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ZANCHI! · 신촌을 사랑하고, 추억하고, 기록하다
· 로그인
PEOPLE 2023 · 11 · 21

404. 다채로운 사랑의 악보

Editor 유니콘

개별적인 음들은 어떻게 음악이란 한 폭의 그림으로 거듭나는가. 조예가 깊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조건이 있다. 하나의 음으로만 이루어진 흐름은 음악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여러 음이 있더라도 쉼표 없이는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 수 없다는 것. 다양한 음표와 그 사이의 멈춤이야말로 모든 음악의 기초이자 필수적인 밑그림이다.

음악이 여러 음표의 조합으로 이뤄진다면 세상은 여러 존재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이때 다채로운 것들이 교차하는 사회에서 멈춤은 필연적이다. 나의 악보에서는 존재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음표와 기호를 무수히 마주하기 때문이다. 관성적인 사고의 흐름이 멈추는 이 순간은 선택의 기로고,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따라 삶의 궤적이 결정된다.

새로움을 외면하고 단순한 메트로놈으로 남는 것부터, 여러 요소를 차용해 거대한 교향곡으로 거듭나는 것까지.

 

나의 악보는 ‘퀴어’라는 개념을 통해 다채로워지고 있다. 당연하다고 인식되는 관념을 멈추는, 이해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변방의 소리. 낯설고, 낯설기에 귀 기울여야 할 소리 앞에 멈춰 되뇌이기를 반복했다. 그럴수록 퀴어를 둘러싼 이야기는 존재의 본질을 향한 물음과 다르지 않게 들렸다.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내가 무엇에 이끌리고 좋아하는가

다양한 나와 네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보편적인 명제를 향한 당돌한 질문을 거쳐 ‘나’와 ‘너’와 ‘우리’와 ‘사랑’의 의미가 뒤엉키며 확장됐다. 여러 모양의 사랑을 인식하며 역동적으로 변주하는 이야기야말로 다양한 악보의 초상이 아닐까. 그것이 사랑의 뿌리에 더 가까운 음률이 아닐까.

그런 음악이 풍기는 소굴이 있다. 신촌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더빠(The Bar)’다. 날 것의 행복을 담은 얼굴이 가득한 곳. 마치 다양한 모양의 사랑의 힘을 증언하는 것 같다. 여러 표정을 담는 마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사랑을 믿는 이들이라면 잠시 더빠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길.

 

 

 

 

해영: 더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시겠어요.

 

성민: 간단히 말하면 신촌에 있는 낡고 누추한, 오래된 바입니다. 

 

해영: 인터뷰 전에도 더빠를 많이 경험해달라고 하셨죠. 그 말이 참 좋았어요. 공간을 아끼는 분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손님으로서 저에게 이곳은 ‘요상하게 편한 곳’이에요. 왁자지껄한 한편 바로 옆에서는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는 분도 있고, 다양한 분위기가 공존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성민: 그렇죠. 매일의 느낌이 다르고 오는 분마다 이곳에서 원하는 것도 달라요. 혼자 있고 싶은 사람은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는 거고, 신나게 놀고 싶은 사람은 즐거운 노래를 신청해서 친구들과 노는 것이죠. 더빠는 기본적으로 유쾌하고 밝은 느낌을 지향하는 곳이라 즐거운 이들의 기분에 맞추는 편이에요. 하지만 소란 속에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지기도 좋죠.  

 

해영: 신기한 풍경이었어요. 보통 ‘바’라고 하면 통일된 분위기와 그에 맞는 손님이 형성되기 마련인데, 이곳은 크게 개의치 않고 자기 시간을 보내는 분이 많으니까요. 

 

성민: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사실 우리 가게가 산만한 느낌은 있지만 매일 그렇진 않아요. (웃음) 한 사람이라도 날마다 기분이 다르잖아요. 흥이 많은 날이 있으면 기분이 안 좋은 날도 있고. 재밌을 때도, 심심할 때도 있고. 같은 손님들이 자주 방문하는데 이곳에서 그날마다의 여백을 채우는 느낌인 것 같아요.

 

해영: 단골 손님이 많이 계시는군요. 듣고 보니 이곳을 고향처럼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성민: 그렇죠. 요즘 가게든 세상이든 비인간적인 느낌으로 흘러가잖아요. 하얗고 멸균적인 인테리어, 기계적인 메뉴얼의 서비스 같은 것들이요. 저는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인간미에 익숙해요. 그래서 처음부터 인간적 면모가 부각되는 가게를 지향했었고 여전히 유효한 방향성이죠. 고향 같다는 느낌은 제가 고수하고 바라왔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해영: 실제로 이곳이 오래되기도 했죠?

 

성민: 가게는 예전부터 있었고, 처음에 매니저로 일하다가 인수까지 하게 됐어요. 19년 전에 일하기 시작했네요.

 

해영: 일은 어떻게 시작하셨을까요.

 

성민: 학교가 신촌 근처였고, 술과 음악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이곳에서 술 마시면서 노래 듣는 게 20대 때의 일과였어요. 예전에는 음악바, 락바라고 해서 LP를 틀어주고 생맥주를 파는 가게가 신촌에 많았거든요. 이 가게 지하도 ‘놀이하는 사람들’이라는 가게였고 저는 죽순이었죠. 더빠는 같은 사장님의 가게였는데 당시 매니저를 구하셨어요. 그때 마침 졸업을 했고, 제가 나온 서양화과는 학부만으론 취직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당시 유행했던 헤나 디자이너나 미용스쿨 강사, 갤러리에서 보조 큐레이터로 일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남의 그림을 뒤치다꺼리하는 느낌이 들어 싫었어요. 

 

 

 

 

해영: 예전부터 다양한 경험을 하셨네요. 제가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건 퀴어 프렌들리하다는 특성 때문이었어요. 처음부터 그런 면모가 두드러졌는지, 손님들도 그렇게 알고 왔는지 궁금해요.

 

성민: 퀴어라는 말이 당시에는 쓰이지 않았고 무슨 말인지도 몰랐어요. 다만 저 자체가 아웃사이더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이에요. 아무래도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조금  삐딱하잖아요. 또 당시 다니던 대학이 원하던 곳도 아니었고, ‘여대 나와 결혼 잘해서 산다’는 풍토가 정서에 안 맞았어요. 그래서 마음 맞는 소수의 친구들과 지하에서 작업하고 술 먹으면서 시간을 보냈죠.

 

해영: 비슷한 분위기를 따라 자연스럽게 모인 걸까요.

 

성민: 네. 친한 것도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였어요. 그 안에는 퀴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저는 편견도, 개념도 없었어요. 인간적으로 다 좋았기 때문에. 일단 퀴어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인식 자체가 아예 달라지더라고요. 정말 별거 아니고 아무렇지 않게 똑같잖아요. (호탕하게 웃음) 개별적인 특성이 있을 순 있지만 연애, 고민, 앞으로의 계획들 전부 다 같죠.

 

해영: 너무 똑같죠. 참 답답해. 말을 안 할 뿐 옆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고요.

 

성민: 예전부터 자연스럽게 주위에 퀴어들이 있었어요. 신촌엔 예전에도 레즈비언 클럽, 레즈바, 게이바가 암암리에 있기도 했고요. 이곳은 일반 바이지만 제가 퀴어 친구들이 있었던지라 조금씩 그 비율이 늘어났어요. 가게 초창기엔 저와 친구들 위주로 운영이 이뤄져서 너무 자연스러웠던 것이죠. 

 

해영: 자기들에게 필요한 공간을 개척했다는 느낌도 드네요.

 

성민: 당시엔 ‘일반’이라고 불리는 사람과 퀴어라 불리는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 있을 수 있는 곳이 드물었기 때문에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기도 했고요. 물론 거부감을 갖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은 도태인지… 방문을 안 하더라고요. 반면 인권, 소수자 권리 운동을 하던 직원 친구들과 같이 동아리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퀴어의 비율은 확 늘었고요. 약간 다단계처럼. (웃음)  

 

해영: 이 문화의 한 양상처럼 보여요. 결과적으로 퀴어 프렌들리한 곳이 됐는데 운영하는 분의 입장에서 그런 공간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을까요.

 

성민: 최근엔 퀴어가 갈 수 있는 공간이 비교적 많아졌지만 예전엔 이 친구들이 갈 곳이 정말 없다고 생각했어요. 종로나 이태원이 있긴 했는데 들어보면 인테리어, 메뉴, 술이 고급은 아니면서 굉장히 비쌌어요. 깜짝 놀랄 정도로요. 이들이 갈 곳이 없다는 걸 아니까 폭리를 취한다는 느낌을 받았죠. 여기는 특히 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비싸지 않은데, 이게 상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해영: 저도 가격이 너무 좋았어요. 신촌 한 가운데에서 이런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니!

 

성민: 특히 가게에서 제일 싼 음료의 금액은 아주 중요해요. 손님을 나누는 기준이 되니까요. 5천 원 맥주가 없고 9천 원 맥주부터 있다면 그건 그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만 오라는 거잖아요. 사실 20년 전만 해도 바에서 생맥주를 파는 곳은 거의 없었어요. 멋을 부리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저는 손님을 가려 받는 것에 거부감이 들어서 인테리어도 친근하게 바꾸고 저렴한 국산 생맥주도 팔았어요. 우선 제가 가난했고 생맥주를 좋아했었거든요. 

 

해영: 사장님의 시선으로 보는 게 재밌어요. 저는 손님 입장에서 안전하다는 감각이 중요한 것 같아요. 평상시엔 마주보기, 손잡기, 껴안기 같은 사소한 스킨십도 편안히 하지 못하니까요. 그러려면 사장님 말처럼 종로나 이태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항상 그곳에만 있을 순 없잖아요. 당연히 다른 공간도 자연스럽게 다닐 수 있어야 하고요. 환영적이면서 가격까지 괜찮은 장소는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성민: 맞아요. 손님들이 ‘안전하다’는 말을 많이 써요. 시선으로부터의 자유겠죠. 민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 괜찮은. 

 

 

 

 

해영: 행동하니까 사장님이 인스타에 올린 방침이 떠올랐어요. ‘과한 플러팅 자제’, ‘과한 애정표현은 느그집에서 하라’ 같은 문구요. 너무 위트 있고 좋았거든요.

 

성민: 과한 애정행각은 가게 운영 측면에서 제재할 필요가 있어요. 이때 퀴어냐 아니냐에 따라 차별을 두고 싶지 않거든요. 만약 퀴어인 두 사람이 키스를 한다고 하면 이성애자의 경우로 바꿔서 다시 생각해봐요. 지금 내가 퀴어라서 제재하는 걸까, 이성애관계 였으면 괜찮았을까. 굉장히 다각도로 생각하고 판단하죠. 말해준 글도 또 다른 차별이 될까 봐 고민하면서 올렸어요.

 

해영: 저는 오히려 차별 같지 않다고 느꼈어요. 보통으로 대한 것이니까요. 네가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신경 쓰라는 뉘앙스잖아요. 퀴어하면 과잉 성애화된 이미지가 있죠. 누군가는 퀴어 프렌들리한 바라고 하면 대향락의 지옥이 펼쳐지겠다는 편견을 가질 수 있고요. 하지만 실상 그 안의 규칙과 행동은 다른 바와 다르지 않잖아요. 퀴어가 ‘보통’의 것, ‘정상적’인 것을 따랐을 때 생기는 전복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재밌고 좋았어요. 

 

성민: 근데 별로 지켜주지도 않더라고요. (웃음)

 

해영: (웃음) 저는 퀴어 프렌들리한 특성이 두드러지는 게 결국 그 주변이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이태원은 비교적 다양한 것에 프렌들리하니까 일일이 ‘00 프렌들리’를 표방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알고 행동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신촌은 퀴어한 공간일까 궁금해요. 신촌에서 오래 지내오셨는데 어떻게 느끼실까요?

 

성민: 신촌 자체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손님들도 신촌이 퀴어 친화적이라 오기보단 이곳의 프렌들리한 가게를 찾아오는 것에 가까워요. 다만 대학교 네 개가 밀집된 중심지다 보니 타 지역보단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대학생은 여러 계층 중에선 진보적인 편이잖아요. 20년 전에도 퀴어 단체들이 활동하기도 했었고, 최근엔 프렌들리한 가게도 많이 생겨났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트렌드에 맞고 전략적인 거잖아요. 그 기저엔 퀴어라는 게 위험하지 않다는 인식 변화가 있다고 봐요. 

사실 저는 프렌들리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면서도 없어져야 하는 과도기의 단어라고 생각해요. 그 자체가 가르는 말이고 특별함을 부각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잘 사용하지 않고, 더빠도 그런 걸 다 떠난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해영: (끄덕인다)

 

성민: 처음부터 표방했던 것, 지금도 지키고 있는 건 음악과 술과 인간의 어우러짐이에요. 그렇게 계속 변화하는 유기체 같은 공간이고요. 그 속에서 인간은 누구나 똑같은 거죠. 퀴어이기 전에 저에겐 그냥 인간이에요.

 

해영: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는데 사장님이 아웃사이더적인 기질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성민: 그렇죠. 학생 때도 그랬고, 당시에는 여자 사장 자체가 굉장히 드물었으니까요. 남들 보기에 번듯한 대학 나와서 술집하는 여자가 된 것이잖아요. 

 

 

해영: 저는 그런 것들도 포괄적으로 말하면 퀴어스럽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퀴어를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에 국한해서 생각하면 얘기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퀴어는 누구나 갖고 있는 별난 특성에 관한 대화예요. 한국 사회를 예로 들면, 삶의 모양과 루트가 ‘규범’이라는 말로 강하게 고정되어 있잖아요. 하지만 저마다의 본질은 그것에서 벗어나 있다고 느껴요. 퀴어라 불리는 사람은 성이라는 하나의 측면에서 그러한 것일 뿐이고요.

 

성민: 그런가요. (미소) 그런 개념이면 맞을 수도 있겠어요. 저도 공부를 많이 해서 퀴어라고 하면 성 정체성의 측면을 생각하고 있는데, 해영 씨가 말한 대로라면 그때 모인 친구들에게도 퀴어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해영: 대부분이 규범이라 불리는 것에 꼭 들어맞지 않는 섹슈얼리티가 있는데 그런 걸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반드시 퀴어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요. 또 성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갖고 있는 이상한 면들이 있잖아요.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남에게 말 못하는 것들. 그것들이 정말 이상한 걸까. 모두가 조금씩 드러내고 다양함을 알아가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소수자의 권리도 아주 중요하지만, 결국 개인의 다양한 특성이 퀴어라는 이야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성민:  맞아. 그런 것이 억눌리면 이상한 곳으로 분출되니까. 자연스럽게 표출하고 드러낼 수 있는 사회면 좋죠. 이상적이고. 생각해보면 초기에 모였던 친구들이 다 꼬질꼬질하고 벗어난 사람들이었는데…. (웃으며 생각에 잠긴 듯 말끝을 흐린다)

 

 

 

 

해영: 프렌들리함을 떠난 바 자체의 매력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성민: 음악의 다양성이랄까요. 케이팝, 팝송, 라틴뮤직, 신중현, 비틀즈, 이소라 등 여러 음악에 열려 있어요. 최근엔 케이팝이 60% 정도 나오는 것 같지만요. 젊은 친구들도 원하고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 친구들도 좋아해서 많이 틀게 되죠. 거기에 적당한 가격과 맛있는 칵테일도 있겠네요. 결국 음악, 술, 인간 이 세 개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해영: 사장님이 주는 편안함도 분명한 매력 같아요. 처음 뵀을 때 너무 따뜻한 미소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사실 사장님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어요. (웃음) 사장님은 이곳 말고도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 있을까요.

 

성민: 우선 더빠를 너무 좋아하는데. (웃음) 잘 가는 술집이나 가게들은 있어요.피망과 토마토’라는 바가 있는데 빈티지 감성에 고양이 세 마리와 사장님이 같이 있는 곳이에요. 제가 볼 땐 문화재급이죠. 또 크래프트 비어 하면 ‘뉴타운’. 뉴타운이 ‘신촌’이거든요. 신촌에서 맥주가 가장 맛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마이크스 케빈’이라고 외국 친구들이 많이 가는 곳이 있어요. 한 17년 됐나, 더빠만큼 오래됐죠. 그리고 제 고향인 더빠의 지하. 지금은 ‘인피니티 클럽’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좋아요. 

 

해영: 이들의 공통점도 술, 음악, 사람인 것 같아요. 사장님에게 이 세 가지가 핵심적이라는 게 다시 떠오르네요. 

 

성민: 그렇지 않나요? (웃음) 제 인생은 저, 더빠 그리고 남자친구 이 커다란 삼각형으로 20년째 이어져 오고 있어요. 참 불가사의한 부분인데… 24시간 중 더빠에서의 시간 외에는 대부분 남자친구와의 시간이에요. 지금은 친구도 별로 없고, 어떻게 보면 남자친구도 제 커뮤니티네요. 

 

해영: 그래서인지 남자친구라고 하는 분이 인스타에 자주 등장하더라고요. 그 관계를 지금까지 어떻게 운영해왔는지 궁금해요.

 

성민: 아무래도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더빠도 원활히 운영할 수 있었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20년 전엔 여자 혼자 바를 운영하면 대시를 많이 받았거든요. 이 안에서 일하면 멋있어 보이니까. 마치 하나의 연극 무대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그럴 때 애인의 존재가 있었기에 더 신경 쓰며 손님과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었어요. 남자친구의 존재가 없었다면 분명 많은 문제가 생겼을 거예요. 

 

해영: 좋은 신경쓰임이군요.

 

성민: 짜증 날 때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요소였다고 생각해요.

 

해영: 가게와의 연관성 말고도 관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이나 추구하는 생각도 있을까요? 

 

성민: 우선 남자친구를 SNS(네이버 블로그)로 만났어요. 그때는 인터넷에서 만난다고 하면 다 사기꾼이라고 했으니까 이 행위 자체가 우선 주류적이지 않죠. 또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고 지내고 있고요. 결혼하고 애를 낳는 사회적인 기대에서 벗어난 비주류 관계라는 게 성격과 맞는 것 같아요. 해영씨가 말한 퀴어성을 여전히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공간과도 어울리고 그래서 초기의 성격을 계속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해영: 서로의 마이너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니까 가능한 것일까요.

 

성민:  네. 관계는 같이 합의해서 만들어가는 거니까요. 저는 결혼제도를 신뢰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아기도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웃음) 다행히 그 부분이 맞아서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죠. 싫어지면 언제든 헤어진다고 생각하는데 가벼우니 오히려 오래 갈 수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손님들이 증명사진을 두고가는 문화가 있다. 거실의 진열장 같은 포근함이 느껴진다.

 

 

해영: 사장님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다름, 다양성이란 게 무엇인지 꼭 물어보고 싶어요.

 

성민: 제가 볼 때 다양하다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인간적인 다양함이라는 카테고리로 답이 나오는 거죠. 퀴어의 다양성을 이야기했는데, 사실 퀴어가 아닌 사람들이라고 다 똑같은 건 아니잖아요.

 

해영: 맞아요. 맞아요

 

성민: 너무 논점을 무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은 똑같지 않으니까요. 퀴어로서의 특수성은 분명 있겠죠. 근데 개개인의 특수성도 분명히 있잖아요. 

 

해영: 엄청 다양하죠. 퀴어가 보수적일 수도 있고요. 수많은 특성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이니까.

 

성민: 또 퀴어라고 해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특성을 동일하게 대입해도 안 되고요. 모든 퀴어가 다 퀴어퍼레이드에 가고 소수자를 위해 시위에 가지 않잖아요. 관심 끄고 자기 연애와 삶에만 신경 쓰는 친구도 분명 있어요. 또 ‘게이들은 다 케이팝을 좋아한다?’ 대체로 그럴 순 있어도 분명 그렇지 않은 이도 있고 오히려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다양해요. 다시 확대하면 이성애자들도 케이팝에 미치고 춤도 잘 추죠.

 

해영: 인간이, 그 자체가 너무 다양한 것이라고 계속 말씀하는 것 같아요. 그게 건강한 것 같고요. 퀴어가 아니더라도 구분 짓는 잣대가 많잖아요. 아까 여성 사장이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수많은 구분, 구분, 구분을 하는데 그거에 딱 맞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교차하는 특성마다 전부 달라질 수밖에 없죠.

 

성민: 제 생각이 안일한 것일 순 있어요. 인권과 소수자를 위해 운동하고 시위하는 친구들은 첨예하게 그 차이를 부각시켜야 하잖아요. 방금 말한 건 어찌 보면 문제의식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도구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다고 제 생각을 지울 순 없고, 그저 인간적인 다양성을 보고 싶어요.  

 

해영: 그런 운동 자체가 얼마나 많은 주장이 있나요. 유사한 목표를 위해 다양하고 충돌되기도 하는 입장이 수없이 존재하잖아요. 

 

성민: 세부적으로 가면 참 어려워지죠. 사실 이곳에는 너무 다양한 인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게이나 레즈비언 친구들이 그렇게 튀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들이라고 특별히 잘 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고요. 다만 퀴어 친구들이 더 소중하게 이곳을 생각해준 것이죠. 저는 누구든 더빠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해영: 마지막으로 누가 더빠를 찾아줬으면 하는지 여쭤보려고 했는데요. 방금 말씀이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성민:  네. 저는 어쨌든 더빠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특별히 더 프렌들리한 건 없는 것 같아요. 더빠의 감성을 감당하고 즐길 수 있는 사람. 그런 이들이 이곳에서 어떠한 감정 상태이든 그 안에 머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입고 싶은 옷을 걸치고 좋아하는 노래에 춤추던 이들로 가득했던 전날과 달리, 비교적 잔잔한 흥과 여유가 더빠에 흘렀다. 대화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핸드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19: 13

10월 29일 일요일

1년 전 이태원에도 사람들이 할로윈을 즐기고 있었다는 걸 기억했다. 다양한 것에 친화적인 그곳에, 무엇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때에. 

여전히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날, 그곳에 가야만 했던 이유를. 누군가에게 그 해방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했을지를. 

일상에서 다양한 사랑이, 존재가 건강하게 이야기되고 목격될 수 있었다면. 낯선 것을 적절히 바라보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면.

 

우리는 다르다는 차이점이 있고 모두 다르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다름으로써 본질적으로 같다. 

세상엔 구태여 말해야만 드러나는 존재도 있다. 시끄럽고 우악스럽게 떠들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이야기는 끊어진 나와 너와 우리와 사랑을 꿰어낸다. 모든 이야기는 기어이 나와 너의 이야기다. 

서로의 이야기를 질문하는 공간이 늘어가길. 서로를 환대하는 미소가 번지길.

다채로운 선율이. 

 

흐르길.

유니콘
AUTHOR PROFILE
유니콘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COMMENTS

댓글 1

  1. .
    . 2023.11.23 17:16

    그 자체로 퀴어인 공간에서의 담론.. 인상 깊게 잘 읽었습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