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472번 버스
<비밀번호 472>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였던가, 버스는 매일 아침 에디터의 등굣길을 책임져주었다. 엄마 손을 놓고 유치원 버스에 오르던 그날부터 버스와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다. 혼자서는 세상이 크고 무서웠던 다섯 살 아이에게, 버스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고 의지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었다. 요즘도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학교나 학원 버스를 타고 내리는 아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나 당연한 ‘버스=통학용 교통수단’이라는 공식이 유독 대학생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어려서부터 동경해오던 대학생은 자유의 표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게 아닐까. 수업을 선택해서 원하는 시간표를 만들고, 폼 나게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연필과 지우개가 아닌 펜으로 공부하는 우아한 대학생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소 에디터에게도 사립 유치원 버스 부럽지 않은 ‘스쿨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바로 472번 버스이다.

472번 버스 노선도.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472번 버스는 개포동에 위치한 차고지에서 신촌까지 운행하는 버스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에디터는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 472번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다. 학교에 갈 일이 없는 코로나 학기지만, 절대 신촌 방문을 게을리하지는 않는다. 신촌에 있는 카페에서 공부를 하거나 친구와 신촌에서 약속을 잡아서라도 마음의 고향을 찾으려는 것이다.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온 복학생이 학교 다니는 기분을 내고자 처절하게 애쓰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긴 하다.) 지하철을 타도 45분 이상 소요될 만큼 집과 신촌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멀지만, 훨씬 더 가까운 심리적 거리가 오늘도 에디터를 신촌으로 이끈다. 집 앞 버스정류장은 ‘단대부고, 대치아이파크 아파트, 정류소 ID: 23-221’, 버스 차고지로부터 7번째 정거장이다. 버스 도착까지는 3분 남짓 남았지만, 너무나 익숙한 듯 3분 뒤 다가올 버스 안 풍경이 눈에 훤하다. 탑승 인원은 7명 내외, 에디터의 지정석이라 할 수 있는 우측 가장 뒷자리는 99.9 퍼센트 확률로 비어 있다.

도착까지 3분 남은 472번 버스. 단대부고, 대치아이파크 아파트 정류장에서
I. 꿈
잠시 후 472번 버스가 영롱한 파란색 자태를 뽐내며 시야 안으로 들어온다. 472라는 숫자 옆에 있는 세 개의 원 안에는 주요 행선지가 표시되어 있다. 에디터의 시선으로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동그라미 안에는 ‘신촌 연대’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다. 문득 2016년 늦은 가을, 대학 합격 소식을 받았던 날 아침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신촌과의 소중한 인연이 시작됐던 날이기도 하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합격 축하 문자를 받고 고등학교로 향하던 날도 이 자리에서 472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472번 버스가 다가오는 순간,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함께 살짝 눈물 맺힌 촉촉한 눈으로 ‘신촌 연대’라는 네 글자를 바라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전까지만 해도 신촌은 한없는 동경과 선망의 장소였다. 대학 캠퍼스가 모여 있고 젊음이 살아 숨 쉬는 곳, 청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었던 에디터가 합격 발표를 듣고 472번 버스를 바라본 그 순간, 이제 신촌이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곳이 아닌, 스스로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는 감격에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마치 동물들이 배설물로 영역 표시를 하듯, 최소한 내게도 신촌을 자유롭게 누비며 일종의 ‘영역 표시’를 할 수 있는 정당성이 부여된 느낌이랄까. 낯선 장소이던 신촌이 온전히 ‘나의 장소’가 될 특권이 선물처럼 주어진 기분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매일같이 472를 타고 학교를 통학하거나 학원으로 가곤 했었다. 그때만 해도 472번 버스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었다. 버스 안에 넘쳐나는 또래의 칙칙한 고등학생들 속에서,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두 명의 대학생들은 유독 빛이 나 보였다. 멋있게 차려입은 대학생 패션과 신촌으로 향하는 것 같은 모습에, 더욱 후광이 비치는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부러움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뒷자리에 앉은 대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이 쉽사리 믿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꿈꾸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II. 현실
추억에 잠겨 있다 창밖을 보니, 버스는 영동고등학교를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영동고교 앞’ 정류장에 멈춰 서지 않는다.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신촌을 향해 갈 뿐이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버스를 가득 채웠던 파란 체크무늬 교복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햇살 한 줄기 들어오는 오른쪽 창가 가장 뒷자리에 앉은 에디터는 한산한 버스 안에서 여유를 즐긴다. 추억 회상을 위해 듣고 있던 잔잔한 음악을 멈추고, 당장이라도 바닷가로 달려가고픈 느낌의 템포가 빠른 음악을 틀었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은 에디터를 포함해서 단 3명. 눈치 볼 것 없이 음악의 볼륨도 높였다.

버스 안에 있는 승객은 단 3명. 오늘도 어김없이 우측 가장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정신없이 압구정을 지나 한남대교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에디터가 ‘472번 드라이브’ 중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 시작된다. 신촌으로 향하는 472번 노선에서 에디터가 우측 자리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측 창문을 통해 보이는 해치상이 한남대교에 진입했음을 알렸다. 잠시 후 버스는 다리 위에 정차한다. ‘한남대교 전망카페’ 정류장에 승객들을 내려주기 위해서다. 겁 없고 호기심 많던 새내기 시절, 한강 다리 걸어서 건너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며, 무턱 대고 친구들과 한남대교 위에서 하차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한남대교 전망카페. 다리 위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전망카페를 지나고 속이 뻥 뚫리는 듯한 서울 풍경에 고개를 들었다. 우측으로는 주황색 사다리꼴 모양의 구조가 반복되는 동호대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동호대교 너머로는 멀리서 봐도 안 보일 수가 없는 롯데타워와 고층 아파트가 눈에 띄는 성수동 풍경도 시야에 잡혔다. (개인적으로 동호대교는 푸른 조명이 들어오는 야경이 훨씬 예쁘니 저녁에 신촌에서 출발하는 472를 탈 경우 왼쪽 자리에 앉는 걸 추천한다! 요즘엔 그 풍경을 시간 맞춰 보는 게 어렵지 않지만, 에디터의 1-2학년 시절엔 23시경 꺼지는 동호대교 조명을 보는 날이 드물었다…) 괜히 이곳에 전망카페를 지어둔 게 아니라는 생각에, 에디터 선정 472번 최고 전망 구간에 대한 ‘근거 있는 자신감’을 머금고 한남대교를 건넜다. 왼쪽 창문 너머로는 오래된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용산구 보광동 풍경이 펼쳐졌고, 눈을 떼지 않고 유심히 지켜보다 보니 이태원 언덕 위 이슬람 사원도 포착할 수 있었다.

한남 제 1 고가 차도 위. 남산 1호 터널 입구
한남동 고급 빌라가 창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버스는 드디어 서울 도심을 향해 질주했다. 에디터 선정 472번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가 마무리되는 구간이다. 한남 제1 고가 차도를 올라갈 때쯤이면 사람들이 알아서들 창문을 닫기 시작한다. (에디터가 1-2학년일 때만 해도, 이 고가 차도를 올라갈 때면 터널 진입 전 창문을 닫아 달라는 안내방송이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엔 한 번도 못 들어봤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환기보다는 터널 내부 공기 유입을 막기 위해 창문을 닫는 편이다.) 남산 1호 터널을 나와 톨게이트를 지날 때쯤이면 교통 체증이 시작된다. 그래도 신촌 방향으로 갈 때는 낮이라 비교적 양호하지만, 직장인들 퇴근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남산 1호 터널 안에 40분씩 갇혀 있기 일쑤다. 을지로를 지나면서부터는 회사 건물이 빽빽한 서울 풍경이 단조롭게 반복된다.
‘남대문 세무서, 국가 인권센터’ 정거장부터 이어지는 4-5개 정류장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타고를 반복한다. 이 구간에서는 더더욱 버스 내부보다는, 창밖 풍경에 집중하는 걸 추천한다. 무선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착용하고 노이즈 캔슬링 환경 속에서 음악과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시청을 지날 때쯤이면 또 한 번 감탄을 자아내는 서울의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진다. 이때 버스가 플라자 호텔을 왼쪽에, 시청 건물을 오른쪽에 끼고 코너를 돌아 좌회전을 하는데, 오른쪽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날씨가 비교적 화창한 날이면 탁 트인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뷰는 물론이며, 우뚝 솟은 북악산까지도 짧게나마 감상할 수 있다.

시청 교차로에서 서소문로 쪽으로 좌회전하는 버스 안에서. 우측 창밖을 주목하시라.
정신없이 풍경에 빠져 있다 보니, 이제 신촌 도착이 거의 임박했다. 서소문 고가를 타고 달리다 보면, 오른쪽에 슬쩍 보이는 프랑스 대사관 교육 진흥원 풍경도 놓치지 말고 보길 추천한다. 시선을 집중해야만 볼 수 있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한옥과 프랑스 건축 양식의 조화가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이제 충정로역을 지나 신촌로에 진입하면 슬슬 내릴 준비를 해야 한다. 아현역 웨딩타운을 지나고 이대역을 지날 때면 귀에 꽂았던 이어폰을 빼고, 주변에 놓고 내리는 것은 없는지 확인한다. 마침내 472번 버스는 신촌로터리에서 회차하여 연세로로 진입한다. 짧지만은 않았던 50분간의 드라이브가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교통 체증이 심한 날이면 1시간 이상 소요되기도 하는 드라이브 코스다. 약속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연세로 명물거리’ 정거장에 하차했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신촌이지만, 새롭기만 하던 신촌을 회상하고 보니 ‘신촌에 대한 초심’을 되찾은 듯했다. 파란 체크무늬 교복의 고등학생들 속에서 버스 뒷자리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던 5년 전의 나를 발견했다. 50분간의 추억여행을 통해, 익숙함에 무뎌졌던 신촌에 대한 소중함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문득 가슴속 깊은 곳에서 설렘이 피어올랐다.
III. 재발견
이쯤 되면 왜 472번 버스를 좋아하고, 이렇게나 집착하는지 궁금할 법도 하다. 최소 50분 이상 소요되는 짧지 않은 거리에, 엉덩이에 땀이 날 정도로 앉아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472번 버스는 에디터에게 단순한 교통수단의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매일 신촌을 오가야 했던 통학러에게 환승 없이 집 앞에서 학교 앞까지 한 번에 데려다주는, 편리한 교통수단이었던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더욱이 신촌에서 12시 20분에 출발하는 막차는 에디터에게 엄청난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통학러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약속이든 충분히 자리에 남아 즐길 수 있었고, 472번 막차 가장 뒷자리에 앉을 때면 이미 집에 도착한 것 마냥 편안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하나쯤 알고 있는, 가장 편하게 집 가는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서, 그동안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비밀 일기장 같다고나 할까. 어떤 날씨든 어떤 상황이든 간에, 472번 버스 오른쪽 뒷자리에 자리를 잡으면, 바쁜 일상 속 잊고 지내던 과거를 꺼내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신촌의 꿈을 꾸었던 고등학생 때를 시작으로, 새내기의 패기로 들어간 기수단 연습을 위해 바쁘게 신촌을 오가던 1-2학년 때 모습도, 472번 버스 안에 담겨있다. 버스 가장 뒷자리에 앉게 된 것도 기수단 활동을 할 때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 훈련을 마치고 나면 땀에 절어 있는 모습으로, 한 손에 포카리스웨트를 들고 자진해서 뒷자리에 앉았던 것 같다. 땀으로 목걸이가 만들어진 티셔츠와 색의 채도가 짙어진 팔 토시를 보고 있으면, 가장 뒷자리에 앉는 것이 다른 승객들을 최대한으로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472번 버스. 신촌 연세로
동화 ‘신기한 스쿨버스’에 나오는 버스처럼 어디든 갈 수 있는 버스는 아니지만, 오히려 472번 버스의 그 고정된 노선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코로나19로 미처 몰랐던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시기에, 472번 버스가 소중한 순간들을 오롯이 담고 있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는 하루였다. 추억여행을 하고 예측 가능한 행복을 다시금 느끼는 데는 ‘472 드라이브’ 한 번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가수 윤하는 비밀번호가 486이라고 말할지 몰라도, 에디터에겐 472가 행복 일기장을 여는 비밀번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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