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 신촌은, 현재진행형 – 신촌동상가번영회
“신촌은, 현재진행형” – 신촌동상가번영회
때
신촌이라는 대학가의 청춘으로 대변되는 대학생. “좋을 때”라는 클래식한 말에서, 흔히는 전자에 치중하여 ‘청춘’과 ‘젊음’을 논한다. 20대라는 시기의 앞머리를 흔들리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 저마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이들.
클리셰를 다시 쓰자면, 한국의 언어는 끝까지 듣는 게 인지상정. 그것은 모두 ‘때’에 포함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흔들거림을 멈추고, 또 누군가는 신촌을 떠난다.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신촌을 과거에 담는다. 그리고 새로운 이들이 다시 찾아온다. 끝없는 방황 혹은 술 기운에 휘청거리며, 신촌을 바라보고 신촌을 이야기한다. 취기에 휩싸여 밤하늘을 바라보고, 이어폰 속 가락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좋은 때를 보낸다.
그리고,
다시 떠난다.
참으로 정적이다. 짧은 순간들은 결국 하나의 때로 추억에 갇힐 것이다. 멈추고 떠나간 이들은 신촌을 청춘과 젊음의 거리로 기억할 것이고, 이때는 정적인 과거를 함축하기에, 신촌은 그 뒤에 ‘때’로서 머무른다.
허나 이 땅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적인 움직임은 계속해서 새로운 물결을 불러일으키고,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오가게 하기에 ‘신촌’이라는 이름의 가치가 보존된다. 그 땅에서 때를 넘어선 삶을 통해, 수많은 한때를 지켜보고 계신 분들을 찾아가 보았다.
Sinchon
상가번영회
CHAPTER 1

안녕하세요.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부회장님 나는 여기서 한 40년 살았고, 지금은 cu 편의점 하고 있고, 배선자입니다.
회장님 신촌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현재 살면서 영업도 하는 신촌 토박이고요. 이름은 김봉수.
부회장님 예전 초당쌈밥 운영 후 최근에 은퇴, 신촌 토박이로서 상가 번영회 같이 활동중, 김성국.
* 기타 표시 없는 답변은 김봉수 회장님의 답변입니다.
상가 번영회에 궁금한데, 어떤 단체인지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전에 80-90년대 신촌 상인회가 있었어요. 그것이 원류입니다. 신촌이 최대 상권이던 시기에 신촌 상인회가 조직이 되고, 그것이 명맥을 이어오다가 잠시 끊긴 후, 2012년도에 신촌 번영회라는 단체로 재탄생을 했어요. 잠시 주춤했다, 올해 4월에 출범식을 가지면서 다시 시작을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 세대에 있었던 그 신촌상인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 신촌 상인회 – 신촌 번영회 – 신촌동상가번영회
신촌동으로 한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신촌동’이 신촌 그 다음에 이대, 봉원동, 연대까지 포함하는데요. 그래서 ‘신촌동 상가 번영회’, 신촌과 이대 전체를 아우르는 신촌동 상가번영회가 올해 출범했고, 신촌 상권 활성화와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같이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되게 역사가 깊은 단체인데, 어떤 분들이 함께 계신지도 궁금하네요.
기본적으로 모두 다 신촌을 사랑하죠. 그리고 오래하신 분들 위주로 돼 있고, 상가 위주이긴 합니다. 상가 번영회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다 상가이겠지만, 그럼에도 이름이 상인회가 아니고 번영회인 이유에는 오래된 지주분들, 건물주분들도 계시기 때문이고요. 그외 변호사, 작가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 자문위원 쪽으로 계시는 다른 분야 분들도 계십니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인 것이죠. 시의원, 구의원 분들도 계시다보니 단체의 구성 자체가 매우 다양합니다. 학생 자문, 청년 창업 자문, 문화 자문, 금융 자문 등등 많은 분들도 있으신데요. 이런 구성 자체의 이유가 일반 상인 분들도 있지만 우선은 모든 분들이 공통적으로 지역의 주민분들이니까요. 그런 다양한 네트워킹과 모임이 신촌동, 이대 봉원동을 아우르며 이러한 단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매우 큰 단체라는 놀라운 사실을 또 알게 되네요. 이렇게 상가번영회에서 다양한 일들을 추진하시잖아요. 이번에 주최하신 신촌동문화축제는 어떻게 진행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구체적으로 축제 기획 배경과 목적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신촌동문화축제 feat. 신촌과 인연 깊은 공연자님
오랫동안 신촌에서 활동을 해오면서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뭐냐면은, 신촌에는 주민과 상인들이 있고요. 대학생들이 있고, 그 다음에 청년 사업가가 있고, 문화예술인들도 있어요. 여러 가지 그룹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들이 모여가지고 제대로 된 축제를 진행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제 지역에서 활동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것들을 묶어내는 게 큰 과제 중에 하나였고, 이번 축제가 2016년 이후로 올해가 6회째였어요.
그동안 쌓인 네트워킹을 바탕으로 해서 이런 단체들이 서로 모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실험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이런 축제를 통해서 그들이 모였을 때, 그들의 네트워킹이 어떻게 작용하나 보고 싶었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나가는 과정에 대한 거를 풀어내고 싶었어요. 그걸 통해서 신촌 지역을 좀 더 재밌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던 기획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있었기에, 저희가 특히 부스 섭외를 할 때, 연세대 동아리들, 창업센터 캠퍼스타운 등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적극적으로 모두가 참여해줬습니다. 주민들, 상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것들도 확보를 했어요. 문화예술인들도 많이 들어오고, 많은 연락이 있었는데 100여 개 정도 이어졌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를 이뤘다 생각했고, 다들 만족하시더라고요. 학생들도 주민들과 많이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걱정도 많이 있었는데 모두가 적극 참여하고 즐겼습니다.
축제 속 모두의 즐거움
굉장히 재밌었고, 또 고민을 했던 게 뭐냐 하면 자치회관 프로그램, 어르신들 하는 공연이 먹힐까? 고민을 했는데요. 다행히 반응도 굉장히 좋았고 사물놀이도 좋았어요. 나중에 노래자랑 같은 경우도 반응이 좋더라고요. 지나다니시는 분들에게도요.
기획의도와 배경이 그랬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던 것 같고요. 이런 재밌는 것들이 어우러져, 적은 예산을 가지고 이 정도의 축제를 할 수 있었던 게 참 대단하다고 방문하신 청장님도 말씀을 하셨고요. 아마 그런 걸 다들 느끼지 않았을까 싶네요.
다채로운 공연
상가번영회에 계신 분들이 모여서, 신촌동문화축제를 하는 과정에서 비전 선포식도 같이 병행을 하였잖아요. 그 부분도 이제 간단한 설명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신촌 로컬 브랜드화와 연결된 것이 신촌 상권 비전 선포식이에요. 서울시 로컬 브랜드 상권 강화 사업에 이번에 선정이 되었는데요. 그거의 일환으로 워크샵 진행을 하였고, 그 결과로서 신촌 상권의 비전을 이렇게 하였으면 좋겠다는 합의를 냈어요 그런 합의, 주민들이 낸 의견을 정리한 게 상권 비전이었고, 그거에 대한 선포식을 한 거였습니다.
*리뉴얼 과정을 통한 부흥과 글로벌 상권으로 나아가는 신촌
이것도 의미를 보면, 단순히 축제만 할 게 아니라 상권 비전 선포식이랑 같이 함으로써 신촌의 미래를 꿈꾸는 것입니다. 신촌도 문화 축제로서 현재를 중심으로 같이 네트워킹 하는 거고, 상권 비전 선포식은 지금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지고 같이 연결시키는 것.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된 것이죠.
신촌 로컬 브랜드화
아 그러한 일환으로 축제랑 같이 엮어, 한 공간에서 진행이 된 거군요.
이전 9월의 신촌글로벌대학문화축제도 잘 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음식 부스들이 많고 학생들도 재밌게 즐겼는데, 이번에 이어진 신촌동문화축제에는 무대 앞 공연장에서 많은 어르신들이 즐기시는 모습도 보고 심지어 아이들도 많을 정도로 다양했고요. 공예품 부스도 있다 보니까 그런 것들 구경하며 실제로 사기도 하였어요. 음식도 먹고 막걸리도 마시고 재밌었습니다.
신촌글로벌대학문화축제 – 과거와 현재의 공존
* https://welcometozanchi.com/14786
신촌글로벌대학문화축제의 이야기 by ART
배선자 부회장님 원래 지난 주 주말에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연세대 시험기간이라서 … 그걸 (일정을) 당긴 거에요. 그래서 호응도 좋았던 것 같아요.
김봉수 회장님 원래 14일 주말 예정이었는데 일주일 당겼습니다. 청년창업자문에 연대 학생이 있고, 대외협력팀, 축제 기획단으로 총학생회장까지 같이 처음부터 축제 진행에 대해 의논을 했어요. 그 다음에 청년 창업팀장, 동장, 신용보증재단팀과 농협, 현대백화점도 있었거든요. 다양한 분들이 축제 기획단에 계시니 다양한 의견들이 오고 갔고, 7일로 축제 일정을 당겼죠.
그렇게 많은 분들이 같이 기획을 하고 모이니까, 더 전반적으로 다양한 것들을 담을 수 있었고, 남녀노소 많은 분들이 오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더 즐거웠고, ‘축제’라는 단어 자체에 가까운 그런 행사가 아니었나 생각도 하였습니다.
배도 채우는 신촌동문화축제
배선자 부회장님 예산도 적었는데 말이지. 예전에 다른 축제에도 갔는데 놀랐어요. 돈은 같은데, 무대도 없고 노래방 기계도 없었거든. 청장님 노래도 못하셨잖아. (하하)
김봉수 회장님 적은 예산으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뭐냐면, 다들 희생해주셔서 입니다. 모두 다 아침부터 오셔서 저녁까지 계시면서 일하신 분들이에요. 그래서 지역 내 상인회분들의 자발적 봉사와 주민들의 참여 그 다음에 행정의 지원도 있었고요. 동 주민센터 등의 기관들이요.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신촌은 이러한 문화축제도 그렇고, 계속 열리고 그 외 여러 축제들도 계속 열릴 예정이잖아요. 조금 더 필요하거나, 이런 것들이 추가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후원도 있겠지만, 크게 축제를 한 번 하는 것도 중요한데, 산발적으로 계속 상권 활성화랑 문화 활성화가 많이 진행되고 학생들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축제가 있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얼마 전에 저희 축제에 참여했던 재즈동아리가 있어요. 신촌 내에서 산발적으로 게릴라 콘서트 비슷하게 거리, 재즈 공연을 하고 싶다는 의견도 받았어요. (옛날 인디 뮤지션들과 같이)
학생들이 만들고 채우는 음악
큰 축제 외에도, 작은 축제라기보다는 버스킹 같은 것들을 연달아 하면서 (골목 축제), 호응도 얻고, 거기서 후원을 통해서 상품권이나 쿠폰 발행하는 것도 있을 텐데요. 저희 번영회 중심으로 한 상가 사용 등 다양한 기획을 해서, 그런 총 집합이 신촌동문화축제가 되도록 만드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11월부터 곳곳의 여러 뮤지션들을 모아서 예전처럼 공연장을 복구하거나 음악 행사를 추진하고자 하는 소식들도 들을 수 있었거든요. 재밌는 것들이 많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다시 다양한 방식으로, 조금씩 일들을 해보려 하는 것들을 보며 재밌음을 느끼는 중입니다.
배선자 부회장님 그저께도 스타 광장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왜 저렇게 모였나? 해서 보니까 태권도 하면서 노래 하는 가수도 왔더라고요. 나태주 가수. 그런 가수들이 많이 오기도 하고, 신촌 거리에 다시 모이고.
김봉수 회장님 그렇죠. 가수 영탁도 와서 게릴라 콘서트 하기도 했고. 그리고, 내년 봄에는 아마 명물거리에서 벚꽃 축제 진행하는 것과 같은 기획도 들어가보려고 하고 있어요. 이야기했던 것들의 일환으로요. 명물거리가 되게 예쁩니다.
CHAPTER. 2
신촌은 대학 축제와도 많이 연결되잖아요? 근처 학교별로 연예인들이 방문하거나 학생들끼리 하는 공연, 축제도 있고 대표적으로 연고전같은 행사도 있는데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좋으셨던 점들이라거나 바라시는 점들이 있을까요?
김봉수 회장님 대학 내부에서 연세대나 이화여대도 그렇고 축제가 열리잖아요? 5월달에 열리기도 하고, 연세대의 경우에는 고려대와 같이 하는 합동 응원전, 연고전도 있잖아요. 대학 행사와의 협력이 활성화되길 바라죠. 이번에 저희가 처음으로 공식 참여를 해서, 비대위원장이랑 축제 기획도 시작하게 되었고 같이 움직였는데요. 연고전 때 고려대는 교우회가 있어서, ‘상가랑 연결이 되어 약 35군데 정도에서 무한정으로 먹을 수 있다’와 같은 협약이 체결되어있더라고요. 비대위 측과 같이 그런 것들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어요. 따라서 공식적 작업 중에 하나가 연고전 참여 업소를 만드는 것들이었는데 비대위원장이 굉장히 그 부분에 대해서 고생했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 제가 적극적으로 대시 해서 같이 하고, 저희 번영회 회원사들 중심으로, 연고전에 참여하는 업소들을 만들었고요. 그런 것들을 통해서 오히려 학생들도 그렇고 저희 상인들도 그렇고, 좋은 반응들이 있엇던 것 같아요.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편하게 자기들이 가서 즐길 수 있고, 구호도 외치며 재밌게 놀 수 있었죠.
배선자 부회장님 너무 재밌었어요.
뜨거웠던 연고전의 끝자락
우리가 약 2-3만 명을 상대를 해야 하는데, ‘업소가 충분할까?’하는 우려도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그런 우려를 넘고, 많은 분들이 너무너무 좋아하시는 거에요. 회장님들이 돈을 더 쓰시기도 하였죠. 학생들이 와서 이렇게 즐겁게 놀고, 되게 매너있게 행동한다는 것에 대한 감탄도 많이 받았고요. 그리고 학생들이 왔을 때에도 감사 인사 등의 멘트를 다 하면서 나가시더라고요. 그런 것들도 그렇고, 참 예뻤습니다.
그리고 연고전 때 오셔서 아시겠지만, 가막새의 경우도 막 줄을 서 있었거든요. 저희 가게도 그랬고, 여기저기 줄 섰는데, 그런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게 좋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앞으로 어떤 축제를 기획한다고 할 때, 지역을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한 이번 축제(신촌동문화축제)처럼, 비대위 측과 ‘앞으로도 지속될 것들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겠느냐?’하는 생각과 합의도 보았고,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을까?하게 되었어요. 지역과 학생 사회의 합의도, 협업도 중요하지만 이런 협업이 일회성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전이 되고 그러한 거버넌스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고전을 할 때, 신촌에 와서 보니까 연세대, 고려대 학생 모두가 너무 즐거워하는 거를 실시간으로 다 볼 수도 있었고요. 주변에서 너무 재밌었다는 의견도 많이 들었죠. 행동하고, 즐기는 학생들이 더 잘 해야겠다는 것과 감사함도 느낄 수 있겠네요. 더 신촌과 서로 어울리는 학생으로서요.
김봉수 회장님 또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요. 합의된 종료 시간에, 총학생회와 많은 학생들이 정리도 잘 되고, 잘 끝냈어요. 그래서 되게 좋았어요. 참여 업소들끼리의 온라인 톡방도 있었는데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공유나 기획조차도 처음에 비대위 측이랑 이야기를 하면서 꼼꼼하게 챙겼거든요. 서로 명확히 전달을 주고 받았습니다. 여러 계획, 안전 수칙이나 대처 매뉴얼까지도 다 만들어져서 상세하게 준비가 되었습니다. 학생들도 그렇지만 진짜 (번영회) 준비 많이 했어요. 맨 처음 회의를 하면서, 명확히 전달을 했고, 그런 답변도 잘 받았고요. 협업의 중요성을 말한 것과 같이 현대백화점, 은행, 행정 측, 학교 다 들어오다 보니 그런 거버넌스의 아래에서 세부적인 모든 것들에 대한 하나하나 체크가 잘 들어갔고, 연고전과 여러 축제들이 최근에 잘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배선자 부회장님 자기들끼리 연락도 주고받고 마감(행사)에 대한 공유도 서로 잘해주더라고요. 예전에는 연고전에서 일도 있었어요. 학생들이 멋대로 음료수같은 것들을 꺼내간 적도 있었어요. 그때는 연고전이 뭔지 몰랐던 때였는데요. 힘들기도 하였고 그때 학생들과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학생들이 사과도 하였고, 용서를 결국 해주었어요. 그래서 그런 기억이 있었는데, 이번 다시 시작된 연고전에서 그럼에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참여를 하였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제일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예전과 달리 매너가 더 좋아진 것 같단 생각도 들었죠. (학생들이) 계속 이야기하던 부분들이네요.
김성국 부회장님 예전에 연고전하면, 막 술 가져가는 경우도 있고, “망해라”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예전엔 그랬지. 아이스박스에다가 맥주, 소주 넣어서 갖다 주고 그러고, 우리는 계산 안받고 학생들에게 얼마든지 베풀기도 하였지.
배선자 부회장님 그래도 “망해라” 라고 말하는 거는 매너가 꽝이다. 그래도 옛날이니까~
맞습니다.
김성국 부회장님 그것도 쇼맨쉽이야. 그래도 맥주 몇 병 갖다 주면 또 좋아서 “흥해라 흥해라” 그러고.
배선자 부회장님 이번에는 참 매너도 좋고 학생들의 마음이 예뻤고 잘했다. 연고전도 많이 세련되게 했어. 이번 달 올해는 참 이렇게 나는 연세대 애들이 참 성숙해졌고, 애기들인데도 성숙해졌다는 걸 느꼈어. 너무 매너가 있더라고요.
김봉수 회장님 시간이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큰 후원도 그렇고, 좀 학생들에게 더 혜택이 주어질 수 있도록 하지 않았을까 여러 얘기를 했었다. 연고전과 관련해서 주변(단체나 회사)과도 많은 이야기들을 했었죠.
충분히 현재로서도 축제나 연고전을 잘 즐겼다고 생각했는데, 그 배경에는 수많은 분들의 고생과 노력이 반영되고, 녹아들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들이었네요. 감사합니다.
김성국 부회장님 많이 상인들이 호응을 해주었죠. 그렇게 서로 협업하는 거죠.
김봉수 회장님 처음 70개 업소로 시작을 했는데, 최종은 50-60개 업소로 정리가 되긴 했어요. 리스트 떴는데 보셨을 거에요. (신촌동 문화축제) 거기에 참여하신 분들은, 정말 감사하고 또 순수한 마음으로 해주셨어요. 본인의 비용을 들이기도 하셨고,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왔는데 그 마음을 보은하겠다는 분들이었고요.
9월의 신촌은 흥이 가득하였다
배선자 부회장님 그렇게 연고전, 글로벌대학문화축제, 신촌동문화축제까지 3개가 이어져 가고, 그 3개가 다 성공적이었던 것이라 생각해요. 잘했죠.
김봉수 회장님 그러니까 앞서 계속 이야기했던 챕터 아래에서 네트워킹과 거버넌스가 이어진 것이죠.
CHAPTER 3
더 나아가, 평소에 어떤 분위기와 인상으로 신촌 자체를 파악하고 가지고 계신지 많이 궁금했거든요. 아무래도 학생들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보니까요. 그 전반적인 것들이 궁금합니다.
김봉수 회장님 저는 토박이잖아요. 신촌의 흥망성쇠를 봤어요. 지금은 쇠락 단계에서 비긴 어게인의 의미로 다시 시작을 하고 있는 단계인데,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아쉬운 게 있습니다. 예전에는 전국구 상권이었잖아요. 그래서 그런 특성들이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2000년대 초반의 약 06-07년까지 그렇게 이어졌는데, 2010년대 들어서면서 많이 꺾여 굉장히 아쉽고, 그런 것들을 다시 한 번 더 부흥시키기 위해서 상가번영회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그래요. 지금 현재 굉장히 잘나가던 상권에서, 그 풍요로움을 느꼈던 사람 중에 하나인데, 그런 것들이 사라져서 많이 아쉽다 생각도 듭니다.
김성국 부회장님 우리도 장사와 사업을 30년 가까이 했는데 30년 전에 시작했을 때에는 잘 됐고 호황을 누렸고요. 항상 호사다마라고 좋을 때에는 안좋을 때에는 대비를 해서 우리가 살잖아요? 근데 우리가 예단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상 언젠가는 신촌이, 대학 문화 자체가 언젠가는 서점이 줄어들고 술집으로만 얘기되는 이런 거리가 있는게 지금 우리가 봐도 사실 살짝 미안했거든요. 언젠가 이 거리가 바뀌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 장사를 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연세대에서는 상생 협약을 맺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 뜻이 쉽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그 안에 사실상 학생 식당 외에는 아무것도 안 두기로 했고, 근데 지금은 사실 조금 달라졌잖아요. 그 안에 구조도 그렇고, 병원도 많고요. 상권이 이렇게 낙후 요인에는 대학도 있습니다.
김봉수 회장님 특히 이대 상권에는 그런 경우가 더 심하죠. 왜냐하면 이대의 경우에는 편의시설들이 ecc에 있으니까, 학생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 당시 부회장 님이 신촌 번영회 부회장님이셨고, 상생 협약 때 하신 분입니다. 그 당시 학교 측이 약속한 게 신촌동, 그러니까 상인들의 권리, 권익에 대해서는 보장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온전히 지켜지지 않았으니까요. 당시 백양로 지하화를 하면서 상업 시설이 안들어가기로 했는데 아쉽고, 이 또한 한 요인이지 않을까요.
노을과 화려함 속 신촌의 거리
분명히 2010년대 많은 변화들이 신촌 상권에 영향을 많이 줄 수밖에 없겠네요. 아까 회장님, 부회장님께서 옛날부터 번영회가 이어지는 과정부터 느끼신 여러 부분들이나 흥망성쇠의 파트들을 많이 얘기해주셨는데, 그 중에서 추가적으로 신촌에서의 에피소드는 없을까요?
김성국 부회장님 2013년인가 런닝맨 촬영을 저희 집(가게)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하게 쌈밥 먹는 순서를 알아맞추는 거와 같은 게임이었죠. 전혀 상상도 못하게 게임을 시작했는데, 우리는 거의 하루 전에 알았거든요. 그래서 런닝맨 촬영을 우리네 업소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 그래서 당연히 오케이지. 우리야 홍보도 되고 유명한 연예인들도 오고 그러니까 항상 오케이했고, 당일 바로 앞에 한 3만 명이 모였다는 거에요, 식당 앞에. 차는 물론이고 교통이 마비가 되고, 3만 명이 말이 3만 명이지, 매우 많았습니다. 나는 3만 명인지는 몰랐는데 경찰관이 3만명 추산이라 그랬습니다.
지구 대장이 방범하면서 왜 얘기를 안 해주냐 했는데, 나도 그때 한 3일 전에 촬영한다 얘기를 했구나. 저도 그렇게 사람이 많이 올 줄은 몰랐어요. 방송 팀도 기습적으로 온다고 해서. 그래서 한 런닝맨 1시간 연속 중에 나오는 게 10-15분 분량으로 우리가 나오는데,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찍더라고. 그거를 그러니까 하루 종일 찍었죠. 아웃백 앞에서 거의 마비가 되어가지고. 그러니까 촬영 같은 걸 많이 하고 나니까, TV 브라운관에 한 번 딱 타고 나니, 신촌에 사람들이 더 많이 오게 되고 모이고 하기도 했던 거죠. 그래서 (이 에피소드에서) 좋았던 점들은 그런 게 좋고.
김봉수 회장님 가게가 장사가 잘 됐어. 근데 말씀하시는 게, 이제 그렇게 로케이션 헌팅이라고 그러잖아요. 장소가 헌팅 들어올 때 신촌이 고려대상 중 하나였던 거에요. 그 당시만 해도. 근데 이제는 거의 그런 경우는 없잖아요.
좁은 길에 그렇게 모이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놀라운 이야기네요. 마찬가지로 두 분께서 오래 신촌에 머무르셨는데요. 보통 학생들은 5년에서, 최대 10년 안팎인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코로나를 포함한 최근을 많이 비교할 수밖에 없다 생각하는데요. 그러한 최근 이야기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김성국 부회장님 저희 업장에서 보면 연세대학교에서 음식 먹으러 나오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요. 정문 나와서 오른쪽 가는 이들은 학부생이고, 왼쪽 가는 애들은 거의 대학원생이나 직원들이거든요. 찾는 학부생이 1년에 몇 명 안돼요. 점심이나 저녁에 예약하는 이들도 거의 대학원생들이고, 학부생들은 자주 안오다보니 사실상 특별한 차이는 모르겠어요. (하지만)학생들이 이렇게 정해진 것 같아요. 나가는 길이나, 어디 먹으러 가는 장소요. 미리 정해져서 나와가지고요. 제가 새마을을 하고 있어가지고, 사실 코로나 때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연세대 횡단보도 라인에 무슨 금속된 애들 전부 다 소독하러 다녔죠. 학생들 나오는 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해서요. 코로나 걸리면 난리가 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때 많이 힘들었죠.
김봉수 회장님 다 힘드셨죠. 그러니까 코로나 전과 후를 따지면, 학생 사회가 큰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선배와 후배 사이에 이어지던 끈이 다 사라졌어요. 그러다 보니까 보통 18-19같은 경우까지만 해도 오래 이어진 동아리 활동이나 과 활동이 굉장히 많고 활성화되어 있었는데, 20년대에 많이 와해된 것으로 보여요. 하다못해 동아리같은 경우도 예전처럼 많이 모이지 않고, 학과 활동도 좀 적어졌고요.
또 신촌 상권이 대중교통 전용 지구 이전과 이후 전후로도 가장 많이 달라진 점 중 하나가 뭐냐 하면, 이전에는 또 30-40대도 많이 왔어요. 삼원일식, 희원 등 당시 구내 가게들. 어마어마하게 가게들이 많았는데 다 사라졌어요. 20대 후반- 30대 초반, 40대가 이용했던 가게들이 다 사라지니까, 대학생들 위주로 상권이 재편이 되었어요. 2014년 이후로. 그러다보니 힘든 부분도 있었어요. 근데 이게 그게 19년 코로나로 인해서, 학생 사회가 와해되고 나서 작년 하반기부터 복구가 되었잖아요. 근데 완전히 복구가 안 돼요. 그러니까 저희 가게도 올해 상반기까지는 굉장히 장사가 잘 됐었는데, 그게 이제 코로나가 잠잠해진 여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거나 여러 가지로 인해서 장사가 됐는데 2학기 이후에는 약해졌지요. 그런 것들 영향이 컸던 것 같고, 대학원생들 많이 오고 세브란스 직원들 많이 가던 가게였었던 부회장님의 가게도 그런 수요가 많이 줄었죠.
김성국 부회장님 우리 업장 경우에는 단체석 위주로 테이블 만들었고, 세 개를 항상 (테이블) 여기여기 다 붙여놓고 했는데 코로나 때에는 ‘격리’라는 게 있기도 했고, 어려운 점이나 힘든 게 있었죠.
김봉수 회장님 10년대에 신촌 상권이 대학생 상권으로 바뀌어 큰 영향이 오고 갔는데, 코로나 전후로 기본적 네트워킹이 와해가 되면서 직접적으로 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가 있겠죠.
확실히 수적인 문제만 있는 게 아니라, 이제 학생들의 특성이 바뀐 것도 영향이 크겠네요. 코로나 전후 대학생활을 비교하고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김봉수 회장님 몇 학번이세요?
아, 저는 18학번입니다. (하하)
김봉수 회장님 아 그럼 18-19년에 재밌게 놀았겠네.
그때는 여러 신촌에 오래된 가게들 찾아가는 경우도 많았고, 재밌었는데 최근은 대학 행사도 상대적으로 적어졌고, 학우들 사이 관계도 좀 옅어졌죠. 아무래도 개인 술자리나 식사 자리가 많아지다 보니 프랜차이즈나 새로 생긴 작은 식당들 찾는 경우도 많아진 것 같고요. 네트워크 측면에서 적어진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 변화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김봉수 회장님 또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따지면 올해 초에 택시 요금 할증이 컸잖아요? 새벽 2시까지 두 배 가까운 요금도 내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대학생도 그렇지만, 오히려 일반인들이 더 11시 이전에 그냥 다 마쳐요.(모임) 그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나마 오던 일반인들이 신촌을 일찍 떠나버려요. 안 오게 되고, 회사 근처에서 먹게 되고 이러다 보니까요. 그러다보니, 외식 업소 같은 경우는 장사가 좀 약해졌고요. 저희 가게가 구석진 데에 있잖아요? 근데 아래 있는 현대백화점 먹자골목 쪽에는 일반인들이 빠진 자리를 대학생들이 좀 채웠죠. 근데 저희까지 오던 대학생들이 많이 줄었죠. 대체적으로 그런 변화가 많이 생겼고요. 근데 여기 계시는 cu 편의점 회장님 같은 경우에는 또 영향이 없었어요.
배선자 부회장님 우리는 요즘 아침에 5시에 일찍 출근하는데, 이번에 한 90%가 외국인이었어요. 어느 날은 추석 날 아침에 한 명이 우리 한국 사람이고 나머지가 다 외국인 학생들이라서 깜짝 놀랐어. 중국 학생 등의 손님들이 많이 온거죠. 대부분이 그런 어학당 애들이 많았고 아침에는. 근데 나는 내가 아침에만 출근하니까 그런데 낮에도 그렇더라고요.
김봉수 회장님 신촌에 연대생들이라거나, 한국 사람들이 예전보단 많이 머물지 않아요. 아마 본인도 느낄 텐데, 본인이나 주변 친구들은 어디서 주로 머무세요?
저는 계속 신촌에서 놀고 해왔으니, 요새도 신촌에만 머무르는 것 같은데요. 주변 친구들은 신촌을 벗어나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유동인구는 많아진 것 같지만, 여러 변화들이 있겠죠?
김봉수 회장님 저도 요새 연세대 친구들에게 신촌은 재미없다는 얘기까지 들었어요. 코로나 이전, 이후의 이야기가 또 이어지는 것이기도 한데 많이 달라졌죠. 그 다음에 상권 이용 대상들도 많이 달라졌죠. 연대생들도 물론 있지만 외국인 친구들도 굉장히 많아졌고,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아무래도 어학당도 있겠죠. 그들이 홍대 쪽에 안 있고, 이 주변에 다 사는 거예요. 그 쪽에서 놀다가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고. 그러다보니 편의점에도 많이 가게 되고요. 그런 것들도 있다고 분석도 할 수 있겠네요.
배선자 부회장님 유동 인구 외에 물가 얘기도 할 수 있어요. 많이 올라서, 사람 수가 늘었지만 또 물가가 많이 오른 거 치고는 매출과의 연관성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거에요. 코로나 이후에도 물가가 계속 올랐고, 그런 것 치고 유동 인구는 요새 많이 돌아왔는데, 물가 오른 것에 비하면 또 매출의 증가 문제는 다르죠.
감사하고, 또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이라 생각합니다. 확실히 많은 분들이 신촌을 아끼시고, 수고해주시면서 이 곳에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겠네요. 대학생들은 신촌의 이면을 알기 어렵겠지요. 신촌은 대표적인 대학가이긴 하지만, 그 특성이 전부가 아닌 동네이니까요. 그러한 점에서, 학생들이 알면 좋은 부분이나 다른 사실들이 있을까요?
배선자 부회장님 신촌에 오면 올수록 더 알 수도 있을 텐데 말이지요. 신촌에 와서 동네도 보고, 하는데 1학년은 모르니. 어디에 뭐가 있고, 놀거리를 알아야 조금이라도 더 번창할 텐데.
김봉수 회장님 연남동에 10년 전 정도에 가본 적 있어요. 처음 뜰 때였는데, 20년 된 가게가 잘 되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신촌은 50-60년된 곳들도 있는데 사람들이 알고 있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잔치’에 대한 고마웠던 점도 있었습니다. 7-8년 정도 전에 활동하던 사회학과 친구인데, ‘황수연’이라는 친구와 많이 알게 되고 같이 활동도 했거든요. 신촌에 오래되고 잊혀졌던, 그런 자산들에 대해서 많이 홍보도 해주셨고요. 학생들이 그런 걸 좀 많이 알 수 있고, 그렇게 도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촌동문화축제 팜플렛 – 역사를 지닌 플레이스들
김봉수 회장님 이번에 만든 건데요. 어차피 집대성이긴 한데, 이 안에 보면 오래된 가게들이 되게 많아요. 우선 신촌에는 예전부터 초당쌈밥, 가례원, 가막새, 가문의 운동도 있어왔고, 60년 가까이 된 가미분식도 있고요. 고향도 있고, 난향도 약 40년 되었고요. 그러니까 이렇게 굉장히 오래되고 유명한 가게들이 많아요. 이런 가게들이 잘 포장과 홍보도 되길 바라고, 연세대 학생들이 그러한 자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신촌이 80년대, 90년대 문화의 용광로가 될 수 있고, 상권의 최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신촌이 연극의 중심지였고, 음악과 소설, 영화, 문화 모든 것들의 중심이었기 때문이죠. 신촌이, 학생들이 보통 알고 있는 것들 그 이상으로, K-pop의 원류하고도 맥이 닿아 있고, 그런 역사나 문화적인 자산들이 있었을 뿐더러, 그것들이 알려지고, 알아줬으면 하죠. ‘신촌은 대단한 곳이구나’하는 점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단순한 신촌 블루스, 한영회 이상으로 더 많은 수준과 깊이를 갖고 있거든요. 단지 덜 알려졌을 뿐이지 신촌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새 저희 잔치의 경우에도, 각자의 관심 포인트에 따라서 여러 주제나 장소들을 찾고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참 알면 알수록, 모르는 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김봉수 회장님 우드스탁이나 다모토리, 서른즈음에도 그렇고 당시에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공간들도 많죠. 이외에도 외식 쪽에서는 형제갈비나 아까 이야기한 가미분식,그리고 향꽃. 대구 삼겹살만 해도 엄청 오래되었고요. 미네르바 같은 경우도 그렇고 오랜 시간을 뛰어넘는 공간들이 참 많죠. 판자집 같은 경우도 83년 이후부터잖아요? 그러니 40년이 된 것이고, 털보 고삼이의 경우에도 그렇고 가게 하나하나가 역사가 있죠. 폴라로이드 사진도 안에서 다 볼 수 있고요. 그 안에서 90년대, 2000년대 초반 사진들도 엿볼 수 있고요. 이게 다 지역 내에서 의미를 각자 지니고 있는 명소들이고요. 이러한 것들에 대한 홍보가 더 되야 하지 않을까. 학생들 차원에서도 그렇고 아쉬움과 동시에 바람이죠. 신촌이, 그리고 여러분들이 즐기는 여러 가게나 문화같은 것들이 상상 이상의 가치도 있고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데, 그런 것들을 이제 저는 널리 알리고 싶은 거죠.
개인적으로도 소소한 욕심이 있던 부분인데, 많이 놀라고 또 배웠습니다. 그래서 (위 사진)팜플렛도 계속 갖고 있는데요. 확실히 축제들을 즐기면서 더욱 놀랐던 포인트들이었고, 더 많이 알면서 즐기고 하면 좋지 않을까,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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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문화의 개척지 : 신촌
앞으로 나아가는 신촌에 대한 회장님의 개인적인 목표와 방향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앞으로의 신촌에 대해 이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최근에 많이 이야기 나눈 것 중 하나로서 작년에 시의원 공천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이 있다보니 스스로 내려놓은 적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원래 제가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가 뭐냐면, 신촌 상권이랑 연결이 된 일이었어요.
이대, 신촌, 연희, 연남, 홍대, 상수, 합정, 망원. 이 8개 상권을 묶어 광역 상권으로 만들고, 그걸 기반으로 해서 광역 상권이 단순히 서울 서부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는 소비층으로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전국적, 세계적으로 커지는 것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아가는 방향으로서, 성격이 다 다른 이 8개 상권을 묶어서, 서대문구와 마포구가 협의를 하고 서울시가 협의를 해서 묶어서 진행하는 걸 하고 싶었죠.
신촌은 현재 예전의 문화 그리고 패션 이런 것들로 유명했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어요. 그건 이제 우리가 다시 할 수 없어요. 저희가 그럼 가진 자산이 뭐냐면 연대와 이대라는 것입니다. 연대와 이대는 창업 희망자들이 많잖아요. 그분들이 하고자 할 때 학교 내에서 움직이지 신촌으로 나오려고 하면 교통의 불편함, 주차장, 사무실 등 문제가 많아요. 그런 것들도 목표로 해서 움직이는데, 신촌을 그러한 창업 밸리 중 하나로 하는 것도 생각 중입니다. 신촌과 이대는 횡적으로 공간이 한정되잖아요. 토지 용도 변경을 통한 종상향이 있는데요. 그걸 통해 면적 확대 및 청년 창업인들의 사무실 확보를 하려고 하니 그러한 공간 확보를 하게 되는 거에요. 이렇게 용도 제한을 풀고, 종상향 통해 층수 확대하고, 그 공간에 창업 요소가 들어가죠. 그러려면 신촌의 교통 접근성도 좋아야 하고, 주차장 확보나 경인선 등의 여러 접근성이 편리해지는 것도 있어야죠. 그럼 이런 것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청년 창업은 청년 창업대로 유지되고, 그러면 기존 상권같은 경우에는 외식 상권이잖아요. 이건 그대로 유지를 해야겠죠? 왜냐하면 50년, 60년, 40년, 30년과 같이 긴 시간 지닌 가게가 그렇게 많잖아요.
이걸 사라진다고 하면 속상하고 화가 나는 것이죠. 서울시 전체로 보았을 때에도 하나의 유산을 잃어버린다고 생각을 해요. 기존 상권을 그렇게 유지시키면서 창업 밸리 같은 새로운 특성을 만드는 것이 상가 번영회의 최종 목적 중에 하나가 되는 거에요. 젊은 분들이 많이 들어오고, 학생들과 많이 교류를 하고자 하는 큰 이유중에 하나가 그렇게 되는 것을 위함이죠.
창업 부스와 공예품 부스가 가득한
저도 최근에 보니, 박스퀘어 내에서도 여러 창업 팀들이 있었고, 관련된 축제도 있었고요. 연세로에서 진행되는 것들을 보니 캠퍼스타운 소속 창업 부스들이 굉장히 많이 배치되었더라고요.
김봉수 회장님 그렇죠. 이렇게 닦여져 있던 하나의 터전이었죠. 거기서 빌드업 시작을 하는 거죠. 그니까 연대생들이 신촌 재미없다고 하거나 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기존의 문화유산도 굉장히 많지만, 향후 가지고 가야 할 미래 유산에 대한 것도 많이 지니고 있어요. 제가 다른 곳에서 강의하거나 하는 경우에 얘기드리는 것 중 하나가 신촌이라는 지역의 특이점인데요. 과거 의료와 교육 중심의 선교 사업을 바탕으로 시작하고 발전된 곳이 신촌이었고, 그런 이념적 근간이 형성이 되었죠. 거기서 하나씩 쌓이던 지역이 60년대에 교통이 편리해지고, 발전하기 시작했고요. 상권의 중심지로서 활동이 되다가 연극을 비롯하여 음악, 문화, 패션이 들어오면서 80-90년대 최전성기를 구가하였고요. 그렇게 되어왔으니까요.
김성국 부회장님 회장님의 이러한 비전과 꿈, 생각도 많기 때문에 모두가 같이 돕고 있고요. 또 회비나 다른 지원으로만 원활한 운영이 되는 게 아니니까, 자생력을 갖추기 위한 방안을 계속 생각하고 있죠.
김봉수 회장님 신촌동상가번영회가 가진 꿈은, 신촌에 대한 비전의 제시입니다. 신촌이 단순히 국내 상권을 대상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전국적인, 그리고 세계로 나갈 때의 상권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거에 대한 그런 것들도 (저희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도) 명확한 인식이 되어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한 기본 세팅도 되어 있고요. 빌드업이 진행 중입니다. 그 첫 번째가 상가 번영회의 활성화였고, 올해 4월 이후로 지금까지 온 과정에서 나쁘지 않았다고 자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꿈이 이루어지는, 2023
오늘 정말 좋은 말씀 많이 들었고, 감사하면서도 또 너무 재미를 얻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기 전에, 간단한 마지막 질문 하나 드립니다. 신촌을 한 마디로 요약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ing~ 겠죠? 제 생각은요. 발전의 측면에서, 아직까지도, 앞으로도.”
“신촌은 계속 진행중!”
“신촌은 우리의 꿈이다.”
하나의 색깔에 그치지 않는 신촌의 하늘
수많은 한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이 땅을 이끌었다.
각자의 한때를 보내는 이들은 매 해 쏟아져, 이 땅을 거쳐갔다.
그 시간들의 사이에서 몇 개의 짧은 조각을 쥐었던 나는, 깊이 뿌리를 내린 채 오랜 시간을 지탱하고 계신, 신촌의 거인들을 만나뵈었다.
한 명의 사람에게 있어 새로움이란 것은 점차 그 이름을 잃게 될지는 모르나, 그 사람들이 모여 다시금 새로운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움직이게 한다. 그렇게 신촌의 이름은 지속되고 번영할 테니,
신촌은 신촌일 것.
신촌과 불빛
번외
“2010년대에 1학년들이 인천 송도로 가기 시작했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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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의 20살들이 줄어들었다. feat. INCHEON SO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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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젊은이들 술 많이 먹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먹고 노는 데에는 1학년이 최고지, 최고의 때야.”
“아, 송도에서 많이 마셨습니다…”
“근데 얼굴이 낯이 좀 익은데…?”
“아, 술 마시러 가게 몇 번 갔습니다 … 하하”
2학년 때에도 많이 마셨다. 3학년 때도 그랬고, 4학년인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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