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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24 · 04 · 02

420. 어제보다는 먼, 오늘보다는 가까운

Editor 유화

잠들지 못하는 너에게.

 

안녕, 이렇게 편지 쓰는 건 오랜만이다. 잘 지내? 정신없이 매일을 살던 중에 홍대 단골 카페에서 공연을 하나 봤는데, 노래를 듣는 내내 네 생각이 나더라. 과학실 뒷자리에서 몰래 떠들던 때부터 서로의 술잔을 마주치기까지 우리가 나눴던 걱정거리, 뱉었던 한숨, 그래도 힘내자며 불끈 쥐었던 주먹까지. 네 고민들은 비로소 고요해졌는지, 아니면 나처럼 아직도 요동치는 중인지 궁금해.

 

인연은 첫눈에 알아본다는 말을 믿니? 무언가를 사랑하는 건, 내겐 늘 시간을 수반하는 일이었어. 오랫동안 지켜보고, 뒤집어도 보고, 너무 자주 떠올리면 닳을까 봐 아껴서 생각하고. 그렇게 마음 한 겹, 세월 한 겹 번갈아 쌓아올리다 보면 어느새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두꺼운 소중함이 되어 나를 지탱해주고 있더라.

 

그런데 아주 가끔, 홀연히 나타나 그 진리를 깨뜨리는 존재들이 있어. 분명 사랑과는 다르지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뇌리에 박혀버린 이들을 부르는 단어가 따로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곤 해. 며칠 전 카페에서 마주친 그 분도 시리도록 아름다운 모습이었어.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그토록 애틋해서 눈물이 맺힐 수 있다니. 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데,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는 눈을 감고 있어도 빛이 나더라. 다정하고 따뜻한 은색의 목소리가 지친 마음을 적시는 그 느낌을 어떻게 너에게 설명할까… 마치 새벽에 내리는 비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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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홍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싱어송라이터 ‘새비’로 활동 중인 이재영입니다.”

 

근데 참 신기하지? 내가 지금 그 사람을 마주하고 앉아있다는 게. 무대 위 가수와 청중이 아닌, 덕수궁 앞 작은 카페에서 바닐라 파운드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게.

 

“그날 홍대 더블유오앤에서의 공연은 저에게도 참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카페는 원래 공연장이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러 오시는 곳이니까, 사실 공연을 보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될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평소처럼 bgm 느낌으로 들으시겠지,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점점 조용해지더니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나오기 시작하고, 공연이 끝날 때쯤에는 대화를 멈추고 다들 공연을 봐 주시고 계신 거에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집에 가는 길에 지인들에게 막 자랑했답니다.”

 

 

뿌듯함에 생색을 좀 냈어, 그 박수 우리가 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억지로 짜낸 반응이 아니라, 정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는 느낌이었다고도 덧붙였어. 공연을 봤던 날부터 ‘새비’라는 활동명이 무슨 뜻인지도 궁금했는데, 기회다 싶어서 여쭤봤지.

 

“사실 이 이름을 지은 지는 정말 얼마 되지 않았어요, 1월에 지었거든요. 최은영 작가님의 소설 ‘밝은 밤’을 읽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지역명 중 ‘새비’라는 단어의 어감이 너무 꽂히더라구요. 그땐 그렇게 넘어가고, 어느 날 밤에 생각이 많고 마음이 힘들어서 잠을 좀 설쳤어요. ‘아, 이대로 못 자고 내일을 또 망치겠구나.’ 하고 있는데 밖에서 타닥, 타닥 빗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문득 ‘내가 잠들지 못해서 이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구나, 참 좋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빗소리가 까만 밤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적막을 깨어 주는 것만으로도 참 위로가 되었어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졌죠. 마침 새벽에 내리는 비, 하니까 제가 좋아하던 ‘새비’라는 단어랑도 딱 맞아떨어지는 거에요! 그래서 아, 이건 운명이구나 하고 ‘새비’라고 짓게 되었습니다.”

 

사람마다 할당된 운명의 총량이 있는지도 몰라. 진로를 정할 때, 연인이 될 사람을 만날 때, 혹은 인생을 같이 걸어갈 친구와 처음 인사를 주고받는 순간에 찾아오는 ‘직감’ 말이야. 새비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쌓아 올릴 이름을 지을 때 운명이 찾아온다면 그것도 정말 크나큰 행운이겠다. 또 다른 운명 같은 순간들은 없었을지 궁금해졌어.

 

 

“공연을 많이 하다 보니까 기억에 남는 공연이 많아요. 첫 번째로는, 제가 작년에 처음으로 밴드를 데리고 공연을 했어요. 수원 행궁에서 열린 ‘야행’이라는 축제였는데, 피아노, 기타 세션과 함께 40분의 공연을 제 노래로만 채워서 했거든요. 커버곡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싱어송라이터인 저에게는 자기 노래로 꽉 채운 공연을, 심지어 세션과 같이 한다는 게 너무 행복한 일이라 늘 기억 한 켠에 담아 두고 있답니다.

 

그리고 관객분들과 관련된 따스한 일화가 많은데요. 한겨울에 했던 버스킹 공연을 보시다가 끝나자마자 제 손을 잡아주셨던 아주머니가 떠오르네요.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사라지시더니 돌아오셔서 사온 빵을 주셨던 노부부 분들, 자신이 가지고 다니던 행운 부적을 저에게 주면서 꼭 꿈을 이루셨으면 좋겠다고 해 주신 여성분도 계셨어요.”

 

생각해보니 홍대에 살면서도 매일 열리는 버스킹 공연을 유심히 본 적이 거의 없더라. 바쁘게 지나칠 법도 한데 멈춰 서서 노래를 듣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낭만과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이들이 아닐까. 매일 스쳤던 버스커들과 새비님이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어. 대학생 시절 어느 하루에는, 새비님도 홍대에서 노래를 하셨을 테니까.

 

“스무 살 때부터 홍대 일대를 누비며 공연을 했어요. ‘블렉테트라’와 ‘소리얼’이라는 중앙 음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쪽에 있는 버스킹 존에서 앰프까지 직접 다 대여해서 노래를 하곤 했죠. 어느 날은 고등학교 때부터 저를 응원해주던 친구가 공연을 보러 와서 울더라구요. 네가 꿈을 이룬 것 같아 보인다고.

홍대 거리에서도 하고, ‘언플러그드’라는 카페에서도 대관을 해서 자주 공연을 했어요. 교육학과 음악 소모임 ‘교필’ 활동을 할 때는 거의 언플러그드에서 항상 했던 것 같아요.”

 

내가 그런 말 한 적 있지? 신촌은 내가 튕긴 물 한 방울은 티조차 나지 않을 광활한 바다 같아서,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특히나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이는 홍대 거리를 걷다 보면 아무리 발칙한 상상도 별 것 아닌 듯한 용기가 생겨. ‘성공하면 간지, 실패해도 힙’을 외치며 눈 딱 감고 저지르기에 최고의 배경 아닐까? 새비님에게도 꿈을 펼치기 시작한 첫 무대는 홍대였던 셈이지. 그런데 교육학과 졸업생이시면, 음악은 대학교에 와서 시작하신 걸까?

 

 

“아무래도 현실의 벽이 컸었죠. 중학생 때부터 노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부모님께서 실용음악과로 진학하는 것을 많이 반대하셨거든요. 정 하고 싶으면 우선을 대학교를 가서 해라, 하는 말씀을 하셔서 두 번째로 하고 싶었던 일인 선생님에 맞춰서 학과를 선택했어요. 그러는 와중에도 고등학생 때부터 곡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고, 홍대 입학 후에는 오직 음악만 하면서 대학시절을 보냈죠.”

 

현실과 타협하기가 지독하게 싫었던 나는 원하는 걸 쟁취하고 현실을 바꾸느라 손끝, 발끝까지 힘을 주고 살아왔어. 그런데 현실을 유연하게 수용했다가 때가 되면 내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부드러운 강인함이 진짜 강한 거라는 말도 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새비님은 꿈을 향한 마음이 흔들린 적은 있어도 부러진 적은 없으시다고 해.

 

“차라리 내가 이 약간의 재능을 타고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자주 했어요. 내가 음악을 좀 안 좋아했더라면 더 일반적인 길을 가서 편하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음악을 너무 사랑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소중한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걱정을 하게 하고 저 스스로도 자신감이 떨어질 때가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결국은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교육학과를 다니던 대학생활 내내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음악을 놓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했던 게 아니라, 저도 모르게 음악 주위를 늘 맴돌고 있었거든요. 뻔한 이야기겠지만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나요. 내가 이 일을 너무나 하고 싶은데 어쩔 방도가 없었어요.”

 

 

적당하고 괜찮은. 좋은 수식어인데 왜 재능이란 말 앞에 붙으면 이다지도 옹졸해지는 걸까. 천재성이 되지 못한 재능은 꼭 느닷없이 나타난 갈림길 같아. 누가 봐도 더 어려운 길임이 분명한데 거부할 수 없는 묘한 이끌림에 발을 내딛고야 말지. 선택지가 하나 뿐이면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텐데, 스스로 쥐여준 또 하나의 기회가 머리 아픈 고민을 하게 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런 걸까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곡이 나오더라구요. 어렵사리 시작한 음악인 만큼 진심을 꾹꾹 눌러담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대중의 환대를 받는 중독성 있는 음악은 아닐지라도, 제 진심이 가닿을 때까지 매일 좋아하는 작업을 하는 거죠.”

 

실제로 새비님은 상상을 일부 더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경험을 기반으로 가사를 쓰신다고 해. 그날 카페에서 공연을 본 후에 다른 곡들도 찾아서 들어봤는데, 나는 ‘Movie Luv’라는 곡이 제일 좋더라고. 너도 꼭 들어봤으면 해서 가사를 같이 적어 보내.

 

이재영 Jaeyoung Lee – 01 movie luv

 

널 그리워하는 마음이 / 들숨 날숨에 섞여 나올 때

시덥잖은 농담에 숨이 차게 웃고 웃을 때 / 말할 수 있어

시시각각 세상은 변하고 / 빗소리조차 나를 울리지만

우리는 그대로 여전하고 / 넌 나의 쉼터가 되네

 

참 담백하지? 반투명한 라벤더색 가사를 한 페이지씩 넘기는 느낌이 들었어. 언젠가 정말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조용한 강가에 앉아 같이 들으리라 다짐했지. 어떤 사랑을 하면 이런 가사를 쓸 수 있는 걸까? 새비님에게 사랑이란 무엇인지 질문했어.

 

“음.. 이 질문이 제일 어렵더라구요. 굉장히 오랫동안 생각해봤는데, 결론은 아직도 그 답을 찾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사랑이 도무지 어렵다가도, 또 영원을 믿고 싶어지기도 하고. 모르는 게 투성이라 계속해서 사랑에 관한 글과 노래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닐까요. 다만 ‘Movie Luv’를 쓰면서 생각했던 사랑은, 너무나 평범한 삶을 살다가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그 순간만큼은 나를 이 세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것이었어요.”

 

내가 던졌지만 나조차도 답할 수 없는 질문. 사랑이 무어라 단언할 수 있는 인생은 얼마나 단조로울까? 틀어막아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정 때문에 삶은 영원히 완벽에 다다르지 못하겠지만, 그 흠이 모여서 각자의 삶에 결을 만들어 주잖아. 하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감정은, 작업의 원동력을 주는 대가로 유독 더 가혹히 굴기도 해.

 

 

“우스갯소리로 예술가란 참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직업이다, 하는 말을 자주 해요. 일상이 평온하면 너무 감사해야 하는 일인데, 곡이 잘 안 나오더라구요. 지난 겨울에 좀 마음이 힘든 시기를 겪었는데 그제서야 곡이 써지는 것을 보면서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살다 보면 인생에 꼭 겪어야 하는 슬픔이 있더라구요. 불안이라든지, 비교라든지, 열등감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아예 주어지지 않는 삶은 오히려 불행할 거라 생각해요.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 때 전혀 공감하지 못할 테니까, 정말 혼자서 살게 되는 거잖아요. 부정적인 감정들도 한차례 겪고 나면 스스로 깊어지고, 비로소 남의 아픔에도 공감할 수 있는 아량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점점 메말라가는 세상 속에는 남들보다 감정을 훨씬 더 크게 느껴서, 주변 사람들에게 불어넣어주는 누군가도 필요하겠지.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견딜 수 있게 하는 것 같아.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 하나 먹고 살 수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싶다가도 큰 성공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쉽지 않더라. ‘내가 나로서 온전하게 살아가는 방법.’ 공연을 보는 내내 새비님께 정말 여쭤보고 싶었던 거였어.

 

 

“음.. 일단 자신의 욕망을 잘 들여다봐야 해요. 제가 만약 경제적 안정이 최우선인 사람이었다면 지금처럼 살지 않았겠죠. 그런데 그것도 나쁜 게 아니거든요.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질문했을 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 우선순위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의 인생은 스펙트럼처럼 넓게 펼쳐진 건데, 중간의 한 조각만 떼어놓고 비교를 하면 당연히 순위가 생기거든요. 이 부분은 당연히 저 사람이 낫고, 나보다 돈을 잘 버는 누군가도, 못 버는 누군가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삶이 그렇게 부분부분 떼어놓고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인생을 조망할 때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고, 당장 할 일을 할 때는 눈앞에 놓인 나무 한 그루에 집중하면서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고. 이번주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인간은 너무 나약하고, 그에 비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랜덤 확률이 존재하니까요. 그저 주어진 현재를 잘 사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나무를 볼지, 숲을 볼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나무에서 숲으로, 또 숲에서 나무로 시선을 자유롭게 옮길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었어. 마지막 질문으로, 새비님은 어떤 곡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딱 한 곡을 뽑아달라고 했어.

 

 

“미발매곡 중 하나인데, ‘비스듬히’라는 제목의 노래예요. 코로나가 시작되고 공연이 다 끊기니까, 정말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걸맞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게 내 욕심이었던 게 아닐까, 이 정도의 좌절과 실패를 겪는다면 세상이 이젠 그만하라고 신호를 주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힘들었죠. 그런데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가 봤을 땐 너무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다 비슷한 고민을 했더라구요.

 

그 말들을 들으면서 ‘아, 나는 좀 다를 순 있겠지만 틀린 건 아니구나.’ 하고 안도했던 기억이 나요. 생각해 보면 서로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없잖아요. 엄청나게 곧은 탄탄대로의 길을 가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서로에게 살짝 기대어서 조금 비스듬하게 인생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제가 살고 싶은 방향을 이야기하고 있는 곡이라 그 곡으로 남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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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님을 만나고 며칠이 지난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냈어. 알람을 듣고도 한참을 더 자고 일어났고, 아침 챙겨먹는 건 또 깜빡했고. 그렇게 끊는다던 SNS도 어김없이 봐 버렸어.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궂은 날씨에도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할 일을 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홍대에서 버스킹 공연을 잠시 서서 듣다 걸음을 옮겼어. 그리고 편지를 쓰며 너를 떠올리는 이 새벽엔 늘 꽂던 이어폰을 빼고, 촉촉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느끼고 있어.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행위는 어쩌면 투쟁이 아닌 수용이지 않을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억지로라도 이해하고, 내게만 유독 고깝게 구는 세상을 향해 한두 마디 툴툴대며 여전히 살아가는 우리는 현실에 순응하는 게 아니라 유연하게 맞서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러니 양껏 헤매도 보고,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겼다가 있는 힘껏 저항도 해 보자. 언젠가는 ‘그래도 그때 참 재밌었지’ 하며 떠올릴 지금의 흔들림을 그대로 두는 거야. 세상을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날까지, 해가 뜨면 사라질 새벽의 공기를 만끽하면서.

 

그럼에도 너무 힘이 들 땐, 이 노래를 들으며 스르르 눈을 감아봐.

잠깐은 편해도 돼 / 그 무엇도 널 깨우지 않아

흐르는 계절처럼 / 감은 눈 속에 많은 게 스치네

꿈속 어딘가 / 서럽지는 말아 나를 찾아

-<허밍>, 새비
이재영 Jaeyoung Lee – 02 허밍 Humming

 

너의 새벽이 너무 메마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화
AUTHOR PROFILE
유화

잔치의 시선으로 신촌의 장면과 사람, 장소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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