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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1 · 06 · 29

314. MEYOUUS

Editor 욘

MEYOUUS

ME 나와

YOU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US 그리고 우리에 대한 짧은생각

 

ME. 끝으로의 도피

 

‘차라리 갑자기 세상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햇빛이 내리쬐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날, 빨간 잠망경이 보이는 벤치에 앉은 에디터는 생각했다. 뭔가 답답하거나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으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갑자기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거야. 아니 근데, 좀비가 쏟아져 나오면 난 어디로 도망가야 돼?’

 

이제 상상이 시작된다. 흔한 좀비 서사의 연출로 따지자면,

 

 #0. 갑자기 지하철 내 승객 한 명이 경련하 듯 쓰러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머지 승객들과 다가서는 40대 여성 승객.

 

이 이후로는 다들 알다시피 연달아 많은 사람들이 물릴 것이고 그 수는 주체할 수 없이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야속하게 열차는 신촌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고 마는데, 내가 도망칠 타이밍은 아무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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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신촌역 1번 출구에서 좀비가 쏟아져 나온다. 빨간 잠망경 거울에 그 모습이  비추어 보인다.

 

 

이 정도 타이밍이 아닐까.

인상까지 쓰며 도망갈 수 있는 여러 루트를 시뮬레이션까지 돌려보고 있을 때쯤,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노래가 후렴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虹が架かる空には雨が降ってたんだ… ‘

무지개가 놓인 하늘엔 비가 내렸어…’

 

공교롭게도 흘러 나오는 노래는 SEKAI NO OWARI의 Rain. 밴드 이름마저 ‘세상의 끝’이라는 뜻이었다. 전염병이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후의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든지, 가장 우위에 있던 불문율의 가치가 깨져버려  다른 시대가 열린다든지, 가끔은 저런 상황들이 지금보다도  더 희망적일 거라 느낄 때가 있다. 잘 사는 것보다 그저 사는 게 중요한, 생존에만 급급한 세계가 온다면, 과 같은 이상한 망상말이다.

 

날 좋은 날, 한껏 꾸미고 약속 장소에 나와 행복한 표정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벤치에 앉아 혼자 한껏 시커먼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이 그런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까? 알길은 없지만 혼자 모든 고민을 떠안은 표정으로 심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누구나 이런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런 우스운 망상이 아니더라도. 낮잠을 잔다거나, 가만히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끝까지 듣는다거나, 뭐 고민 많은 시기에 잠시나마 도망갈 수 있는 현실도피수단말이다. 물론 뒤에는 잠깐의 현타가 부작용으로 따라오긴 하지만.

 

 

YOU. 빌런

 

빌런은 더 이상 악당1 정도의 존재감이 아니다. 오히려 매력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정도로 많은 영화가 스핀오프 되어 빌런을 비추고있다. 2019년에 개봉한 조커나 최근에 개봉한 크루엘라만 봐도 우리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다.

 

조커 <Joker> (2019)

 

생각해보면 빌런과 히어로는 분명히 대립 관계이지만 필요충분관계는 아니다. 모든 빌런에 히어로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빌런은 언제나 등장할 수 있지만 히어로는 빌런이 나타날 때야 진가를 발휘하지 않는가. 또, 대립한다고 해서 히어로가 되는 것도 아닌, 이건 뭐, 결국 빌런이 있기에 히어로가 있는 것 아닌가. 솔직히 히어로 입장에선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99가지를 잘해도 1가지를 못하면 욕 먹는 히어로와는 다르게 99가지를 못해도 의외의 1가지 행동에 사람들은 열광하니. 그들에겐 단순히 ‘bad guy’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동시에 빌런은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팀플 무임승차 빌런, 노마스크 빌런 등 세상을 때려 부수거나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가 아니더라도 다수를 불편하게 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빌런이라 부른다.

 

에디터가 서울에 올라온 이후 빌런이라 칭하는 몇몇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첫 번째로는 가짜 길거리 포교 빌런이다. 일명 ‘도쟁이’. 처음엔 길을 묻다 갑자기 내 관상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는데, 좋은 팔자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조상의 기에 눌려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엔 대화를 끊는 게 어려워 카페 앞까지 반 강제로 끌려갔다가 겨우 도망친 적이 있다. 이제는 어떤 사람들이 ‘저기요!’라고 하기만 하면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 지나가버리는 데 도를 텄다고 해야하나.

두 번째 부류는 불신지옥의 부류. 첫 번째 유형과 비슷한 듯 다르다.

포교의 목적이 ‘돈’이라기 보다는 정말 신앙을 강요하는 부류는 더 어렵다. 직접적으로 나아게 말을 걸지 않더라도 지하철에서 ‘불신지옥’이라 써진 큰 피켓을 들고 소리치거나 봉고차에 스피커를 달아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떠들썩하게 한다.

사실 크게 해가 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불신지옥이라니! 보기만 해도 저주가 걸리는 기분이다.

한 번은 같이 살던 하우스 메이트 언니에게 저 사람은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절실할 수 있냐고 물었다.

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저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이 시국에 마스크를 안쓰고 다니는 사람처럼 보이는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우리를 살리고 있는 거라고 생각할 거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영화 빌런들의 불우한 어린 시절, 혹은 이유가 있는 악행에 쉽게 수긍하고 응원하지만 현실에선 글쎄, 범법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인상을 찌푸리고 만다. 영화에선 연출 상 빌런의 포지션이 명확하지만 현실에선 각자 ‘빌런’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제각각이다. 다른 사람들과 논의를 해서 ‘이 사람은 빌런이다!’라고 판단하지는 않지 않은가.

 

그렇지만 우리가 ‘이 사람 진짜 빌런이다!’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그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생각할 것이라는 무언의 확신과, 나는 다수의 편일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빌런은 악당. 우리는 애초에 자신을 빌런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 생각하는 빌런의 이미지는 항상 자신과 완벽하게 타자화 되어 있다.

아무튼, 아무튼 나는 아닌 ‘YOU’.

 

 

US. 콩나물 세대

 

지금 우리를 크게 아우를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항상 세대가 있고, 그 차이가 있지만 세대는 딱딱 끊어지는 연도의 개념은 아니다. 소비 유형에 따라, 사회경제 변화 등에 따라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며 겹쳐지기도 한다. 에디터는 2000년도 초에 태어난 Z세대이자 MZ 세대라고 한다.

<90년생이 온다>와 같은 책처럼 사회의 중심이 되는 세대가 교체될 때마다 기성세대와 부딪히곤 하는데 이런 세대 간의 차이를 넘어 지금 우리를 보다 폭 넓게 대표할 수 있는 변화는 없을까?

 

지금과 예전. 이 추상적인 단어들을 확실히 경계 지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면 우리가 서로를 만나고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변화에 있다.

인터넷, 핸드폰, SNS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기에서 한 층 변화를 겪게 만든 것은 단연 블루투스 이어폰이 아닐까.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은 대게 ‘소리’.

카페나 전시회, 콘서트, 버스 등 사람들은 같은 노래나 소음을 공유함으로써 한 공간에 있다는 걸 체감한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 우리는 그 소리에 다 같이 뒤를 돌아 보게 되는 것처럼.

 

에어팟 한 쪽 필요한 사람?

 

처음에는 많은 비웃음을 샀던 A사의 블루투스 이어폰, 에어팟에 붐이 일고 이어 추가된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이제 서로를 완전히 차단시켰다.

단순히 ‘안들린다’는 개념이 아니다. 바로 옆에서 말 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소음과 소리는 차단돼 같은 공간이지만 함께 있는 것은 아닌  아이러니한 상황이 가능해진 것이다.

또 귀를 막는다는 건, 대화의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것으로 핸드폰으로 따지면 알림을 꺼놓는 것과 같은 암묵적인 표지가 되었다.

 

지하철 풍경

 

우리는 이제 지하철에서도 귀를 틀어막고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지하철을 타 앞 좌석을 무심코 바라보면 몸은 낑겨있지만 각자의 보호막 같은 게 쳐진 것 같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는 기분이다. 이제는 마스크까지 쓰게 되면서 눈은 핸드폰, 귀는 에어팟, 표정은 마스크로 가려져 어떤 표정을 짓는지 조차 모르게, 다른 사람에겐 감정도 내비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차단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에어팟을 빼고 핸드폰을 넣고 세상을 보라 와 같은 의도는 더더욱 아니다. 이제 변화된 우리의 방식일 뿐.

 

에어팟, 일명 ‘콩나물’이야 말로 요즘 우리를 상징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콩나물 세대!

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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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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