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의 선율
음악이 생명 유지 장치와도 같았던 시절이 있다. 무기력으로 점철된 어린 생. 그 당시 이어폰의 두 줄은 산소호흡기와 같았다. 호흡기에서 공급되는 산소처럼 음악이 들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풀린 두 눈을 잠시나마 부릅뜨고 굳게 닫힌 입시울을 열어 흥얼거렸다. 겨울날 길바닥의 돌처럼 차갑고 낮추어진 마음은 가사가 전하는 이런저런 메시지에 데워졌고 굼뜬 몸뚱아리가 용기를 얻어 침대를 박차고 일어서기도 했다.
필자에게 그랬듯 음악은 많은 이에게 힘이 되어준다. 옛 기억을 되살려 미소 짓게 만드는 추억이면서, 지칠 때 한 걸음 더 내딛게 해주는 격려가 되었다가, 아플 때 어루만져 주는 어머니의 손길이 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순간 선물이 되어 환한 기쁨을 준다. 찰나의 삶에 수만 가지 의미를 더하고 인생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그래서 음악에는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음악의 힘은 ‘연결’에서 비롯된다. 음악가가 전하는 솔직한 마음과 용기를 외로운 이들의 초라한 마음에 연결한다. 때로 초면인 사람과의 심심치 않은 대화거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같은 장르를 듣는다는 사실만으로 유대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형형색색의 감정들이 음악을 통해 일파만파 퍼지면 이에 채색된 사람들이 한목소리를 내어 사회를 바꾸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한다. 그렇게 음악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잇는다.
만남의 장소로서 대표 격인 신촌도 음악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3개 대학의 중심에서 수많은 대학생이 오가는 가운데 청년 문화가 싹을 틔웠고 이를 기반으로 각종 밴드를 필두로 한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가난해도 마음은 풍족했던 청년들의 꿈이 실타래처럼 이어졌던 중심가 신촌. 시간이 흐르면서 반짝이는 영감의 산지가 어느새 향수의 공간이 되었지만, 아직도 신촌에는 활발한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각종 공연과 축제가 열린다.
오늘 소개할 곳들은 이런 신촌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신촌만이 가진 음악적 장소들이 되겠다. 신촌 길거리를 거닐던 이들이라면, 그리고 신촌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한 번쯤 음악에 발을 들였던 이들이라면 가장 친숙하고 눈에 익었을 법한 그런 장소들. 거창하지 않아서 더욱 매력 있는 곳들. 이름 모를 마음들을 이어주는 신촌의 선율을 소개한다.
#1 홍익문고 앞 ‘달려라 피아노’
홍익문고 앞 덩그러니 놓여있는 피아노 하나.

추운 날씨로 인해 연주가 중단되었지만 어디선가 선율이 들려오는 건 기분 탓일까?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풍경이겠지만 40년 묵은 피아노와 동고동락 중인 필자로서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감상에 젖지 않을 수 없다. 피아노를 사랑하는 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 밀려오니 말이다. 때로 들려오는, 가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그것과는 이질적인 차원의 음표들. 스마트폰이 씌운 안대와 귀마개를 슬쩍 열고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음의 배열은 그것이 라이브임을 직감하게 한다. 장르는 다양하다. 어느 애니메이션의 OST, 유튜브에서 들어본 듯한 BGM, 잔잔한 재즈와 뉴에이지 음악 등등…. 실외에 놓여 관리되는 탓에 청명한 소리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 거친 소리에 오히려 삼매경에 빠진 무명 피아니스트들의 연주가 더욱 솔직하게 전해진다. 예정에 없던 공연에 사람들은 바쁜 걸음을 잠깐 멈추고, 각자의 솔직한 표정으로 공연에 참여한다. 이름 모를 거리의 악사들이 피아노로 건넨 인사에 몇 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춰 귀 기울이는 장면은 가히 신촌만이 가진 진풍경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광경 뒤에는 사연이 있다. 홍익문고는 2012년 서울시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하마터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다. 하지만 홍익문고 대표의 노력과 동네 주민들과 대학생들의 반대 서명 덕에 옛 서점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서울시 미래 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덤. 그에 대한 보답이 거리로 나온 ‘달려라 피아노’인 것이다. 문화와 예술을 살리기 위한 여러 사람의 한 걸음이 큰 물결이 되어, 또 다른 문화의 탄생을 도모한 셈. 그에 대해 대답이라도 하듯 용기 있는 이들의 연주 하나하나가 모여 신촌 거리를 칠하고 있다.
#2 스타 광장 버스킹
신촌 하면 떠오르는 대표 무대.

거리공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스타 광장에 몰려있는 모습.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스타 광장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버스커들이 자신만의 공연을 연다. 날씨가 부쩍 추워졌지만, 숨겨진 원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케이팝, 인디음악, 재즈 등 장르를 넘나들며 신촌 거리를 다채롭게 장식한다. 필자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스타 광장에서 거리공연을 하고 있으면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음정이 잘 맞거나, 음악을 잘하거나 하는 것은 상관없다. 이들은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세계를 수줍어 하면서도 사람들 앞에 자신 있게 늘어놓는다. 각종 소음으로 예민해진 귀에 그 순수한 도전이 다소곳이 노크하면, 초대에 응할 수밖에 없다. 음악을 하고 싶었던 사람으로서 질투 아닌 질투를 느끼며 그 청초한 정신에 넋을 놓고 있노라면 굳은 얼굴이라도 미소가 번진다. 공연을 감상하며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소속감과 유대감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면서 말이다.
하루빨리 남들보다 앞설 것을 종용하는 풍토에 짓물러진 마음들. 이들에게 신촌의 거리공연은 대가 없이 연고를 발라준다. 두려운 ‘시작’을 마주한 이들에게 버스커들은 자신의 시작을 선보이며 내가 하는 음악에 정답이 없듯, 당신의 삶 또한 오답이 없다는 말 한마디를 전한다. 한때 코로나의 여파로 버스킹이 끊겼던 신촌은, 이들의 귀환 덕에 제 모습을 되찾았다.
#3 쎄시봉
신촌 골목 구석진 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청춘의 장

쎄시봉의 무대 전경, 낭만있지 않은가?
신촌 골목 끝자락, 구이마을 옆에는 지하로 향하는 아주 작은 입구 하나가 있다. 신촌에서 밴드 동아리 활동을 했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발을 들였을 법한 장소의 이름은 쎄시봉. 필자 또한 이곳에서 데뷔 무대를 거쳤다. 5년이 지났지만, 잔나비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과 뜨거운 감자의 ‘고백’을 연주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대 뒤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잘해보자며 부원들과 맞잡았던 두 손, 지인으로 이루어진 관객들과 그들의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 긴장한 나머지 음정을 몇 놓쳤던 첫 공연 날, 그리고 후배들의 무대를 감상하며 과거 공연을 회상하던 그날까지 모두 가슴 한편을 아리게 하는 추억의 한 조각으로 남아있다. 각자의 개성이 한자리에 모여 합(合)을 이루는 장. 그곳에서 발생하는 열기에 어느 누가 객관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겠는가. 어설프지만 순호한 열정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기억의 공유점이 되니 말이다.
쎄시봉의 시작은 라이브 카페였다. 사장님은 본인이 언더그라운드 음악가 출신이라는 말로 운을 떼셨다. 젊은 시절 들국화의 보컬 전인권씨와 활동했을 만큼 음악과의 연이 깊다고도 했다. 그는 음악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밴드를 결성했고, 직접 공연할 공간을 위해 쎄시봉을 열었다. 밴드부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의 대관 의뢰가 들어온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였다. 사장님의 밴드 공연을 보러 오는 일반 손님과 대관을 요청하는 대학생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어려워졌고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는 이러한 결심에 이르렀다.
‘쎄시봉을 음악과 사랑에 빠진 대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자!’
그렇게 쎄시봉은 대학 밴드 공연을 위한 무대가 되었다. 촌스러운 간판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낡은 곳이지만, 필자가 인터뷰를 요청한 날에도 공연이 있던 만큼 활발한 음악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사장님의 큰 결심과 그 속에 숨은 배려가 개관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예비 음악가가 거쳐온 출발점이 되어준 것이다. 코로나로 잠시 발길이 끊겼던 근 몇 년, 사장님은 떨어진 매출보다도 자식 같은 학생들의 음악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씀하셨다. 언제든 악기가 없으면 찾아와 연습하고 가도 좋다는 사장님의 말을 잊을 수 없다. 음악을 사랑하는 진심어린 마음 하나가 공감을 토대로 서로를 단단히 묶어줄 수 있는 끈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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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들 신촌이 예전 같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신촌을 청춘이 살아 숨 쉬던 예술의 교차로로 추억하는 동시에 내리막길에 놓인 쇠퇴한 거리로 회자하곤 한다. 신촌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린 세대는 이미 복고풍을 떠올리게 하는 낡은 장소쯤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세월의 풍파로 플레이버스가 철거되고, 신촌의 음악 하면 떠오르던 향음악사가 문을 닫는 등,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많은 가게가 옛 시절을 뒤로 하고 문을 닫으면서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러나 신촌의 음악은 스러지지 않는다. 여전히 신촌은 ‘소망의 반짇고리’로서 청년들의 발걸음을 희망으로 이끌고 이들의 마음을 연결 짓는다. 필자 또한 대학 생활을 하며 가장 설레던 순간을 꼽으라면 지하의 스튜디오에서 밴드 공연 준비를 위해 밤낮으로 연습했던 순간들, 힙합 동아리 부원들과 각자가 쓴 가사를 공유했던 순간들이라고 답할 것이다.

필자가 밴드 공연을 했던 날.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지금까지도 신촌은 변함없이 음악을 매개로 꾸밈없는 이야기들을 이어주고 있다. 그 순진하지만 진지한 엮음 속에서 신촌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신촌에게 쇠퇴라는 꼬리표는 어울리지 않는다. 음악과 문화의 공유를 이어가며 전진할 뿐. 그렇기에 필자는 앞으로도 신촌의 선율이 오래도록 울려 퍼지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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