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신촌 꽃갈피
머리말
만약에, 모든 공간마다 깃든 이야기가 모여 책이 된다면 어떨까.
신촌이 한 권의 책이라면, 우리 모두는 그 어느 부분에 밑줄을 긋고, 한 귀퉁이를 접어가며 읽어 내려가는 열성적인 독자가 아닐까. 동시에 짤막한 이야기들을 보태는 작가이기도 하겠다. 신촌을 읽는 당신이 우리 이야기를 편히 찾아내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에 예쁜 꽃갈피를 끼워 두었다. 우리가 수줍게 갈피지은 이야기들이 당신에게 한아름 꽃다발이 되기를 바라며.
신촌 토끼굴 그라피티
프리지아,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에디터 홍

Prologue
올해 초 신촌으로 이사오기 전 나는 프리지아 꽃다발 한아름을 품에 안았다. 꽃이 받고 싶어 하고 넋두리하듯 SNS에 끄적여놓은 걸 발견한 친구 덕이었다. 몇 달만에 인사하는 주제에 방실방실 웃기만 하는 나에게 안긴 꽃은 프리지아였다. 그리고는 작은 쪽지에 매달린 꽃말 하나는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상투적이면서도 지독하게도 듣고 싶은 그 말이었다.
S#1
“불안한 사람은 뭐든 확실한 것이 필요하잖아. 그게 미신이든, 음모론이든, 돈이든.” 강의 말이 그날 내게 와닿은 것은 그 무렵 나 역시 불안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 p.35
나는 불안한 사람이었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추락할까 무섭고, 터널에 가면 무너질까 무섭고, 집에 있으면 불이 날까 무서웠다. 여전히 엘리베이터는 혼자 잘 타지도 못하고, 터널에서는 숨 참는 연습을 해야하지만, 내가 이 프리지아 꽃다발을 안고 신촌 굴다리로 향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다. 터널의 시작에서 끝까지 숨을 참는 데 성공하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던 그 말처럼, 이루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했다.

두려운 것에 대한 도전이 필요한 때였다.
S#2
집 앞에 바로 신촌 굴다리 (약칭 토끼굴)가 있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경의중앙선 신촌역 바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뜬금없게도 이 굴다리가 나온다. 처음 이곳을 알게 된 건 열여섯의 내가 도깨비에 미쳐있을 때였다. 대파를 들고 런웨이를 하던 그 두 배우, 웃기게도 그 촬영장소로만 기억에 남았고, 그 뒤로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이곳으로 향했다. 길치인 나를 위한 가이드를 친절히 자처한 친구는, 가보지도 않았다면서 척척 잘만 내려갔다.

벽에 쓰인 주의사항은 흥미로웠다. 악취 및 소음에 유의할 것, 너무 자극적인 예술 행위는 금할 것, 허용되지 않은 곳에 도색하지 말 것. 예술에도 예의범절은 존재한다.
이런 터널을 무서워하는 걸 아는 친구는 천천히 보폭을 맞추어 걸어주었다. 다행히도 그림과 글씨들에 집중하느라 무서워할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길지도 않았다.

굴은 시원하고, 약간은 시렸지만, 붉은 배경의 그림들과 글씨들은 열정적이었고, 타올랐다. 누군가의 열정이 담겨있는 곳은 두렵지 않다. 그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때마침 찾아오는 봄은 이 굴다리의 쌀쌀함마저 시원함으로 바꾸어버리고, 손에 들린 프리지아의 향을 코 앞에 배달했다. 그리고 그냥 직관적으로 눈 앞에 놓인 것들을 즐기라고 말하는 듯했다.
S#3
천천히 보고 오라는 친구의 말에 혼자 남겨진 채 한참을 굴다리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어쩌면 N형 인간에게는 당연하게도 사색에 잠겼다. 왜 그런 말들이 있지 않은가. 인생이 터널 같다는 말들. 그래, 솔직히 지금까지의 나는 참 다사다난 했고, 인생이 터널 같았다. 어쩌면 암흑 같은 이 공간이 싫어서 터널을 싫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 참는 연습을 하다보면 터널의 끝에 보이는 빛이 그렇게 좋았다. 이제 숨 쉬어도 돼, 하는 무언의 허락 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치면 인생이 터널 같다고 처음 말한 사람에게는 상 주어 마땅하다. 긴긴 암흑 같은 시절을 지내고 미래가 보장될지 확신도 못한 채로, 흐릿한 빛 한 줄기만을 보면서 달리기 수 천 키로를 해내는 것이니까.
흐릿한 빛마저 간절한 목표가 되는 것이, 알 수 없어 두려운 그 빛이 목표가 되는 것이 인생이기에 어쩌면 터널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어느 시간대에는 나는 저 빛이 그렇게도 잡고 싶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두려웠던 빛 바깥은,
거봐 선명한 풍경이지라는 말로 치환된다.
그러니 무언가 처음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혹은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처럼 한 번 이곳을 걸어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인생 참 터널같지, 하고 곱씹는 사람들에게. 어딘가 난해한, 또 어딘가는 기괴한 그림들이 가득한 이곳을 걸어 압도되고, 그 압도감에 복잡한 생각을 잊을 때가 올 것이라고. 그리고 굴다리를 빠져나올 때쯤 번지는 빛이 선명한 풍경이 되는 것을 보며 길고 긴 암흑을 참 잘 버텼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는 프리지아 한 송이와, 그 꽃이 담긴 한 마디를 건넬테다.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라고.
창천문화공원
이팝나무, 꽃말은 영원한 사랑
에디터 파인
만개한 봄을 맞이하며,
5월의 어느 날에.
안녕, 봄이야.
정신없는 한 해가 지나가고, 어느덧 네가 왔네.
겨우내 움츠렸던 새싹들이 빼빼꼼 고개를 내밀고
하나 둘씩 내게 인사하네.
너만이 낼 수 있는 맑은 연둣빛이
내 마음마저 맑게 만들어 주는 듯해.

보통 봄이라 하면 꽃을 떠올리잖아.
네가 품고 있는 수많은 꽃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이팝나무 꽃이야.
어디에나 있는 흔한 꽃이지만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흔히 지나가 버리거든.

한겨울 하얀 눈을 양분 삼아 그 모양을 쏘옥 빼어 닮은 듯한
흰 꽃을 가진 아이야.
여기서 보면 흰 눈 같기도,
저기서 보면 흰 쌀 같기도 한
흐드러지게 피어 참 어여쁜 하이얀 꽃잎들.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봄에는 즐거움을,
여름에는 그늘을,
가을에는 열매를 선물하는 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옛날 옛적 사람들은
너를 보면 이밥*이 생각났대.
* 이밥 : 조선 시대에 흰 쌀밥을 일컫는 말
먹을 것이 귀했던 그 시절
네가 피어낸 꽃들은 마치
너무나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소망과 닮아 있었던 거야.
이밥나무야
그 옛날 너는 사람들의 소망이었고,
이팝나무야
지금의 너는 사람들의 일상을 함께 하는
조용한 동행이야.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수많은 곳들 중
우리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공간이 있어.
누군가에겐 일상의 시작이자
다른 누군가에겐 하루의 끝이 되는 곳
너와 많이 닮은,
네가 많이 있는 그 곳
광장이야.

광장이 없는 곳은 찾기가 힘들 정도로 어디에나 있지만
실은 말야, 광장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너무나도 흔해서, 우리 머릿속에 아주 옅게 남아버린
하지만 없으면 안되는 너,
이팝나무처럼.
인연의 만남과 이별을 함께 하는 광장마냥,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함께하는
이팝나무야.
네가 가진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주었던
우리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언제든 영원토록 우리의 곁에 있어주렴.
빈 공간을 너의 꽃과, 너의 향기와, 너의 열매로
너의 사랑으로 채워주렴.
광장과 함께, 사람들의 일상을 조용히
때로는 든든히
지켜주렴.

영원한 사랑
이라는 꽃말처럼
너의 영원을
너의 사랑을
작지만 큰 이 광장에
온 세상에
흩뿌려주지 않으련?
그럼 나도 네게 영원한 사랑을
나누어줄게.
나의 꽃,
나의 봄,
나의 이팝나무야.

유플렉스 옆 좁은 골목길
미루나무, 꽃말은 용기
에디터 소한
2022.05
ooo에게
여름이야. 다들 봄이라고 하지만 이제 막 입하(立夏)가 지난 참이니까. 절기 따지는 거 좀 늙은이 같은가?
나는 늘 그냥 그렇지 뭐. 글쎄, 요즘에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잘 모르겠어.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은 아니고, 바쁘게 살고는 있는 것 같아. 너도 알잖아. 나 딱히 하는 일은 없는데 몸만 바쁜 거. 이렇게 보면 참 한결같지.
바뀐 것도 꽤 많아. 하루에 한 봉지씩 먹어치우던 그 젤리는 이제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려서 거들떠도 안 보고, 그렇게나 좋아했던 작가도 이젠 좀 시들해. 귀한 주말을 기꺼이 바쳐서 보러 가곤 했던 그 밴드도 보러 가지 않은 지 꽤 됐고. 그리고 나 이제 담배도 끊었어. 겨우 그거 그렇게 피울 거면 때려치우라고 네가 그렇게 구박을 할 때도 꿈쩍도 안 했었는데. 이렇게 대충 끊어버리다니 좀 웃기지?

재수학원이 끝나면 늘 향하던 곳인데, 실수로 찍힌 사진밖에 없네.
담배 자체보다는 그런 것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 나를 둘러싼 공간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몽롱함이나 묘한 해방감. 겨울을 기다리지 않아도 볼 수 있는 흰 숨. 캡슐의 경쾌한 파열음, 담뱃불을 붙여주며 바람을 막아주던 네 능숙함 같은 것들.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어찌 됐건 너랑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아니었을까.
대입이 인생의 전부인줄 알았던 재수생 시절, 4월이었던가. 딱 요즘처럼 나뭇잎이 연둣빛으로 반짝이는 날이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네가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 웃고 있는 얼굴을 본 뒤로 계속 그 표정만 생각났어. 사실 지금도 생각했고. 그 표정이 꼭 바람에 찰랑이는 나뭇잎처럼 보였나봐. 요즘 나는 미루나무를 보면서 너를 떠올리니까.

어딘가 너를 닮은
그 이후로 말이야, 우리 무려 4개월 동안이나 짝지였던 거 알지? 우리 반, 수학 점수순으로 자리 골랐잖아. 처음엔 그게 그렇게 고까웠는데 언젠가부턴 그게 너무 고맙더라. 너는 늘 수학 고득점자였고, 네가 자리에 먼저 앉고 나면 그 옆자리는 말하지 않아도 늘 내 자리였으니까. 그렇게 넉 달을 네 옆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흡연자도 되고 젤리 광인까지 됐잖아. 그거 말인데, 네가 나눠준 젤리에 내가 너무 격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오해받은 거야.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나 원래 젤리 안 좋아해.) 매일같이 그걸 다 씹어 삼키느라 턱이 얼마나 뻐근했는지 몰라.
너 의외로 엄청 덜렁대는 편이기도 했잖아. 유인물 같은 거 깔끔하게 정리하는 편일 줄 알았는데, 막상 옆에서 보니까 대충 책상 속이나 가방 속에 마구잡이로 구겨 넣더라. 그 유인물이 필요할 때면 한참을 뒤적여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프린트를 찾아내더라고. 나는 그 모습이 정신 사나우면서도 사랑스러웠던 것 같아. 사실, 네가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 프린트물이 어디론가 사라졌기를 바랐어. 그런 날에 너는 내 프린트 귀퉁이를 살짝 집어서 네 쪽으로 끌어당기며 머쓱하게 웃곤 했는데, 그 모습은 더 사랑스러웠으니까.
그냥 다 좋았던 것 같아. 네 깔끔한 옷차림새나 보조개, 두툼한 안경, 웃을 때면 내 한쪽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웃던 네 습관, 네가 내 책상 위에 올려둔 쪽지들 (아무래도 낙서에 가깝긴 했지만), 학원이 끝나고 나면 늘 함께했던 담배 타임과 그 상쾌함(!), 어느 여름밤에 마셨던 시원한 맥주 한 캔, 네가 늘 차고 다니던 시계, 지렁이가 기어 다니는 네 노트, 어지러운 책상 속과 굉장히 깔끔한 책상 위까지. 네가 자리에 없을 때면 난 이런 것들을 보면서 너를 재구성하곤 했어.

나는 아직도 그 학원 주변을 지날 때면 우리가 자주 있었던 골목 주변을 어정거려. 네가 신촌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던 게 생각나서 신촌 골목 사이사이 얼굴들을 훑어보면서 지나가기도 해. 있지도 않은 담뱃갑을 찾는 척, 주머니를 괜히 뒤져가며 담배 피우는 사람들 틈에 쪼그려 앉아있기도 하고. 골목에 어색하게 끼어있는 나를 보고 네가 한 대만 빌려달라면서 쫓아올 것 같거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면 나도 예전처럼 절대로 안 빌려줄 텐데)
너도 1년 반 사이 금연에 성공해서 만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예전에 호언장담했던 미팅, 소개팅을 양껏 시켜줄 자신이 없어서 연락하지 않는 걸까. 재작년 12월부터 연락도 없는 너를 이제 그만 괘씸해할 생각이야. 네가 혹시나 확인했을까 해서 저 밑에 있는 카톡방의 메시지 옆 1 확인하는 것도 이젠 그만하려고. 이유가 어느 쪽이든 언젠가 너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면 한 번쯤은 소식 전해줘. 많이 늦어도 상관없으니까.
우리가 자주 걷던 산책길의 미루나무들을 너도 요즘 보고 있을까
어제 바람에 살랑이는 미루나무 이파리들을 본 걸로 네가 손 흔들어주는 모습을 본 셈 칠게. 사실 사월 초의 미루나무를 보면서 너를 생각하고 쓰기 시작한 글이었는데, 어느새 그때 찍어둔 나무 사진은 없어져 버렸어. 그 사진이 아쉬워서 몇 번이고 갤러리를 뒤져봤지만 쓰잘데기 없는 캡쳐본만 수두룩하더라. 나도 여전해. 늘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이런 데서 닮은 걸 보면 그래서 우리가 친구였나…)
오월의 미루나무는 그때보다 좀 더 넉넉하고 짙은 초록색이야. 지금의 너도 딱 이만큼 달라졌을까. 많은 것이 바뀌는 와중에도 미루나무는 늘 미루나무인 것처럼, 여전히 너는 너고 나는 나일 테니까. 그걸로 된 것 아닐까. 너 좋아했다는 얘기를 길게도 했네. 잘 지내. 고마웠어.
클로리스 신촌본점
개나리, 꽃말은 기대
에디터 해안
2022년 4월 6일, 끝이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던 3시간의 대면수업이 칼같이 5시 50분에 끝나고,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일정을 향해 달음박질했다. 연희관에서 뛰쳐나와 평소와는 다르게 이대 쪽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카카오맵이 추천하는 최단시간 경로를 믿어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길은… 전체 이동 시간을 단축시켜줬으나 오르막이라 나를 허덕이게 만들었고, 낯선 길이었으나 시선을 끄는 것이 많았다.
급해 죽겠는데, 새로운 길에 난 예쁜 것들은 참으로 유혹적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도달하기 전의 내리막에는 노란 것이 피어 있었다. 나는 꽃을 잘 모르지만, 이 노란 꽃이 개나리라는 사실 정도는 바로 알아챘다. 헉헉대며 뛰어가고 있었지만 인도로 흐드러지게 내려온 개나리가 환상적이라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서는 생각했다. 아, 개나리가 한가득 핀 것을 보아하니 진짜 봄이 오긴 왔구나!

개나리 아래를 뜀박질로 지나가며 청춘영화의 기분을 맛보았다
과제와 시험에 파묻혀 한 달이 지나고 개나리는 사라진 지 오래인 2022년 5월 6일, 저녁 약속이 생겨 신촌으로 향했다. 클로리스는 신촌을 다니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새로운 장소, 간만에 기대를 안고 집을 나섰다.

저 고즈넉한 문을 열면 무엇이 나를 맞이할까

돌돌 말린 계단 너머에는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유럽의 어느 한가한 마을에 있는 가정집이 생각나기도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를 반긴 것은 계단이었다. 꺾여 있는 탓에 위쪽이 보이지 않았다. 올라가니 또 하나의 문이 있었고, 문에 달린 창 너머로 보이는 제법 오래된 듯한 모습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메뉴판을 펼치기 전의 묘한 기대감
자리에 앉으니 요즘 다른 카페들과는 다르게 메뉴판을 가져다 주었다. 앞면에 ‘TEA’를 큼지막한 글씨로 두 번이나 강조한 것을 보아하니, 차 종류에 자신있는 가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진한 밀크티를 맛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특히나 기대 이상이었던 밀크티와 그린티타르트!
잔잔하게 이야기를 나누다 지쳐 각자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찾아왔을 때, 나는 무신경하게 갤러리를 죽죽 올리다 꼭 한 달 전에 찍은 개나리 사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개나리 사진을 찍은 날 떠올린 생각을 다시금 떠올렸다. 봄이 되면 개나리는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고. 아, 나는 오늘 마주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했을까? 지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친구들을 시작으로, 같은 버스나 지하철을 탄 사람들, 클로리스의 직원 분들까지. 나는 이들이 나에게 건 기대에 걸맞는 행동을 했을지, 갑작스레 불안감이 찾아왔다. 개나리도 봄이 오기 직전 늘 이런 기분을 느낄까?
우리는 매 순간 기대하고, 기대받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이 글에서 계속적으로 클로리스라는 카페에 ‘기대’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또, 나는 카카오맵이 가장 빠른 경로를 알려주길 기대하고, 개나리가 봄의 시작을 알려주길 기대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내가 제 시간에 맞추어 약속시간에 도착하기를 바랐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기를 기대했다. 기대를 하는 것은 쉬운데, 내가 기대를 받는다고 생각하니 피곤함이 밀려왔다. 개나리는 기대에 부응해 봄의 시작을 알려주었고, 클로리스 또한 기대에 부응해 훌륭한 디저트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나는,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고 있는 걸까.
이야기의 결론은 없다. 남에게 쉽게 기대하자는 말도 아니고, 기대받는 것에 너무 부담감을 느끼지 말자는 그런 구태의연한 주장도 아니다. 그저 기대를 받는 것에 지쳤다면, 포근한 것에 잠시 ‘기대’보기라도 할까. 나는 문득 ‘기대받음’에 지쳐 클로리스의 오래된 소파에 기댔다. 이 소파는 아마도 앞으로 종종 기대받음의 도피처가 될 것 같다.
자주 올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자주 오도록 할게, 라는 마음가짐으로 이곳을 찾겠다.

장렬히 수다를 끝내고 어질러진 테이블은,
기대에 대한 고뇌에 빠진 내 자신의 머릿속과 비슷했다.

그러나 클로리스의 소파에 기대어 바라본 시야만큼은 정갈했다
맺음말
‘갈피’라 함은 ‘겹치거나 포갠 물건의 하나하나의 사이. 또는 그 틈’을 뜻하는 단어이다. 온갖 장소, 사람들, 예술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책이 된 신촌에서, 네 명의 에디터는 각자 꽃갈피를 꽂아둔 신촌의 한 페이지를 슬쩍 펼쳐 보았다. 네 개의 꽃갈피가 신촌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었길 바란다.
덧붙여, 우리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신촌에 꽂갈피를 끼워두길 바란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우리 모두가 편히 찾아내어 읽을 수 있도록. 꽃갈피가 모여 더욱 풍성한 꽃다발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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