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독수리 다방
삶은 무한한 과정 그 자체일지도, 무수한 결과의 합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결과도 언젠가는 과정의 일부가 되어 흘러가게 될 테지만, 이렇다 할 완성이 없는 영원한 과정은 어째 조금은 고통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언가 하나씩 빠진 퍼즐이나 수열, 혹은 지도 앞에서 마주하는 꽤나 공통적인 감정, 그 ‘불-편’함은 인간이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완성을 갈망하고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동기 이론이라는 심리학적 학술 토대가 마련된 것도 이러한 결과에 대한 갈망과 끊임 없는 목표 지향적 행위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무언가를 완성하고 어딘가에 도달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미완성은 불편함으로, 과정은 불안함으로 표상된다.
우리는 종종 과정의 중요성을 논한다. ‘결과와는 상관 없이’,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등의 어구가 무척 익숙한 것도 그 이유이겠다. 그러나 참 모순적이다. 의식적으로 결과와 과정을 분리하여 가치를 두고자 하는 이 때에도 우리는 결과를 통해서만 과정을 들여다 본다. 다시 말해, 어떠한 결과가 만들어진 후에야 비로소 그간의 과정에 대해 사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공을 이룬 후 반추하는 그간의 노력이나, 실패를 경험한 후 반성하거나 미화하게 되는 과거의 선택들. 과정에 대한 생각은 주로 앞의 두 형태로 이루어지곤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 치열할 수도, 그다지 치열하지 않을 수도 있는 과정 안에 개인이 존재할 때, 그 안쪽은 불안과 초조, 오기와 광기라는 안개로 가득 차 있을 때가 많다. 완성되지 못함에, 이루지 못함에, 앞서지 못함에, 끝내지 못함에.
과정에 놓인 내가 지나치게 흐릿해져 똑바로 걸을 수 없을 무렵, 나는 마침내 증인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매일 같이 드나들던 공간. 약속이 있는 날이면 늘 서너시간 먼저 도착해 혼자 시간을 보내던 곳, 따뜻한 블랙커피와 함께 수십 권의 책을 앉아 읽었던 의자, 그리고 맴맴 돌던 대부분의 생각 뭉텅이들이 활자로 변해 적혔던 테이블. 스물 이후의 삶을 가만히 복기하다 보니 막상 너무나 금방 떠올라 버린 증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크라임씬 정도가 되려나. 무수한 중간 지점들에 머무른 나의 초상이자, 불안과 오기의 발자취가 빼곡한 스케치. 미완성의 나를 가장 많이 목도한 목격자이자 동시에 과정으로서의 무언가를 어렴풋이 꿈꿔볼 수 있게 하는 나의 참호. 바로 독수리 다방이다.

어딘가를 향해 가는 문이 아닌, 무언가로 있고자 여는 문이 되기를
만일 독수리 다방을 세 번 정도 방문한 끝에 이 글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아마 첫 문장은 대충 이러 했을 테다.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는 계기와 방법은 참으로 여러가지지만, 나는 오래 지켜져 온 곳들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맹목적인 매혹을 느낀다.’ 그렇다. 독수리 다방은 우리 엄마랑 동갑이다. 누구나 상대방을 볼 때 특별히 선호하는 외적인 포인트가 있듯이, 독수리 다방의 ‘since 1971’ 은 쉽게 말해 나에게는 넓은 어깨(!)와 예쁜 미소(!!) 정도의 인상을 남겼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기형도와 성석제가 단골처럼 드나들었다는 정보는,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유치하게 운명까지 운운하고 싶어지는 확실한 포인트였다. 시인과 예술가들이 모여 글을 쓰고 노래를 듣던 상상 속 옛 다방의 세련된 현실판 버전. 이보다 매력적인 타임 슬립 소설의 배경을 과연 신촌에서 또 찾을 수 있을까. 실로, 소규모 상점 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카페나 음식점까지도 한두해를 버티지 못하고 교체되는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마의 신촌 거리는 이 다방의 동화 같은 실존을 더욱 신비하고 소중하게 만들어 준다. 대규모 헬스장, pc방과 같은 건물을 공유하는 다방. 그 대비의 미학에 홀려 한 번 열어 본 문이 앞으로 닳도록 열게 될 참새방앗간의 입구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그때 그 시절 맛슈 양복점 옆 독수리 다🦅방

since 1971
약속도, 못 다 한 말도 수동이었던 시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숲 속 터널이 있다면, 독수리 다방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터널을 지남으로 인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듯, 여기도 그렇다. 무려 8층에 자리한 독수리 다방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물론 계단도 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추천한다. 그냥 그렇다.) 흥미롭게도, 이 별 볼 일 없는 8층짜리 건물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7층까지만 운행하는 왼쪽과 8층까지 올라가는 오른쪽. 아무 생각 없이 왼편을 선택했다면 가장 높이 올라간 층에서 막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 건장한 헬스인들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독수리 다방을 만나기 위해서는 왼쪽 문이 먼저 열리더라도, 덜컥 올라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오른쪽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기껏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그냥 보내는 멍 때리는 인간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같은 목적지를 가진 사람들은 척 보면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꽤나 재미있는 시스템이다. ‘아 독수리 다방 가시는구나.’ 따져보면 특별할 건 없지만 괜한 동질감에 그들의 하루를 오지랖 가득히 응원한 날들도 있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픈 얄팍한 마음에 견제를 품은 눈으로 바라본 날도 가끔, 아주 가끔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가끔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의심하지 않을 필요도 있다!
해리포터에 나올 법한 도서관. 독수리 다방의 장소적 분위기를 한 마디로 설명해야 한다면 나는 아마도 이 표현을 빌릴 것 같다. 여느 날처럼 독다(독수리 다방의 애칭이다)에 박혀 있는 나를 만나러 온 친구가 다짜고짜 읊은 방문 소감이 아직까지도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여기 이름은 다방인데 생긴 건 외국 어디 해리포터 도서관처럼 생겼다.” 당시에는 그런가, 하고 웃어 넘겼지만 몇 년이 지나고, 질리도록 이 곳을 많이 알아버린 후에도 가끔 그 말이 생각난다는 건 그보다 나은 수식어를 찾지 못해서가 아닐까.

링가-디움 레비오사!
사실 ‘도서관’과 ‘마법’은 해리도, 도비도 없는 이 머글들의 세상에선 절대 공존하리라 상상할 수 없는 조합이다. 전진하려는 모든 이에게 도서관은 지독한 현생이며 땀 냄새 가득한 끝없는 키재기의 연속이자 한없이 냉정하게 나를 들여다봐야 하는 조금은 외롭고 잔인한 과정이기에.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마법 따위를 기대하기에 현실은, 또 시간은, 그리고 나를 둘러싼 자욱한 안개는 때론 아플 정도로 가차 없기 때문에. 고작 한 걸음을 떼려고 아등바등하는 나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예뻐하기에 우리의 도서관들은 당연하게도, 결코 느리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 머글 n호는 늘 조급했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두려웠고, 그랬기에 언제나 완벽해야만 했다. 앞만 보고 달려 잘 해내고 나서야만 한숨을 돌렸지만, 그 한숨에 남은 나는 정작 별로 없어서 가끔 멍해지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이름 값을 하는 이 해리포터의 도서관에서 나는 해야할 일들을 하면서도 틀릴까봐 불안해하지 않고, 느릴까봐 걱정하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냥 그랬다. 이 곳이.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장르의 책을 읽고 싶게 하고, 테이블 너머 공부를 하고 있는 누군가와의 뜻밖의 로맨스를 상상하게 하고, 평소에는 줄이기에만 급급했던 쉬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게 하고, 그 시간엔 창 밖을 보며 괜히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몰래 기대하게 하는 그런 곳이고, 그런 공기였다. 지독하리만치 고단하고 텁텁한 현생에 뿌려지는 운명 한 꼬집. 그 하나로도 맛을 내기에는 아주 충분했던 것이다.

오늘의 위안 한 권은 무료,
대신 다음 사람을 위해 제자리에 돌려 보내주기
독수리 다방이 판타지 속 도서관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단순히 책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다채롭지만 유기적으로 흐르는 자리의 배치와 방들의 구성일 것이다. 하나의 덩어리진 땅을 의미 있는 단위들로 나누어 구현하는 것은 공간의 표현에 있어 필수적이나 그만큼 완수하기 어렵기도 한 과제인데, 독수리 다방은 가히 완벽한 부분들로 전체를 채우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일부러 텅 비우거나 지나치게 어지럽혀 놓아 틀을 깨는 구성도 물론 매력적이나, 결국에 늘 우리를 감동시키는 쪽은 명확한 의도를 가진 사려 깊은 공간임이 확실하다. 이 다방은 크게 네 가지 성격을 띠는 세부 공간과 테라스로 나누어지는데, 각각의 부분들은 확실한 개성을 자랑해 그날의 기분이나 필요에 따라 골라 앉는 재미가 쏠쏠하다.

독-수-리 한자 라임까지 맞춘 그대들. 진심이다.
다방의 짙은 갈색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낮은 테이블과 푹신한 소파의 조합 몇 쌍이 보인다. 여럿이서 편안히 대화를 나누기 좋은 메인 공간이 가운데에서 균형을 잡아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삼삼오오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지나쳐 반 층 짜리 계단을 오르면 연세로와 연세대학교 전체가 보이는 통유리를 따라 이어지는 4인 책상 자리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공간이 개인적인 최애!이자 나의 지정석이 있는 곳이다. 작업을 하거나 공부를 하기에 딱 적당한 높이의 책상과 의자, 각 자리의 사이 사이 놓여 있는 콘센트(이제는 현대인의 카페 선정 기준 중 하나가 되어버린),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고개만 돌리면 펼쳐지는 그림 같은 신촌의 도시 풍경. 수 백번 지나기도, 내려다보기도 한 길이지만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몽글거리는 마음은 늘 다시 처음의 순간으로 나를 되돌려놓고는 한다.

오늘의 나에게 한 잔의 커피, 그리고 지나치게 예쁜 하늘을.
참, 둘 다 리필 가능하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더욱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또 두 개의 전혀 다른 공간이 기다리고 있는데, 하나는 스터디 룸 같이 독립된 방으로 대관해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칸막이 없는 개방형 독서실처럼 꾸며져 있는 곳이다. 독서실과 닮은 이 공간은 카페에서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구조로, 독수리 다방의 공간적 다양성과 그 특별함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오랜 시간 앉아 공부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대부분의 요즈음 카페들과 달리,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머무르고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대놓고 마련한 자리가 주는 특별한 위안.
일이 됐든, 휴식이 됐든 주어진 시간 안에 빨리 끝내고 나가라고, 가끔은 공간마저도 나를 다그치는 것 같아서 슬퍼질 때가 있다. 물론 너무 많은 것들에 쫓겨 이미 조금은 삐딱해져 버린 마음 탓일지도 모르겠다. 원래는 별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 즐겼던 것 같은데, 하고 혼자 중얼거리다가- 그런 생각까지도 왠지 비참한 마음이 들어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부터 붉은 노을을 지나 땅거미가 질 때까지 독다에 앉아 시간을 보내던 어떤 하루의 끝에 덜컥, 눈물이 났던 것 같다. 아무런 생각 없이 어딘가에서 이렇게 오래도록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안심이 되어서. 아마 그 때 독다는 조급하고 불안한 나를 가만히 끌어 안고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위로를 건넸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독수리 다방의 모든 공간과 자리는 재촉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다방이 주는 묘한 안정감과 위로도 아마 그 ‘재촉하지 않음’에서 비롯되었으리라. 머무는 사람이 최대한 편안하게 읽고, 쉬고, 표현할 수 있도록 사려 깊게 구성된 공간들에서 비로소 미완성의 상태가 주는 불안의 허상이 아닌 ‘무언가를 하는 나’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속도전의 시대에 태어난 까닭에 늘 낙오에 대한 두려움을 폭탄처럼 지고 뛰는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다름 아닌 잠시 동안이라도 기꺼이 짐을 나누어 메고 발 맞추어 함께 걸어줄 공간이 아니었을까.

각자가 편안한 속도로 함께.
좋은 공간을 만드는 건 결국 좋은 사람들이라고 했던가. 만약 그렇다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독수리 다방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진정으로 이 다방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예쁜 사람들 말이다. 벌써 오 년 차 단골이 되어가는 나는 거의 모든 직원 분들의 얼굴을 안다. 물론, 직원분들 또한 감사하게도 나를 알아봐주신다. 공통된 장소를 통해 서로 안면을 트게 되었으니, 페이스북으로 치면 독수리 다방이 우리의 ‘mutual friend’ 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처음 몇 년간 독수리 다방을 활발히 들락거리며 발견한 신기한 점은, 다른 카페나 음식점에 비해 직원 분들이 정-말 정—말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장님이 혼자 주로 운영하시는 가게의 경우 늘 똑같이 사장님을 만날 수 있겠다만, 이 곳처럼 직원만 총 예닐곱 분이 돌아가며 상주하는 큰 카페에서 이렇게 오래동안 같은 얼굴을 보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오 년 전 내 독수리 다방에서의 첫 주문을 받아주신 직원 분이 아직도 근무하고 계신다니. 심지어 갈 때마다 ‘오늘도 예쁘게 하고 오셨네요!’ 하고 심쿵 멘트와 함께 맞아 주시다니. 이게 바로 성공한 단골 아니겠는가. 갈 때마다 달다구리 두 개씩을 꼭 챙겨주시며 보내는 눈인사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햇빛이 쨍쨍할 때 자리마다 손수 양해를 구하고 내려주시는 블라인드, 그리고 고장난 테라스의 조명을 뚝딱뚝딱 고치는 손길까지. 그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하루의 위안이, 또 일주일을 견뎌 낼 응원이 되어 준다. 내가 신촌을 떠난 이후에도 독수리다방에서만큼은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저 달다구리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아 셨 냐 구 요 글쎄!
공간과 사람들의 조용하고 묵묵한 응원 덕분이었을까. 독수리 다방을 만난 후 부터 나는 이곳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종종 하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아마 그때쯤부터였을 것이다. 무언가를 쓰겠다는 다짐에서 첫 문장의 온점이 찍힐 때까지 몇 번이고 신촌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앉기를 반복했다. 상상 이상으로 많은 생각과 주저함과 담금질이 동반되는 일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나를 풀어 활자로 옮기는 일이기에, 마주하기 무서워 덮어 두었던 작은 상자를 찾아내는 과정이기에, 그리고 결국에는 열어 보는 용기이기에. 누구나 조금씩은 그러할 테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면 당연하게 외면하고, 너무 커져 버릴 생각은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기를 택하며 살아온 나에게 글쓰기는 너무나 정 반대의 과정이었다. 숨기기에 급급했던 못난 나의 조각들과 세상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내놓기에는 한참이나 어리고 편협해 보였던 사상들. 그 존재들을 인정함에 그치지 않고 오롯이 나의 손으로 적어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읽고, 또 다시 적어내야 했다.
숱한 망설임과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던 되물음 끝에 나는 나를 위한 첫 글을 썼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독수리 다방이 있었다. 메두사의 얼굴처럼 마주 보면 뿌리 채 뽑혀 버릴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단 한 줄도 적지 못한 날에도, 확신에 차 써 내려갔던 문단이 너무 유치하기 짝이 없어 통으로 날려 버린 날에도, 며칠의 고민 끝에 겨우 정리된 생각을 알맞은 단어로 옮길 수 있음에 감사하던 날에도, 노을과 함께 마지막 문장의 온점을 찍던 날에도. 독다는 그런 장소였다. 아무리 깊은 내면을 마주하러 들어간대도 다시 뭍으로 올라올 수 있게 해주는 물살 같은. 결국에는 지금의 나, 여기의 나로 돌아올 수 있는 이정표이자 든든한 버팀목. 그렇게 수 편의 완결된 글과 수십 편의 진행 중인 생각의 조각들로 독수리 다방은 가득 채워진다. 그리고 그 안에는 매 순간 살아 있는 내가 있다.

미완성의 글과 나, 그리고 내 지정석
완결되지 않은 글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정돈된 흐름과 문체로 주제를 전달하는 글만이 쓸모가 있다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널을 뛰는 생각들에 길을 잃고 헤매이던 순간들은 완결된 글이 탄생함으로써, 그 의미가 소급되어 부여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완성을 향해 달려가야만 한다고. 그래야만 달려왔던 모든 순간에 대한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지하철을 타고 신촌에 오는 동안 노트에 끄적인 상념, 따뜻한 블랙 커피와 함께 멍을 때리며 상상했던 글감, 그리고 너무나 엉터리로 써서 다음 날 어이 없게 지우고 말아버린 문장까지 – 그 모든 궤적이 글이라는 것을. 그 중 쓸모 없거나 가치 없는 순간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클리셰처럼 들릴 수 있으나,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수수께끼의 키는 결국 자신이 쥐고 있게 마련이다. 아마 내 키는 여기, 독수리 다방에 숨겨져 있던 것 같다. 만약 삶이 한 편의 글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탄탄대로를 걷는 첫 번째 챕터일 수도, 뜻밖의 위기를 맞는 두 번째 챕터일 수도, 이도 저도 아닌 세 번째 챕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내가 쓰고 지우는 모든 단어는 그 결말이 어떻든 간에 충분히 사랑받아야 마땅하다는 점이다. 미처 완성하지 못한 두 번째 챕터를 두고 셋 째 장의 첫 문장을 써내야 한다고 하더라도, 완벽하지 못함에 늘 아쉬움이 남더라도, 그럼에도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것. 또 나의 그 모든 과정을 예쁘게 읽어줄 수 있는 제 1의 독자이자, 물살, 이정표, 버팀목, 그리고 독수리 다방의 역할을 다름 아닌 나 자신이 해주는 것. 내가 나의 참호가 되어주는 것만이 남은 모든 순간마다 조금은 덜 불안하고 더 행복하게 나의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to. 독다
늘 함께 해줘서 고마워!

독수리 다방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36
월~토 11:00 – 24:00
일(공휴일) 11:00 -23:00
(현재는 22:00까지만 운영)
02-36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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