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밤까지
에디터 닐
새벽이었다…
시험이 끝난 어느 날, 시차 부적응에서 벗어나지 못한 에디터는 모든 방학 계획을 다음 달로 미뤄놓고는 한 밤 중에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만의 시차의 특별함을 누리기 위해, 까만 하늘에 해가 뜨기 전, 새벽만이 뿜어낼 수 있는 신촌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러 나섰다.
먼동이 틀 무렵 신촌의 야경
시간이 지날수록 신촌은 코로나 19 발병 이전의 모습처럼 점점 활기를 되찾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새벽의 풍경만큼은 여전히 이질적이다. 이전에는 이른 새벽에도 소란스러운 곳이 있었고, 밤을 새며 공부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했다면, 지금의 새벽은 정적이며 쓸쓸하고, 그래서 더 자유롭다.

4가지 기법으로 표현한 새벽 신촌의 텅 빈 길거리
코로나 19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서울은 예술.문화.체육 시설과 식당의 영업시간 제한이 이어지고 있다. 식당은 물론 카페도 영업을 하는 곳이 없으니 사람도 사라졌다. 휴식, 여가, 유흥, 학습 등등 어떤 목적도 이 시간대에는 이룰 수 없게 되었으니 신촌도 강제로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이 번잡한 동네에 나 혼자라는 기분은 기묘하게 상쾌하면서도 거칠게 황량하다. 나 홀로 깨어있다는 느낌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지만 이내 공허한 외로움도 몰려온다.
첫차가 속속히 도착하는 시간
마냥 잠잠해 보이는 새벽 시간대에 유일하게 활기 넘치는 문화 시설이 하나 있다. 바로 PC방이다. PC방은 영업 시간 제한이 사라져 새벽에도 스트레스의 해소와 승리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10시가 넘어 갈 곳을 잃은 거리의 유령들에게 PC방은 소중한 쉼터가 되어준다. 이곳의 치열한 승부와 잠자는 다른 건물들과의 대비는 새벽 시간대에만 볼 수 있는 특별함이다.
(특히 점점 대중문화의 성격을 띠고 있는 PC방이기에 신촌에도 다양한 테마와 최신 시설이 즐비한 곳이 늘어나고 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과학 시간에 이런 내용을 배운적이 있다. 우리 눈은 어떤 사물을 관찰할 때 그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반사된 빛을 보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것을 보더라도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고, 다른 영감을 얻고, 다른 감상을 할 수 있다. 비슷하게 같은 장소이더라도 시간에 따라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감회를 줄 수 있고 다른 아름다움을 뿜어낼 수 있다.
나와 아트팀 에디터들은 신촌의 하루를 이 글에 담아내기 위해 다른 시간대에 한 장소에 모이기로 했다. 모두 각 시간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풍경 혹은 감정을 가득 담아 오기로 약속했다. 약속 장소는 신촌역 삼 번 출구 앞, 두 번째로 자리를 잡고,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하루’를 보냈을 나무 아래이다. 나무는 예로부터 한결같음과 시간의 흔적을 상징하지 않던가. 항상 변함 없이 그 자리에 있어주기에, 이 가로수는 오늘 하루 각기 다른 시간대가 주는 감성을 기록할 방명록이 될 것이다.
새벽의 적막감과 자유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에디터 나무
아침이다.
* 밤새 털어내지 못한 찜찜함과 새로운 다짐이 교차하는 시간

가끔은 미처 비워지지 못한 것인지 새롭게 생겨난 것인지 구분 가지 않는 마음들도 있다.
어이없으리만큼 비장해서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다짐들도, 어떤 아침과는 제법 잘 어울린다.

지겹기만 한 삶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 넣는 것은, 바지런한 땀흘림의 시간보다도 아침. 그 찰나의 무모함일지 모른다.
* 익숙하기에 잊고 마는 것들

아침이면 해는 어김없이 떠오른다.
우리는 눈으로 그것을 좇기보다는 걸음을 바삐 옮겨 지르밟는 쪽이 익숙하다.

아침의 태양만큼이나 당연하지만 우리 눈에 좀처럼 포착되지 못하는 것은 또 있다.
속속들이 다 안다고 생각했던 공간, 익숙했던 모습이지만, 그것을 있게 하는 것들까지 미처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 미완과 불안정의 시간
국민체조 음악이 흘러나오는 유플렉스 지하도의 아침,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든 신입 미화원이 사무복을 입은 직원에게 지적을 받으며 종종걸음 친다. 그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히지만 사진으로 남기기에는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종종 서툴렀던 내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하다. 아침의 부산스러움, 혹은 미완(未完)과 조금은 닮아 있나 생각한다.
늘 피곤함과 결부시킨 탓에 짜증스레 여겼던 아침에게 괜한 미안함을 느끼며,
아침 햇살이 드리운 지상으로 나선다.
햇살이 아직 따가워지기 전, 고요히 아침잠을 청하는 것들과 그것을 깨우는 분주한 손길이 한 데 엉킨 신촌의 아침 거리를 걷는다.


겉보기엔 별 다를 것 없는 풍경이지만, 익숙함 틈에서 낯섦을 발견하는 내 시선만큼은 달라졌음을 기념하며,
정신을 맑게 하고 또 새로운 하루를 깨우자고 결심하며,
이렇게 신촌역 삼 번 출구 앞, 두 번째 가로수 아래 도착했다.
아침의 고요함과 정적인 생기를 머금고 있다.
에디터 박 솔
낮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h5lCTB1EDA
(BGM♫)
사람들이 끊임없이 걷는다. 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모르는 척 지나치는 하루. 우리는 외롭기 때문에 모여있다. 해는 높게 떠 있다.
외면할수록 많아지는 나의 지인들
다시 한 번 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해는 높게 떠 있다. 반복되는 리듬. 그 사이의 변주를 포착할 때마다
나는 살아있었다.
혼자 있을 때 가장 평화로워 하는 사람들. 우리는 끊임없이 걷는다. 걸음의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면서. 하늘이 가장 높은 시간,
우리의 의미가 가장 짙어지는 시간.
신촌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자장가처럼 따뜻한 햇살이었다.
낮은 그렇게 서서히 죽어갔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신촌역 삼 번 출구 앞, 두 번째 가로수 아래 도착했다.
에디터 뽀
이화여자대학교_학문관
학문관의 창은 거대해서 좋았다. 햇살이 네모난 칸을 꽉 채울만큼 넘실거려서 좋았고, 비가 폭포처럼 쏟아져서 좋았다. 무자비하게 날 눌러버릴 수도 있었던 것들이 한 겹의 유리를 두고 맥없이 튕겨나갔다. 바깥이 얼마나 덥고 춥고 습하건 간에 내부는 평안했고 조용했으므로 쇼파에 드러누워 나는 한참을 꼼짝하지 않았다. 열기나 차가운 빗방울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난 채, 적당한 공간에서 바깥을 안전하게 지켜보는 일이 비겁하게 느껴질만큼 좋았다. 한참을 나와 대치상태에 있던 해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는 이른 저녁.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기세 좋게 떠 있던 해는, 몰락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할 수 없어 발악하는 이처럼 나에게 천천히 가까워졌다. 나는 해를 등지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길고 짙은 나의 그림자를 계속 밟으며.
신촌기차역의 내리막
오늘의 해는 비교적 얌전하게 구름 사이에 매몰되어 있다. 미적지근한 6월의 공기 속에서 발광하는 빛도 어쩐지 미약하다. 신촌 기차역으로 향하는 내리막에서 나는 늘 하늘과 점차 가까워지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렇게 계속해서 가까워지다 보면 닿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누군가 파스텔로 정성스럽게 문지른 캔버스처럼 구름의 색은 각기 다르면서도 제멋대로 묘하다.
해가 지는 모양새는 언제고 내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다.
그것은 세상에 끓는 용암을 들이부어 천천히 녹이는 것처럼 온통 끈적해진 채 저물어 가는 붉은빛의 하늘에도, 구름이 가득 껴서 불 꺼진 방처럼 점차 무겁게 어두워지는 잿빛의 하늘에도, 어떤 기가 막힌 타이밍인지 발랄하게 물들어 가 나로 하여금 같은 사진을 수십장씩 남기게 하는 핑크빛의 하늘에서도 동일하다. 내일 새롭게 뜰 것을 알고 있어도 해의 몰락은 항상 어떤 우울을 동반한다. 푸르지 않은 하늘의 색이 낯설어 지구 최후의 날 같은 망상과 손쉽게 연결되는 걸까. 아니면 저녁은 으레 헤어짐에 걸맞는 시간이기에, 자연히 마음이 아쉬움으로 물들어 빠지지 않는 가시처럼 우울이 박혀버린 걸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지는 하늘이 아니라 오늘도 손가락 사이의 모래알처럼 가볍게 빠져나간 나의 하루가 안타까운 것은 아닐까.

어스름한 하늘 아래서 기다렸다는 듯이 신촌의 가게들은 앞다투어 전등을 켜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체로 환하고 때로는 우아한데, 때로는 촌스럽게 보인다. 똑똑한 사람들은 저무는 해가 다시 뜰 아침을 막연히 기다리는 대신 인공 태양을 만들었다. 그러나 만들어낸 빛과 주어진 빛의 차이를 아는 것은 오직 인간 뿐이기에 21세기 여름의 매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댄다. 이는 조금 슬픈 일이다.
저녁은 온갖 것들이 뒤섞인다. 만나는 사람과 헤어지는 사람의 발걸음이 교차하고 미처 다 들어가지 못한 해가 은은하게 죽어가고 크고 작은 네온사인에 차례로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 빛과 어둠이 섞여 들어가는 시간. 앞은 온통 희고 뒤는 온통 붉은 빛의 자동차들이 다소 징그럽게 교차로를 빼곡히 채우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도로의 차들과 스쳐 지나가는 인파와 24시간 커피숍 안내 전등은 그야말로 도시의 심볼이다. 줄어들지 않는 빛의 한복판에서 신촌 역 삼 번 출구 앞, 두 번째 가로수 아래에 도착한다. 매미가 살지 않았으면 싶은 나무가.
에디터 메르헨
해가 저물고, 까만 베일이 天球에 깔린다. – 신촌에 어둠이 찾아왔다.
신촌의 밤은 눈부셨다. 주위를 둘러보면 빛, 빛, 빛.
가로등에서 뻗어나온 빛이 밤하늘을 쿡쿡 찌른다.
노르스름 해보이는 굴다리가 보인다. 빛은 나아갈 길을 밝힌다.
어둠에 대한 반항 (출발지, 연세대 건너편)
빛은 어둠에 맞서는 인간의 반항.
반항은 가로등을 탄생시켰다.
가로등의 역할이 그렇듯, 반항은 세상을 밝혀 인간이 한걸음 앞으로 발을 뻗을 수 있게끔 도와줬다.
산이 보일 정도로 밝은 (여전히, 연세대 건너편)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밤에 잠들지 못한다.
나무, 산, 들판, 그리고 얼굴들은 형상과 노출의 부담에서 해방될 수 없다.
어둠은 모든 것을 용서할 능력을 상실했다. 정체성과 인상을 위한 투쟁은 지속되고,
우리는 밤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연세로 11길
별이나 밤하늘이 왜그렇게도 매혹적인지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의 흔적도 없다. 별은 세상이 어둠에 반항하든 말든, 내기분이 좋든 나쁘든, 자신의 자태를 잠시동안 노출시키며 그자리에서 자유롭게 스스로를 불태운다.
연세로 13길
그렇게 생각하며 걷다보니 꽃집 앞에 다다랐다. 모란, 라벤더, 백일홍. 줄기는 꺾이고 잎은 뜯기었을언정 그 미소는 여전히, 작은 통 안에서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꽃집 안에서 두런두런 대화가 오간다. 요즘은 고온다습해 백합이 빨리 피고 빨리 진다고 한다. 피기 좋은 날씨에 백합은 잘 시든다. 좋은 시절이 지나는 동안 바닥에는 시든 것들이 쌓인다. 바닥에 시든 것들이 썩어간다. 스스로를 불태워 빛을 내는 별처럼, 이 꽃들도 생명의 마지막 남은 조각을 한껏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어디 별과 꽃 뿐이랴, 우리도 이런 것이 아닐까.
사람도 스스로를 꽃피우려면 먼저 자신에게 남은 것들을 불살라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별처럼, 꽃처럼 살고 있는가? 어쩌면 여기서 멈춰서면 다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마치 차갑게 식은 별처럼. 더럭 겁이 났다.
짧은 여정의 끝 (도착지, 홍익 문구 앞 나무)
다다른 길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짧은 여정의 끝이 다가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름 모르는 이의 침을 맞고, 술주정뱅이의 발짓을 받아도, 나무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는다.
나무를 만져봤다. 울퉁불퉁한 나뭇결. 나무를 올려다봤다. 가로등불을 반사해 빛나는 잎과, 가로등불에 그 별빛이 가려진 밤하늘.
이처럼, 반항은 다른 가치를 훼손시키기도 한다.
빛이 나뭇잎을 돋보이게 하나 별빛을 가렸듯, 반항은 무언가를 주면 무언가를 앗아간다.
허나, 이는 모든 존재가 사실은 반항을 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새로운 잎을 피우기 위해 기존의 잎을 떨궈낸 나무로인해 지저분해진 거리는 누군가에겐 골칫거리로 다가올 것이다. 나무는 반항을 하지 않으려는 반항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별, 나무, 꽃처럼 매순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불사르며 반항하지 않는 반항을 할 것이냐, 혹은 가로등처럼 그자리에 서서 수동적으로 어둠에 반항할 것이냐.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서, 우리는 어떤 반항을 취해야 하는가.
“반항적인 행동은 순수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존재의 본질에 호소한다”
-알베르 카뮈-
신촌의 많은 반항들을 감각할 수 있었던 밤이었다.
[…] 새벽부터 밤까지를 쓸 때예요. 토요일 점심까지는 글을 올려야 하는 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저는 생각나는 키워드를 메모장에 전부 적어 놨다가 나중에 살을 붙이는 식으로 글을 쓰는데, 키워드만 있는 상태에서 정신 차려보니 금요일 새벽인 거예요. 하필 그때 토요일 오전부터 점심까지 외부 스케줄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전날 밤을 새워 글을 절반 정도 완성하고, 토요일 오전에 등산하러 갔다가 학교 근처 카페에서 글을 완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