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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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의자에 가만히 앉아
나를 사랑하는 이가 까준 복숭아를 먹으며
나지막이 지는 해를 보고 있노라면,
지나가는 여름을 생각해보게 된다
지나가는 계절을 생각해보게 된다
지나가는 시간을, 생각한다.
한여름을 좋아함은 그 때만 보이는 연홍빛 하늘이 좋아서다
파아랗다가도 분홍색으로, 보라색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이 좋아서다
그럴 때면 오직 자연만이 만들어내는 빛깔이 경이롭기도 하다
조물주는 분명 예술적 감각이 충만한 존재일 터
포크에 복숭아 한 조각을 꽂아 들고
한 입 베어 물면 여러 권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시끄럽다
덜그락따그락데굴데굴웅성웅성삐익삑빠아아아앙—뚝 . .
시끄러운 생각의 잡음을 잠시 멈춰두고
생각을 한 페이지씩 살펴보면,
유독 더웠던 이번 여름엔
유독 비가 많이 왔었지
유독 고민도 많았고
유독 외롭기도 했었지
다시 생각에 생각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하늘은 짙은 네이비색이 되고,
호수 건너편의 건물들이 반짝인다
창문은 어느덧 밖보다 내 모습을 더 뚜렷이 비춰주고,
기분 좋은 바람이 하루의 피로를 씻어준다
나의 영원한 여름, 나의 신촌
지나가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면,
늘 그래왔듯 치열하게 살아냈고
늘 그래왔듯 즐거운 때도 있었고
늘 그래왔듯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결국
이번 여름만 유독 비가 많이 왔던 것도 아니고,
이번 여름만 유독 고민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이번 여름만 유독 외로웠던 것도 아니다
이 곳의 우리는 그저 이 시절을 살아내고 있을 뿐
나를 사랑하기 위해 더 알아가는 길을 걷고 있을 뿐
푹푹 찌는 계절을 뒤로 하고
살랑이는 계절을 마주하며
작년 이맘때의 그녀를 떠올린다
아,
나 1년 새에 많이 컸구나
많은 겁을 달고도 많은 것을 이뤄냈구나
이곳의 푹푹 찌는 계절은 지나가지만
우리의 지금은 여전히 여름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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