음식이 고기 안주이므로 한잔에 한점이 국룰(K-Rule)입니다. 이를 어길 시엔 뚝배기를 깨도 무죄입니다.”

 “역시 묘선생께서 오늘 저의 안목을 확실히 넓혀주십니다.”

 하며 둘이서 들숨에 술잔을 비우고 날숨에 술잔을 채우니, 시간은 금세 해시(21~23시)를 넘겼고 주변의 빈 술 병 또한 쌓여갔다. 황의 주량은 충분히 비범한 편이었지만, 묘선생을 당해내지는 못하였다. 마침내 황은 잔뜩 취기가 올라 젓가락을 집어 국물을 떠먹고, 안주를 손으로 집어먹게 되었다. 결국 술을 입으로 마시는지 코로 마시는지 모를 지경이 되자 묘선생이 크게 흡족하여 말하길,

 “몇 년 전 역병이 크게 돌아 관아에서 사람들이 사사로이 모이지 못하게 했지요. 5명 이상 모이지 못하고 만나도 해시를 넘기지 못하니, 음주 문화가 크게 쇠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허나 그대와 같은 사람들이 모여 선대를 기억하고 후대를 이끌어가니, 저와 같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디 그 마음가짐을 잃지 않고 더더욱 술에 정진하길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말을 마친 뒤 묘선생은 표홀히 사라졌다. 황은 크게 감명받아 그의 말을 되새기며 가막새를 떠났다. 이후 황은 또 묘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가막새에 오갔으나,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황은 낙심하지 않고 더욱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진중하게 술에 임하였다. 며칠 뒤 황이 귀인을 만났다는 소문이 퍼져 온갖 학당의 유생들이 가막새 앞에서 문전성시(門前成市) 하였다. 허나 가막새는 신비한 기운을 잃지 않고 찾아오는 이들 모두에게 향락을 내어주었다. 이윽고 신촌의 수많은 주막 중에서 단연 제일(第一)은 가막새라는 소문이 났다.

 그러던 와중 아무날 아무시에 황은 홀연듯 사라졌다. 풍문에 의하면 학사경고를 받고 그대로 중앙군에 입대하여 북방의 오랑캐들과 전쟁을 치루고 있다고 전해진다.

 


가막새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창천동 53-10

매일 17:00 ~ 03:00

(현재 코로나로 인해 22시까지 영업 중)

02-326-2227

황도
AUTHOR PROFILE
황도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이야기를 남겨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